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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에게 미소를 보내지 마라’

‘악어에게 미소를 보내지 마라’

‘파충류가 유발하는 흥분이 전자게임의 베팅을 촉진한다’ 등 기발한 연구에 수여하는 이그노벨상의 올해 수상작들
일러스트 : ILLUSTRATION BY ALEX FINE
일반적으로 과학은 아주 진지할 수밖에 없다. 막대한 부를 창출하거나 중요한 의문을 해결하거나 생명을 구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로봇이 하는 게 아니어서 의문과 답이 반드시 직선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과학자들의 별난 성격과 그들이 조사하는 터무니없는 현상이 뜻밖에도 과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계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도 ‘우연히’ 발견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1928년 여름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을 기르던 페트리 접시를 깜박 잊고 배양기 안에 넣지 않은 채 휴가를 다녀왔다. 실험실에 돌아온 그는 깜짝 놀랐다. 한 접시에 푸른곰팡이가 자랐기 때문이었다. 곰팡이 주변에는 포도상구균이 모두 죽어 있었다. 이 푸른곰팡이가 생산해내는 강력한 항균물질을 의약품으로 만든 것이 바로 페니실린이다.

이그노벨상(Ig Nobels)은 과학의 바로 그런 면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 하버드대학이 발행하는 유머과학잡지가 매년 기발한 연구나 업적에 대해 주는 상으로 노벨상을 풍자한 것이다. ‘처음엔 웃기지만 알고 보면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를 치하하는 상이다. 지금까지 이 상을 받은 기발한 연구에는 거짓말의 심리적 연구, 단백질 구조를 바꿔 삶은 달걀을 날달걀로 바꾸는 연구, 사람들이 대화 도중 오류를 수정하고자 무심코 내뱉는 ‘응(Huh)?’이란 단어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밝혀낸 연구, 오래된 탄약을 다이아몬드로 바꾸는 기술을 발명한 연구 등이 포함됐다. 이그노벨상은 노벨상과 달리 수여 부문이 매년 다르고 사후에도 상이 주어질 수 있다.
일러스트 : ILLUSTRATION BY ALEX FINE
지난 9월 14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올리버 하트 하버드대학 교수를 비롯한 왕년의 노벨상 수상자 세 명과 과학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올해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됐다. 수상작을 간략히 소개한다.

◎ 올해 물리학상은 고양이가 액체인지 고체인지를 연구한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마르크 앙투안 파르댕 프랑스 리용대학 연구원은 고양이들이 서로 모양이 다른 용기에 몸을 넣는 모습을 분석해 고양이가 고체와 액체 성질을 모두 갖는다는 결과를 2014년 유변학 회보에 소개했다. 파르댕 연구원은 고양이가 사탕 항아리부터 싱크대까지 다양한 용기에 쏙 들어가 있는 터무니없는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후속 연구에서 물질의 유동성으로 고양이를 나타내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공개했다.

◎ 우리 중 약 5%가 수면무호흡증에 시달린다. 수면 중 기도가 막혀 잠을 깨는 증상이다. 이 증상은 뇌졸중의 사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취리히대학 연구진은 호주 원주민의 전통 목관악기인 디제리두를 불면 혀 근육의 뭉침 현상이 개선되면서 수면무호흡증과 코골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밝혀 이그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 이 그노벨 경제학상은 ‘악어에게 미소를 보내지 마라: 파충류가 유발하는 흥분이 전자게임의 베팅을 촉진한다’는 논문을 발표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이 역시 흔한 문제를 특이한 관점으로 접근한 결과다. 미국인의 약 80%가 도박을 하며 그중 3~5%는 행동 자제력에 문제가 있다. 1m 길이의 살아 있는 악어를 손으로 붙잡은 일부 도박꾼은 더 대담하게 베팅을 했다. 반면 악어와의 접촉을 좀 더 부정적으로 느낀다고 말한 도박꾼들은 베팅에 더 소심해졌다. 위험하니 집에선 그런 실험을 하지 마시라!
일러스트 : ILLUSTRATION BY ALEX FINE
◎ 약 20년 전 영국의 의사 19명이 모여 나이가 들면 실제로 귀가 커지는지, 만약 커진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연구했다(당시 그들은 그런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 원인은 밝히지 못했다). 바로 그 논문이 올해 이그노벨 해부학상을 받았다. 논문이 발표됐을 때 많은 의견이 쏟아졌다. 켈트어 6개 언어 전부에서 그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가 있으며, 중국인은 귀 크기가 장수·부와 연관 있다고 믿는다는 지적 등이 포함됐다.

