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에서 보는 풍경
꼭대기에서 보는 풍경
어린 시절, 필립 앤슈츠는 콜로라도의 럭셔리 호텔 브로드무어(Broadmoor)를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원대한 야심을 가슴에 품었다. 이로부터 6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덴버 출신의 억만장자 앤슈츠는 산기슭에 자리한 이 웅장한 리조트를 마침내 수중에 넣었고, 자신이 꿈꿔왔던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현실로 이룩했다.필립 앤슈츠(Philip Anschutz·76)는 어린 시절 이미 컬렉터처럼 기업을 수집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알았다. 이러한 계시를 받은 곳은 바로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 샤이엔산 기슭에 자리한 브로드무어 호텔이었다. 1918년 지어진 지중해풍의 고급 리조트다. “다섯 살 무렵 처음 이곳에 왔다”고 앤슈츠는 회상했다. “그리고 10살이 되었을 때, 여기 바의 한쪽 구석에 앉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제가 이 호텔의 주인이 될 것이라 이야기했지요.”
석유굴착사업을 했던 아버지 프레드 앤슈츠는 비록 회의적이기는 했으나 아들이 가슴에 품은 야심에 감명을 받았다. “당연히 그 당시 제 경제적인 능력으로는 호텔을 살 수 없었습니다.” 앤슈츠의 말이다. 그러나 브로드무어 호텔은 훗날 어엿한 사업가로 성장할 어린 필립 앤슈츠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폭포, 숲, 골프장, 영화관 그리고 파이크스 피크에 이르는 톱니 궤도 철도와 같은 경이로운 광경을 탐험하는 것을 “모든 아이들이 꿈꿨다”며 어린 시절 자신이 보았던 브로드무어 호텔의 모습을 묘사하던 앤슈츠가 말했다. “저는 이 호텔을 손에 넣고 싶었습니다.”
덴버 출신의 엔터테인먼트계 큰손 앤슈츠는 784개 객실을 거느린 브로드무어 호텔의 중역실에 앉아있다. 올해 76세의 앤슈츠는 여전히 원기가 왕성하다. 은빛이 도는 머리칼은 놀라우리만큼 풍성한 숱을 자랑한다. 청바지, 테슬장식 로퍼, 그리고 눈이 시리도록 하얀 셔츠 위에 노란색 양털조끼 차림의 앤슈츠는 영락없는 억만장자의 격식 없는 복장을 하고 있다. 6월의 브로드무어는 가족손님으로 북적거린다. 하지만, 창문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곳 브로드무어 호텔의 중심구역은 평온함 그 자체이다. 앤슈츠는 덴버를 떠나 이제 막 호텔에 도착했고, 곧 아내 낸시가 자녀 및 손자들과 가족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할 것이다. 앤슈츠는 표면이 거친 기품있는 회의용 탁자에 낡은 가죽 서류가방을 올려놓고는 가방을 열어 파일 몇 가지와 절대 피우지는 않지만 즐겨 씹곤 하는 작은 시가가 들어있는 봉투를 꺼낸다. 기자와 앤슈츠는 골프 카트를 타고 호텔 부지를 간단히 훑어보았고, 그 다음 앤슈츠는 자신이 브로드무어에서 즐겨찾는 레스토랑 라 태번(La Taverne)으로 갈 것을 제안했다. 굴 요리를 먹으면서, 앤슈츠는 브로드무어 호텔의 창업자 스펜서 펜로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필라델피아 메인 라인 출신의 4형제 중 막내였던 펜로즈는 하버드대학에 진학했으나, 앤슈츠의 설명에 따르면 “음주, 여자 그리고 싸움 때문에 퇴학당하지 않은 것은 것이 참으로 운이 좋았던” 인물이었다. “펜로즈는 이 세 가지 분야의 대가였지요.”
한편 펜로즈는 비전을 지닌 사업가이기도 했다. 광산업으로 부를 축적하고, 훗날 진정한 사랑인 아내 줄리를 만나 결혼했으며, 자신의 전용 놀이터로 브로드무어 호텔을 지었다. 펜로즈가 구상한 브로드무어는 동부사회가 서부로 진입하는 관문의 역할을 하는 호텔이었다. 마치 철도왕 헨리 플래글러가 부유한 여행객들을 위해 팜비치에 브레이커스(Breakers)를 지었던 것처럼 말이다. 펜로즈는 무대감독처럼 브로드무어 호텔을 관장했다. 호텔의 복도에는 펜로즈가 온갖 대담한 기행을 벌이는 모습을 찍은 흑백사진이 오늘날까지 걸려있다.
