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vs 미국 글로벌 리더십 누가 차지할까
중국 vs 미국 글로벌 리더십 누가 차지할까
미국이 패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중국은 권위주의 정치 시스템 탓에 지도력 인정 받기 어려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단 한 가지 측면에서만 ‘역사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으로 미국이 뒤늦게나마 글로벌 리더십을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으로 눈을 돌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떠오르면서 그동안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미국의 리더십 시대는 막을 내렸다. TV를 보는 모든 미국인은 그런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언론이 중국 베이징과 베트남 다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행보를 보도하면서 그런 점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그들 도시에서 두 사람은 아시아의 미래를 두고 서로 다른 비전을 제시했지만 언론은 그들이 동등한 권위를 가진 것처럼 다뤘다.
이젠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더는 아닌 듯하다. 현재로선 미국과 중국이 동등하게 취급받는다. 1979년 미국과 중국의 공식 수교 이래 지적재산권부터 환율, 인권 문제까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을 부른 쟁점 대부분은 양자 관계에 국한됐다. 그러나 이제 두 나라는 자국의 가치와 정책을 국제무대가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세계질서 구축을 위해 경쟁을 벌인다.
남중국해에선 암초와 바위에 대한 영유권보다는 국제법이나 절대적인 힘을 가진 특권기구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가 더 큰 일이다. 무역과 투자 분쟁에선 한쪽의 개방성·호혜성·다자주의와 다른 쪽의 보호주의를 세계 각국이 어떻게 봐야 하느냐가 쟁점이다. 문화와 미디어, 시민사회의 영역에선 국가의 이익이 집단이나 개인의 자유에 비해 어느 정도 중요한지 판단하는 것이 핵심적인 차이를 이룬다.
이런 경쟁의 무대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국과 미국은 파트너십과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세계적인 공동선을 추구하며, 다자주의에 입각한 제도와 기구를 만들고, 전 세계에서 소프트파워와 경제 관계를 증진함으로써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책과 비전이 보편적으로 용인될 수 있도록 정통성을 확립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지켜본 국제정세 분석가 중 다수는 G2 양자 경쟁에서 중국이 앞서고 있으며 미국은 이미 패했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 주석은 일인 지배 체제를 굳혔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 언론이 그런 점을 과대평가한 면이 있다. 그 영향으로 앤서니 J. 블링켄 전 국무부 부장관 같은 지식인도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리더십을 중국에 넘겨주고 있다”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런 평가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중국의 성취에 대한 감탄을 똑같은 수준으로 반영한다. 다른 한편으로 시 주석이 자신의 글로벌리즘 찬가와 트럼프 대통령의 국수주의 허풍의 대조를 구태여 강조하는 연설로 그런 비교를 부추긴 면도 있다. 지난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 시 주석의 연설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바로 며칠 전에 나왔다. 그 연설은 만약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원치 않는다면 중국이 기꺼이 세계질서를 떠받치겠다는 선언으로 널리 해석됐다.
10개월 뒤의 제19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선 시 주석이 한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중심 역할을 떠맡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리더십을 원한다고 해도 다른 나라들이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은 중국이 제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 연설 사이에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 기후협정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의 글로벌 리더십 열망이 근거 있는 듯이 비춰졌다.
시 주석 아래서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같은 중요한 지역 기구를 출범시켰다. 또 중국의 첫 해외 군사기지를 세웠고, 신실크로드 전략으로 불리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제시하며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로 투자했다.
세계 최대의 중산층과 무역 규모, 외환보유고를 가진 중국은 ‘국가종합실력’의 대부분 지표에서 급성장한다. 그에 따라 중국은 서태평양의 안보구조 재조정과 미국의 전략정책 재평가를 요구한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권위주의적인 정치 시스템 탓에 중국의 제도적·이념적인 영향력은 해외에서 대부분 환영 받기 어렵다. 중국의 힘이 더 강해진다고 해도 시 주석이 제19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선언한 ‘중국 모델’은 현대 세계를 이끌 중국의 능력을 방해할 게 분명하다. 중국의 리더십 역량에 의문을 제기하는 요인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중국이 다면화된 글로벌 시스템을 진정으로 이끌기 원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보스와 다낭에서 시 주석은 신중하게도 ‘경제 세계화’만 거론했다. 글로벌리즘의 정치적·안보적·문화적·규범적인 측면은 쏙 빼놓았다.
