제럴드 젠터, 파텍 필립·오데마 피게 등과 손잡고 탄생시킨 ‘노틸러스’ ‘로얄 오크’ 라인은 44년이 흘러도 여전히 인기 끌어 제럴드 젠타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계를 디자인하면서 명품 스포츠 시계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다.“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멋진 시계를 디자인했던 제럴드 젠타(1931~2011)는 손목시계 업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는 시계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세상에 내놓았다.”
난 경매 업체 크리스티의 카탈로그에 쓰인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제럴드 젠타라는 이름은 시계 업계 밖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20세기 후반의 가장 뛰어난 시계 디자이너였다.
난 젠타가 시계 업계의 누치오 베르토네 혹은 조르제토 주지아로라고 생각한다. 엔초 페라리,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등의 명품 자동차 차체를 디자인한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의 거장들이다. 하지만 젠타는 베르토네나 주지아로보다 더 급진적이었다. 젠타의 성공작은 수없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작품 2종이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와 오데마 피게의 ‘로얄 오크’다.
1976년 출시된 노틸러스는 올해로 탄생 40주년을 맞았다. 배의 현창(채광과 통풍을 위해 뱃전에 낸 창문)처럼 생긴 시계 모양은 당시 매우 파격적이었다. 그 독특한 팔각형 다이얼과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인체공학적 디자인의 시계줄은 유행을 타지 않으며 요즘도 초현대적으로 보인다.
노틸러스는 제조 업체인 파텍 필립의 이미지와 상반돼 더 인상적이었다. 1839년 설립된 파텍 필립은 시계 업계 최고의 블루칩 브랜드다. 과거 이 회사는 미국 도금시대(1873~1893년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급격히 발전한 시기)의 재벌들과 유럽 왕가 고객을 위한 시계를 만들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디자인이 복잡하면서도 두께가 얇은 정장용 시계로 유명했다. 빳빳하게 다림질된 셔츠 소매 아래로 살짝 보이는 날렵한 금시계가 품위 있게 시간을 알려줬다.
파텍 필립은 1976년 젠타와 협업으로 125m 방수되는 스포츠 스틸 시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들 시계는 야회복과 잠수복 차림에 다 어울리는 아이템으로 홍보됐다. 이처럼 놀라운 기능과 스타일에 걸맞게 가격도 매우 비쌌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 중 하나는 강철로 만들어졌다’는 광고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물속에 든 노틸러스 시계 옆으로 스포츠카 한 대가 달리는 모습이 담긴 광고도 있었다. 이건 그냥 스포츠 시계가 아니라 명품 스포츠 시계였다. 명망 있는 브랜드와 과감한 디자인의 만남이 신선한 충격을 줬다.
노틸러스가 특출한 이유는 단순한 겉모양이 아니라 통합적인 디자인에 있었다. 시계줄과 시계가 하나의 미학적 총체로 받아들여졌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금속 줄이 달린 시계는 많았지만 대부분 본체와 별도로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시계줄은 보통 보석 세공업체나 체인 제조업체에서 만들어 출고 직전에 본체에 연결했다. 하지만 노틸러스의 시계줄은 모양이 매우 독특하고 본체와 한 몸처럼 연결돼 경계를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젠타는 이 방식을 그보다 4년 앞서 로얄 오크를 만들 때 처음 시도했다. 로얄 오크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는 시계 업계의 전설이 됐다. 그 동화 같은 이야기는 시계 업계에서는 마치 윌리엄 텔의 전설처럼 받아들여진다.시계 업계는 매년 스위스 바젤에서 박람회를 열어 그해 나온 새 모델들을 전시한다. 1971년 박람회가 열리기 바로 전날 오데마 피게의 간부가 젠타에게 연락했다. 그 간부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유통업자들이 스틸 시계를 원한다면서 다음날 아침까지 디자인 제안서를 준비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젠타는 그럴 수 있었고 그렇게 했다. 독특한 8각형 테두리와 본체에 통합된 시계줄이 눈길을 끄는 그 시계는 오늘날에도 생산된다.
(왼쪽) 올해로 탄생 40주년을 맞은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산되며 꾸준한 인기를 누린다. / (오른쪽) 1977년 나온 오데마 피게의 ‘로얄 오크’는 8각형 테두리, 본체와 통합된 시계줄이 특징이다.젠타는 시계 업계의 판도를 하룻밤 새에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디자인이 업계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오데마 피게의 재단 이사장 재스민 오데마가 전에 내게 이 디자인이 처음 발표됐을 때 논란이 거셌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 업계의 일부 인사들은 이 시계가 오데마 피게를 망하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들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노틸러스 역시 논란이 많았다. 사람들이 이 시계를 받아들이고 좋아하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하지만 한번 인기를 얻고 나서는 꾸준히 그 인기를 유지했다. 오늘날 오데마 피게라는 브랜드 명은 8각형 시계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인다. 오리지널 디자인이 여전히 생산되며 슈퍼사이즈인 ‘로얄 오크 오프쇼어’(단조 카본부터 18k 골드까지 다양한 재료가 쓰인다)는 초호화 요트와 슈퍼카처럼 부자들의 필수품이 됐다.
노틸러스 역시 파텍 필립의 주요 제품으로 여전히 생산되며 컴플리케이션 워치(다양한 기능이 탑재된 시계)를 탄생시켰다. ‘아쿠아노트’라고 불리는 고무밴드 버전까지 나왔다. 크리스티는 노틸러스 탄생 40주년을 기념해 4차례의 경매 행사를 열어 각각 10개의 빈티지 노틸러스 모델을 출품한다. 이 모델의 인기가 여전히 대단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난해엔 1982년형 노틸러스가 90만9319달러라는 기록적인 가격에 팔렸다.
젠타는 2011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명품 스포츠 시계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장본인으로서 여전히 그 안에 살아 숨쉬는 듯하다.
-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
[ 크리스티의 ‘파텍 필립 노틸러스 40’ 경매 행사 일정은 다음과 같다. 두바이 10월 19일 , 스위스 제네바 11월 14일, 홍콩 11월 28일, 미국 뉴욕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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