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응원가 논란 재점화] 저작인격권 침해냐 관중의 권익 침해냐
[프로야구 응원가 논란 재점화] 저작인격권 침해냐 관중의 권익 침해냐
대중가요 임의로 편곡·개사해 법 위반 소지… “KBO 차원 문제 해결” 목소리도 국내 프로야구단 두산베어스를 응원하는 직장인 이진주(25)씨는 모처럼 경기 관람을 위해 지난해 9월 서울 잠실야구장에 갔다가 당황했다. 가장 좋아하는 내야수 오재일이 타석에 있을 때 나오는 응원가가 바뀌어서다. 기존 응원가를 따라서 부를 기대감에 들떴던 이씨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새 응원가를 익혀야 했다.
3월 24일 개막한 2018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새 프로야구 시즌을 맞아 지난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응원가 논란이 다시 점화됐다. 국내 프로야구엔 구단마다 홈경기 때 소속 선수들을 위한 응원가를 틀어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유도하는 응원 문화가 있다. 이때 나오는 응원가의 대부분은 국내외 유명 대중가요 후렴구를 선수 응원을 위해 임의로 편곡하거나 개사한 곡이었다. 그런데 오랜 기간 당연시됐던 이런 응원가 사용에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국내 일부 저작권자들이 각 구단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일부 구단에 소송 제기 가능성을 뜻하는 ‘내용증명’까지 보내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10개 구단 마케팅팀장들이 지난 1월 문제 해결을 논의하고자 한자리에 모였지만 뾰족한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이러는 사이 새 시즌을 맞은 구단들은 일단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는 데 나서고 있다. 실제 NC다이노스는 지난 3월 13일 공식 홈페이지에 새 응원가를 공개하면서 주축 선수 대부분의 응원가가 교체됐음을 알렸다. 클론의 ‘쿵따리샤바라’, 김건모의 ‘마이 선(My son)’ 같은 원곡 후렴구를 변경해 쓰던 모창민과 나성범 등의 선수 응원가가 대거 포함됐다. 지난해 일부 응원가를 교체했던 다른 구단들도 추가 교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KT위즈 관계자는 “아직 계속 사용하고 있는 응원가도 있긴 하지만 법적인 분쟁 가능성에 대해선 10개 구단 모두 입장이 똑같다”며 “법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운 응원가만 사용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응원가 논란은 ‘저작권’의 침해가 아닌, 이보다 하위 개념인 ‘저작인격권’의 침해가 핵심 쟁점이다. 저작권법 10조 1항에 따르면 저작권은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나뉜다. 저작재산권은 저작권자가 저작물에 대해 갖는 재산적 권리인 반면, 저작인격권은 저작권자가 저작물에 대해 갖는 인격·정신적 권리다. 쉽게 말해 구단들이 저작재산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저작권 사용료를 저작권협회나 저작권자 개인에게 정상 지불했다 하더라도, 저작인격권 침해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법적 분쟁 가능성이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작인격권 계약은 보통 2~3년 단위로 하게 되며, 기간이 지났는데 응원가를 유지하려면 재계약해야 한다. 연간 수천만원의 저작권 사용료를 KBO의 마케팅부문 자회사 KBOP를 통해 각각 지불해왔던 10개 구단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다.