그는 중국이 찬란했던 옛 영광과 최근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중국의 부상을 가능케 했던 무역 정책을 이끌 자격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이상은 건드리지 않았다. 다시 말해 시 주석이 말하는 중국은 물질적·기술적 웰빙을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을 이끌 준비를 갖췄다는 뜻이다. 그는 그것을 ‘인류운명공동체’라고 불렀다. 그러나 법의 지배,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 대의정체, 사회적·문화적·정치적 다원주의 등 국제적 현대성의 특징과 개방된 시장, 글로벌 공급사슬 등을 증진할 수 있는 가치와 제도를 옹호하진 않았다.
이런 사실은 중국의 글로벌 비전에 중대한 제한을 가한다. 쉽게 비교하자면 맹점이 있다기보다 눈 하나가 완전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구나 시 주석은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이끌겠다고 제안했지만 중국 스스로 그 원칙을 수시로 위반한다는 모순도 커 보인다. 현실 세계의 실적이 이상적인 리더십을 손상시킨다는 뜻이다.
중국의 높은 관세 장벽, 상대적으로 폐쇄된 경제, 지적재산의 침해와 강압적인 이전, 국가 정책의 일방적인 선전, 정치 문제를 빌미로 파트너를 무역으로 보복하는 행위[필리핀산 바나나 수입과 희토류 일본 수출 금지,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경제적 보복 등이 대표적 예다]는 시 주석의 경제개방 선언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19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은 ‘중국의 지혜’가 세계를 이끌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세계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서 진지한 해결책을 제시한 적이 없다. 시 주석은 지난 1월 다보스 기조연설에서 “전 세계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세계화 탓으로 돌릴 수 없다”며 “글로벌 리더들은 개방과 협력을 밀어붙여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중동·아프리카 난민 유입은 시장 개방이 아니라 전쟁과 분쟁, 지역적인 혼란 때문이며, 평화를 약속하고 화해를 도모하고 안정을 회복하는 것만이 해법이다.” 이것이 소위 ‘시진핑 사상’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건 전쟁과 분쟁, 혼란 같은 특정 단어의 반의어가 평화, 화해, 안정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얘기일 뿐 구체적인 알맹이가 없어 누가 봐도 정책 지침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의 난민 문제에 관한 장황한 언급은 2014년 내가 중국의 한 국제관계 학자와 가진 대화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내게 중동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시 주석의 새로운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나는 시 주석이 그런 제안을 했는지 잘 모른다며 그게 뭔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반드시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시 주석의 생각”이라고 답했다. 제안이 아니라 그냥 하기 좋은 말처럼 들렸다.
더구나 중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열의가 진지하다고 해도 다른 나라들이 중국의 리더십을 따르고 싶어 하는지 여부도 문제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국제관계 교수이자 한국학연구소장인 데이비드 강은 2013년 쓴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중국은 인민을 위한 경제 성장의 가치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들이 본받으려 하거나 공유하길 원하는 다른 가치는 거의 다 옹호하지 않는다. 먼 옛날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오래 지속된 문명의 발생지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시아에서도 문명적인 영향력을 더는 갖지 못한다. 문명을 꽃피웠던 고대 그리스와 달리 현대 그리스가 지금 유럽에서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보라. 중국도 그와 마찬가지다. 현대 동아시아 국가나 사람들이 문화적 혁신과 국가적 가치, 현 시대의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중국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동아시아 지역은 중국 리더십을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중국의 의도도 완전히 불신하지만 그런 사실은 중국 학자들에게 제시하는 외교적 이론에 의해 가려지고 있다.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피에는 남을 침략하거나 세계를 억눌러 제패하려는 유전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은 ‘천하’와 ‘왕도’ 사상에 뿌리를 둔 어진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세계를 안심시켰다. ‘천하’ 이론은 외국인이 자신의 문명 수준이 낮다고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중국에 복속되는 데서 중국의 탁월함이 나온다는 것을 가리킨다.
