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당선의 국제정치학적 의미는] 서방 진영 균열의 리트머스 시험지?
[에르도안 당선의 국제정치학적 의미는] 서방 진영 균열의 리트머스 시험지?
터키는 냉전시대 서방 동맹체제의 중추…에르도안 장기 집권에 유럽 국가들은 우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4) 터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이어 글로벌 시대의 새로운 독재자로 자리를 잡았다. 에르도안은 6월 24일 치러진 터키 대통령 선거에서 53%를 득표해 또 다시 당선했다. 에르도안의 대항마로 꼽혔던 공화인민당(CHP)의 무하렘 인제 후보가 얻은 31%보다 20%포인트 이상 높은 득표율이다. 투표율이 87%로 역대 어느 선거에서보다도 높다.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한다.
에르도안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승리해 더욱 탄탄한 권력 기반을 굳혔다. 에르도안이 창당하고 속한 정의개발당(AKP)이 42%를 득표해 제 1당의 자리를 계속 지켰다. 거기에 정의개발당과 연대한 우파 민족주의행동당(MHP)도 11%를 얻었다. 보수 여권 측 전체 득표율이 53%를 넘어 과반수를 차지했다. 에르도안에 대항해온 야당 CHP는 23% 득표에 머물렀다. 지난해 확정된 터키 신헌법에 따르면 새롭게 선출되는 대통령은 임기 5년에 1회에 한해 중임이 가능하다. 에르도안은 2028년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다. 현재 수많은 지지파를 거느린 에르도안이 안정적으로 대통령 자리를 10년 간 유지하면서 제왕적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국의 BBC방송, 일간지 가디언 등과 미국의 CNN,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에르도안이 ‘술탄’에 버금가는 정치적 독재 권력을 차지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술탄은 이슬람 세계에서 제정일치의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군주다. 견제세력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상징한다. 터키가 공화국이 되기 전에 존재했던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군주가 술탄의 지위를 누렸다. 권력이 집중된 술탄제 아래에서 오스만 제국은 무능하든지, 성격이 좋지 않은 군주를 만나면 흔들렸다. 엄청난 세금과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전쟁에서 줄줄이 패배하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나라는 해체된 오스만의 역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비록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이런 호칭이 등장했다는 것은 터키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르도안은 끈질긴 권력욕과 반대파를 용납하지 않는 권위주의적인 말과 행동으로 ‘술탄’이라는 별명으로 불려왔다. 이제 에르도안은 앞으로 10년 간 이런 권한을 실제로 갖게 됐다.
터키의 이번 선거는 터키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4월 16일 국민투표에서 통과된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 개헌 이후 처음 치러진 대선이자 총선이기 때문이다. 개헌 국민투표 이전부터 터키는 분열됐으며 뜨거운 정치적 격돌이 계속돼왔다. 개헌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부정선거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2017년 개헌은 터키가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위주의 체제로 향하는 본격적인 변곡점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그전 헌법과 이번 헌법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1982년 국민투표로 개정됐던 이전 터키 헌법은 의원내각제가 근간이었다.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정당에서 나온 총리가 내각의 수장이자 정부 수반을 맡았다. 간접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주로 의전적인 역할만 했다.
하지만 과거 11년 간 총리에 재임하며 터키의 권력자로 군림했던 에르도안은 지난 2010년 국민투표로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고 2014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심판이 선수로 나온 셈이다. 문제는 권력욕이 강한 에르도안이 이 정도 권력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대통령중심제 개헌을 밀어붙였지만 야당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2016년 7월 군사 쿠데타를 진압한 직후부터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쿠데타 이후 자신에게 반대했던 군인·정치인·공직자·법조인·교육자·언론인 등을 대대적으로 박해하고 숙청했으며 수많은 사람을 투옥했다. 반대 미디어를 없애는 등 언론에 재갈까지 물렸다. 그러면서 개헌을 강력하게 밀어 붙였다. 지난해 4월 16일 개헌안의 국민투표 통과는 에르도안의 권력을 강화시키면서 동시에 터키 민주주의를 약화시켰다는 평가다.
