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 러시아처럼 미국 선거에 개입하나
중국도 러시아처럼 미국 선거에 개입하나
노골적인 개입 증거 없지만 장기간에 걸쳐 여론에 영향 미치려는 활동은 많아 지난 9월 말 미국 워싱턴 D.C. 소재 보수주의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는 미중 관계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거기서 패널리스트들은 하나같이 양국 사이의 무역전쟁 중단을 촉구했다. 중국 국무원 참사 겸 베이징 소재 싱크탱크 중국세계화센터(CCG) 주임인 왕휘야오는 “우리는 보복 관세와 양측 간의 전방위 맞대응 같은 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 도움을 주고 세계의 번영을 도모하며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지속적인 성장을 앞으로 40년 더 다질 수 있을지 고심해야 한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인 10월 4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같은 연구소에서 연설하며 11월 중간선거에 중국이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미국의 여론, 2018년 중간선거와 2020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려고 전례 없는 시도를 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은밀한 행위자, 선전집단, 선전대원을 동원했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은 미국 전역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영향력이 큰 인물)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싱크탱크, 대학, 언론을 통해 친중국 견해를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식으로 중국이 이번 중간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적극 활동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증거가 없다고 본다. 커스틴 닐슨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도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중국이 중간선거를 방해한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보안 전문가들도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미국 사이버보안업체 리코디드 퓨처의 프리실라 모리우치 연구원은 “사이버공격 측면에서 중국 해커들이 미국 정부 시스템을 표적으로 삼고 데이터를 빼내려 하지만 그들이 미국의 지방이나 연방 차원에서 선거 시스템을 표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아직 못 봤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취임한 이래 미국의 정치 분석가들과 시사평론가들은 오로지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문제만 파고들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러시아인이 표적화된 소셜미디어 공격과 민감한 정치 정보 해킹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숙적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떨어뜨리고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작전을 펼쳤다고 결론지었다. 보안 관리들은 러시아 해커들이 선거 결과를 조작하진 않았지만 20개 주 이상의 선거 시스템 침투를 시도했다고 판단했다.그러나 러시아의 선거 개입 스캔들이 미국 언론의 머릿기사를 장식하는 상황에서도 해외의 일부 보안 관리들은 미국이 집중해야 할 적은 러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러시아보다 더 은밀하고 자원이 많으며 막강한 적이 눈에 띄지 않게 미국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미국인의 마음을 흔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고 경고했다.
드디어 지난 9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안보리 회의를 주재하면서 폭탄발언을 쏟아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중국이 나의 정부를 음해하기 위해 다가오는 11월 중간선거에 개입하려고 시도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상·하 양원의원 및 공직자 선거로,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실제로 출마하는 건 아닌데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나 또는 우리(공화당)가 승리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왜냐면 내가 무역과 관련해 중국에 문제를 제기한 역대 첫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역에서 이기고 있다. 우리는 모든 단계에서 승리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중국 관리들은 돌처럼 굳은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처음엔 전문가들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과장 심한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과 관련해 자신의 선거 캠프와 러시아 사이의 결탁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에 쏠리는 이목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일까?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재차 강조하며 중국의 개입에 관한 기밀 증거가 많다며 곧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다음 며칠 동안 트럼프 정부의 다른 관리들도 같은 주장을 내놨다. 예를 들어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펜스 부통령은 “러시아가 했다는 일은 미국에서 중국이 하고 있는 일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14일 CBS방송 ‘60분’과 가진 인터뷰에서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 개입 의혹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곧바로 ‘중국’으로 화제를 돌리며 “중국도 개입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중국이 더 큰 문제다.” 그러나 정보기관들은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중국 문제 분석가 중 다수는 중국의 위협이 실제라고 믿는다. 그러나 러시아와 달리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중국의 작전은 보다 장기적이고 정교하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드러내 놓고 미국의 중간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한다. 2016년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한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뜻이다. 그보다는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미국인의 대중국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미국 학계에서 중국 문제 권위자로 꼽히는 앨런 칼슨 코넬대 정치학과 교수는 “러시아가 미국에서 지금까지 해왔고 계속 하고 있는 폭넓은 개입 활동의 증거는 많지만 그에 비해 중국의 활동은 훨씬 적으며 증거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중국이 완전히 깨끗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2016년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한 것을 인정하기 꺼리는 미국 정부로선 중국이 다소간 편리한 표적이 됐다는 뜻이다.”
