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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수제 화장품 브랜드 ‘러쉬’의 일본 공장을 가다] 10분 거리 농장의 싱싱한 채소로 화장품 제조

[글로벌 수제 화장품 브랜드 ‘러쉬’의 일본 공장을 가다] 10분 거리 농장의 싱싱한 채소로 화장품 제조

영국서 일본으로 수입처 변경 … 신선도 높이고 가격 낮춰 일석이조 효과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러쉬(Lush)의 일본 가나가와현 제조 공장에서 직원들이 갓 수확한 과채를 빻은 후 반죽해 화장품을 만들고 있다. 친환경 제품을 강조하는 러쉬는 공장을 ‘키친(부엌)’으로, 직원들을 ‘셰프(요리사)’로 호칭한다. / 사진:러쉬코리아 제공
지난 1월 24일 일본 도쿄 시내에서 열차로 약 50분 거리의 혼아쓰키역으로부터 버스로 다시 40분가량 달려 도착한 가나가와(神奈川)현의 한 농장. 시내에선 보이지 않던 산이 주위를 에워싼 가운데 ‘타무손’이라는 이름의 이 농장에선 한겨울 맹추위를 뚫고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밭을 수북이 뒤덮은 하얀 눈을 헤집어보니 뭔가가 나타났다. 쌀국수의 향을 낼 때 많이 쓰이는 고수다. 뜯어내 한입 베어 물자 자연에서 자라나 갓 수확된 채소의 싱싱함이 혀끝에 전해졌다.

이날 맛본 고수는 글로벌 핸드메이드 화장품 브랜드 ‘러쉬(Lush)’의 풋마스크(발의 각질을 관리해주는 마스크) ‘볼케이노’ 등 제품에 쓰이는 원재료다. 3만3000㎡(약 1만평) 규모 농장을 관리하는 타무라 고로 농장주는 “자연농법으로 사람 건강에 좋은 친환경 채소만 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연농법은 일반 유기농법과도 다르다. 유기농법에선 화학 비료·농약을 쓰지 않지만 유기 비료·농약은 쓴다. 자연농법에선 그마저도 쓰지 않는다. 잡초가 채소의 생장을 방해해도, 병충해가 발생해도 그대로 둔다. 면역력이 길러진다고 봐서다. 폭설이 와도 일부러 안 치운다. 눈이 밭을 덮어 더 큰 추위로부터 보호해준다고 여긴다. 또 하나의 밭에서 가급적 여러 채소를 재배한다. 예컨대 바질과 토마토는 사이가 좋지 않은 채소인데, 같이 키우면 경쟁적으로 잘 자란다는 설명이다.
 유가 비료·농약도 쓰지 않는 자연농법 원재료
러쉬의 천연 화장품은 알록달록 화려한 색감이 특징이다. 색을 낼 땐 유럽연합(EU) 기준과 부합하는 식용 색소만 쓴다. / 사진:러쉬코리아 제공
고수 외에도 이렇게 자연농법으로 수확한 파슬리·민트·생강·마늘·감자 등의 채소가 이곳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러쉬 일본 공장으로 운반되고 있었다. 일본 전역에서 타무손 같은 다양한 농장에서 싱싱한 과채를 공급받는다. 러쉬재팬은 이를 갖고 친환경 수제(手製) 화장품을 만든다. 이날 가본 공장의 이름부터 독특했다. 공장이라는 뜻의 영단어 ‘팩토리(factory)’ 대신 부엌을 뜻하는 ‘키친(kitchen)’이 붙어 ‘러쉬 키친’이다. 이곳 직원들은 서로를 ‘셰프(chef·요리사)’라고 부른다. 요리사처럼 머리엔 두건을, 양손엔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일한다. 위생 관념은 이미 웬만한 요리사 이상이다. 얼굴엔 마스크, 두 발엔 실내화까지 착용했다. 이들이 잘게 빻은 과채를 ‘레시피(조리법)’ 대로 조합해 반죽하자 곧 러쉬 특유의 형형색색 화장품이 하나둘씩 완성됐다. 색을 낼 땐 유럽연합(EU) 기준과 부합하는 식용 색소만 쓴다.

스즈키 루리코 러쉬재팬 구매팀 매니저는 “최대한 신선한 상태의 화장품을 공급하는 게 소비자 안전과 직결된다는 신념 아래, 가장 가까운 농장에서 구입한 원재료를 운송하고 가장 가까운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수입하는 ‘로컬 바잉(local buying)’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며 “빠를 땐 그날 수확한 과채로 만든 제품이 당일 출고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과일 같은 원재료는 공급 받는 시기에 따라 수분 함유량이 달라진다. 사람이 눈으로 일일이 확인하면서 화장품을 만들 때 원재료를 소량 더하거나 빼는 과정을 거쳐야 품질이 일정해진다. 러쉬가 핸드메이드 원칙을 고집하는 이유다.