한번은 펜로즈가 동물원을 세우고(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코끼리 한 마리를 들여온 적이 있었다. 유명한 흥행업자 P.T. 바넘처럼 펜로즈는 이 코끼리가 세계 최대 크기로, “인도의 왕”이 직접 하사한 선물이라 주장했다. 숙박객들은 이 이야기를 매우 좋아했다. 사실 이 코끼리는 펜로즈가 망한 서커스단에서 사 온 것이었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펜로즈는 대단한 마케팅 전문가였습니다.” 앤슈츠의 말이다. “펜로즈는 사람들이 브랜드의 개념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그 시절 어떻게 브랜드를 만들어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요.” 이같은 전통과 역사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어린 시절의 앤슈츠가 놀러오는 것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었던 장소를 손에 넣겠다는 꿈을 품게 된 것은 어떠한 이유였을까? 사실 앤슈츠가 발견한 브로드무어의 진가는 이 사업을 뒤에서 움직이는 갖가지 부품에 숨어있었다. ‘다양한 관광지’를 골프 패키지, 호화로운 식사 혹은 폭포관광 티켓과 같은 관광거리와 교차판매함으로써 부유한 숙박객들이 지갑을 열도록 고안된, 수익창출 기계를 구성하는 부품 말이다.
“아마 저는 어린 시절부터 사업가의 성향을 타고났던 것 같다”고 앤슈츠는 말했다. 브로드무어 호텔은 앤슈츠가 다른 분야의 사업에서 추구한 이상향을 대변하는, 일종의 토템이 됐다. “10살의 어린 나이였던 제가 이런 점을 이해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게 되면, 나도 여기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을 내 손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하지만 브로드무어 호텔의 소유주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 앤슈츠의 꿈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몇 십 년의 시간이 더 지나야했다. 앤슈츠는 25세가 되던 1965년 아버지의 석유사업을 물려받았다. 마른 유정을 잇따라 발견하면서 무일푼이 되다시피 했다. 유정 한 곳이 폭발하면서 불이 붙었을 때, 화재를 진압하기 위한 직원 한 명을 고용할 돈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앤슈츠는 그 당시 유니버설 픽처스가 유전에서 활약한 소방관 레드 어데어로부터 영감을 받아 영화를 제작중이라는 소식을 입수했다. 유니버설 픽처스는 화재로 엉망이 된 유전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대가로 앤슈츠에게 10만 달러를 지급했다. 화재진압을 위한 소방인력을 고용하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앤슈츠의 유전에서 촬영한 분량은 존 웨인이 출연한 1968년작 <헬 파이터스> 에 삽입됐다.
이 돈을 바탕으로 앤슈츠는 또 다른 유정을 개발했다. 1982년 앤슈츠는 앤슈츠랜치이스트필드의 지분 절반을 5억 달러에 정유회사 모빌(Mobile)에 매각했다. 여전히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앤슈츠는 미서부의 비즈니스 선구자들이 들려주는 파란만장한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이들 기업을 사들이기에 이르렀다.
1984년 앤슈츠는 5억 달러에 윌리엄 잭슨 파머로부터 덴버 & 리오 그랜드 웨스턴 철도를 매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서던 퍼시픽사의 철도망 전체를 손에 넣었고, 이를 1995년 54억 달러 계약을 통해 유니온 퍼시픽사에 매각했다(이 과정에서 앤슈츠는 대략 10억 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철도망의 통행권을 기반으로, 앤슈츠는 방대한 광섬유 케이블을 깔았다. 이는 훗날 퀘스트 커뮤니케이션스(Qwest Communications)를 설립하는 토대가 됐다. 결국 퀘스트 커뮤니케이션스 주가는 2000년 통신사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곤두박질쳤지만, 앤슐츠는 주식매각을 통해 몇십 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다. 늘 수익을 석유사업에 재투자하던 앤슈츠는 2010년 펜실베니아, 노스 다코타 및 오하이오의 유전을 매각해 22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최근 앤슈츠는 와이오밍에 소유한 32만 에이커 부지의 목장에 세계 최대규모의 풍력발전단지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밖에도 제 본업은 두 어가지 더 된다”고 윙크를 날리며 앤슈츠가 말했다. 그 와중에서도 앤슈츠는 브로드무어를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브로드무어를 손에 넣기 전까지는 자신만의 호텔을 짓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앤슈츠가 소유한 40억 달러 규모의 앤슈츠 엔터테인먼트 그룹(Anschutz Entertainment Group)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120곳 이상의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소유·경영하고 있다. 사업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스테이플스 센터(Staples Center) 및 2010년 AEG에서 완공한 L.A. 라이브 컴플렉스다.(오늘날 앤슈츠의 자산은 108억 달러로 추정된다. 앤슈츠는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400대 부자 순위에서 39위를 차지했다.)