시 주석은 중국이 이웃을 강압하는 미국식 ‘패도(覇道)’가 아닌 도덕과 인의를 앞세운 ‘왕도(王道)’로 국제질서를 새롭게 구축하겠다고 다짐했다. ‘왕도’ 아래선 지배적인 국가가 뛰어난 미덕과 자애를 베풀면 그 점을 인정하는 나머지 국가들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폭력을 통해 의지를 관철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요지다. 동남아에서 그런 발상을 환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시 주석의 민족적인 유전학이 아니라 남중국해의 인공섬 건설을 통한 영유권 확대를 근거로 중국의 패권을 직시한다. 지난해 7월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중국의 ‘9단선’(남중국해에 그은 U자 형태의 선으로, 이 일대 바다의 90% 차지한다)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PCA는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불법이며,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권리 주장과 인공섬 건설은 국제분쟁을 악화시켰을 뿐 아니라 분쟁 지역의 산호초 및 자연환경을 파괴했다고 판결했다. 이에 중국은 PCA의 판결을 무시할 것이며, 남중국해에서의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무력사용도 불사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중국의 이익을 존중한다는 정신이 모든 아세안 회원국들의 사고방식에 내면화되기를 기대한다”고 싱가포르 외무부 자문역인 빌리하리 카우시칸은 지적했다. 다시 말해 중국에 복속되는 국가들은 왕도 아래 펼쳐지는 자비의 대가로 정신적 자율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중화주의를 내세우며 자국의 우월성을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리더십을 떠맡음으로써 치러야 하는 대가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을까? 내가 보기엔 아직 그런 증거는 거의 없다. 현대의 글로벌 리더라면 작고 큰 모든 국가에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을 제시해야 한다. 자국의 이익보다 글로벌 시스템의 이익을 앞세워야 하는 경우도 많다. 자국민에게 먼 해외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워달라고 주문해야 한다. 또 예고 없이 닥친 상황에 직면하면 정보가 불충분해도 위험부담이 큰 행동을 과감히 취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쏟아지는 비난도 무던히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정치 문화는 리더십의 그런 불가피한 측면을 혐오한다. 중국 공산당은 인민에게 언제나 고도로 도덕적이며 교화적인 용어로 외교 정책을 설명한다. 중국은 고유한 특성과 오랫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은 역사로 인해 다른 강대국들과 달리 이기심과 탐욕을 멀리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또 중국은 조화로운 사회를 추구하며, 자국의 안녕만을 원하고, 자신과 다른 모든 신념과 정치 체제도 존중하며, 다른 나라의 내정에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런 교과서적인 사고방식이 너무나 오랫동안 중국의 집단의식 속에 주입되면서 벌써부터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온라인에서 해외 원조에 대한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거의 5억 명에 이르는 인민이 하루 5.50달러(약 6000원) 미만으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중국이 왜 가난한 외국인을 도와야 하느냐고 묻는다.
또 중국은 유엔 평화유지군을 가장 많이 파견한다고 걸핏하면 자랑한다. 그러나 지난해 남수단에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됐던 중국 군인 여러 명이 전사하자 네티즌은 아프리카의 평화를 지키려고 중국인이 희생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최근의 19차 당대회에서 확정된 시 주석의 두 번째 5년 임기(2017~2022년) 동안 중국이 진정한 글로벌 리더십을 떠맡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는 이번 당대회에서 중국의 주요 모순을 “인민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형, 불충분 간의 모순”으로 정의하며 인민의 복지를 늘리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낳은 불평등과 부패 문제 등을 해결해 중국판 복지국가인 ‘샤오캉(小康, 모든 인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는 뜻)’ 사회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같은 대내적 도전을 고려하면 중국은 역내 영향력을 서서히 강화하는 길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문제가 심각하더라도 중국이 무력 시위와 원조 외교를 통해 세계 무대에서 특권을 주장하려는 노력은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외부의 도발이 있거나 너무 좋아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중국이 성급하게 리더십을 떠맡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또 중국은 세계적인 평판을 높이고 행동 반경을 넓히기 위해 소프트파워 투자를 지속하는 동시에 미디어를 통해 중국의 주장을 알리고 그대로 믿게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규제를 받는 중국의 문화는 해외에선 물론 자국에서도 호소력이 떨어진다. 당연히 외부에선 중국 공산당의 관영 매체를 선전기관으로 볼 수밖에 없다.
