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뒤흔든 ‘먹거리·생필품·질병 쇼크’ 돌아보니] 도대체 뭘 먹고 뭘 쓰라는 말인가
[한국 뒤흔든 ‘먹거리·생필품·질병 쇼크’ 돌아보니] 도대체 뭘 먹고 뭘 쓰라는 말인가
모럴해저드, 허술한 방역시스템 도마에...AI·구제역 등 가축질병 해마다 반복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 먹거리와 생필품에서 검출된 유해 화학물질, 거듭 발생하는 가축질병…. 질병·유해물질 등에 따른 공포가 커지고 있다. 남의 나라 일인 줄만 알았던 높은 치사율의 전염병이 한국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국내 방역 체계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발단이 됐다. 기업·당국의 모럴해저드와 관리 소홀 탓에 먹거리와 생활용품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소·닭·돼지 등 가축에게 전파되는 질병 문제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때로는 위험하다던 것이 사실 인체에 무해하다거나 괴담으로 밝혀지기도 하지만, 이미 사회에 많은 상흔을 남긴 후였다.
올해도 전염병·유해물질 사태로 한국 사회가 시끄럽다. 가깝게는 계란이 문제가 됐다. 살충제를 남용하거나 쓰지 말아야 하는 살충제를 사용한 산란계 농장이 전국 곳곳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비자들이 믿고 먹었던 친환경 인증제품도 믿을 수 없는 제품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생필품인 생리대도 논란에 휩싸였다. 일회용 생리대 제품에서 스타이렌 등 발암물질과 새집증후군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이 검출되면서다. 7월엔 덜 익은 패티를 먹고 신장이 손상된 이른바 ‘햄버거병’이 논란이 됐다.
전염병·유해물질 사태는 경제도 흔든다. 특정 제품 판매나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줄뿐 아니라, 때로는 전체 소비시장의 위축을 부른다. 이는 기업의 실적 부진이나 자영업자의 고통으로 이어졌고, 나라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쳤다.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에서는 경제적 손실 추정치를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사태의 빈도도 잦아지는 추세다. 돌아보면 1~2년에 한 번씩은 전염병·가축질병이 유행하거나 먹거리·생필품에서 유해물질이 나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0년~2011년 중금속 꽃게·낙지: 중국산 꽃게와 복어, 병어 등의 뱃속에서 납 덩어리가 대거 발견돼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금속에 속하는 납은 미량이라도 오랫동안 섭취할 경우 납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일부 납 꽃게는 통관절차를 마치고 유통 직전에 발견돼 더욱 충격을 안겼다. 당시 납 꽃게를 먹은 임산부가 기형아 출산을 우려해 낙태수술을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누가, 어떤 이유로 꽃게에 납을 넣었느냐에 대해선 밝혀지지 않았다. ‘무게를 늘리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다른 경쟁자를 위험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음모론도 나왔다. 중국산 농수산물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우다웨이 당시 중국대사는 “납 꽃게에 한국인이 개입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했다. 납 꽃게 파문이 있고 난 뒤 해양수산부는 중국과 ‘수산물 위생관리 약정’을 체결하고 금속탐지기 검사 의무화, 이중검사,수출공장 등록 제도 등을 도입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0년에도 수산물의 중금속 문제가 대두됐다. 서울시가 낙지머리 속 먹물과 내장에서 중금속 카드뮴이 기준치의 최대 15배 넘게 검출됐다고 발표한 것. 이후 서울시와 식약청은 안전성 공방을 벌였고 당시 식약청은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논란이 지속되자 식약청은 2012년 내장을 포함한 꽃게와 낙지 등의 중금속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2005년 기생충알 김치와 색소 장어: 2005년 10월 중국산 김치 16개 제품 중 9개에서 미성숙 기생충알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산 김치는 국내산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해 대부분의 식당에 유통되고 있었던 터라 시민들 사이에서 김치 공포가 확산됐다. 이어 일부 국산 제품에서도 기생충알이 검출되면서 김치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음식점과 김치 제조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았고 국산 김치에 대한 신뢰가 하락했다. 기생충알 김치 파동으로 11월 김치 수출액이 월간 기준으로 6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
이보다 앞선 7월에는 중국산 장어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이라는 산업용 색소가 검출돼 파문을 일으켰다. 수정란의 소독·양식 등 과정에서 사용된 이 물질은 위험성이 높은 발암 물질로 알려져 시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중금속 수산물에 이어 김치, 색소물질 파문이 일면서 중국산 식품 전체에 대한 불신이 번졌고, 한·중 외교분쟁 직전까지 비화됐다.