단지 시설을 소유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앤슈츠는 로스앤젤레스 킹스, 레이커스 팀 지분 일부를 포함해 이러한 시설에서 경기를 펼치는 팀의 소유주다. 앤슈츠의 AEG 라이브 사업부는 테일러 스위프트, 저스틴 비버, 캐리 언더우드와 같은 연예인의 소속사로 이들 가수의 콘서트 투어의 프로모션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티켓팅 전문업체인 티켓마스터에 대항하기 위한 티켓판매 플랫폼 AXS를 만들었으며, AXS는 오늘날 연간 2900만 달러의 수익을 낸다. 앤슈츠는 2008년 그랜드 캐년과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등지에서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산테라(Xanterra)를 인수하며 여행업계에도 뛰어들었다. 호텔·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전설적인 큰손 프레드 하비가 설립한 산테라는 숙박객에게 하이킹, 자전거 및 보트타기 등의 스릴넘치는 경험을 선사한다.
마침내 2011년 게일로즈 가(家)에서 매각 준비를 마쳤다. 앤슈츠가 그토록 염원해왔던 호텔을 10억 달러로 알려진 금액에 매각했다.
앤슈츠는 1억7500만 달러 규모의 보수 작업을 개시하며 호텔 인수를 자축했다. 호텔의 한 동을 지중해풍 양식을 유지하며 레스토랑을 업그레이드하고 리조트의 철로를 보수했다. 산테라와의 시너지를 통해 세븐폭포 위 숲에는 집라인 어드벤처 시설이 들어섰다. 2014년 AEG는 8500석 규모의 지역 경기장과 계약을 체결하고, 곧 이름을 브로드무어로 바꾸었다. (그 후부터 앤슈츠가 소유한 L.A. 킹스팀이 이 경기장에서 시즌전 게임을 치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앤슈츠는 뜻하지 않은 수확물을 건졌다. 금주법 시대 이래 방해받지 않고 잠들어있던 금고에서 위스키 및 와인 200병이 발견된 것이다.
앤슈츠가 호텔에서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은 미술품이다. 현재 브로드무어 호텔에는 앨버트 비어슈타트, 프레데릭 레밍턴, 찰스 러셀, 맥스필스 패리시 등의 작가가 그린 작품 300여 점이 걸려있다. 앤슈츠가 소유한 방대한 컬렉션에서 갖고 온 이들 그림은 미국의 영토확장주의를 보여주는 카우보이와 서부 풍경을 주로 다룬 것들이다. 이 그림들은 “서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사 의식을 전달하며, 여기서 브로드무어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비어슈타트의 그림을 몸으로 마구 뭉개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 덴버에 소재한 앤슈츠의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는 원본을 바탕으로 제작한 고품질의 사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이 진품이고 무엇이 사본인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앤슈츠의 말이다. 브로드무어 호텔에서 절대 발견하지 못할 초상화가 있다면, 바로 앤슈츠 본인의 초상화이다. 자신의 초상화가 걸려있다면, 앤슈츠가 너무나 사랑하는 이곳 브로드무어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저는 로비에 앉아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 좋다”고 앤슈츠는 말했다. 산 높이에 자리한 리조트의 외딴 곳에서 하이킹을 하는 앤슈츠의 모습도 목격된다. 앤슈츠는 자신이 좋아하는 루트를 설명했다. “세븐폭포에서 아침을 먹은 후, 클라우드 캠프까지 올라가 맥주 한잔과 점심을 먹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에메랄드까지 하이킹해서 저녁을 먹지요. 그러면 우리 직원들이 손님을 다시 호텔로 데리고 옵니다.”
앤슈츠는 지금도 제불론 파이크의 일화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토마스 제퍼슨이 서부를 탐험하라는 임무와 함께 파견한 제불론 파이크는 오늘날 파이크스 피크의 기슭에 다다랐지만, 정상까지 가는 길을 결코 알아내지 못했다. “제불론 파이크는 이 봉우리가 ‘등정할 수 없는 곳’이라 선언했지요.” 정상까지 이어지는 철도를 소유한 주인공인 앤슈츠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곳은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관광명소입니다.”