소프트파워에 대한 중국의 개념적 문제는 더 심각하고 역설적이다. 중국 공산당은 권위주의적 통치만이 국내 안정과 경제 발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런 믿음에 따라 그들은 비밀주의에 기초한 압제적인 통치와 소통 방식을 채택했으며, 그런 관행에 길들여졌다.
만약 중국이 이런 관행을 세계무대에 적용한다면 곧바로 외국인들의 거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투자를 환영하는 나라도 그 측면에선 예외가 아닐 것이다. 중국 공산당도 그런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국내에서 강경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대외적으로만 권위주의를 떨쳐버리고 편안하게 대화할 순 없다. 외부 세계와 긴밀히 교류하는 중국인이 너무 많아져 더는 이중 잣대가 용납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곤경에 처했다.
무엇보다 중국의 통치 이론은 글로벌 리더십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시 주석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길 바라지만 그 세계무대엔 이미 회의주의, 냉소주의, 불손, 논리적 반박, 요란한 논쟁, 터무니없다는 비난과 비판이 무성하다. 중국의 공공 담론에선 전부 금지된 행위다. 그런 현실을 시 주석이라고 바꿔놓을 수 있겠는가?
싱가포르 외무부 자문역 카우시칸은 “개방된 시스템의 리더는 자신도 개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유화가 좀 더 진행되면 공산당의 지배 체제가 위태로워진다고 중국 공산당은 우려가 크다.” 이런 조건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계속 키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제적으로 번창할 순 있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이 행사했던 방식의 리더십은 중국으로선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시진핑 사상’의 승리주의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스템을 이끌 중국의 능력은 한참 떨어진다. 그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1945년 이래 상대적으로 어느 때보다 힘이 빠진 상태지만 아직도 중국이 부러워하는 패를 들고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본능은 세계 문제에서 발을 빼는 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경쟁에서 이기고, 존경 받고 싶어하는 그의 욕구는 글로벌 리더십 쟁취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정책을 촉진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위대함’이나 자신의 개인적인 카리스마가 발휘되는 지리적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확신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여러 가지 다른 ‘팩트’도 그에게 미국의 글로벌 이익 추구를 강요할 것이다. 나는 지난 1월 중국 문제 전문 매체 ‘차이나파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조만간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재균형(Rebalance to Asia) 정책의 전략적 근거를 반드시 재발견할 것이다. 그 근거를 더 빨리 발견할수록 낫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기간에 여러차례 표명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구상은 아직 설익고 정의도 분명치 않으며 미온적인 언급이긴 하지만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돌아서는 과정이 벌써 시작됐다는 조짐일지 모른다.
미국과 중국은 이제 쌍방간의 쟁점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정립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세계 질서에 영향을 미치려고 경쟁하는 상황으로 돌입했다. 이 경쟁의 무대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든 그 국가는 국제관계의 사소한 좌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통 큰 자세를 가질 수 있다. 반면 패배하는 나라는 설사 자국의 국제적인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축하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중국은 공산주의 이념에서 비롯되는 불리함을 안고 있지만 무엇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지, 자국의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전략을 채택해야 할지 확실히 아는 상황에서 경기장에 들어섰다. 미국은 중국보다 유리한 여건을 갖췄다. 아울러 두 나라의 시합을 구경하는 국가 중 미국을 응원하는 쪽이 훨씬 많을 듯하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로커룸의 벤치에 혼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무심하게 TV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시합이 시작됐으며 상대가 점수를 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의 귀에는 들썩이는 관중석의 응원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하다.
미국이 얼마나 오래 이런 상황을 지속할 수 있을까?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위축돼 세계무대에서 내몰릴 수 있는데도 말이다.