2008년 멜라민 분유 파동: 멜라민 분유 파문은 2008년 중국에서 멜라민이 함유된 분유를 먹고 영아 6명 이상이 숨지고 29만 6000명의 어린이들이 신장결석이나 배뇨 질환을 앓으면서 시작했다. 이후 22개 업체의 분유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 바닥 타일, 주방기구, 화이트 보드 등을 만들 때 쓰이는 물질인데, 중국의 분유 생산 업체들은 우유에 물을 섞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 멜라민을 첨가한 것. 추후 중국의 ‘멜라민 분유’ 생산 관계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당시 국내에선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파동이 일어난 지 열흘이 지나서야 해당 성분이 포함된 모든 중국산 식품의 수입을 중단해 늑장 대처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국내에서 중국산 분유와 우유, 유당 성분이 포함된 과자에서 멜라민이 검출돼 충격을 안겼다. 특히 ‘멜라민 과자’ 목록에는 롯데제과·해태제과·동서식품 등 대형 업체들이 포함됐다. 혼란에 빠진 국민들에게 식약청은 ‘하루 허용 섭취량’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멜라민 공포를 잠재우고자 했다. 가령 국내 과자 중 멜라민 수치가 가장 높게 나온 품목이라 해도, 20kg짜리 어린이가 하루 15개 이상 꾸준히 먹어야 유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번진 불안감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2015년 가짜 백수오 사건: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고 알려져 홈쇼핑 등에서 붐이 일었던 ‘백수오’가 가짜라는 것이 드러났다. 백수오를 섭취한 일부 소비자들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에 한국소비자원이 32개 백수오 제품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는데, 단 3개의 제품만이 진짜 백수오를 사용했고 나머지는 ‘이엽우피소’라는 백수오와 비슷한 식물이 혼합돼 있었다. 백수오 제품 대부분을 공급하는 건강식품회사인 내츄럴엔도텍은 즉각 반발했다. 하지만 뒤이어 진행된 식약처의 전수조사 결과, 207개 백수오 제품 가운데 진짜 백수오만을 쓴 것은 단 10개, 5%에 불과했다.
믿었던 건강식품에 배신 당한 소비자들은 백화점·홈쇼핑 등을 상대로 집단 환불을 요구했다. 내츄럴엔도텍의 주가는 한 달여 만에 80% 넘게 떨어졌다. 홈쇼핑 업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백수오 제품이 주로 홈쇼핑에서 판매됐던 탓이다. 2015년 한 해 6개 홈쇼핑 업체가 환불한 금액만 417억원에 달했다. 식약처는 이엽우피소가 포함된 백수오 제품을 압류하는 등 조치를 시행하면서도 한국소비자원의 제품 점검 방법이 잘못됐고, 이엽우피소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며 엇갈린 입장을 내놨다.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지난해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가습기 살균제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가습기 참사가 알려진 지 5년 만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소리 없이 퍼지는 독성 때문에 ‘죽음의 약품’ ‘죽음의 연기’로 불렸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소비자들은 원인 모를 폐병으로 죽어갔다. 폐가 점점 굳어가 약을 먹어도 회복되지 않고 결국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돼 버리는 ‘소리 없는 죽음’이 이어졌다. 정부는 2011년 이런 증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 안에 들어 있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포스페이트(PHMG) 성분임을 발견했고, 뒤늦게 가습기 살균제 6종의 제품을 수거조치 했다.