저작인격권에는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이라는 세 개념이 포함돼 있다. 프로야구 응원가는 그중 동일성유지권의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다. 동일성유지권은 저작물의 내용·형식과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다. 저작물이 제3자에 의한 무단 변경·삭제로 손상되지 않도록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저작권자에게 보장돼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프로야구 응원가의 경우 원곡을 편곡하고 개사하는 과정에서 원작자의 창작 의도와 무관하게 전혀 다른 형태로 곡을 바꿔놓기 쉬우므로, 저작물의 동일성 유지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작권자가 슬픈 감성으로 지은 노래가 흥겨운 템포의 응원가로 바뀌는 과정에서 저작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 침해 소지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구단들은 대체로 저작인격권에 대한 추가 보상을 감수하고서라도 팬들을 위해 기존 응원가를 써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두산베어스 마케팅 담당자는 “지난해부터 원작자들과 지속적으로 협상한 끝에 응원가 사용 동의를 받았고,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응원가를) 다른 동의한 원작자의 노래나 순수 창작곡으로 교체해 사용 중”이라며 “원작자마다 성향이 달라서 ‘억만금을 준대도 내 곡을 고쳐 쓰는 게 싫다’며 거부하는 경우는 합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구단은 현재까지 이런 이유로 기존 응원가를 50% 이상 교체했다. 무엇보다 응원가 교체가 홈팬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점이 구단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익숙한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데서 경기장을 찾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팬들이 많은 상황에서, 마케팅 측면에선 그만큼 악재일 수밖에 없어서다. 넥센히어로즈 같은 구단은 지난해 기존 응원가 27곡 중 26곡을 교체하면서 빠르게 위험 부담 최소화에 나섰다가 팬들의 거부 운동이라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NC다이노스도 새 응원가 공개 직후 항의 전화가 쏟아져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구단을 응원하는 야구팬 김모(35) 씨는 “구단 측이 응원가를 사소하게 여겨 투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실망스럽다”며 “프로스포츠는 팬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데 우리 같은 소비자 권익 보호에도 더 많이 신경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단들이 느끼는 또 한 가지 애로점은 구단 차원에서 저작권자나 그 소속 회사와 협상할 때 마땅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구단 마케팅 담당자는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이 협상하기 나름이라 지불 액수가 다 다르다. 협상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할 때 지나치게 높은 보상액을 요구하면 들어주기 어렵다”며 “또한 국내에서 저작인격권 침해 여부에 대한 판례 자체가 많지 않아 전문가들도 누구는 ‘문제없다’는데 누구는 ‘문제 소지가 있다’고 하는 등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해당 선수가 이적하거나 은퇴하는 경우 헛된 투자가 될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점도 구단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이와 같은 각종 어려움 때문에 일부 구단과 팬들은 리그 운영 주체인 KBO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되 소비자인 팬들의 권익도 지켜주기 위해선, KBO가 문제 해결을 각 구단의 자율에 맡기기 보다 주체적으로 추진해야만 효율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KBO 측은 “구단들이 겪고 있는 애로점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법적인 자문을 받아 공유하는 등 적극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도 “응원가의 사용 주체는 어디까지나 구단들인 만큼, 응원가는 KBO가 아닌 각 구단이 합의나 교체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변호사 출신(사법연수원 29기)인 김선웅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은 “구단들이 원작자와 협상하는 데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이므로 KBO가 대표로 협상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이해당사자들을 만족시키기엔 어려울 것”이라며 “저작권자들이 시장 상황과 부합하는 현실적인 (금전적) 기준을 구단 측에 제시하는 것도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저작권자들은 그간 관행적으로 지속됐던, 저작인격권 보호를 도외시한 응원 문화가 차제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재형성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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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개막한 2018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새 프로야구 시즌을 맞아 지난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응원가 논란이 다시 점화됐다. 국내 프로야구엔 구단마다 홈경기 때 소속 선수들을 위한 응원가를 틀어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유도하는 응원 문화가 있다. 이때 나오는 응원가의 대부분은 국내외 유명 대중가요 후렴구를 선수 응원을 위해 임의로 편곡하거나 개사한 곡이었다. 그런데 오랜 기간 당연시됐던 이런 응원가 사용에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국내 일부 저작권자들이 각 구단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일부 구단에 소송 제기 가능성을 뜻하는 ‘내용증명’까지 보내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10개 구단 마케팅팀장들이 지난 1월 문제 해결을 논의하고자 한자리에 모였지만 뾰족한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10개 구단, 문제 해결에 난항
이 같은 응원가 논란은 ‘저작권’의 침해가 아닌, 이보다 하위 개념인 ‘저작인격권’의 침해가 핵심 쟁점이다. 저작권법 10조 1항에 따르면 저작권은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나뉜다. 저작재산권은 저작권자가 저작물에 대해 갖는 재산적 권리인 반면, 저작인격권은 저작권자가 저작물에 대해 갖는 인격·정신적 권리다. 쉽게 말해 구단들이 저작재산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저작권 사용료를 저작권협회나 저작권자 개인에게 정상 지불했다 하더라도, 저작인격권 침해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법적 분쟁 가능성이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작인격권 계약은 보통 2~3년 단위로 하게 되며, 기간이 지났는데 응원가를 유지하려면 재계약해야 한다. 연간 수천만원의 저작권 사용료를 KBO의 마케팅부문 자회사 KBOP를 통해 각각 지불해왔던 10개 구단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다.
