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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동기는 영화 또는 소설?

범행 동기는 영화 또는 소설?

존 레넌 암살부터 극장 총기 난사까지 세상을 놀라게 한 미국의 끔찍한 범죄들지난 4월 중순 미국 뉴욕 주에 사는 부부가 입양한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어니스트 프랭클린 2세와 그의 부인 헤더 프랭클린은 아들을 살해한 후 집에 불을 질러 사고로 위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들은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집에 불이 나 세 아이가 죽는 걸 보고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섬뜩한 이야기지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많은 범죄자와 살인자가 영화나 소설에서 범죄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중 8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1990년대 영화 ‘스크림’ 시리즈는 몇몇 끔찍한 청소년 모방 범죄를 초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제공·YOUTUBE.COM
 1.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한 남자의 총에 맞았다. 범인의 이름은 존 힝클리 2세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1976)에 병적으로 빠져 있었다. 그는 특히 그 영화에서 어린 매춘부 역할을 맡았던 조디 포스터에게 집착해 그녀를 스토킹했다. 이 사건으로 폐에 총알을 맞은 레이건 전 대통령은 수술 후 완쾌했지만 그의 공보비서관 제임스 브레이디는 불구가 됐다. 힝클리는 정신병을 이유로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정신 병원에 수용됐다가 최근 자유의 몸이 됐다.
 2. 존 레넌 암살 사건
1980년 존 레넌을 죽인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은 J.D.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 사로잡혀 있었다. 실제로 채프먼은 체포될 당시에도 그 책을 지니고 있었다. 나중에 그는 뉴욕타임스에 보내는 편지에 ‘이 특별한 책에는 많은 해답이 들어 있다’고 썼다. 채프먼은 소외된 주인공 홀든 콜필드에게 깊이 공감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암살 미수범 존 힝클리 2세도 이 책을 갖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이런 병적인 팬들 때문에 절필하고 은둔생활에 들어간 샐린저의 마음을 알 만하다.
 3. 영화 ‘스크림’ 시리즈 모방 범죄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영화 ‘스크림’ 시리즈는 1990년대 중·후반 흥행에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일부 팬들은 이 슬래셔(slasher, 정체 모를 인물이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내용) 영화에서 그릇된 교훈을 얻었다. 1990년대에 영국의 10대 소년 대니얼 질과 로버트 풀러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13세의 친구를 칼로 찔렀다. 또 16세의 미국인 소년 마리오 파딜라가 사촌의 도움을 받아 자기 어머니를 찔러 죽인 사건은 ‘스크림 살인’이라고 불렸다. 벨기에의 카피캣(모방 범죄) 살인범 티에리 자라딘은 ‘스크림’ 시리즈에 나오는 ‘고스트페이스(Ghostface)’ 마스크를 쓰고 15세 소녀를 식칼로 살해했다.
 4. ‘다크 나이트 라이즈’ 상영관의 총기 난사 사건
2012년 미국 콜로라도 주 오로라의 한 극장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영화 ‘다트 나이트 라이즈’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 사진제공·YOUTUBE.COM
2012년 7월 어느 목요일 밤 미국 곳곳의 극장 앞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보려는 관객들이 줄을 섰다. 크리스천 베일과 히스 레저 주연의 ‘배트맨’ 3부작 마지막 작품이다. 하지만 콜로라도 주 오로라에 있는 한 극장에서는 심야의 영화관 나들이가 끔찍한 비극으로 끝났다. 제임스 홈스(당시 24세)라는 남자가 관객들에게 최루 가스가 든 통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12명이 사망하고 7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이 ‘배트맨’ 캐릭터나 만화 혹은 영화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는 추측성 뉴스 보도가 쏟아졌다. 사건 당시 홈즈가 입었던 옷과 공격 방식, 부비트랩(위장 폭탄)이 설치됐던 그의 아파트 등이 거론됐다. 반면 이 사건을 ‘배트맨’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추측에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오로라 극장의 총격 사건이 적어도 한 편의 영화[‘다크 나이트’(2016)]에 영감을 줬다는 사실이다. 극장 안의 학살을 다룬 영화로 오로라 극장의 총기 난사 사건을 암시하는 듯한 요소들이 포함됐다.