그러나 당시 사건의 실체에 대한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오랜 기간 개별적인 소송과 시위를 이어갔다. 마침내 지난해 검찰 조사가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살균제 업체 옥시가 대학교수와 결탁해 유해성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민들의 분노는 ‘옥시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국회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유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법’을 제정했다. 현재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239명, 신고된 피해자만 5600여 명에 이른다. 이후 살균 화학물질 문제는 치약·물티슈·화장품 등으로까지 번졌다.
2004년 불량 만두 사건: 먹거리·생필품 파동 중엔 괴담으로 밝혀진 사건도 있다. 2004년 불거진 ‘불량 만두’ 또는 ‘쓰레기 만두’ 사건도 그런 사례다. 당시 언론을 통해 쓰레기로 버려야 할 자투리 무말랭이로 만두를 만든 25개 업체의 명단이 공개됐고 유통 업자들이 구속됐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뒤 관련 업체 대부분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언론에 보도된 무말랭이는 버리기 위해 모아 놓은 쓰레기였을 뿐 만두에 쓰이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다. 억울함은 밝혀졌지만 피해는 막대했다. 심한 곳은 하루 매출의 90%가 감소했고 전국 130여개 만두 제조 업체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한 만두 업체 사장이 결백을 주장하며 목숨을 끊은 일까지 있었다.
2002년 사스: 2002년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전 세계를 덮쳤다. 한국에서는 처음엔 괴질로 불렸다. 중국 남부 광둥성 일대에서 100명 이상이 감염되고 수명이 숨진 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 이 전염병은 갈수록 기세를 떨쳐 중국뿐만 아니라 인근 동남아 국가와 미국, 캐나다 등 북미와 유럽 등지로까지 퍼져나가며 불안감을 키웠다. 이후 이것이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전염병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고,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이란 이름을 얻었다. 국내 당국에서도 괴질이라는 호칭이 불안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언론에 ‘사스’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WHO는 2003년 7월 5일 사스 사태의 종료를 선언했고, 한국도 이틀 뒤 비상 방역을 끝냈다. 이때까지 전 세계에서 8000여 명의 감염자와 8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사스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중국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스 발병으로 2003년 2분기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90%로 전 분기의 10.80%보다 3%포인트가량 떨어졌다. 홍콩의 경제성장률도 같은 기간 4.1%에서 -0.9%로 역성장을 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추정치에 따르면 사스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전 세계에 걸쳐 500억 달러로 집계됐다. 전파력과 치사율이 높았지만 국내엔 확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홍콩과의 교역이 일부 둔화된 것을 제외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과학적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김치가 일등 공신으로 꼽혔다. 그 덕에 김치 수출이 잠깐 늘기도 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03년 1~4월 김치 수출은 3033만 달러를 기록, 사상 최대였던 전년 같은 기간보다 38.4% 증가했다. 대(對) 중국 수출 증가율은 245.1%에 달했다.
2009년 신종플루: 2009년 북미 지역으로부터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했다. 발견 초기에는 ‘돼지 독감’이라고 불리다가, 발병원이 돼지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후 국내에서는 ‘신종 플루’라고 불렸다. 전 세계로 퍼지면서 214개국 이상에서 확진 판정이 내려졌고 2009년 4월부터 대유행(pandemic)이 종료된 2010년 8월까지 세계적으로 1만8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대유행은 종료됐지만,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감염자가 나오고 있다.
대유행 당시 국내에도 유입되면서 75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263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정부는 첫 환자 발생 2개월 반 만에 국가 위기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했다. 안이한 대처로 감염자를 늘렸고, 이미 확진자가 900명을 돌파했을 때여서 당시 ‘늑장 대응’ 논란도 빚어졌다. 사망자 대부분이 고령층이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지내는 군대·학교 등에서 감염자가 속출하는 일이 발생했다. 항바이러스제 국내 비축분이 부족한 것도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휴교와 자택 격리 등이 이뤄지면서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꾀병’과 ‘고의 감염’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2015년 메르스: 중동을 여행하고 귀국한 남성에 의해 국내로 유입되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격리 인원 1만 2000명, 환자 186명, 사망 38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감염 대란을 발생시켰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일상은 무너졌다. 사람이 모이는 공식·비공식 행사, 여행이 줄줄이 취소됐다. 전국에서 2903개의 학교가 한꺼번에 문을 닫기도 했다. 메르스 외에 정부의 다른 정책들은 ‘올 스톱’ 됐을 정도였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고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정부가 추산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10조원에 달한다.