2017년 터키 신개헌의 골자는 정치 체제가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신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권한이 통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보유하는 수준을 훨씬 넘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릴 수 있다. 우선 대통령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비상사태 선포권을 폭넓게 보유하게 됐다. 이는 대통령을 헌법 위에 올린 것이나 다름없다. 터키판 ‘긴급조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터키가 ‘국민의 나라’에서 유일 권력자인 ‘대통령의 나라’가 됐다는 지적이 뒤따르는 이유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터키 민주주의를 질식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 새 헌법은 기존 총리직은 폐지했으며 총리가 지명하던 장관을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 부통령도 대통령이 지명한다. 내각을 대통령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대통령이 예산도 좌우한다. 기존의 의회가 누리던 행정부 운영 권력이 대통령 소관으로 옮아갔다. 유럽 등에서 문제로 지적하는 것이 판사에 대한 임명권도 대통령이 갖는다는 점이다.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도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대통령은 자신을 견제해야 할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까지 보유한다. 대통령이 행정부·사법부·입법부를 맘대로 주무를 수 있다.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하는 3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의원내각제이던 터키의 권력 구조가 대통령제로 바뀐 게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 또는 ‘술탄제’로 바뀌었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다. 터키의 권력이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간 게 아니라 ‘대통령의 이름을 가진 술탄’에게 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묘한 것은 대선과 총선을 같은 날에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총선에서 대통령을 견제하는 세력이 원내 1당을 차지할 길은 더욱 멀어진다. 서로 견제하라고 대통령과 의원을 각기 다른 정당을 찍는 전략적인 투표를 터키 국민이 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터키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기로에서 에르도안을 선택한 셈이다. 에르도안이 ‘술탄’과 맞먹는 권력을 소유하게 되는 첫걸음이다.
이번 에르도안의 당선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만든 이른바 ‘서방 진영’이란 개념이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서방 진영이란 개념은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동맹국 세계를 구성하는 근간이었다. 서방 진영은 1989년 이후 한때 세계를 지배했다. 1989년 11월 9일은 동서 베를린을 가르던 베를린 장벽만 무너진 날이 아니었다. 장벽의 동쪽에 있던 소련과 동유럽의 권위주의 체제도 함께 균열이 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는 1990년 독일의 통일, 1991년 옛 소련의 해체로 이어졌다. 이후 동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사회주의 국가들도 체제전환을 택했다. 민주화와 시장경제로 생존의 길을 모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동서 양 진영으로 갈랐던 냉전 체제도 소멸됐다.
서방의 승리였고 세계사적 전환이었다. 포장만 그럴싸했지 효율이 떨어지고 작동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던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념을 앞세우는 일은 웃음거리가 됐다. 여기에 더해 정치적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도 함께 붕괴됐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앞세우는 고전적인 사회주의 체제의 한 특징이었던 일당독재, 장기집권, 개인숭배도 마찬가지로 종언을 고했다. 일부 예외적인 국가만 남았을 뿐이다.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전통적인 구호에서 볼 수 있듯 개인이 무시되고 집단을 위한 희생을 강요당하는 권위주의 체제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그 대신 시장경제 체제와 함께 자유선거를 통해 내 손으로 정치 지도자들을 뽑는 민주주의,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자유주의가 도도한 물결을 이뤘다. 역사적으로 서구 사회가 만들어왔고, 냉전 당시 서구의 상징이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자유주의는 세계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아갔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시장경제로, 독재는 민주주의로, 권위주의는 자유주의로 각각 대체됐다. 유럽과 미국의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동진을 계속해 과거 소련에서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인류가 발전시킨 최고의, 최후의 정치·경제·사회 발전 단계’ ‘이보다 더 완벽한 체제는 없다’며 칭송이 줄을 이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이 서유럽을 ‘가치 동맹권’으로 묶어두기 위해 펼쳤던 ‘마샬 플랜’의 승리로도 받아들여졌다. 마샬 플랜은 종전 이후 계속 서유럽을 위협하며 연이어 세력권을 확장하던 소련의 요시프 스탈린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대응이었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던 조지 마샬은 서유럽이 스탈린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1948년 3월 132억 달러(현재 가치로 1350억 달러)에 해당하는 원조로 전후 재건과 경제적 부흥을 돕는 ‘마샬 플랜’을 가동했다. 이러한 경제적 지원을 받은 서구는 굶주림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성공적인 전후 복구로 세계 경제를 주도하던 위치를 회복했다. 분단된 채 미국과 서구의 체제에 편입됐던 서독은 이를 종잣돈 삼아 전후 복구는 물론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 세계적인 경제 모범국가가 됐다. 통일 독일이 유럽을 통합해 유럽연합(EU)을 결성하고 그 주도국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마샬 플랜에서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보에서 서방 진영의 선택은 ‘집단 방어체제’였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9년 4월 4일 북대서양 조약기구(나토)를 창설했다. 나토 체제는 마샬 플랜과 함께 서방을 하나의 진영으로 묶어두는 핵심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안보와 경제는 동전의 양면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마샬 플랜과 나토로 상징되는 서방의 전략적 국제체제는 효력을 발휘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세력권은 경제적으로 밀렸을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서방에 함부로 도전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는 엄청났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통일 독일은 서독처럼 나토 회원국이 됐다. 그 후 1999년부터 과거 스탈린이 완충지대로 여겼던 중동 유럽은 물론 소련의 일부였던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발트3국까지 나토 회원국이 됐다. 러시아는 한때 두툼했던 ‘중동유럽’이라는 입술을 잃고 찬바람에 이가 시린 처지가 됐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이 딱 적합한 상황이다.
