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으로 다시 돌아온 4인] 직장으로 복귀한 ‘육아맘’ 그들의 비결은
[워킹맘으로 다시 돌아온 4인] 직장으로 복귀한 ‘육아맘’ 그들의 비결은
일상에 안주하지 않고 경쟁력 키워 … 남다른 각오와 가족 뒷받침이 힘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경력을 잘 쌓아야 한다. 특히 경력이 끊기지 않게 관리하며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몇 년 간 회사를 떠나 있다 돌아와 보면 환경이 변해 있는 경우가 많다. 기술과 인맥이 사라졌고 몸도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 하물며 아이를 출산하고 전업주부 생활을 하다 돌아온 여성에게 직장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꿋꿋이 직장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경력단절녀도 적지 않다. 대기업, 중소기업, 외국계, 금융 분야에서 경력 단절의 고리를 끊는 데 성공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며 기회를 얻은 이들을 소개한다. “출근은 10시, 퇴근은 4시쯤? 월급은 한 100만원 정도?” 8년 만에 직장을 구하러 나선 전업주부 백미연(35)씨가 직업 상담사에게 제시한 취업 조건이다. 이 정도면 일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담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자격증이나 강조할 만한 경력이 있으신가요?” 전혀 없다는 답을 들은 상담사의 얼굴을 찌푸렸다. “대한민국에 그런 분 채용하는 회사는 정말 찾기 어려워요.”
백씨의 첫 직장은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었다. 1년 정도 다니다 유럽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2년 가까이 일하다 결혼하며 퇴사했다. 2006년 첫째, 2008년 둘째를 낳았다.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지내던 어느 날이다.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산책을 나간 백씨의 눈에 수다를 떨며 지나가는 여성 직장인들이 들어 왔다. 그는 “집에만 있는 자신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며 “젊은 나이에 아무런 인생 목표 없이 안주하기 싫어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단녀 8년차 백미연씨의 직장 구하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일자리 찾기는 쉽지 않았다.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았다. 고용노동부 산하 취업 지원 기관을 찾아 갔다. 취업 패키지 교육을 받으며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다. 워드와 엑셀도 익혔다. 주위에 빈자리가 생기면 알려달라고 수소문도 했다. 기약없는 구직 활동을 하던 중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는 데 빈자리가 생겼으니 지원해보라는 이야기였어요. 무작정 찾아가 면접을 봤는데 덜컥 합격했어요.”
업무는 고객 상담이었다. 티엘엑스는 모바일로 헬스장 사용 쿠폰을 제공하는 회사다. 백씨는 전화와 e메일로 쏟아지는 고객 불만을 듣고 적합한 대응을 해야 했다. 입사 첫날 ‘멘붕’이 왔다. 컴퓨터 사용조차 익숙하지 않은 주부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하는 고객의 불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3일 만에 남편을 붙잡고 말했다.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고. “신랑은 ‘상담사가 상담도 못해 놓고, 왜 고객이 나쁘다고 하소연하나. 3일 만에 포기하면 세상 어디에서도 일할 곳은 없다’며 오히려 저를 나무라더라고요. 좋은 자극이었어요. ‘맞아, 내가 왜 못해’라는 생각을 하며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다져 먹은 백씨는 엑셀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고객 대응 매뉴얼도 직접 손으로 써가며 만들었고, 1시간 진행하는 회사 교육 내용은 녹음해서 새벽 1시까지 공부하며 익혔다. 두 달이 지나자 일이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나자 백씨는 우수 사원으로 뽑혔다. 회사 관계자는 “경력은 부족했지만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높게 평가했다”며 “고객 상담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채용했는데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좋은 선택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백씨를 만났던 직업 상담사도 다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요즘 구직자를 만날 때 백씨의 무모한 취업 도전기를 소개하며 “말하는 대로 사람이 된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 백씨도 노력을 계속하는 중이다. 최근 근로자 내일 배움 카드를 신청했고, 고객만족 관리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다. “나중에 마흔살이 됐을 때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고 싶어요. 계속 열심히 하겠습니다.” 소니코리아의 이도영(46) 부장은 2013년 3월 소니에 경력직으로 채용됐다. 아이 교육과 재충전을 위해 싱가포르에서 2년을 보내고 귀국한 직후다. 2012년 12월 귀국해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으니 3개월 만이었다. 이 부장은 헤드헌터를 활용했다. 여러 회사와 접촉했고 소니코리아와 면접을 본 다음 마음을 먹었다.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세상에서 원하는 회사를 골라 들어간 ‘능력녀’다. 