당시 ‘찌라시’ 등을 통해 발병 병원과 환자에 관한 허위 정보가 난무하거나 공기감염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유언비어가 일파만파 퍼져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당국이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을 두고 거센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메르스는 한국의 허술한 방역체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2016년 12월 24일 0시 기준 메르스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이후 병원에서는 환자 병문안 제한 조치가 본격 시행됐고, 정부는 방역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질병관리본부를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관련법을 개정하는 등 부랴부랴 국가방역체계 개편에 나섰다.
2008년 광우병: 1996년 3월 영국의 보건부장관이 광우병이 인간에게 감염될 가능성을 인정해 세계 육류 업계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지금까지도 광우병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광우병 소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수입산 소고기가 문제가 됐다. 2001년 ‘쇠고기 수입 자유화’ 이후 수입 쇠고기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달렸던 미국산 쇠고기가 2003년 미국 내 광우병이 확인되면서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가,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로 하자 반발한 시민 수십만 명이 수 개월간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당시 인터넷을 통한 광우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의 유포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는 공기로도 전염되는 광우병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 등의 잘못된 내용이 퍼지기도 했다. 이후 정부가 미국과의 추가 협상에 나섰고,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할 수 있는 검역주권을 두 나라 쇠고기 협상 협의문에 명문화하는 것으로 광우병 파동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광우병은 한국 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막 닻을 올린 이명박 정부는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또 대규모 촛불집회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정치 형태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2010년 구제역: 2010년 충남 천안시에서 발병한 구제역이 충남 지역 366곳에 퍼졌다. 정부에서는 구제역 발생 원인을 해외 유입 또는 잔존 바이러스로 추정하지만, 구체적 유입 경로는 밝혀내지 못했다. 구제역은 돼지와 소처럼 발굽이 2개로 갈라지는 동물에게 주로 발병한다. 사람에게 옮기지는 않지만, 전염성이 강해 발병과 동시에 살처분 결정이 난다. 구제역이 퍼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예방적 살처분’을 하기도 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 11월 말부터 2011년 4월 중순까지 전국을 휩쓴 구제역으로 348만 마리의 소와 돼지 등 가축이 살처분됐다. 이 과정에서 살처분보상금과 소독·방역비용, 농가 생계안정자금 등으로 총 2조7383억원의 재정 부담이 발생했다. 당시 돼지고기 값은 40% 이상 폭등했다.
가축들을 매장하는 장면에 대한 충격으로 살처분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지역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들이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거나 일부 농가가 정부의 살처분 권고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2015년부터 가축 매물을 전문적으로 하는 용역업체에 의뢰해 살처분을 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정부는 농장 전체 가축이 아닌 일부만 살처분하도록 가축의 살처분·매몰 범위를 조정했다. 2010년부터 구제역 백신접종도 의무화했다.
