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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덕분에 푸틴만 이득 본다”

“트럼프 덕분에 푸틴만 이득 본다”

오바마 정부에서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 지낸 마이클 맥폴, 백악관의 러시아 정책 질타
사진:ILLUSTRATIONS BY ALEX FINE
러시아 문제를 전공하는 학자인 마이클 맥폴은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의해 주러시아 대사로 발탁됐다. 그의 임무는 2008년 러시아가 이웃나라 조지아를 침공하면서 틀어진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맥폴이 주러시아 대사로 지명된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3선에 반대하는 러시아 대중의 시위를 미국이 조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러시아 언론은 곧 맥폴 대사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다. 또 그가 러시아 야권의 대표들을 만나면서 러시아의 국수주의 청년단체들은 그의 신변을 위협했다.

2014년 맥폴의 대사 임기가 끝날 때쯤 러시아는 이웃나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그에 따라 미국-러시아의 관계 재설정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현재 스탠퍼드대학 정치학 교수인 맥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래 줄곧 백악관과 러시아의 관계를 목소리 높여 비판했다. 그가 새로 펴낸 책 ‘차가운 전쟁에서 뜨거운 평화로(From Cold War to Hot Peace)’는 소련 붕괴 이래 미러 관계의 역사를 통찰력 있게 다뤘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7월 중순으로 예정된 미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뉴스위크는 맥폴 교수에게서 트럼프의 부상과 관련된 러시아의 역할, 푸틴의 공격성, 트럼프의 정책이 푸틴의 권력 강화를 어떻게 돕고 있는지 등에 관해 들어봤다.



미국은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무엇을 잘못했는가?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후 푸틴 대통령을 너무 부드럽게 다룬 게 패착인가?


그렇게 물으면 미국-러시아 관계의 모든 문제가 미국의 잘못에서 비롯됐다고 가정하는 셈이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침공한 것은 러시아다. 잘못된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의 정책이었다. 우리가 어떤 정책을 채택했어야 러시아와의 관계가 더 나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내가 오히려 묻고 싶다. 2009년 1월 나는 오바마의 백악관에 있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검토하며 가상의 대안 정책을 철저히 살폈다. 조지아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은 옵션이 될 수 없었다. 캅카스에서 러시아와 대리전을 치르게 되는 것도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나중에 러시아와의 대치를 피할 수 있는 명확한 대안이 없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후 러시아에 부과한 경제제재가 푸틴 대통령의 행동을 바꾸는데 효과가 있었나?


사진:ILLUSTRATIONS BY ALEX FINE
그렇지 않다. 푸틴은 행동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제재는 올바른 조치였을까? 그렇다. 크림반도 합병에 어떤 식으로든 대응해야 했다. 좀 더 엄격한 제재를 부과했어야 했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달라질 수 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정석대로 옳은 일을 해야 한다. 게다가 제재의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러시아 측의 주장에 따르면 제재로 국내총생산(GDP)이 0.5% 감소했다.



그렇다면 제재는 실질적인 효과가 없는 상징적인 정책인가?


그 문제에서 또 다시 가정적인 대안을 검토해봐야 한다. 제재가 전혀 없었다면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더 많은 지역을 합병하려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했을지 모른다. 따라서 제재가 그의 추가적인 행동을 막았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역사적인 사례를 보면 제재의 효과는 몇 달 또는 몇 년이 아니라 몇 십 년 뒤에 나타난다. 러시아는 국제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는 거대한 나라다. 따라서 제재의 진정한 효과가 나타나려면 더 오래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부정적인 행동에는 부정적인 결과가 따라야 한다. 침략적 행동은 그에 상응하는 대응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사이의 결탁 의혹에 실체가 있는가?


