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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탑승 왜 먼저 하려고 난리인가

비행기 탑승 왜 먼저 하려고 난리인가

가장 먼저 타나 늦게 타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은 똑같다
비행기 여행을 하는 사람은 탑승할 때 왜 ‘첫째가 아니면 꼴찌’라는 사고방식에 매달릴까?
아침 6시가 지나면서 미국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뒤덮었던 어둠이 서서히 걷혔다. 아메리칸항공 터미널 게이트8 앞에서 애리조나 주 피닉스로 가는 1468편의 첫 탑승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안내 방송이 나오자마자 나를 포함한 승객 158명 중 대다수가 게이트 앞에 모여들면서 수동적이면서도 공격적인 밀치기의 미묘한 예술이 시작됐다. 서로 먼저 탑승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위해 다른 사람보다 먼저 탑승하려는가?

탑승객들이 게이트 앞에 몰려들어 줄을 길게 서는 동안 나는 그냥 로비에 앉아서 풍미 좋은 커피의 마지막 몇 모금을 즐겼다. 줄을 선 승객들이 서로 밀치면서 스크럼을 짜는 듯한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도 모두가 비행기를 서로 먼저 타려고 애쓸까? 좌석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라도 했을까? 비행기 여행을 하는 사람은 탑승할 때 왜 ‘첫째가 아니면 꼴찌’라는 사고방식에 매달릴까?

휴대용 가방이 커서 객실의 머리 위 짐칸에서 공간을 확보하려고 다른 승객보다 빨리 탑승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만약 머리 위 짐칸에 휴대용 가방을 넣을 공간이 다 차서 없다면 항공사에서 무료로 부쳐준다. 교통안전국(TSA)의 짐 검사대를 통과할 정도로 작은 가방을 화물로 부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하긴 그렇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짐 찾는 곳에서 가방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바로 위 짐칸에 자리가 없어서 뒤쪽에 넣어둔 가방을 가져오려고 비행기에서 내리는 승객의 다섯 줄을 거슬러 뚫고 나가기 위해 허리와 어깨춤을 춰야 하는 승객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실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뉴욕에서 피닉스로 가는 우린 모두 거의 5시간을 좁은 금속 날틀 속에서 다리도 못 뻗으며 함께 지내야 한다. 그런데 비행기를 빨리 타서 그 고역을 10∼20분 연장하고 싶은가? 게다가 탑승하려면 어차피 제트웨이(여객기와 터미널 건물을 잇는 승강용 통로)에서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지 않는가? 물론 일찍 탑승하면 기내 안전 시연을 처음부터 다 볼 수 있겠지만 진짜 그걸 다 보고 싶은가? 게다가 공항에서 조금 전에 짐 검사 받느라고 이미 15∼30분 줄 서서 기다리지 않았는가? 그것으로 충분히 짜증나지 않았는가?

물론 몇 가지 고려 사항이 있다. 첫째, 어린 아이나 노인을 동반한다면 일찍 탑승해야 여러 모로 편하다. 항공사도 그런 점을 잘 알기에 그렇게 하라고 특별 안내 방송을 한다. 둘째, 1등석 승객이라면 일찍 탑승해 이코노미석 승객들이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넓은 자리에 편안히 앉아서 느긋하게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셋째, 일찌감치 좌석 등급과 선택권을 없애고 ‘선착순 탑승’ 제도를 도입한 저가 항공 사우스웨스트 비행기를 이용한다면 먼저 탑승하려고 난리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먼저 타는 승객이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면 늦게 탑승하면 남은 좌석은 대개 어느 열에서나 아주 불편하고 양쪽 모두에게서 따돌림 받는 가운데 하나뿐이다. 전학 와서 스쿨버스를 처음 타는 아이가 되는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그런 향수를 기꺼이 제공한다.
승객의 상당수는 자기 자리에서 ‘편하게 자리 잡는’ 만족을 느끼기 위해 몇 분이라도 빨리 탑승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정해진 좌석을 더 빨리 찾아 일찌감치 자리 잡고 싶어서 탑승을 서둔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조종사라면 모를까 승객이 미리 자리에 익숙해지고 뭔가를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대다수 항공편을 살펴보면 승객 3분의 1은 한 열의 중간에 있는 자기 자리에서 ‘편하게 자리 잡는’ 만족을 느끼기 위해 몇 분이라도 빨리 탑승하려고 서로 밀친다. 그 끔찍한 중간 자리에서 필요 이상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나로선 놀라울 따름이다. 차라리 그 시간을 도서 가판대에서 최신 화제작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데 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항공사가 탑승을 규칙대로 시행하기로 작심한다면 나도 내가 속한 그룹이 호명될 때 탑승하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18~30열 좌석의 승객들에게 가장 먼저 게이트 앞으로 나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와도 그 앞 열 좌석의 승객들 대다수는 그런 규칙을 무시하고 달려 나간다.

이기적이고 규칙을 무시하는 항공 여행객이 너무 많은데도 항공사는 그런 혼란을 막으려는 생각이 별로 없는 듯하다. 왜 그럴까? 승무원이 객실 맨 뒤의 몇 열 승객들에게 먼저 탑승하라고 말한다면 예를 들어 8B 좌석을 할당 받은 승객은 기분이 상해 다시는 그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게 항공사의 생각이기 때문이란다. 말도 안 된다. 그 승객은 요금이 가장 싼 항공사나 자신이 쌓은 마일리지가 가장 많은 항공사의 비행기라면 무조건 탄다.

수많은 무례한 여행객이 예의를 무시하는 동안 우리 같은 사람은 좀 덜 부대끼는 탑승을 선택한다. 나는 마치 세 살짜리처럼 비행기에 탑승한다. 무슨 뜻이냐고? 켄터키 더비 경마대회에서 뛰는 세 살짜리 순종 경주마를 떠올려 보라. 나는 맨 꼴찌로 탑승하길 좋아한다.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게이트 앞에서, 또 제트웨이에서 줄을 서는 대신 그 마지막 20분을 평화롭게 즐기고 싶다. “마지막 탑승 안내입니다...”라는 방송을 듣기 전에는 일어나 게이트로 향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른 항공 여행객들이 마치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폭락이 예상되는 주식을 처분하려는 트레이더처럼 게이트 주변에서 초초하게 서성이는 동안 그냥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낫다는 것을 난 오래 전에 깨달았다. 이유가 뭐냐고? 비행기에 마지막으로 탑승하는 승객이나 가장 먼저 탑승하는 승객이나 어차피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은 똑같기 때문이다.

- 존 월터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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