2016년 AI: AI(조류 인플루엔자 또는 조류 독감)은 말 그대로 모든 조류들이 걸리는 유행성 독감이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철새 조류의 분비물이 지목된다. 닭은 감염되면 80% 이상이 호흡곤란으로 폐사하고 전파력도 높아 거의 매년 축산농가를 괴롭히고 있다. AI가 발생했을 때의 주요 대책도 살처분이다. 백신으로는 자주 형태 변이를 하는 AI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 이유다. 이로 인해 AI가 발생할 때마다 양계농가의 타격이 크다. 유통시장에서도 육계 가격이 널뛰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3년 처음 시작돼 지금까지 112건의 AI가 발생했다. 대규모 AI는 대략 7건 정도이다. 최근에는 거의 해마다 일어나고 있고, 지난해 말에 일어난 조류독감은 단기간에 두 가지 바이러스가 동시에 확산돼 어느 때보다 많은 살처분을 기록한 역대 최악의 수준이었다. 지난해 겨울 AI 사태 때 살처분 된 가금류는 약 3300만 마리이며 이중 닭은 2582만 마리였다. 전체 닭의 20% 정도 되는 수가 사라진 것이다. 이 중 상당수는 산란계 닭들이어서 결국 계란 파동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추산한 살처분 보상금 소요액만 2300억원을 웃돌고, 농가 생계안정 자금 등 직접적인 비용을 비롯해 육류·육가공업, 음식업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간접적인 기회손실 비용까지 모두 합치면 피해규모가 1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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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전염병·유해물질 사태로 한국 사회가 시끄럽다. 가깝게는 계란이 문제가 됐다. 살충제를 남용하거나 쓰지 말아야 하는 살충제를 사용한 산란계 농장이 전국 곳곳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비자들이 믿고 먹었던 친환경 인증제품도 믿을 수 없는 제품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생필품인 생리대도 논란에 휩싸였다. 일회용 생리대 제품에서 스타이렌 등 발암물질과 새집증후군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이 검출되면서다. 7월엔 덜 익은 패티를 먹고 신장이 손상된 이른바 ‘햄버거병’이 논란이 됐다.
전염병·유해물질 사태는 경제도 흔든다. 특정 제품 판매나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줄뿐 아니라, 때로는 전체 소비시장의 위축을 부른다. 이는 기업의 실적 부진이나 자영업자의 고통으로 이어졌고, 나라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쳤다.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에서는 경제적 손실 추정치를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사태의 빈도도 잦아지는 추세다. 돌아보면 1~2년에 한 번씩은 전염병·가축질병이 유행하거나 먹거리·생필품에서 유해물질이 나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모럴해저드로 위협받은 먹거리·생필품 안전
2000년~2011년 중금속 꽃게·낙지: 중국산 꽃게와 복어, 병어 등의 뱃속에서 납 덩어리가 대거 발견돼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금속에 속하는 납은 미량이라도 오랫동안 섭취할 경우 납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일부 납 꽃게는 통관절차를 마치고 유통 직전에 발견돼 더욱 충격을 안겼다. 당시 납 꽃게를 먹은 임산부가 기형아 출산을 우려해 낙태수술을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누가, 어떤 이유로 꽃게에 납을 넣었느냐에 대해선 밝혀지지 않았다. ‘무게를 늘리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다른 경쟁자를 위험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음모론도 나왔다. 중국산 농수산물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우다웨이 당시 중국대사는 “납 꽃게에 한국인이 개입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했다. 납 꽃게 파문이 있고 난 뒤 해양수산부는 중국과 ‘수산물 위생관리 약정’을 체결하고 금속탐지기 검사 의무화, 이중검사,수출공장 등록 제도 등을 도입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0년에도 수산물의 중금속 문제가 대두됐다. 서울시가 낙지머리 속 먹물과 내장에서 중금속 카드뮴이 기준치의 최대 15배 넘게 검출됐다고 발표한 것. 이후 서울시와 식약청은 안전성 공방을 벌였고 당시 식약청은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논란이 지속되자 식약청은 2012년 내장을 포함한 꽃게와 낙지 등의 중금속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2005년 기생충알 김치와 색소 장어: 2005년 10월 중국산 김치 16개 제품 중 9개에서 미성숙 기생충알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산 김치는 국내산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해 대부분의 식당에 유통되고 있었던 터라 시민들 사이에서 김치 공포가 확산됐다. 이어 일부 국산 제품에서도 기생충알이 검출되면서 김치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음식점과 김치 제조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았고 국산 김치에 대한 신뢰가 하락했다. 기생충알 김치 파동으로 11월 김치 수출액이 월간 기준으로 6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
이보다 앞선 7월에는 중국산 장어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이라는 산업용 색소가 검출돼 파문을 일으켰다. 수정란의 소독·양식 등 과정에서 사용된 이 물질은 위험성이 높은 발암 물질로 알려져 시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중금속 수산물에 이어 김치, 색소물질 파문이 일면서 중국산 식품 전체에 대한 불신이 번졌고, 한·중 외교분쟁 직전까지 비화됐다.