이 부장은 “쉬더라도 무엇을 할지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가 어떻게 변하고, 어디에 누가 있는지 계속 연락하며 내가 일할 곳이 어떤 곳인지 알면서 움직이라는 것이다. “회사에 대해 공부를 따로 했습니다. 언론 기사에 나온 회사와 실제 회사는 다르거든요. 일본 회사는 보수적 문화가 강하지만, 소니는 글로벌 기업이라 분위기가 자유롭고 수평적이란 특징이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며 이 점을 느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 저도 사람을 봅니다.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부장은 홍보 전문가다. KPR이란 홍보 기업에 2001년 입사해 5년 간 경력을 쌓았다. 2006년엔 회사를 옮긴다. KPR에서 금요일 저녁까지 일하고 월요일에 바이엘로 출근했다. 바이엘에서 혼자 일하며 조직을 키워 홍보팀을 네 명으로 늘렸다. 그렇게 10년을 일한 이 부장은 한숨을 돌리고 싶었다. 2011년 1월 퇴사하고 아이들과 싱가포르로 떠났다. 이 부장은 직장생활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남편의 도움과 직업 전문성을 꼽았다. “신랑이 굉장히 가정적이라, 저보다 아이들을 더 잘 챙겼습니다. 제 직장생활도 적극 지원해 줬고요. 회사를 다니며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라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 부장이 경단녀임에도 회사가 좋게 본 이유가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관되게 경력을 유지했다. 그렇게 10년 간 홍보 경력을 쌓았다. 사회 초년병 시절은 힘들었다. 이직을 알아보며 쓴 이력서도 여럿이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 먹었다. 직장을 옮기기보다는 본인이 잘하는 특별한 분야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이 부장은 “업계 후배들에게도 이직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다양성이 아니라 업무 일관성이란 점을 강조해왔다”고 말했다. 직장을 옮기다 전문성을 못 키운 경우가 많아서다. 그러면 나중에 어렵다. 최소한 본인이 하는 업종에서 4~5년은 일하며 전문성을 키워야 나중에 유리해진다. “한번 굴러 봐야 압니다. 경험을 쌓아야 해요. A부터 Z까지 해봐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작은 아이가 열이 나서 밤에 잠을 못 잤어요. 다행히 어머님이 아침에 병원에 아이를 데려가줬어요.” 우리은행 광진구청점에서 일하는 김유경(37) 주임은 두 아이의 엄마다. 직장생활하며 가장 어려운 일을 육아라고 생각한다. 아침 먹여서 학교 보낸 다음 출근하는 일은 전혀 힘들지 않다. 하지만 아이에게 급한 문제가 생기면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가 밀려 온다. 김 주임은 시부모가 아이들 돌봐준 덕에 다시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우리은행은 김 주임의 두 번째 직장이다. 대학 졸업 후 강남의 한 저축은행에서 일했다. 첫 아이를 낳으며 퇴사해 5년 간 전업주부로 지냈다. 2013년 1월 경단녀라는 생소한 단어가 인터넷에 보였다. 호기심에 기사를 읽었고, 결혼·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을 일컫는 말임을 알았다. 조금 더 검색해 보니 흥미로운 소식도 있었다. 우리은행에서 경단녀를 채용한다는 기사였다. “업무 시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12시부터 4시30분까지였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지원했습니다. 다시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은 먹었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웠다. 먼저 가족의 동의가 필요했다. 이전에도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 포기했었다.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자 의외의 원군이 나타났다. 시부모님이다. 아이를 돌봐주며 부담을 덜어줬다. “어머님이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며 도와줬어요. 큰 힘을 얻고 은행 면접장으로 향했습니다.”
면접관이 질문을 던졌다. “왜 다시 은행 일을 하려고 하시나요?” 김 주임은 “지금도 9시면 셔터 올라갈 것 같고 4시면 내릴 것 같다”고 답했다. 은행 업무 시절이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면접관은 웃으며 “제가 보기에도 일을 즐겨 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좋은 점수를 받았고 그리던 은행 업무를 다시 시작한다. 우리은행 3년차 행원이다. 김 주임은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도 꾸준히 자기계발을 해왔다. 다양한 전문 분야 자격증 공부를 했다. 언젠가 다시 일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서다. 지금도 금융상품을 공부하며 실력을 쌓고 있다. 특히 펀드 분야에 관심이 많다. “큰 아이도 6살이 됐는데, 엄마 일하는 것을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친구들에게 엄마가 은행에 있다고 자랑도 합니다. 저는 운이 좋은 경우라 생각합니다. 위(시부모) 아래(자녀)에서 모두 지원해주는 경우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타벅스 송도점 직원들은 김진미(35) 부점장을 ‘W’라고 부른다. W는 워킹맘의 첫 글자다. 김 부점장은 지난해 7월 다시 입사한 주부 사원이다. 2004년 스타벅스에 입사해 바리스타로 지내다 2013년 퇴사했다. 스타벅스 1호점인 이대점에서 일했고, 능력을 인정받아 남산점 점장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결혼 후 곧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계속 일하고 싶었지만 입덧이 너무 심했다. “임신하면 냄새에 민감해 지는데 각종 커피향으로 가득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버티기 어려웠어요.”