- 로버터 데일리
※ [필자는 우드로 윌슨 센터 산하 키신저 미중연구소 소장이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차이나파일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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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떠오르면서 그동안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미국의 리더십 시대는 막을 내렸다. TV를 보는 모든 미국인은 그런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언론이 중국 베이징과 베트남 다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행보를 보도하면서 그런 점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그들 도시에서 두 사람은 아시아의 미래를 두고 서로 다른 비전을 제시했지만 언론은 그들이 동등한 권위를 가진 것처럼 다뤘다.
이젠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더는 아닌 듯하다. 현재로선 미국과 중국이 동등하게 취급받는다. 1979년 미국과 중국의 공식 수교 이래 지적재산권부터 환율, 인권 문제까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을 부른 쟁점 대부분은 양자 관계에 국한됐다. 그러나 이제 두 나라는 자국의 가치와 정책을 국제무대가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세계질서 구축을 위해 경쟁을 벌인다.
남중국해에선 암초와 바위에 대한 영유권보다는 국제법이나 절대적인 힘을 가진 특권기구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가 더 큰 일이다. 무역과 투자 분쟁에선 한쪽의 개방성·호혜성·다자주의와 다른 쪽의 보호주의를 세계 각국이 어떻게 봐야 하느냐가 쟁점이다. 문화와 미디어, 시민사회의 영역에선 국가의 이익이 집단이나 개인의 자유에 비해 어느 정도 중요한지 판단하는 것이 핵심적인 차이를 이룬다.
이런 경쟁의 무대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국과 미국은 파트너십과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세계적인 공동선을 추구하며, 다자주의에 입각한 제도와 기구를 만들고, 전 세계에서 소프트파워와 경제 관계를 증진함으로써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책과 비전이 보편적으로 용인될 수 있도록 정통성을 확립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지켜본 국제정세 분석가 중 다수는 G2 양자 경쟁에서 중국이 앞서고 있으며 미국은 이미 패했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 주석은 일인 지배 체제를 굳혔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 언론이 그런 점을 과대평가한 면이 있다. 그 영향으로 앤서니 J. 블링켄 전 국무부 부장관 같은 지식인도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리더십을 중국에 넘겨주고 있다”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런 평가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중국의 성취에 대한 감탄을 똑같은 수준으로 반영한다. 다른 한편으로 시 주석이 자신의 글로벌리즘 찬가와 트럼프 대통령의 국수주의 허풍의 대조를 구태여 강조하는 연설로 그런 비교를 부추긴 면도 있다. 지난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 시 주석의 연설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바로 며칠 전에 나왔다. 그 연설은 만약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원치 않는다면 중국이 기꺼이 세계질서를 떠받치겠다는 선언으로 널리 해석됐다.
10개월 뒤의 제19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선 시 주석이 한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중심 역할을 떠맡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리더십을 원한다고 해도 다른 나라들이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은 중국이 제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 연설 사이에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 기후협정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의 글로벌 리더십 열망이 근거 있는 듯이 비춰졌다.
시 주석 아래서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같은 중요한 지역 기구를 출범시켰다. 또 중국의 첫 해외 군사기지를 세웠고, 신실크로드 전략으로 불리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제시하며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로 투자했다.
세계 최대의 중산층과 무역 규모, 외환보유고를 가진 중국은 ‘국가종합실력’의 대부분 지표에서 급성장한다. 그에 따라 중국은 서태평양의 안보구조 재조정과 미국의 전략정책 재평가를 요구한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권위주의적인 정치 시스템 탓에 중국의 제도적·이념적인 영향력은 해외에서 대부분 환영 받기 어렵다. 중국의 힘이 더 강해진다고 해도 시 주석이 제19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선언한 ‘중국 모델’은 현대 세계를 이끌 중국의 능력을 방해할 게 분명하다. 중국의 리더십 역량에 의문을 제기하는 요인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중국이 다면화된 글로벌 시스템을 진정으로 이끌기 원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보스와 다낭에서 시 주석은 신중하게도 ‘경제 세계화’만 거론했다. 글로벌리즘의 정치적·안보적·문화적·규범적인 측면은 쏙 빼놓았다.