2008년 멜라민 분유 파동: 멜라민 분유 파문은 2008년 중국에서 멜라민이 함유된 분유를 먹고 영아 6명 이상이 숨지고 29만 6000명의 어린이들이 신장결석이나 배뇨 질환을 앓으면서 시작했다. 이후 22개 업체의 분유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 바닥 타일, 주방기구, 화이트 보드 등을 만들 때 쓰이는 물질인데, 중국의 분유 생산 업체들은 우유에 물을 섞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 멜라민을 첨가한 것. 추후 중국의 ‘멜라민 분유’ 생산 관계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당시 국내에선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파동이 일어난 지 열흘이 지나서야 해당 성분이 포함된 모든 중국산 식품의 수입을 중단해 늑장 대처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국내에서 중국산 분유와 우유, 유당 성분이 포함된 과자에서 멜라민이 검출돼 충격을 안겼다. 특히 ‘멜라민 과자’ 목록에는 롯데제과·해태제과·동서식품 등 대형 업체들이 포함됐다. 혼란에 빠진 국민들에게 식약청은 ‘하루 허용 섭취량’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멜라민 공포를 잠재우고자 했다. 가령 국내 과자 중 멜라민 수치가 가장 높게 나온 품목이라 해도, 20kg짜리 어린이가 하루 15개 이상 꾸준히 먹어야 유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번진 불안감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2015년 가짜 백수오 사건: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고 알려져 홈쇼핑 등에서 붐이 일었던 ‘백수오’가 가짜라는 것이 드러났다. 백수오를 섭취한 일부 소비자들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에 한국소비자원이 32개 백수오 제품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는데, 단 3개의 제품만이 진짜 백수오를 사용했고 나머지는 ‘이엽우피소’라는 백수오와 비슷한 식물이 혼합돼 있었다. 백수오 제품 대부분을 공급하는 건강식품회사인 내츄럴엔도텍은 즉각 반발했다. 하지만 뒤이어 진행된 식약처의 전수조사 결과, 207개 백수오 제품 가운데 진짜 백수오만을 쓴 것은 단 10개, 5%에 불과했다.
믿었던 건강식품에 배신 당한 소비자들은 백화점·홈쇼핑 등을 상대로 집단 환불을 요구했다. 내츄럴엔도텍의 주가는 한 달여 만에 80% 넘게 떨어졌다. 홈쇼핑 업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백수오 제품이 주로 홈쇼핑에서 판매됐던 탓이다. 2015년 한 해 6개 홈쇼핑 업체가 환불한 금액만 417억원에 달했다. 식약처는 이엽우피소가 포함된 백수오 제품을 압류하는 등 조치를 시행하면서도 한국소비자원의 제품 점검 방법이 잘못됐고, 이엽우피소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며 엇갈린 입장을 내놨다.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지난해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가습기 살균제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가습기 참사가 알려진 지 5년 만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소리 없이 퍼지는 독성 때문에 ‘죽음의 약품’ ‘죽음의 연기’로 불렸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소비자들은 원인 모를 폐병으로 죽어갔다. 폐가 점점 굳어가 약을 먹어도 회복되지 않고 결국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돼 버리는 ‘소리 없는 죽음’이 이어졌다. 정부는 2011년 이런 증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 안에 들어 있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포스페이트(PHMG) 성분임을 발견했고, 뒤늦게 가습기 살균제 6종의 제품을 수거조치 했다.
그러나 당시 사건의 실체에 대한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오랜 기간 개별적인 소송과 시위를 이어갔다. 마침내 지난해 검찰 조사가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살균제 업체 옥시가 대학교수와 결탁해 유해성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민들의 분노는 ‘옥시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국회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유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법’을 제정했다. 현재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239명, 신고된 피해자만 5600여 명에 이른다. 이후 살균 화학물질 문제는 치약·물티슈·화장품 등으로까지 번졌다.