개인적인 답변이지만 당연히 있다고 본다. 푸틴은 해킹과 여론조작, 가짜뉴스로 트럼프 후보의 선거 승리를 도왔다. 내가 보기엔 명백한 사실이다. 러시아 국영 통신 스푸트니크가 해시태그 ‘#CrookedHillary(사기꾼 힐러리)’를 리트윗했다면 러시아 문제를 전공한 박사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 후보를 돕기 위해 밀사를 보내 자료를 제공하려 했을까? 그게 의도였던 게 분명하다. 그 정보를 받는 게 트럼프 캠프의 의도였을까?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법을 어겼는가? 그건 다른 문제다. 러시아 대리인들과 트럼프 캠프 사이의 금전 관계에 관한 정보가 아직도 더 많이 필요하다.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더 깊이 파헤쳐야 할 가장 큰 불확실성이 바로 그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지금까지 러시아를 관대하게 대했나?


트럼프 정부는 그렇지 않다. 정부의 정책은 나도 대부분 지지한다. 오바마 정부의 정책과 같은 부분이 많다. 심지어 오바마 정부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사례도 여럿 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한 것이 한가지 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문제다. 그는 자신의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엉뚱한 발언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재의 역설이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현재 G7(주요 7개국)으로 구성돼있는 정상회의 체제에 러시아를 다시 포함해 G8 체제로 환원하는 방안을 제안했을 때 그건 정부의 정책이 아니었다(‘선진국 모임’ 격인 G7 회의는 원래 러시아를 포함해 G8으로 운영됐으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2014년 러시아의 자격이 정지됐다). 정부 부처 간 회의를 갖고 ‘그게 좋은 생각이니 그렇게 해보자’고 결정한 게 아니었다. 트럼프는 러시아 제재를 두고 나쁜 정책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정부는 제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 정책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탈퇴가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고 판단하는가?


지난해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 장기적으로 보면 트럼프가 백악관 주인이 된 것이 푸틴(왼쪽)에게 이로울 수밖에 없다. / 사진:AP-NEWSIS
이란에 대한 새로운 제재는 다자간 합의로 실시되기가 어렵다. 게다가 미국 혼자서 이란에 새로 제재를 부과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 고립된 쪽은 이란이 아니라 미국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을 고립시키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정반대 상황이다. 푸틴은 어떻게 되더라도 이득을 보게 돼 있다. 이란 핵합의가 유지된다면 푸틴은 비핵화를 추진하는 세계와 보조를 맞추는 것으로 환영 받게 된다. 만약 합의가 깨진다면 모두 푸틴 아니라 트럼프를 비난할 것이다.



최근 선거로 헝가리와 이탈리아에 친푸틴 정부가 들어선 사실을 고려하면 러시아 제재에 대한 유럽의 지지가 끝날 것이라고 보는가?


러시아 제재를 지속하려면 미국과 유럽이 서로 손발이 맞아야 한다. 트럼프는 제재 문제를 뛰어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는데 그건 좋지 않은 신호다. 비교적 대수롭지 않은 문제에 관해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과 갈등을 빚는다면 러시아 제재를 지속하기 위한 연대를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을 푸틴 대통령이 기뻐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그렇다고 본다. 만약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 것보다는 확실히 그에게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러시아는 기대하던 대가를 얻지 못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였을 때 러시아 제재를 풀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러시아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제재가 해제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트럼프가 백악관 주인이 된 것이 러시아에게 이로울 수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 사이의 긴장, 나토 내부의 갈등, G7 내부의 분열, 미국 국내 여론의 양극화, 파리 기후협정·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이란 핵합의 같은 주요 국제조약에서 미국이 탈퇴한 것은 전부 푸틴에게 이익이 된다. 그의 관점에선 세계가 상당히 좋아 보이는 상황이다. 더구나 미국 동맹국들의 사회적인 태도가 바뀌고 있다는 불길한 보도까지 나온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럽의 7개 미국 동맹국과 일본·한국에서 트럼프보다 푸틴을 신뢰한다는 비율이 더 높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푸틴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푸틴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해 자신이 서방보다 인내심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서방이 궁극적으로 제재 피로증을 느껴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런 생각이 옳다. 헝가리와 이탈리아의 급진적 정부는 “제재는 이제 그만하자”고 말한다. 그외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포함해 지난 5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모두가 그에 동의한다. 게다가 푸틴은 직접 유럽에 더 많은 압력을 넣을 필요도 없다. 트럼프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오언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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