브로드무어가 앤슈츠가 서부에 소유한 자산의 백미라 한다면, 동부에도 이에 못지 않은 고급 리조트가 자리하고 있다. 조지아 주의 씨아일랜드(Sea Island) 리조트는 1928년 허드슨모터카를 창립하는 데 일조한 디트로이트의 사업가 하워드 코핀이 세웠다. 코핀은 태초의 자연을 간직한 섬의 아름다운 해변, 300년이 넘은 오크나무 그리고 다채로운 미국의 역사에 이끌렸다. 1742년 영국군이 스페인군이 동부 해안가를 따라 세력을 확장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피의 습지 전투(Battle of Bloody Marsh)’를 벌였던 곳이다. 해적 검은 수염(Blackbeard)은 이곳 해안가를 따라 약탈을 자행하다, 노스캐롤라이나 해안가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코핀은 골프장과 비치클럽 그리고 클로이스터(Cloister)라는 이름의 호텔을 지었다. 브로드무어처럼 지중해 양식을 따랐으나, 목재와 벽토를 대거 사용하여 건축했기에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디도록 고안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그럼에도 강렬한 매력을 풍기는 씨아일랜드는 연예인, 사업가, 정치인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개장 후 75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클로이스터 호텔은 이곳저곳 비와 바람이 새며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3년 코핀이 사망하기 전 씨아일랜드를 상속받은 가족의 일원인 빌 존스 3세는 건물을 완전히 헐고 재건축을 하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존스 3세는 재건축에 소요될 5억 달러의 자금을 대부분 차입에 의존해 마련했다. 이 중 상당부분은 원래의 구조를 세심하게 보존하고 재활용하는데, 그리고 돌을 세공하고 고급목재를 사용하는 데 쓰였다. 브로드무어와 마찬가지로, 씨아일랜드는 우아하며 천박함과는 거리가 멀다. “존스 3세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앤슈츠의 말이다.
비록 존스 3세는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성공으로 이끌었으나, 새로이 단장한 호텔 건물의 운영을 시작할 즈음인 2008년 닥친 금융위기는 커다란 타격을 날렸다. 매출이 45% 급감했고, 씨아일랜드의 해안 부지를 사려고 나서는 이는 거의 없었다. 2010년 씨아일랜드 리조트는 5억 달러가 넘는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고 파산신청에 들어갔다.
앤슈츠는 오크트리 캐피탈의 브루스 카시, 애비뉴 캐피탈의 마크 라스리 및 스타우드 캐피탈의 배리 스턴리히트 등의 억만장자로 구성된 투자단의 일원이었다. 이들 투자자는 현금 2억1200만 달러를 모아 (이미 부채를 탕감한 상태였던) 채권자들로부터 씨아일랜드를 찾아오려 했다. 앤슈츠는 이들 투자자들에게 리조트를 영원히 소유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투자해 보자고 설득했다. 2014년 이들 투자자는 4000만 달러짜리 호텔동의 건설을 시작해 지속적으로 자본투자를 늘려나갔다. 앤슈츠는 다른 투자자들에게 이들이 자신의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면 언제든지 이를 사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렸다. 올해 여름 앤슈츠는 포브스의 추산에 따르면 3억 달러에 이르는 금액에 여타 투자자들의 지분을 인수했다. 새로운 모습으로 개장한 씨아일랜드로 향하는 거물들의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3월에는 에릭 슈미트, 팀 쿡, 엘론 머스크, 폴 라이언, 미치 맥코넬 및 칼 로브 등의 식견 있는 전문가들이 싱크탱크 회의에 참석차 모였다. 논의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도널드 트럼프로 흘러갔다. 앤슈츠와, 앤슈츠가 소유한 ‘더 위클리 스탠다드’의 편집장 빌 크리스톨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앤슈츠는 정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지만, 앤슈츠에게는 트럼프의 호언장담이 전혀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란 점은 확실하다. AEG의 최고경영자를 지낸 팀 레이위케(Tim Leiweke)는 몇 년 전 기자에게 앤슈츠를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이 문제에서는 자존심을 가릴 것이 없습니다. 앤슈츠는 도널드 트럼프를 강력히 반대합니다.”
그렇다면 앤슈츠는 이 두 곳의 그랑 담 호텔을 경영하는 데 얼마를 투자할 용의가 있는 것일까? 합산하면, 앤슈츠는 브로드무어와 씨아일랜드를 인수해 과거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되돌려놓기까지 9억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부터 각 호텔은 혼자 힘으로 서야 할 것이다. “운영하면서 수익이 나야 합니다.” 앤슈츠가 명확히 이야기한다. “어떤 사업구조가 되었던지, 특히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오랜 기간 존속할 수 있는 재정적 토대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이는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우선, 두 초호화 호텔의 직원을 채용하고 최상류층 고객을 만족시키는 기준을 유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이 두 호텔이 보유한 별과 다이아몬드 개수를 능가하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앤슈츠가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앤슈츠는 이미 자신이 획득한 자랑스러운 전리품을 보호할 용의가 있음을 스스로 입증한 바 있다. 올해 브로드무어 호텔은 미국 산림청이 소나무를 파먹는 나방을 박멸하기 위해 근처 산림지역에 살충제를 뿌리도록 설득하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산림청에서는 결국 기존의 방식에 오류가 있음을 직시했습니다.” 앤슈츠의 말이다. “할 수 있을 때 행동을 취하는 것이 낫지요.”
