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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 탄압’ 이중고에 시달리는 터키

‘테러와 탄압’ 이중고에 시달리는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연장이 인권침해와 공포 분위기 조성으로 터키 사회의 기본 구조마저 무너뜨려
지난해 10월 말 터키의 야당 성향 신문 줌후리예트 소속 기자들이 이스탄불 본사 앞에서 편집국장을 포함해 11명의 언론인이 체포된 것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스탄불에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지만 아일린은 일찌감치 일어나 움직였다. 아파트를 정리정돈하고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으며 작은 가방도 꾸렸다. 커피를 내려 어두운 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앉아 기다렸다.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날까 아파트 계단을 뛰어올라오는 군화 소리가 들릴까?

아일린은 터키 당국에 인권운동가로 잘 알려졌다. 지난해 7월 15일 군부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뒤 정부 비판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되면서 그녀는 거의 매일 이런 의식을 치른다. 최근 몇 달 동안 친구와 동료들이 경찰의 새벽 급습으로 체포되면서 그녀는 단잠을 자다가 경찰에 의해 깨어나 잡혀가는 게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아일린이 피해망상일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터키 정부는 쿠데타 기도를 진압한 뒤 수만 명을 숙청하고 체포했다. 비정부기구(NGO) 약 400개 단체가 영구 폐쇄됐다. 전 세계에서 구금된 언론인 중 거의 3분의 1이 터키의 교도소에 갇혀 있다. 터키의 넘쳐나는 감옥에 있는 수감자 중 다수는 말도 안 되는 구실로 체포됐다. 예를 들어 터키의 야당 성향 신문 줌후리예트 건물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세놀 부란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겐 차(茶)를 팔지 않겠다”는 말을 한 뒤 체포돼 9일 동안 구금됐다.

이것이 터키의 새로운 현실이다. 모두가 입조심을 해야 한다. 어떤 식의 비판도 단호히 억누르려고 작심한 당국은 아무리 사소한 정권 모욕이라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아일린은 늘 미리 준비해두려 한다. 일단 체포되면 얼마나 오래 구금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마지막 날 터키 소설가 아슬리 에르도안의 재판이 이스탄불에서 열렸다. 그녀는 재판 없이 132일을 구금됐다가 12월 29일 석방됐다. ‘죄목’은 쿠르드어 신문 외즈귀르 귄뎀에 칼럼을 썼다는 것이었다. 쿠데타가 실패한 뒤 발효된 국가비상사태 아래 폐간된 신문이다. 그녀는 아일린이 꾸는 악몽을 현실에서 겪었다. 아파트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 급습에서 체포돼 4개월 이상 구금됐다. 그런 구금은 임의적으로 이뤄졌다. 당국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생각을 하는 사람을 겁주기 위한 처벌이다.

소설가 에르도안의 석방은 터키의 어두운 현대사에서 작은 희망의 창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나마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이틀 뒤 새해 전야에 괴한이 이스탄불의 나이트클럽에서 총기를 난사해 39명이 숨지고 65명이 다쳤다(터키 경찰은 총격테러범이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압둘카디르 마샤리포프라고 밝혔다).

또 지난 1월 4일 터키 의회는 국가비상사태를 3개월 추가 연장하는 정부안을 승인했다. 지난해 7월 21일 선포한 3개월 간의 국가비상사태는 이미 1차례 연장돼 1월 19일 종료될 예정이었다. 올해엔 터키가 더 안전하고 자유로운 나라가 되리라는 기대는 새해가 시작되기도 전에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국가비상사태 아래선 국민의 각종 권리와 자유가 제한되고 대통령에게 막강한 입법권이 주어진다. 실제로 그동안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가 나타났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제한됐고 고문과 가혹행위가 노골적으로 자행됐다. 터키 정부는 비판할 권리를 ‘감히’ 행사하려는 국민을 위협하고 그들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해 아주 광범위하게 이런 비상조치를 이용한다.

예를 들어 언론인 에롤 왼데로루와 아메트 네신, 인권운동가 세브넴 코루르 핀칸치는 외즈귀르 귄뎀 신문의 반정부 논조를 지지하는 시위에 참석했다가 ‘테러 선동’ 혐의로 체포됐다. 소설가 에르도안이 석방된 다음날 터키 당국은 저명한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 아메트 시크를 ‘테러단체를 위한 선전물 제작’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상충되는 이념을 표방한 3개 단체와 연계됐다는 혐의를 받는다. 그중 하나는 이번 쿠데타 기도의 배후로 정부가 지목한 ‘귈렌 운동’이다. 하지만 시크는 수년 동안 그 운동을 소리 높여 비판했다(터키 출신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이 창시한 귈렌 운동은 학문적으로 교육을 받으면서도 엄격한 무슬림 도덕관을 지닌 세대 육성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지는 테러를 보면 터키가 아주 심각한 안보 도전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엔 쿠데타 기도 외에도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노동자당(PKK)의 분파인 쿠르드자유매파(TAK) 등 급진 무장단체들의 잔혹한 민간인 공격이 잇따랐다. 따라서 터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런 점증하는 위협에 대처하는 문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는 공개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터키 당국은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정부의 뜻에 반대되는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무조건 구금함으로써 대중의 두려움을 가중시켰다.

올해는 이미 터키에 깊은 흠집을 남겼다. 거리에는 두려움이 팽배하다. 이스탄불에서 보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주위를 경계하는 표정으로 예전보다 훨씬 조용히 대화를 나눈다. 집에서 TV의 ‘패널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모두가 똑같은 견해만 내놓는다. SNS는 툭하면 차단되고 소비할 수 있는 미디어는 계속 줄어든다. 삶이 퇴색한 느낌이다.

이런 탄압은 터키 사회의 기본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다. 최근 영구히 폐쇄된 시민사회단체 중에는 고문과 가정폭력의 생존자들을 위한 단체, 난민을 돕는 구호단체, 어린이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 등이 포함됐다. 그런 활기찬 시민사회가 황무지로 변하고 있다. 그런 사회적 파괴가 가져오는 결과는 너무도 뻔하다. 지금처럼 혼란스럽고 두려움이 팽배하는 시기엔 언론인, 사회운동가, 인권운동가들의 용감한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감옥의 블랙홀 속으로 내던져지고 있다.

터키의 2017년 새해는 최악의 상황에서 출발했다. 가뜩이나 테러 공격의 두려움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며 살아선 안 된다. 그들은 지난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을 애도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자신의 자유가 사라진 것마저 애통해 하게 둬선 안 된다.

아일린은 아파트 주방으로 햇살이 비치자 주저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 하루를 무사히 넘긴 셈이다. 그러나 또 내일은 자신과 조국 터키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 앤드루 가드너



[ 필자는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 터키지부의 조사관으로 이스탄불에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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