◎ 올해의 이그노벨 생물학상은 수컷이 정자를 암컷의 체내로 보내는 일반적인 교미 방식을 취하는 곤충과 달리 수컷과 같은 생식기를 가진 암컷을 새롭게 발견한 일본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동굴에서 찍은 비디오테이프를 대신 보냈다. 동굴 곤충 4종 24쌍이 교미하는 것을 관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곤충은 ‘다듬이벌레’의 일종으로, 연구팀이 브라질 동굴에서 발견해 ‘토리카헤차타테’라고 명명했다. 이 곤충의 교미법은 독특하다. 전체 길이 3㎜ 정도의 이 곤충은 암컷이 좁고 긴 생식기를 갖고 있다. 암컷은 교미 시 이 생식기를 수컷의 체내에 넣어 정자와 영양분을 받아 수정한다. 교미 시간이 40~70시간이나 된다.
일러스트 : ILLUSTRATION BY ALEX FINE
◎ 커피가 현대인의 생활에서 거의 필수적이 되면서 커피를 쏟는 일이 매일 일어난다. 미국 버지니아대학 물리학과에 재학 중인 한지원 씨는 컵을 들고 걸을 때 커피가 쏟아지는 원인을 규명한 연구로 유체역학상을 받았다. 한씨는 민족사관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커피를 들고 뒷걸음질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란 제목의 15쪽짜리 논문을 썼다. 그는 실험에서 커피가 반 정도 담긴 와인잔에 4㎐의 진동이 발생하면 잔잔한 물결이 생기지만 머그잔의 경우 액체가 밖으로 튀고 결국 쏟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컵을 쥐는 방법만 달리해도 커피를 쏟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컵 윗부분을 손으로 거머쥐고 걸으면 공명 진동수가 낮아져 컵 속 커피가 덜 튄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2015년 국제학술지인 어치브먼트 인 라이프사이언스에 처음 투고됐고 지난해 정식으로 게재됐다. 그는 “컵을 들고 있는 손 모양을 달리하면 같은 속도로 움직여도 커피를 쏟지 않을 수 있다”며 “손잡이 대신 컵의 머리 부분을 감싸쥐고 걸으면 공명 진동수가 낮아진다”고 말했다. 걸을 때 발생하는 공명진동수(4㎐)가 낮아져 머그컵 속 커피가 덜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 비위가 약하다면 이 항목은 읽지 않는 게 좋다. 올해 이그노벨 영양학상은 ‘인간의 피가 털다리흡혈박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 돌아갔다. 브라질의 흡혈박쥐인 이 종은 이전엔 주로 새의 피에 의존해 생존한다고 믿어졌지만 인간의 피도 자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박쥐가 광견병을 옮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러스트 : ILLUSTRATION BY ALEX FINE
◎ 누구나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혐오하는 식품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겐 치즈가 그런 식품이다. 올해 이그노벨 의학상을 받은 연구팀은 “다른 식품보다 치즈에 역겨움을 느끼는 사람의 비율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치즈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을 물색해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으로 그들의 뇌가 역겨움에 반응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연구팀은 그 과정에서 보상과 관련 있다고 알려진 뇌 부위인 기저핵도 혐오감을 느끼는 현상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일란성 쌍둥이를 구별할 수 없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들 자신도 서로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의 이그노벨 인식상은 일란성 쌍둥이 대다수가 사진으로 자신들을 구분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밝힌 이탈리아 연구팀에 돌아갔다.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얼굴이 너무 비슷해 한쪽이 본능적으로 둘 다를 자신의 얼굴로 인식한다.

◎ 태아에게 모차르트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유행이던 시절을 기억하는가? 올해 이그노벨 산과학상을 받은 연구팀에 따르면 임신부의 복부를 통하는 것보다 질 속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질내 기구인 베이비팟은 특허도 받았다.

- 메간 바텔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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