 5. 영화 ‘사탄의 인형 3’가 부른 참극
영국인들은 1991년 나온 공포영화 ‘사탄의 인형 3’를 잘 기억한다. 작품이 좋아서라기보다 그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 있는 끔찍한 범죄 때문이다. 1993년 영국의 10세 소년 2명이 제임스 벌저라는 아기를 유괴해 살해했을 때 이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수사관들은 나중에 이 소년 살해범들과 그 영화 사이엔 연관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1992년 수전 캐퍼라는 10대 소녀가 참혹하게 살해됐을 때도 수사 과정에서 이 영화와의 연관성이 언급됐다. 이런 논쟁은 폭력적인 영화와 음악이 10대 청소년 비행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갈수록 증가한 1990년대 문화전쟁의 전조가 됐다.
 6. ‘분노’는 분노를 낳고
스티븐 킹은 10대 시절 쓰기 시작한 단편소설 ‘분노(Rage)’를 한참 후 출판했다. 처음엔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고, 나중엔 자신의 이름으로 ‘바크먼 도서: 초기 소설들(The Bachman Books: Four Early Novels)’이라는 제목의 모음집 안에 엮어 냈다. ‘분노’는 한 고등학생이 자신을 가르치던 교사를 살해하고 급우들을 인질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이 소설은 1988년 미국 고등학생 제프리 라인 콕스가 자신이 수강하던 인문학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을 인질로 삼은 사건에 영향을 줬다고 알려졌다. 또 1999년 켄터키 주에서 11명의 급우들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인 10대 소년 더스틴 피어스와 1996년 교사 1명과 동료 학생 2명을 살해한 배리 루카이티스 역시 이 소설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1997년 켄터키 주의 한 고등학교 로비에서 기도하던 학생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3명을 살해하고 5명에게 부상을 입힌 마이클 카닐도 마찬가지다. 킹은 2013년 에세이 ‘건스(Guns)’에서 자신의 책이 적어도 4건의 총격 사건을 부추겼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래서 출판사 측에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을 회수하도록 요청했다고 썼다. “그 책이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고 판단돼 거둬들이도록 조치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것이 책임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7.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본 남자와의 인터뷰
1994년 미국인 대니얼 스털링과 그의 오랜 여자친구 리사 스텔웨건은 극장에서 영화 ‘뱀파이와와의 인터뷰’를 봤다.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연인들의 극장 나들이였다. 하지만 그 다음날 스털링은 스텔웨건에게 “난 너를 죽여서 너의 피를 마실 거야”라고 말했다. 허풍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스털링은 여자친구를 칼로 일곱 차례나 찔러 그녀의 피를 ‘몇 분 동안’ 마셨다. 다행히 스텔웨건은 목숨을 건졌고 남자친구는 감옥에 갔다. 스털링은 범행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아주 재미있게 봤고 그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범행을 그 영화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8. ‘로보캅’ 살인
연쇄살인범들 중엔 꽤 이상한 데서 범행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샘의 아들’이라고 불리던 연쇄살인범은 이웃의 악마 같은 개로부터 명령을 받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초 미국 뉴욕 주에서 6명의 여성을 살해한 나타니엘 화이트는 영화 ‘로보캅 2’를 보면서 범행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첫 번째 여자는 ‘로보캅’ 영화에서 본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죽였다. 목을 벤 다음 칼을 가슴에서 배까지 쭉 내리 그었다. 그리고 시체를 영화에서 본 것과 거의 같은 자세로 버렸다.” 1992년 체포된 화이트는 징역 150년형을 받았다.

- 라이언 보트, 잭 숀펠드, 스태브 지브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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