2004년 불량 만두 사건: 먹거리·생필품 파동 중엔 괴담으로 밝혀진 사건도 있다. 2004년 불거진 ‘불량 만두’ 또는 ‘쓰레기 만두’ 사건도 그런 사례다. 당시 언론을 통해 쓰레기로 버려야 할 자투리 무말랭이로 만두를 만든 25개 업체의 명단이 공개됐고 유통 업자들이 구속됐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뒤 관련 업체 대부분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언론에 보도된 무말랭이는 버리기 위해 모아 놓은 쓰레기였을 뿐 만두에 쓰이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다. 억울함은 밝혀졌지만 피해는 막대했다. 심한 곳은 하루 매출의 90%가 감소했고 전국 130여개 만두 제조 업체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한 만두 업체 사장이 결백을 주장하며 목숨을 끊은 일까지 있었다.
허술한 국내 방역 시스템 드러난 전염병 사태
2002년 사스: 2002년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전 세계를 덮쳤다. 한국에서는 처음엔 괴질로 불렸다. 중국 남부 광둥성 일대에서 100명 이상이 감염되고 수명이 숨진 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 이 전염병은 갈수록 기세를 떨쳐 중국뿐만 아니라 인근 동남아 국가와 미국, 캐나다 등 북미와 유럽 등지로까지 퍼져나가며 불안감을 키웠다. 이후 이것이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전염병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고,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이란 이름을 얻었다. 국내 당국에서도 괴질이라는 호칭이 불안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언론에 ‘사스’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WHO는 2003년 7월 5일 사스 사태의 종료를 선언했고, 한국도 이틀 뒤 비상 방역을 끝냈다. 이때까지 전 세계에서 8000여 명의 감염자와 8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사스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중국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스 발병으로 2003년 2분기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90%로 전 분기의 10.80%보다 3%포인트가량 떨어졌다. 홍콩의 경제성장률도 같은 기간 4.1%에서 -0.9%로 역성장을 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추정치에 따르면 사스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전 세계에 걸쳐 500억 달러로 집계됐다. 전파력과 치사율이 높았지만 국내엔 확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홍콩과의 교역이 일부 둔화된 것을 제외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과학적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김치가 일등 공신으로 꼽혔다. 그 덕에 김치 수출이 잠깐 늘기도 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03년 1~4월 김치 수출은 3033만 달러를 기록, 사상 최대였던 전년 같은 기간보다 38.4% 증가했다. 대(對) 중국 수출 증가율은 245.1%에 달했다.
2009년 신종플루: 2009년 북미 지역으로부터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했다. 발견 초기에는 ‘돼지 독감’이라고 불리다가, 발병원이 돼지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후 국내에서는 ‘신종 플루’라고 불렸다. 전 세계로 퍼지면서 214개국 이상에서 확진 판정이 내려졌고 2009년 4월부터 대유행(pandemic)이 종료된 2010년 8월까지 세계적으로 1만8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대유행은 종료됐지만,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감염자가 나오고 있다.
대유행 당시 국내에도 유입되면서 75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263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정부는 첫 환자 발생 2개월 반 만에 국가 위기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했다. 안이한 대처로 감염자를 늘렸고, 이미 확진자가 900명을 돌파했을 때여서 당시 ‘늑장 대응’ 논란도 빚어졌다. 사망자 대부분이 고령층이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지내는 군대·학교 등에서 감염자가 속출하는 일이 발생했다. 항바이러스제 국내 비축분이 부족한 것도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휴교와 자택 격리 등이 이뤄지면서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꾀병’과 ‘고의 감염’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2015년 메르스: 중동을 여행하고 귀국한 남성에 의해 국내로 유입되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격리 인원 1만 2000명, 환자 186명, 사망 38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감염 대란을 발생시켰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일상은 무너졌다. 사람이 모이는 공식·비공식 행사, 여행이 줄줄이 취소됐다. 전국에서 2903개의 학교가 한꺼번에 문을 닫기도 했다. 메르스 외에 정부의 다른 정책들은 ‘올 스톱’ 됐을 정도였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고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정부가 추산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10조원에 달한다.
당시 ‘찌라시’ 등을 통해 발병 병원과 환자에 관한 허위 정보가 난무하거나 공기감염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유언비어가 일파만파 퍼져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당국이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을 두고 거센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메르스는 한국의 허술한 방역체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2016년 12월 24일 0시 기준 메르스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이후 병원에서는 환자 병문안 제한 조치가 본격 시행됐고, 정부는 방역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질병관리본부를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관련법을 개정하는 등 부랴부랴 국가방역체계 개편에 나섰다.