일본 러쉬 키친의 외관. 러쉬는 ‘신선한 수제 화장품(fresh handmade cosmetics)’이라는 표어를 쓰고 있다. / 사진:러쉬코리아 제공
운송 과정에서도 몇 가지 원칙을 고수한다. 예컨대 토마토는 도·소매점에 운송되기 직전 다소 덜 익어 파란 빛깔이 날 때 수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운송 도중 더 익어서 맛이 좋게끔 만들기 위해서다. 러쉬는 토마토가 빨갛게 익었을 때만 수확하도록 하고 있다. 역시 원재료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서다. 과일의 경우 파인애플은 아랫 부분의 영양가가 높은 특성이 있다. 러쉬는 파인애플을 운송할 때 차에 거꾸로 실어서 운송 도중 파인애플 하단의 영양가가 고루 분포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러쉬는 이 같은 친환경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1995년 영국에서 설립됐다. 화학 성분을 배제한 화장품일수록 인체에 무해하며 효과적이라는 것이 두피 전문가였던 마크 콘스탄틴 등 창업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러쉬는 이런 경영철학에 맞게 최소의 포장으로 환경 쓰레기를 줄이고, 동물 실험을 금지하는 일에도 전념하고 있다. 스에쓰구 다이스케 러쉬재팬 어스케어팀 매니저는 “일본 러쉬 키친에서 나오는 쓰레기 전량을 재활용하고 있다”며 “화장품을 만들고 남은 계란 노른자로 임직원용 식당에서 계란찜을 만들거나, 담배꽁초는 번거로워도 전부 말려서 버리는 식”이라고 했다.
 세계 54개국에서 1000여개 매장
일본 러쉬 키친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타무손’ 농장의 타무라 고로 농장주. 그는 “비료와 농약을 아예 쓰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친환경 채소를 재배한다”고 했다. / 사진:러쉬코리아 제공
이런 러쉬는 세계적인 친환경·웰빙(well-being) 열풍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승승장구했다. 2016년 글로벌 매출이 전년 대비 26% 증가한 7억2300만 파운드(약 1조834억원)로 설립 20여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재 영국과 미국 등 세계 54개국에서 10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제조 공장은 영국·독일·크로아티아·호주·캐나다·브라질·일본의 7개국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엔 2002년 11월 러쉬코리아 법인을 세우면서 진출했다.

한국 소비자들이 주목해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러쉬코리아는 2월 26일부로 한국 법인의 수입처를 기존 영국에서 일본으로 변경했다(20여개 제품은 계속 국내에서 제조). 일본산 제품은 3월 1일에 문을 여는 서울 강남역 매장을 제외한 나머지 매장에서 2~5월 사이 영국산 제품과 함께 판매될 예정이다. 이후로는 일본산 제품 위주로 판매한다(에센셜오일 등 일부 핵심 원료는 계속 영국에서 수입). 러쉬코리아 관계자는 “로컬 바잉에 대한 본사의 글로벌 가이드에 따라, 마찬가지로 보다 신선한 화장품을 한국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껏 영국에서 제품을 들여오면서는 통관까지 7~8주가량 걸렸지만, 일본에서 들여오면 이 기간이 2주로 최대 4분의 1 수준으로 단축된다. 이는 일반 화학 화장품보다 유통기한이 매우 짧은 러쉬 제품의 특성상 훨씬 신선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방사능 검사 엄수… 안전성 확보 이상 없어”
완성된 러쉬 화장품. / 사진:러쉬코리아 제공
앞서 러쉬코리아는 한국 진출 이후로 줄곧 일본 공장에서 만든 화장품을 수입했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본사가 있는 영국으로 수입처를 변경한 바 있다. 안전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7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제품 신선도를 위해 일본으로 수입처를 재변경한 이유는 안전성 우려를 완전히 떨쳐냈다고 판단해서다. 이미 홍콩·태국·필리핀·싱가포르 등지에선 일본산 제품을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러쉬코리아 관계자는 “원재료와 완제품의 안전성 검사 결과를 철저하게 확인한 다음 일본으로 수입처를 변경했다”고 덧붙였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수출 식품 등의 방사성 물질 검사를 실시하도록 지정한 고토비켄의학연구소라는 민간 검사 기관에 러쉬재팬 측이 원재료·완제품 검사를 의뢰, 2개월에 한 번씩 수십 종류를 무작위로 검사해 이상이 없음을 파악한 후 러쉬코리아로 보내는 방식이다. 이 연구소는 국제시험기관인정기구협력체(ILAC)가 인증한 북미 기관 페리존슨인증(PJLA)으로부터 방사능 검사에 대한 인증을 받았다. 가나가와현의 일본 러쉬 키친은 후쿠시마로부터 약 330㎞ 떨어진 곳에 있다. 어림잡아 서울에서 포항까지 거리다.

한국 소비자들은 신선도 외에 다른 이점도 누리게 됐다. 러쉬코리아가 과반수의 제품 가격을 인하해서다. 총 253개 제품(영국산 제품과의 가격 차이가 적은 기프트·향수·액세서리 등 제외) 중 53%인 133개의 제품 가격이 내려갔다.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입욕제 ‘인터갈락틱(1만8000원→1만5000원)’ ‘써니사이드(2만1000원→1만8000)’ 외에도 샴푸바(‘뉴’, 1만8500원→1만7000원)·샤워젤(‘더 올리브 브랜치 500g’, 4만9800원→4만8000)·마스크팩(‘카타스트로피 코스메틱’, 2만8000원→2만5000원)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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