저작인격권에는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이라는 세 개념이 포함돼 있다. 프로야구 응원가는 그중 동일성유지권의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다. 동일성유지권은 저작물의 내용·형식과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다. 저작물이 제3자에 의한 무단 변경·삭제로 손상되지 않도록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저작권자에게 보장돼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프로야구 응원가의 경우 원곡을 편곡하고 개사하는 과정에서 원작자의 창작 의도와 무관하게 전혀 다른 형태로 곡을 바꿔놓기 쉬우므로, 저작물의 동일성 유지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작권자가 슬픈 감성으로 지은 노래가 흥겨운 템포의 응원가로 바뀌는 과정에서 저작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 침해 소지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구단들은 대체로 저작인격권에 대한 추가 보상을 감수하고서라도 팬들을 위해 기존 응원가를 써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두산베어스 마케팅 담당자는 “지난해부터 원작자들과 지속적으로 협상한 끝에 응원가 사용 동의를 받았고,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응원가를) 다른 동의한 원작자의 노래나 순수 창작곡으로 교체해 사용 중”이라며 “원작자마다 성향이 달라서 ‘억만금을 준대도 내 곡을 고쳐 쓰는 게 싫다’며 거부하는 경우는 합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구단은 현재까지 이런 이유로 기존 응원가를 50% 이상 교체했다.
협상 가이드라인 없고 판례도 적어
이런 상황에서 구단들이 느끼는 또 한 가지 애로점은 구단 차원에서 저작권자나 그 소속 회사와 협상할 때 마땅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구단 마케팅 담당자는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이 협상하기 나름이라 지불 액수가 다 다르다. 협상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할 때 지나치게 높은 보상액을 요구하면 들어주기 어렵다”며 “또한 국내에서 저작인격권 침해 여부에 대한 판례 자체가 많지 않아 전문가들도 누구는 ‘문제없다’는데 누구는 ‘문제 소지가 있다’고 하는 등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해당 선수가 이적하거나 은퇴하는 경우 헛된 투자가 될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점도 구단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이와 같은 각종 어려움 때문에 일부 구단과 팬들은 리그 운영 주체인 KBO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되 소비자인 팬들의 권익도 지켜주기 위해선, KBO가 문제 해결을 각 구단의 자율에 맡기기 보다 주체적으로 추진해야만 효율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KBO 측은 “구단들이 겪고 있는 애로점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법적인 자문을 받아 공유하는 등 적극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도 “응원가의 사용 주체는 어디까지나 구단들인 만큼, 응원가는 KBO가 아닌 각 구단이 합의나 교체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변호사 출신(사법연수원 29기)인 김선웅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은 “구단들이 원작자와 협상하는 데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이므로 KBO가 대표로 협상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이해당사자들을 만족시키기엔 어려울 것”이라며 “저작권자들이 시장 상황과 부합하는 현실적인 (금전적) 기준을 구단 측에 제시하는 것도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저작권자들은 그간 관행적으로 지속됐던, 저작인격권 보호를 도외시한 응원 문화가 차제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재형성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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