그는 중국이 찬란했던 옛 영광과 최근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중국의 부상을 가능케 했던 무역 정책을 이끌 자격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이상은 건드리지 않았다. 다시 말해 시 주석이 말하는 중국은 물질적·기술적 웰빙을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을 이끌 준비를 갖췄다는 뜻이다. 그는 그것을 ‘인류운명공동체’라고 불렀다. 그러나 법의 지배,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 대의정체, 사회적·문화적·정치적 다원주의 등 국제적 현대성의 특징과 개방된 시장, 글로벌 공급사슬 등을 증진할 수 있는 가치와 제도를 옹호하진 않았다.
이런 사실은 중국의 글로벌 비전에 중대한 제한을 가한다. 쉽게 비교하자면 맹점이 있다기보다 눈 하나가 완전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구나 시 주석은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이끌겠다고 제안했지만 중국 스스로 그 원칙을 수시로 위반한다는 모순도 커 보인다. 현실 세계의 실적이 이상적인 리더십을 손상시킨다는 뜻이다.
중국의 높은 관세 장벽, 상대적으로 폐쇄된 경제, 지적재산의 침해와 강압적인 이전, 국가 정책의 일방적인 선전, 정치 문제를 빌미로 파트너를 무역으로 보복하는 행위[필리핀산 바나나 수입과 희토류 일본 수출 금지,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경제적 보복 등이 대표적 예다]는 시 주석의 경제개방 선언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19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은 ‘중국의 지혜’가 세계를 이끌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세계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서 진지한 해결책을 제시한 적이 없다. 시 주석은 지난 1월 다보스 기조연설에서 “전 세계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세계화 탓으로 돌릴 수 없다”며 “글로벌 리더들은 개방과 협력을 밀어붙여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중동·아프리카 난민 유입은 시장 개방이 아니라 전쟁과 분쟁, 지역적인 혼란 때문이며, 평화를 약속하고 화해를 도모하고 안정을 회복하는 것만이 해법이다.” 이것이 소위 ‘시진핑 사상’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건 전쟁과 분쟁, 혼란 같은 특정 단어의 반의어가 평화, 화해, 안정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얘기일 뿐 구체적인 알맹이가 없어 누가 봐도 정책 지침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의 난민 문제에 관한 장황한 언급은 2014년 내가 중국의 한 국제관계 학자와 가진 대화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내게 중동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시 주석의 새로운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나는 시 주석이 그런 제안을 했는지 잘 모른다며 그게 뭔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반드시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시 주석의 생각”이라고 답했다. 제안이 아니라 그냥 하기 좋은 말처럼 들렸다.
더구나 중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열의가 진지하다고 해도 다른 나라들이 중국의 리더십을 따르고 싶어 하는지 여부도 문제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국제관계 교수이자 한국학연구소장인 데이비드 강은 2013년 쓴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중국은 인민을 위한 경제 성장의 가치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들이 본받으려 하거나 공유하길 원하는 다른 가치는 거의 다 옹호하지 않는다. 먼 옛날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오래 지속된 문명의 발생지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시아에서도 문명적인 영향력을 더는 갖지 못한다. 문명을 꽃피웠던 고대 그리스와 달리 현대 그리스가 지금 유럽에서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보라. 중국도 그와 마찬가지다. 현대 동아시아 국가나 사람들이 문화적 혁신과 국가적 가치, 현 시대의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중국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동아시아 지역은 중국 리더십을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중국의 의도도 완전히 불신하지만 그런 사실은 중국 학자들에게 제시하는 외교적 이론에 의해 가려지고 있다.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피에는 남을 침략하거나 세계를 억눌러 제패하려는 유전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은 ‘천하’와 ‘왕도’ 사상에 뿌리를 둔 어진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세계를 안심시켰다. ‘천하’ 이론은 외국인이 자신의 문명 수준이 낮다고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중국에 복속되는 데서 중국의 탁월함이 나온다는 것을 가리킨다.