육아에 전념하던 김씨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스타벅스의 ‘리턴맘 바리스타 프로그램’ 소식을 듣고 지원해 5년 만에 회사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인적성 검사를 봤다. 다음은 세 명의 까다로운 면접관을 만났다. “왜 다시 일하기 원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일할 건지 설명했습니다.”
김 부점장은 자신 있었다. 4년 쉬며 아이를 키우는 동안 특별한 업무 관련 준비는 없었다. 하지만 경험이 있었다. 9년 간 스타벅스에 일하며 매년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남산 단암점 점장 시절엔 최우수 매장에 뽑힌 일도 있다. 당당히 W에 선발되며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4년 간 회사 업무 방식과 환경이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일은 예전 같지 않은 ‘내 몸’이었다. 나이 먹고, 아이 낳고, 일을 오래 쉰 탓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는 자신이 싫어졌다. 열 살 어린 파트너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데, 아줌마를 동료로 반겨줄지도 불안했다. “예전엔 몸이 알아서 움직였어요. 이제는 뭐해야 될지, 생각하며 한참 늦게 움직이는 게 속상했어요.”
답은 하나. 더 노력해서 세월의 공백을 채워야 했다. 모르는 것은 물어 가며 배웠다. 회사 교육 프로그램도 열심히 따라 다녔다. 몇 달 시간이 지나며 동료와 가까워졌고, 일도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다시 일하는 소감을 묻자 “지난해 채용이 안 됐으면 올해 재도전 했을 것”이라며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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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대로 사람이 됩니다” | 백미연 티엘엑스 사원
백씨의 첫 직장은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었다. 1년 정도 다니다 유럽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2년 가까이 일하다 결혼하며 퇴사했다. 2006년 첫째, 2008년 둘째를 낳았다.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지내던 어느 날이다.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산책을 나간 백씨의 눈에 수다를 떨며 지나가는 여성 직장인들이 들어 왔다. 그는 “집에만 있는 자신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며 “젊은 나이에 아무런 인생 목표 없이 안주하기 싫어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단녀 8년차 백미연씨의 직장 구하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일자리 찾기는 쉽지 않았다.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았다. 고용노동부 산하 취업 지원 기관을 찾아 갔다. 취업 패키지 교육을 받으며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다. 워드와 엑셀도 익혔다. 주위에 빈자리가 생기면 알려달라고 수소문도 했다. 기약없는 구직 활동을 하던 중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는 데 빈자리가 생겼으니 지원해보라는 이야기였어요. 무작정 찾아가 면접을 봤는데 덜컥 합격했어요.”
업무는 고객 상담이었다. 티엘엑스는 모바일로 헬스장 사용 쿠폰을 제공하는 회사다. 백씨는 전화와 e메일로 쏟아지는 고객 불만을 듣고 적합한 대응을 해야 했다. 입사 첫날 ‘멘붕’이 왔다. 컴퓨터 사용조차 익숙하지 않은 주부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하는 고객의 불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3일 만에 남편을 붙잡고 말했다.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고. “신랑은 ‘상담사가 상담도 못해 놓고, 왜 고객이 나쁘다고 하소연하나. 3일 만에 포기하면 세상 어디에서도 일할 곳은 없다’며 오히려 저를 나무라더라고요. 좋은 자극이었어요. ‘맞아, 내가 왜 못해’라는 생각을 하며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다져 먹은 백씨는 엑셀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고객 대응 매뉴얼도 직접 손으로 써가며 만들었고, 1시간 진행하는 회사 교육 내용은 녹음해서 새벽 1시까지 공부하며 익혔다. 두 달이 지나자 일이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나자 백씨는 우수 사원으로 뽑혔다. 회사 관계자는 “경력은 부족했지만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높게 평가했다”며 “고객 상담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채용했는데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좋은 선택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백씨를 만났던 직업 상담사도 다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요즘 구직자를 만날 때 백씨의 무모한 취업 도전기를 소개하며 “말하는 대로 사람이 된다”는 조언을 하고 있다. 백씨도 노력을 계속하는 중이다. 최근 근로자 내일 배움 카드를 신청했고, 고객만족 관리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다. “나중에 마흔살이 됐을 때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고 싶어요. 계속 열심히 하겠습니다.”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 이도영 소니 부장