냉전 상황에서 소련과 국경을 맞댔던 터키는 서방 동맹체제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터키는 아직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나토 회원국으로서 서방 연합군의 중추를 담당해 왔다. 1952년 앙숙인 이웃 그리스와 동시에 나토 회원국이 됐다. 1949년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영국·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포르투갈 등 12개국으로 창립한 나토가 그 후 가입국을 확대한 첫 대상이 터키였다.
터키의 나토 가입은 1955년의 서독이나 1982년의 스페인보다 앞선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미국·영국·프랑스·소련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기 때문에 나토 창설 논의에 참석할 수조차 없었다. 서방 점령지(서베를린 포함)는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들어서고 소련군 점령지는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들어서면서 겨우 주권을 회복했다. 하지만 서독 지역의 연합군 주둔은 1952년 체결된 본-파리 협정이 1955년 관계국 모두에서 비준되면서 비로소 끝났다. 비준에 시간이 걸린 이유는 독일의 재기를 두려워한 프랑스에서 이를 한 차례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을 봉합한 후에야 서독은 1952년 나토에 가입할 수 있었다. 서독은 1990년 10월 동독과 통일을 이룬 뒤 동독지역까지 포함한 통일 독일로서 새롭게 나토 회원국이 됐다.
터키는 유럽의 모든 나라보다 미국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는 서방 동맹의 주축이었다. 에르도안의 당선은 이러한 터키에서 가치 균열이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하나의 균열이 정체의 붕괴를 이끄는 일은 토목공학에선 흔한 일이다. 국제 관계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에르도안의 당선에 유럽 국가들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지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터키는 서방 진영이 균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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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승리해 더욱 탄탄한 권력 기반을 굳혔다. 에르도안이 창당하고 속한 정의개발당(AKP)이 42%를 득표해 제 1당의 자리를 계속 지켰다. 거기에 정의개발당과 연대한 우파 민족주의행동당(MHP)도 11%를 얻었다. 보수 여권 측 전체 득표율이 53%를 넘어 과반수를 차지했다. 에르도안에 대항해온 야당 CHP는 23% 득표에 머물렀다.
에르도안,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
터키의 이번 선거는 터키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4월 16일 국민투표에서 통과된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 개헌 이후 처음 치러진 대선이자 총선이기 때문이다. 개헌 국민투표 이전부터 터키는 분열됐으며 뜨거운 정치적 격돌이 계속돼왔다. 개헌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부정선거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2017년 개헌은 터키가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위주의 체제로 향하는 본격적인 변곡점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그전 헌법과 이번 헌법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1982년 국민투표로 개정됐던 이전 터키 헌법은 의원내각제가 근간이었다.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정당에서 나온 총리가 내각의 수장이자 정부 수반을 맡았다. 간접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주로 의전적인 역할만 했다.
하지만 과거 11년 간 총리에 재임하며 터키의 권력자로 군림했던 에르도안은 지난 2010년 국민투표로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고 2014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심판이 선수로 나온 셈이다. 문제는 권력욕이 강한 에르도안이 이 정도 권력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대통령중심제 개헌을 밀어붙였지만 야당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2016년 7월 군사 쿠데타를 진압한 직후부터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쿠데타 이후 자신에게 반대했던 군인·정치인·공직자·법조인·교육자·언론인 등을 대대적으로 박해하고 숙청했으며 수많은 사람을 투옥했다. 반대 미디어를 없애는 등 언론에 재갈까지 물렸다. 그러면서 개헌을 강력하게 밀어 붙였다. 지난해 4월 16일 개헌안의 국민투표 통과는 에르도안의 권력을 강화시키면서 동시에 터키 민주주의를 약화시켰다는 평가다.