시 주석은 중국이 이웃을 강압하는 미국식 ‘패도(覇道)’가 아닌 도덕과 인의를 앞세운 ‘왕도(王道)’로 국제질서를 새롭게 구축하겠다고 다짐했다. ‘왕도’ 아래선 지배적인 국가가 뛰어난 미덕과 자애를 베풀면 그 점을 인정하는 나머지 국가들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폭력을 통해 의지를 관철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요지다. 동남아에서 그런 발상을 환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시 주석의 민족적인 유전학이 아니라 남중국해의 인공섬 건설을 통한 영유권 확대를 근거로 중국의 패권을 직시한다. 지난해 7월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중국의 ‘9단선’(남중국해에 그은 U자 형태의 선으로, 이 일대 바다의 90% 차지한다)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PCA는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불법이며,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권리 주장과 인공섬 건설은 국제분쟁을 악화시켰을 뿐 아니라 분쟁 지역의 산호초 및 자연환경을 파괴했다고 판결했다. 이에 중국은 PCA의 판결을 무시할 것이며, 남중국해에서의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무력사용도 불사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중국의 이익을 존중한다는 정신이 모든 아세안 회원국들의 사고방식에 내면화되기를 기대한다”고 싱가포르 외무부 자문역인 빌리하리 카우시칸은 지적했다. 다시 말해 중국에 복속되는 국가들은 왕도 아래 펼쳐지는 자비의 대가로 정신적 자율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중화주의를 내세우며 자국의 우월성을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리더십을 떠맡음으로써 치러야 하는 대가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을까? 내가 보기엔 아직 그런 증거는 거의 없다. 현대의 글로벌 리더라면 작고 큰 모든 국가에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을 제시해야 한다. 자국의 이익보다 글로벌 시스템의 이익을 앞세워야 하는 경우도 많다. 자국민에게 먼 해외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워달라고 주문해야 한다. 또 예고 없이 닥친 상황에 직면하면 정보가 불충분해도 위험부담이 큰 행동을 과감히 취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쏟아지는 비난도 무던히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정치 문화는 리더십의 그런 불가피한 측면을 혐오한다. 중국 공산당은 인민에게 언제나 고도로 도덕적이며 교화적인 용어로 외교 정책을 설명한다. 중국은 고유한 특성과 오랫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은 역사로 인해 다른 강대국들과 달리 이기심과 탐욕을 멀리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또 중국은 조화로운 사회를 추구하며, 자국의 안녕만을 원하고, 자신과 다른 모든 신념과 정치 체제도 존중하며, 다른 나라의 내정에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런 교과서적인 사고방식이 너무나 오랫동안 중국의 집단의식 속에 주입되면서 벌써부터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온라인에서 해외 원조에 대한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거의 5억 명에 이르는 인민이 하루 5.50달러(약 6000원) 미만으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중국이 왜 가난한 외국인을 도와야 하느냐고 묻는다.
또 중국은 유엔 평화유지군을 가장 많이 파견한다고 걸핏하면 자랑한다. 그러나 지난해 남수단에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됐던 중국 군인 여러 명이 전사하자 네티즌은 아프리카의 평화를 지키려고 중국인이 희생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최근의 19차 당대회에서 확정된 시 주석의 두 번째 5년 임기(2017~2022년) 동안 중국이 진정한 글로벌 리더십을 떠맡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는 이번 당대회에서 중국의 주요 모순을 “인민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형, 불충분 간의 모순”으로 정의하며 인민의 복지를 늘리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낳은 불평등과 부패 문제 등을 해결해 중국판 복지국가인 ‘샤오캉(小康, 모든 인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는 뜻)’ 사회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같은 대내적 도전을 고려하면 중국은 역내 영향력을 서서히 강화하는 길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문제가 심각하더라도 중국이 무력 시위와 원조 외교를 통해 세계 무대에서 특권을 주장하려는 노력은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외부의 도발이 있거나 너무 좋아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중국이 성급하게 리더십을 떠맡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또 중국은 세계적인 평판을 높이고 행동 반경을 넓히기 위해 소프트파워 투자를 지속하는 동시에 미디어를 통해 중국의 주장을 알리고 그대로 믿게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규제를 받는 중국의 문화는 해외에선 물론 자국에서도 호소력이 떨어진다. 당연히 외부에선 중국 공산당의 관영 매체를 선전기관으로 볼 수밖에 없다.