이 부장은 홍보 전문가다. KPR이란 홍보 기업에 2001년 입사해 5년 간 경력을 쌓았다. 2006년엔 회사를 옮긴다. KPR에서 금요일 저녁까지 일하고 월요일에 바이엘로 출근했다. 바이엘에서 혼자 일하며 조직을 키워 홍보팀을 네 명으로 늘렸다. 그렇게 10년을 일한 이 부장은 한숨을 돌리고 싶었다. 2011년 1월 퇴사하고 아이들과 싱가포르로 떠났다. 이 부장은 직장생활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남편의 도움과 직업 전문성을 꼽았다. “신랑이 굉장히 가정적이라, 저보다 아이들을 더 잘 챙겼습니다. 제 직장생활도 적극 지원해 줬고요. 회사를 다니며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라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 부장이 경단녀임에도 회사가 좋게 본 이유가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관되게 경력을 유지했다. 그렇게 10년 간 홍보 경력을 쌓았다. 사회 초년병 시절은 힘들었다. 이직을 알아보며 쓴 이력서도 여럿이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 먹었다. 직장을 옮기기보다는 본인이 잘하는 특별한 분야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이 부장은 “업계 후배들에게도 이직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다양성이 아니라 업무 일관성이란 점을 강조해왔다”고 말했다. 직장을 옮기다 전문성을 못 키운 경우가 많아서다. 그러면 나중에 어렵다. 최소한 본인이 하는 업종에서 4~5년은 일하며 전문성을 키워야 나중에 유리해진다. “한번 굴러 봐야 압니다. 경험을 쌓아야 해요. A부터 Z까지 해봐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시부모의 도움, 아이의 이해가 큰 힘 | 김유경 우리은행 주임
우리은행은 김 주임의 두 번째 직장이다. 대학 졸업 후 강남의 한 저축은행에서 일했다. 첫 아이를 낳으며 퇴사해 5년 간 전업주부로 지냈다. 2013년 1월 경단녀라는 생소한 단어가 인터넷에 보였다. 호기심에 기사를 읽었고, 결혼·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을 일컫는 말임을 알았다. 조금 더 검색해 보니 흥미로운 소식도 있었다. 우리은행에서 경단녀를 채용한다는 기사였다. “업무 시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12시부터 4시30분까지였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지원했습니다. 다시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은 먹었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웠다. 먼저 가족의 동의가 필요했다. 이전에도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 포기했었다.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자 의외의 원군이 나타났다. 시부모님이다. 아이를 돌봐주며 부담을 덜어줬다. “어머님이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며 도와줬어요. 큰 힘을 얻고 은행 면접장으로 향했습니다.”
면접관이 질문을 던졌다. “왜 다시 은행 일을 하려고 하시나요?” 김 주임은 “지금도 9시면 셔터 올라갈 것 같고 4시면 내릴 것 같다”고 답했다. 은행 업무 시절이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면접관은 웃으며 “제가 보기에도 일을 즐겨 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좋은 점수를 받았고 그리던 은행 업무를 다시 시작한다. 우리은행 3년차 행원이다. 김 주임은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도 꾸준히 자기계발을 해왔다. 다양한 전문 분야 자격증 공부를 했다. 언젠가 다시 일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서다. 지금도 금융상품을 공부하며 실력을 쌓고 있다. 특히 펀드 분야에 관심이 많다. “큰 아이도 6살이 됐는데, 엄마 일하는 것을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친구들에게 엄마가 은행에 있다고 자랑도 합니다. 저는 운이 좋은 경우라 생각합니다. 위(시부모) 아래(자녀)에서 모두 지원해주는 경우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같지 않은 ‘내 몸’부터 이겨야 | 김진미 스타벅스 송도점 부점장
육아에 전념하던 김씨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스타벅스의 ‘리턴맘 바리스타 프로그램’ 소식을 듣고 지원해 5년 만에 회사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인적성 검사를 봤다. 다음은 세 명의 까다로운 면접관을 만났다. “왜 다시 일하기 원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일할 건지 설명했습니다.”
김 부점장은 자신 있었다. 4년 쉬며 아이를 키우는 동안 특별한 업무 관련 준비는 없었다. 하지만 경험이 있었다. 9년 간 스타벅스에 일하며 매년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남산 단암점 점장 시절엔 최우수 매장에 뽑힌 일도 있다. 당당히 W에 선발되며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4년 간 회사 업무 방식과 환경이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일은 예전 같지 않은 ‘내 몸’이었다. 나이 먹고, 아이 낳고, 일을 오래 쉰 탓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는 자신이 싫어졌다. 열 살 어린 파트너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데, 아줌마를 동료로 반겨줄지도 불안했다. “예전엔 몸이 알아서 움직였어요. 이제는 뭐해야 될지, 생각하며 한참 늦게 움직이는 게 속상했어요.”
답은 하나. 더 노력해서 세월의 공백을 채워야 했다. 모르는 것은 물어 가며 배웠다. 회사 교육 프로그램도 열심히 따라 다녔다. 몇 달 시간이 지나며 동료와 가까워졌고, 일도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다시 일하는 소감을 묻자 “지난해 채용이 안 됐으면 올해 재도전 했을 것”이라며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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