“솔직히 제게는 이 호텔보다 더 좋은 투자대상이 있습니다.” 앤슈츠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분명 이 두 호텔은 수익과 상관없이 자신 스스로 너무나 사랑하기에 헌신할 수 밖에 없는 대상이다. “이 같은 유형의 자산에는, 투자자보다는 진정한 관리인이 필요합니다.” 브루스 카시도 이같은 정서를 대변한다. “제가 보기에는 필립보다 이러한 자산을 관리하는 데 더 적격인 사람은 없습니다. 씨아일랜드는 이제 든든하고 능력있는 주인을 만났습니다. 이 특별한 리조트에 내재한 독특한 본질의 진가를 진정으로 알아볼 수 있는 주인 말이지요.”
이들 호텔이 자신의 세대를 지나서까지 품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앤슈츠는 새로운 소유구조를 만들어냈다. 바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리조트의 소유권을 더욱 쉽게 계승할 수 있도록 100년 만기의 가족신탁을 만들고, 수탁자는 자신이 ‘4개의 축’이라 명명한 역사, 전통, 서비스 및 탁월함의 가치를 항상 지지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인생에서 그 무엇도 확실하게 장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바로 이같은 확실성을 보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했습니다.” 이러한 안정성은 숙박객, 컨벤션 기획자 및 지방정부에도 유효한 매력이다. “보세요, 우리는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습니다,” 씨아일랜드의 최고경영자 스콧 슈타일렌(Scott Steilen)의 말이다. “우리는 앞으로 100년 동안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앤슈츠가 소유한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개최할 NBA 게임이나 콘서트 행사가 부족할 일이 없는 것처럼, 브로드무어나 씨아일랜드 역시 휴가를 보내러 온 숙박객이 모자랄 위험은 없다. 앤슈츠는 늘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는 부유층 고객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한 곳을 자주 찾는 충성도 높은 고객이라면 다른 호텔에서도 한 번쯤은 숙박을 해 볼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사람들은 실감나는 것을 하고 싶어합니다.” 앤슈츠가 말한다. “승마나 낚시, 사격 혹은 해변에서 거북이 둥지를 찾는 일 말이지요.”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와 같은 노년층은 이처럼 손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경험에 목말라하고 있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라며 웃음을 터뜨린 앤슈츠는 더욱 중요한 점을 짚는다. “조부모들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대신 조부모들은 지갑을 열어야 하지요.”
- CHRISTOPHER HELMAN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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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굴착사업을 했던 아버지 프레드 앤슈츠는 비록 회의적이기는 했으나 아들이 가슴에 품은 야심에 감명을 받았다. “당연히 그 당시 제 경제적인 능력으로는 호텔을 살 수 없었습니다.” 앤슈츠의 말이다. 그러나 브로드무어 호텔은 훗날 어엿한 사업가로 성장할 어린 필립 앤슈츠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폭포, 숲, 골프장, 영화관 그리고 파이크스 피크에 이르는 톱니 궤도 철도와 같은 경이로운 광경을 탐험하는 것을 “모든 아이들이 꿈꿨다”며 어린 시절 자신이 보았던 브로드무어 호텔의 모습을 묘사하던 앤슈츠가 말했다. “저는 이 호텔을 손에 넣고 싶었습니다.”
덴버 출신의 엔터테인먼트계 큰손 앤슈츠는 784개 객실을 거느린 브로드무어 호텔의 중역실에 앉아있다. 올해 76세의 앤슈츠는 여전히 원기가 왕성하다. 은빛이 도는 머리칼은 놀라우리만큼 풍성한 숱을 자랑한다. 청바지, 테슬장식 로퍼, 그리고 눈이 시리도록 하얀 셔츠 위에 노란색 양털조끼 차림의 앤슈츠는 영락없는 억만장자의 격식 없는 복장을 하고 있다. 6월의 브로드무어는 가족손님으로 북적거린다. 하지만, 창문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곳 브로드무어 호텔의 중심구역은 평온함 그 자체이다. 앤슈츠는 덴버를 떠나 이제 막 호텔에 도착했고, 곧 아내 낸시가 자녀 및 손자들과 가족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할 것이다.