소프트파워에 대한 중국의 개념적 문제는 더 심각하고 역설적이다. 중국 공산당은 권위주의적 통치만이 국내 안정과 경제 발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런 믿음에 따라 그들은 비밀주의에 기초한 압제적인 통치와 소통 방식을 채택했으며, 그런 관행에 길들여졌다.
만약 중국이 이런 관행을 세계무대에 적용한다면 곧바로 외국인들의 거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투자를 환영하는 나라도 그 측면에선 예외가 아닐 것이다. 중국 공산당도 그런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국내에서 강경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대외적으로만 권위주의를 떨쳐버리고 편안하게 대화할 순 없다. 외부 세계와 긴밀히 교류하는 중국인이 너무 많아져 더는 이중 잣대가 용납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곤경에 처했다.
무엇보다 중국의 통치 이론은 글로벌 리더십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시 주석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길 바라지만 그 세계무대엔 이미 회의주의, 냉소주의, 불손, 논리적 반박, 요란한 논쟁, 터무니없다는 비난과 비판이 무성하다. 중국의 공공 담론에선 전부 금지된 행위다. 그런 현실을 시 주석이라고 바꿔놓을 수 있겠는가?
싱가포르 외무부 자문역 카우시칸은 “개방된 시스템의 리더는 자신도 개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유화가 좀 더 진행되면 공산당의 지배 체제가 위태로워진다고 중국 공산당은 우려가 크다.” 이런 조건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계속 키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제적으로 번창할 순 있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이 행사했던 방식의 리더십은 중국으로선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시진핑 사상’의 승리주의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스템을 이끌 중국의 능력은 한참 떨어진다. 그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1945년 이래 상대적으로 어느 때보다 힘이 빠진 상태지만 아직도 중국이 부러워하는 패를 들고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본능은 세계 문제에서 발을 빼는 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경쟁에서 이기고, 존경 받고 싶어하는 그의 욕구는 글로벌 리더십 쟁취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정책을 촉진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위대함’이나 자신의 개인적인 카리스마가 발휘되는 지리적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확신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여러 가지 다른 ‘팩트’도 그에게 미국의 글로벌 이익 추구를 강요할 것이다. 나는 지난 1월 중국 문제 전문 매체 ‘차이나파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조만간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재균형(Rebalance to Asia) 정책의 전략적 근거를 반드시 재발견할 것이다. 그 근거를 더 빨리 발견할수록 낫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기간에 여러차례 표명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구상은 아직 설익고 정의도 분명치 않으며 미온적인 언급이긴 하지만 아시아 재균형 전략으로 돌아서는 과정이 벌써 시작됐다는 조짐일지 모른다.
미국과 중국은 이제 쌍방간의 쟁점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정립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세계 질서에 영향을 미치려고 경쟁하는 상황으로 돌입했다. 이 경쟁의 무대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든 그 국가는 국제관계의 사소한 좌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통 큰 자세를 가질 수 있다. 반면 패배하는 나라는 설사 자국의 국제적인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축하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중국은 공산주의 이념에서 비롯되는 불리함을 안고 있지만 무엇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지, 자국의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전략을 채택해야 할지 확실히 아는 상황에서 경기장에 들어섰다. 미국은 중국보다 유리한 여건을 갖췄다. 아울러 두 나라의 시합을 구경하는 국가 중 미국을 응원하는 쪽이 훨씬 많을 듯하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로커룸의 벤치에 혼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무심하게 TV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시합이 시작됐으며 상대가 점수를 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의 귀에는 들썩이는 관중석의 응원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하다.
미국이 얼마나 오래 이런 상황을 지속할 수 있을까?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위축돼 세계무대에서 내몰릴 수 있는데도 말이다.
- 로버터 데일리
※ [필자는 우드로 윌슨 센터 산하 키신저 미중연구소 소장이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차이나파일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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