2017년 터키 신개헌의 골자는 정치 체제가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신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권한이 통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보유하는 수준을 훨씬 넘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릴 수 있다. 우선 대통령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비상사태 선포권을 폭넓게 보유하게 됐다. 이는 대통령을 헌법 위에 올린 것이나 다름없다. 터키판 ‘긴급조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터키가 ‘국민의 나라’에서 유일 권력자인 ‘대통령의 나라’가 됐다는 지적이 뒤따르는 이유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터키 민주주의를 질식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
대통령이 행정부·사법부·입법부 좌지우지
교묘한 것은 대선과 총선을 같은 날에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총선에서 대통령을 견제하는 세력이 원내 1당을 차지할 길은 더욱 멀어진다. 서로 견제하라고 대통령과 의원을 각기 다른 정당을 찍는 전략적인 투표를 터키 국민이 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터키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기로에서 에르도안을 선택한 셈이다. 에르도안이 ‘술탄’과 맞먹는 권력을 소유하게 되는 첫걸음이다.
이번 에르도안의 당선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만든 이른바 ‘서방 진영’이란 개념이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서방 진영이란 개념은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동맹국 세계를 구성하는 근간이었다. 서방 진영은 1989년 이후 한때 세계를 지배했다. 1989년 11월 9일은 동서 베를린을 가르던 베를린 장벽만 무너진 날이 아니었다. 장벽의 동쪽에 있던 소련과 동유럽의 권위주의 체제도 함께 균열이 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는 1990년 독일의 통일, 1991년 옛 소련의 해체로 이어졌다. 이후 동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사회주의 국가들도 체제전환을 택했다. 민주화와 시장경제로 생존의 길을 모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동서 양 진영으로 갈랐던 냉전 체제도 소멸됐다.
서방의 승리였고 세계사적 전환이었다. 포장만 그럴싸했지 효율이 떨어지고 작동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던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념을 앞세우는 일은 웃음거리가 됐다. 여기에 더해 정치적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도 함께 붕괴됐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앞세우는 고전적인 사회주의 체제의 한 특징이었던 일당독재, 장기집권, 개인숭배도 마찬가지로 종언을 고했다. 일부 예외적인 국가만 남았을 뿐이다.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전통적인 구호에서 볼 수 있듯 개인이 무시되고 집단을 위한 희생을 강요당하는 권위주의 체제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그 대신 시장경제 체제와 함께 자유선거를 통해 내 손으로 정치 지도자들을 뽑는 민주주의,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자유주의가 도도한 물결을 이뤘다. 역사적으로 서구 사회가 만들어왔고, 냉전 당시 서구의 상징이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자유주의는 세계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아갔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시장경제로, 독재는 민주주의로, 권위주의는 자유주의로 각각 대체됐다. 유럽과 미국의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동진을 계속해 과거 소련에서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인류가 발전시킨 최고의, 최후의 정치·경제·사회 발전 단계’ ‘이보다 더 완벽한 체제는 없다’며 칭송이 줄을 이었다.
민주주의·자유주의의 위기?
안보에서 서방 진영의 선택은 ‘집단 방어체제’였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9년 4월 4일 북대서양 조약기구(나토)를 창설했다. 나토 체제는 마샬 플랜과 함께 서방을 하나의 진영으로 묶어두는 핵심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안보와 경제는 동전의 양면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마샬 플랜과 나토로 상징되는 서방의 전략적 국제체제는 효력을 발휘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세력권은 경제적으로 밀렸을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서방에 함부로 도전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는 엄청났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통일 독일은 서독처럼 나토 회원국이 됐다. 그 후 1999년부터 과거 스탈린이 완충지대로 여겼던 중동 유럽은 물론 소련의 일부였던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발트3국까지 나토 회원국이 됐다. 러시아는 한때 두툼했던 ‘중동유럽’이라는 입술을 잃고 찬바람에 이가 시린 처지가 됐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이 딱 적합한 상황이다.
냉전 상황에서 소련과 국경을 맞댔던 터키는 서방 동맹체제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터키는 아직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나토 회원국으로서 서방 연합군의 중추를 담당해 왔다. 1952년 앙숙인 이웃 그리스와 동시에 나토 회원국이 됐다. 1949년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영국·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포르투갈 등 12개국으로 창립한 나토가 그 후 가입국을 확대한 첫 대상이 터키였다.
터키의 나토 가입은 1955년의 서독이나 1982년의 스페인보다 앞선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미국·영국·프랑스·소련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기 때문에 나토 창설 논의에 참석할 수조차 없었다. 서방 점령지(서베를린 포함)는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들어서고 소련군 점령지는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들어서면서 겨우 주권을 회복했다.
터키, 서독·스페인보다 앞서 나토에 가입
터키는 유럽의 모든 나라보다 미국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는 서방 동맹의 주축이었다. 에르도안의 당선은 이러한 터키에서 가치 균열이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하나의 균열이 정체의 붕괴를 이끄는 일은 토목공학에선 흔한 일이다. 국제 관계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에르도안의 당선에 유럽 국가들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지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터키는 서방 진영이 균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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