엔터테인먼트계 큰손이자 억만장자
한편 펜로즈는 비전을 지닌 사업가이기도 했다. 광산업으로 부를 축적하고, 훗날 진정한 사랑인 아내 줄리를 만나 결혼했으며, 자신의 전용 놀이터로 브로드무어 호텔을 지었다. 펜로즈가 구상한 브로드무어는 동부사회가 서부로 진입하는 관문의 역할을 하는 호텔이었다. 마치 철도왕 헨리 플래글러가 부유한 여행객들을 위해 팜비치에 브레이커스(Breakers)를 지었던 것처럼 말이다. 펜로즈는 무대감독처럼 브로드무어 호텔을 관장했다. 호텔의 복도에는 펜로즈가 온갖 대담한 기행을 벌이는 모습을 찍은 흑백사진이 오늘날까지 걸려있다.
한번은 펜로즈가 동물원을 세우고(오늘날까지 남아있다) 코끼리 한 마리를 들여온 적이 있었다. 유명한 흥행업자 P.T. 바넘처럼 펜로즈는 이 코끼리가 세계 최대 크기로, “인도의 왕”이 직접 하사한 선물이라 주장했다. 숙박객들은 이 이야기를 매우 좋아했다. 사실 이 코끼리는 펜로즈가 망한 서커스단에서 사 온 것이었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펜로즈는 대단한 마케팅 전문가였습니다.” 앤슈츠의 말이다. “펜로즈는 사람들이 브랜드의 개념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그 시절 어떻게 브랜드를 만들어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요.”
석유사업 물려받은 뒤 잇단 M&A로 성공
“아마 저는 어린 시절부터 사업가의 성향을 타고났던 것 같다”고 앤슈츠는 말했다. 브로드무어 호텔은 앤슈츠가 다른 분야의 사업에서 추구한 이상향을 대변하는, 일종의 토템이 됐다. “10살의 어린 나이였던 제가 이런 점을 이해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게 되면, 나도 여기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을 내 손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하지만 브로드무어 호텔의 소유주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 앤슈츠의 꿈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몇 십 년의 시간이 더 지나야했다. 앤슈츠는 25세가 되던 1965년 아버지의 석유사업을 물려받았다. 마른 유정을 잇따라 발견하면서 무일푼이 되다시피 했다. 유정 한 곳이 폭발하면서 불이 붙었을 때, 화재를 진압하기 위한 직원 한 명을 고용할 돈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앤슈츠는 그 당시 유니버설 픽처스가 유전에서 활약한 소방관 레드 어데어로부터 영감을 받아 영화를 제작중이라는 소식을 입수했다. 유니버설 픽처스는 화재로 엉망이 된 유전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대가로 앤슈츠에게 10만 달러를 지급했다. 화재진압을 위한 소방인력을 고용하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앤슈츠의 유전에서 촬영한 분량은 존 웨인이 출연한 1968년작 <헬 파이터스> 에 삽입됐다.
이 돈을 바탕으로 앤슈츠는 또 다른 유정을 개발했다. 1982년 앤슈츠는 앤슈츠랜치이스트필드의 지분 절반을 5억 달러에 정유회사 모빌(Mobile)에 매각했다. 여전히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앤슈츠는 미서부의 비즈니스 선구자들이 들려주는 파란만장한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이들 기업을 사들이기에 이르렀다.
1984년 앤슈츠는 5억 달러에 윌리엄 잭슨 파머로부터 덴버 & 리오 그랜드 웨스턴 철도를 매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서던 퍼시픽사의 철도망 전체를 손에 넣었고, 이를 1995년 54억 달러 계약을 통해 유니온 퍼시픽사에 매각했다(이 과정에서 앤슈츠는 대략 10억 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철도망의 통행권을 기반으로, 앤슈츠는 방대한 광섬유 케이블을 깔았다. 이는 훗날 퀘스트 커뮤니케이션스(Qwest Communications)를 설립하는 토대가 됐다. 결국 퀘스트 커뮤니케이션스 주가는 2000년 통신사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곤두박질쳤지만, 앤슐츠는 주식매각을 통해 몇십 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다. 늘 수익을 석유사업에 재투자하던 앤슈츠는 2010년 펜실베니아, 노스 다코타 및 오하이오의 유전을 매각해 22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최근 앤슈츠는 와이오밍에 소유한 32만 에이커 부지의 목장에 세계 최대규모의 풍력발전단지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밖에도 제 본업은 두 어가지 더 된다”고 윙크를 날리며 앤슈츠가 말했다.
