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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하면서도 절박한 ‘전쟁의 얼굴’

무시무시하면서도 절박한 ‘전쟁의 얼굴’

우크라이나 예술가들, 탄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형 초상화 만들어 내전의 배후 비판해
‘전쟁의 얼굴’을 비추는 조명이 변하면 독재자가 노려보는 표정이 전쟁의 공포에 질린 인간의 모습으로 바뀐다. / 사진:DARIA MARCHENKO AND DANIEL GREEN
미국은 거의 2년 동안 러시아의 권위주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모호한’ 위협에 괴롭힘당했다(미국 정보기관은 러시아가 2016년 대선에 개입했다고 판단하며, 그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의 유착 관계를 의심하는 ‘러시아 스캔들’의 특별검사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동유럽에선 푸틴 대통령이 그보다 훨씬 오래, 치명적으로 영향력을 휘둘렀다. 특히 옛 소련 국가였던 우크라이나가 그 위협을 가장 크게 느꼈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권교체 혁명을 통해 크렘린의 지지를 받았던 빅토로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돼 러시아로 망명한 직후였던 2014년 3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합병했다(현재 양국 모두 이곳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합병 후 러시아군이 남부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을 침공했고, 크렘린의 지원을 받는 해커들이 사이버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정부와 공공 시설의 붕괴를 꾀했다.

당연하게도 전 세계의 정치인과 관측통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이어진 우크라이나 동부의 내전, 그리고 그 두 가지 전부에 책임이 있는 푸틴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서방의 러시아 제재도 시작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렬한 반응은 우크라이나 예술가이자 운동가인 다리아 마르첸코와 다니엘 그린의 대형 작품들로 나타났다.

지난 2월 4일까지 뉴욕의 미국 우크라이나연구소에서 열린 전시회 ‘전쟁의 5원소(Five Elements of War)’는 두 예술가의 조국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의 시련을 반영하는 동시에 좀 더 넓게는 전쟁과 독재, 자유에 관한 논평을 효과적으로 표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전시회의 중심 작품은 ‘전쟁의 얼굴(The Face of War)’이었다. 2015년 완성된 240x170㎝ 크기의 대형 푸틴 초상화로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수거한 탄피 약 5000개로 제작됐다.

미국 우크라이나연구소의 월터 호이디시 미술관장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벌어지는 내전을 두고 “거기서 지금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 대다수는 무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시회는 우크라이나 내전, 또 그에 따른 고통과 고난을 결코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작품 제작에 사용된 탄피는 푸틴 대통령의 해외 영향력 강화에 무력이 사용된 것을 신랄하게 상징하기 때문이다. 총탄이 초래한 알려지지 않은 수의 사상자들을 상기시키는 그 대형 초상화는 “우크라이나 내전의 배후에서 조종하는 인물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고 호이디시 관장이 말했다.

실제로 이 작품은 푸틴 대통령의 여러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작품이 뉴욕에서 대중에 선보이기 전 날 두 예술가는 미국 우크라이나연구소의 방 두 개에 그 거대한 작품을 설치했다(그전에 이 작품은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M17 갤러리,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하원 회관인 레이번 하우스, 시카고의 우크라이나 현대미술연구소에서 전시됐다). 마르첸코는 특히 푸틴 대통령의 달라지는 표정을 보여주기 위한 회전 조명 설치에 만전을 기했다. 작품에서 푸틴 대통령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독재자가 노려보는 무시무시한 표정이 전쟁의 공포에 질린 인간의 처참한 모습으로 바뀌었다.마르첸코는 “우린 독재자의 얼굴을 그려내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푸틴 때문에 우린 너무나 많은 친구를 잃었다. 그가 전쟁을 어떻게 묘사하며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더라도 전쟁이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뉴욕 미국 우크라이나연구소에 전시된 작품 ‘전쟁의 속살’ 곁에 선 작가 다리아 마르첸코. / 사진:DARIA MARCHENKO AND DANIEL GREEN
‘전쟁의 얼굴’이 이 전시회의 백미지만 다른 혼합 미디어 작품 4점(전부 2016년 제작됐으며 푸틴 초상화보다 더 큰 것도 있다)도 독재와 민주주의, 체제 선전에 대한 맹렬한 비판으로 주의를 끌었다. 예를 들어 ‘전쟁의 속살(The Flesh of War)’은 캔버스 두 폭을 나란히 붙인 작품으로 탄피로 제작된 세계 지도 사이에 여성의 상반신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거기엔 ‘전쟁에서 가정의 보호자로서, 폭력의 피해자로서, 가족을 거느린 난민으로서 여성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한다는 것을 냉엄하게 상기시킨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다른 작품 ‘명예(Honor)’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내전 개입에 대한 국제사회의 무신경한 반응을 비판한다. 마르첸코는 “전 세계가 러시아의 침공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거의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전쟁은 민주주의와 법치, 협정의 효력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이 작품은 거대한 눈의 형태를 띤다. 눈의 흰자위는 1994년 러시아·미국·영국이 체결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고 영토보존을 존중 받는다는 내용이다)의 낡은 문서 종이로 구성됐다. 눈의 홍채와 눈동자는 그 양해각서를 비롯해 여러 관련 협정들에 서명한 국가들의 군복 견장과 탄피 등으로 제작됐다. 멀리서 보면 밝은 현관에 서 있는 사람의 실루엣과 같다.

사실 우크라이나로선 절박한 상황이다. 지금 우리 세계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상당히 많지만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에 지른 불은 지금도 계속된다. 작품에 탄피를 사용하는 것이 도발적이긴 하지만 선정적인 술책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탄피는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전쟁의 산물로 죽음과 부상, 위태로움을 상징한다. 그 수천 발의 총탄 하나하나가 초래했을 피해를 상상하면 참담해진다. 마치 전투 현장에 있는 듯이 전쟁의 유혈 폭력이 피부로 느껴진다.

마르첸코의 동료로 같이 작품을 만든 그린은 “탄피를 만지면 바로 마음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예술은 아주 효과적인 무기다. 총탄이 전쟁의 무기라면 예술은 평화의 무기다. 예술가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싸운다.”

- 스태브 지브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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