정치·경제·사회적 상흔 남긴 가축질병
2008년 광우병: 1996년 3월 영국의 보건부장관이 광우병이 인간에게 감염될 가능성을 인정해 세계 육류 업계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지금까지도 광우병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광우병 소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수입산 소고기가 문제가 됐다. 2001년 ‘쇠고기 수입 자유화’ 이후 수입 쇠고기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달렸던 미국산 쇠고기가 2003년 미국 내 광우병이 확인되면서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가,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로 하자 반발한 시민 수십만 명이 수 개월간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당시 인터넷을 통한 광우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의 유포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는 공기로도 전염되는 광우병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 등의 잘못된 내용이 퍼지기도 했다. 이후 정부가 미국과의 추가 협상에 나섰고,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할 수 있는 검역주권을 두 나라 쇠고기 협상 협의문에 명문화하는 것으로 광우병 파동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광우병은 한국 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막 닻을 올린 이명박 정부는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또 대규모 촛불집회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정치 형태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2010년 구제역: 2010년 충남 천안시에서 발병한 구제역이 충남 지역 366곳에 퍼졌다. 정부에서는 구제역 발생 원인을 해외 유입 또는 잔존 바이러스로 추정하지만, 구체적 유입 경로는 밝혀내지 못했다. 구제역은 돼지와 소처럼 발굽이 2개로 갈라지는 동물에게 주로 발병한다. 사람에게 옮기지는 않지만, 전염성이 강해 발병과 동시에 살처분 결정이 난다. 구제역이 퍼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예방적 살처분’을 하기도 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 11월 말부터 2011년 4월 중순까지 전국을 휩쓴 구제역으로 348만 마리의 소와 돼지 등 가축이 살처분됐다. 이 과정에서 살처분보상금과 소독·방역비용, 농가 생계안정자금 등으로 총 2조7383억원의 재정 부담이 발생했다. 당시 돼지고기 값은 40% 이상 폭등했다.
가축들을 매장하는 장면에 대한 충격으로 살처분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지역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들이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거나 일부 농가가 정부의 살처분 권고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2015년부터 가축 매물을 전문적으로 하는 용역업체에 의뢰해 살처분을 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정부는 농장 전체 가축이 아닌 일부만 살처분하도록 가축의 살처분·매몰 범위를 조정했다. 2010년부터 구제역 백신접종도 의무화했다.
2016년 AI: AI(조류 인플루엔자 또는 조류 독감)은 말 그대로 모든 조류들이 걸리는 유행성 독감이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철새 조류의 분비물이 지목된다. 닭은 감염되면 80% 이상이 호흡곤란으로 폐사하고 전파력도 높아 거의 매년 축산농가를 괴롭히고 있다. AI가 발생했을 때의 주요 대책도 살처분이다. 백신으로는 자주 형태 변이를 하는 AI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 이유다. 이로 인해 AI가 발생할 때마다 양계농가의 타격이 크다. 유통시장에서도 육계 가격이 널뛰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3년 처음 시작돼 지금까지 112건의 AI가 발생했다. 대규모 AI는 대략 7건 정도이다. 최근에는 거의 해마다 일어나고 있고, 지난해 말에 일어난 조류독감은 단기간에 두 가지 바이러스가 동시에 확산돼 어느 때보다 많은 살처분을 기록한 역대 최악의 수준이었다. 지난해 겨울 AI 사태 때 살처분 된 가금류는 약 3300만 마리이며 이중 닭은 2582만 마리였다. 전체 닭의 20% 정도 되는 수가 사라진 것이다. 이 중 상당수는 산란계 닭들이어서 결국 계란 파동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추산한 살처분 보상금 소요액만 2300억원을 웃돌고, 농가 생계안정 자금 등 직접적인 비용을 비롯해 육류·육가공업, 음식업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간접적인 기회손실 비용까지 모두 합치면 피해규모가 1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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