미국 400대 부자 순위 39위에 올라
단지 시설을 소유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앤슈츠는 로스앤젤레스 킹스, 레이커스 팀 지분 일부를 포함해 이러한 시설에서 경기를 펼치는 팀의 소유주다. 앤슈츠의 AEG 라이브 사업부는 테일러 스위프트, 저스틴 비버, 캐리 언더우드와 같은 연예인의 소속사로 이들 가수의 콘서트 투어의 프로모션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티켓팅 전문업체인 티켓마스터에 대항하기 위한 티켓판매 플랫폼 AXS를 만들었으며, AXS는 오늘날 연간 2900만 달러의 수익을 낸다. 앤슈츠는 2008년 그랜드 캐년과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등지에서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산테라(Xanterra)를 인수하며 여행업계에도 뛰어들었다. 호텔·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전설적인 큰손 프레드 하비가 설립한 산테라는 숙박객에게 하이킹, 자전거 및 보트타기 등의 스릴넘치는 경험을 선사한다.
마침내 2011년 게일로즈 가(家)에서 매각 준비를 마쳤다. 앤슈츠가 그토록 염원해왔던 호텔을 10억 달러로 알려진 금액에 매각했다.
앤슈츠는 1억7500만 달러 규모의 보수 작업을 개시하며 호텔 인수를 자축했다. 호텔의 한 동을 지중해풍 양식을 유지하며 레스토랑을 업그레이드하고 리조트의 철로를 보수했다. 산테라와의 시너지를 통해 세븐폭포 위 숲에는 집라인 어드벤처 시설이 들어섰다. 2014년 AEG는 8500석 규모의 지역 경기장과 계약을 체결하고, 곧 이름을 브로드무어로 바꾸었다. (그 후부터 앤슈츠가 소유한 L.A. 킹스팀이 이 경기장에서 시즌전 게임을 치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앤슈츠는 뜻하지 않은 수확물을 건졌다. 금주법 시대 이래 방해받지 않고 잠들어있던 금고에서 위스키 및 와인 200병이 발견된 것이다.
앤슈츠가 호텔에서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은 미술품이다. 현재 브로드무어 호텔에는 앨버트 비어슈타트, 프레데릭 레밍턴, 찰스 러셀, 맥스필스 패리시 등의 작가가 그린 작품 300여 점이 걸려있다. 앤슈츠가 소유한 방대한 컬렉션에서 갖고 온 이들 그림은 미국의 영토확장주의를 보여주는 카우보이와 서부 풍경을 주로 다룬 것들이다. 이 그림들은 “서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사 의식을 전달하며, 여기서 브로드무어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비어슈타트의 그림을 몸으로 마구 뭉개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 덴버에 소재한 앤슈츠의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는 원본을 바탕으로 제작한 고품질의 사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이 진품이고 무엇이 사본인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앤슈츠의 말이다.
마침내 브로드무어 호텔 인수의 꿈을 이루다
앤슈츠는 지금도 제불론 파이크의 일화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토마스 제퍼슨이 서부를 탐험하라는 임무와 함께 파견한 제불론 파이크는 오늘날 파이크스 피크의 기슭에 다다랐지만, 정상까지 가는 길을 결코 알아내지 못했다. “제불론 파이크는 이 봉우리가 ‘등정할 수 없는 곳’이라 선언했지요.” 정상까지 이어지는 철도를 소유한 주인공인 앤슈츠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곳은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관광명소입니다.”
브로드무어가 앤슈츠가 서부에 소유한 자산의 백미라 한다면, 동부에도 이에 못지 않은 고급 리조트가 자리하고 있다. 조지아 주의 씨아일랜드(Sea Island) 리조트는 1928년 허드슨모터카를 창립하는 데 일조한 디트로이트의 사업가 하워드 코핀이 세웠다. 코핀은 태초의 자연을 간직한 섬의 아름다운 해변, 300년이 넘은 오크나무 그리고 다채로운 미국의 역사에 이끌렸다. 1742년 영국군이 스페인군이 동부 해안가를 따라 세력을 확장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피의 습지 전투(Battle of Bloody Marsh)’를 벌였던 곳이다. 해적 검은 수염(Blackbeard)은 이곳 해안가를 따라 약탈을 자행하다, 노스캐롤라이나 해안가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코핀은 골프장과 비치클럽 그리고 클로이스터(Cloister)라는 이름의 호텔을 지었다. 브로드무어처럼 지중해 양식을 따랐으나, 목재와 벽토를 대거 사용하여 건축했기에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디도록 고안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그럼에도 강렬한 매력을 풍기는 씨아일랜드는 연예인, 사업가, 정치인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개장 후 75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클로이스터 호텔은 이곳저곳 비와 바람이 새며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3년 코핀이 사망하기 전 씨아일랜드를 상속받은 가족의 일원인 빌 존스 3세는 건물을 완전히 헐고 재건축을 하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존스 3세는 재건축에 소요될 5억 달러의 자금을 대부분 차입에 의존해 마련했다. 이 중 상당부분은 원래의 구조를 세심하게 보존하고 재활용하는데, 그리고 돌을 세공하고 고급목재를 사용하는 데 쓰였다. 브로드무어와 마찬가지로, 씨아일랜드는 우아하며 천박함과는 거리가 멀다. “존스 3세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앤슈츠의 말이다.
비록 존스 3세는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성공으로 이끌었으나, 새로이 단장한 호텔 건물의 운영을 시작할 즈음인 2008년 닥친 금융위기는 커다란 타격을 날렸다. 매출이 45% 급감했고, 씨아일랜드의 해안 부지를 사려고 나서는 이는 거의 없었다. 2010년 씨아일랜드 리조트는 5억 달러가 넘는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고 파산신청에 들어갔다.
앤슈츠는 오크트리 캐피탈의 브루스 카시, 애비뉴 캐피탈의 마크 라스리 및 스타우드 캐피탈의 배리 스턴리히트 등의 억만장자로 구성된 투자단의 일원이었다. 이들 투자자는 현금 2억1200만 달러를 모아 (이미 부채를 탕감한 상태였던) 채권자들로부터 씨아일랜드를 찾아오려 했다. 앤슈츠는 이들 투자자들에게 리조트를 영원히 소유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투자해 보자고 설득했다. 2014년 이들 투자자는 4000만 달러짜리 호텔동의 건설을 시작해 지속적으로 자본투자를 늘려나갔다. 앤슈츠는 다른 투자자들에게 이들이 자신의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면 언제든지 이를 사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렸다. 올해 여름 앤슈츠는 포브스의 추산에 따르면 3억 달러에 이르는 금액에 여타 투자자들의 지분을 인수했다.
초호화호텔 ‘씨아일랜드’로 향하는 거물들
그렇다면 앤슈츠는 이 두 곳의 그랑 담 호텔을 경영하는 데 얼마를 투자할 용의가 있는 것일까? 합산하면, 앤슈츠는 브로드무어와 씨아일랜드를 인수해 과거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되돌려놓기까지 9억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부터 각 호텔은 혼자 힘으로 서야 할 것이다. “운영하면서 수익이 나야 합니다.” 앤슈츠가 명확히 이야기한다. “어떤 사업구조가 되었던지, 특히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오랜 기간 존속할 수 있는 재정적 토대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이는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우선, 두 초호화 호텔의 직원을 채용하고 최상류층 고객을 만족시키는 기준을 유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이 두 호텔이 보유한 별과 다이아몬드 개수를 능가하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앤슈츠가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앤슈츠는 이미 자신이 획득한 자랑스러운 전리품을 보호할 용의가 있음을 스스로 입증한 바 있다. 올해 브로드무어 호텔은 미국 산림청이 소나무를 파먹는 나방을 박멸하기 위해 근처 산림지역에 살충제를 뿌리도록 설득하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산림청에서는 결국 기존의 방식에 오류가 있음을 직시했습니다.” 앤슈츠의 말이다. “할 수 있을 때 행동을 취하는 것이 낫지요.”
“솔직히 제게는 이 호텔보다 더 좋은 투자대상이 있습니다.” 앤슈츠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분명 이 두 호텔은 수익과 상관없이 자신 스스로 너무나 사랑하기에 헌신할 수 밖에 없는 대상이다. “이 같은 유형의 자산에는, 투자자보다는 진정한 관리인이 필요합니다.” 브루스 카시도 이같은 정서를 대변한다. “제가 보기에는 필립보다 이러한 자산을 관리하는 데 더 적격인 사람은 없습니다. 씨아일랜드는 이제 든든하고 능력있는 주인을 만났습니다. 이 특별한 리조트에 내재한 독특한 본질의 진가를 진정으로 알아볼 수 있는 주인 말이지요.”
이들 호텔이 자신의 세대를 지나서까지 품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앤슈츠는 새로운 소유구조를 만들어냈다. 바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리조트의 소유권을 더욱 쉽게 계승할 수 있도록 100년 만기의 가족신탁을 만들고, 수탁자는 자신이 ‘4개의 축’이라 명명한 역사, 전통, 서비스 및 탁월함의 가치를 항상 지지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인생에서 그 무엇도 확실하게 장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바로 이같은 확실성을 보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했습니다.”
역사, 전통, 서비스, 탁월함의 가치 가진 호텔
“사람들은 실감나는 것을 하고 싶어합니다.” 앤슈츠가 말한다. “승마나 낚시, 사격 혹은 해변에서 거북이 둥지를 찾는 일 말이지요.”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와 같은 노년층은 이처럼 손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경험에 목말라하고 있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라며 웃음을 터뜨린 앤슈츠는 더욱 중요한 점을 짚는다. “조부모들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대신 조부모들은 지갑을 열어야 하지요.”
- CHRISTOPHER HELMAN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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