워싱턴 D.C. 소재 싱크탱크 애트랜틱카운슬의 중국 전문가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이 제시한 중국의 중간선거 개입 증거(아이오와주 디모인 레지스터 신문에 중국이 낸 광고 등)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 그들이 중국의 선거 개입과 관련해 언급한 증거는 대수롭지 않다. 신문 광고는 중국이 수년 동안 해오던 일이다. 나 같으면 예를 들어 러시아가 선거 시스템을 해킹하기보다 광고를 내는 게 훨씬 더 속 편하겠다.”매닝 연구원은 중국 관리들과 신랄한 대화를 자주하지만 자신의 중국 정책 연구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미국의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려고 대학이나 싱크탱크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려 하지만 별 소용없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영향을 미치려면 소프트파워를 구축해야 하는데 중국은 소프트파워가 별로 없다. 시진핑 주석이 모든 것을 공산당화하는 일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각종 단체와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면서 중국에 관해 권위 있는 인물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나라가 없다. 하지만 현재 미국이 중국을 보는 시각을 감안하면 중국이 그런 방면으로 아무리 애써도 효과가 별로 없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 크리스 존슨은 전·현직 중국 관리들이 자신을 찾아오는 건수를 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국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중국 외무부의 전직 또는 현직 관리가 나 같은 연구원을 자주 찾아온다. 그런 방문 증가는 중국 측에 우려가 있다는 표시다. 바로 몇 달 전이 그랬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중국 담당 분석가를 지낸 존슨 연구원은 중국이 소프트파워를 이제야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관리들이 미국의 싱크탱크에 재정적으로 지원한 뒤 그 기관이 중국의 공산당 노선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존슨 연구원 자신은 중국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지원을 받으면 복잡하게 얽히고 다른 조건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CSIS가 대만에 관한 학술대회를 주최했을 때 중국 관리들로부터 ‘우호적인 경고’를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은 중국 정부로부터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난 그것이 나의 활동에 방해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독재 정권이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상당히 노골적이다. 우리가 잘 지켜보며 주의해야 할 문제지만 질겁할 일은 결코 아니다.”
한편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는 중국의 일부 전술은 쉽게 눈에 띈다. 현재 미국에서 운영되는 중국 매체는 최소한 60개 정도다. 소규모 신문부터 라디오 방송, 온라인 뉴스 매체까지 다양하다. 그런 매체 대부분은 중국계 미국인 사회를 표적으로 삼는다.
최근 미국 법무부는 중국 국영매체인 신화통신과 중국국제텔레비전(CGTN)에 외국로비공개법(FARA) 대상인 ‘외국 대행기관’으로 등록할 의무가 있다고 통보했다. 언론사가 아니라 중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 단체로 규정하겠다는 뜻이다. 중국의 관영 매체인 영자신문 차이나 데일리는 1983년부터 외국 대행기관으로 등록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차이나 데일리가 미국 전역의 신문에 ‘선전용 광고’를 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차이나 데일리의 FARA 신고 내용에 따르면 이 매체는 지난해 초 이래 미국에서 친중국 여론 조성 활동으로 약 1600만 달러를 썼다. 그중 일부는 월스트리트저널과 워싱턴포스트 같은 미국 주요 신문에 광고를 내는 데 사용됐다.차이나 데일리는 드러내 놓고 중국을 옹호한다. 예를 들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광고는 중국의 선거 개입이라는 트럼프 정부의 주장을 일축하며 대만에 무기 판매를 중단하도록 트럼프 정부에 압력을 넣으려는 중국의 노력을 강조했다.
지난 10월 8일 차이나 데일리에 실린 기명 칼럼은 펜스 부통령의 허드슨연구소 연설이 중국을 향한 인종적이고 이념적인 편견을 드러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캘리포니아주 소재 채프먼대학의 지아원산 교수가 쓴 이 칼럼은 이렇게 주장했다. “펜스 부통령의 연설은 전형적인 기독교 선교사의 어조로 자신이 잘난체 하는 방식으로 전달됐다. 중국의 활동에 관해 헛소문에 불과한 정보를 나열하고 중국의 세계적인 전략 의도를 터무니없이 추측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국제 미디어, 미국의 중국 유학생 등이 도마에 올랐다. 가장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중국을 보는 사고 방식이 중국을 폄하하고 배척하는 인종적·이념적 편견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지아 교수는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을 미국에서 20년 이상 다문화 소통을 연구해온 이중언어 사용자이자 이중문화 지식인으로 묘사했다. 그는 오렌지카운티 레지스터 신문 등에 칼럼을 쓰고 CGTN 방송에 출연한다. 워싱턴포스트와 외교 전문잡지 포린어페어스에도 칼럼을 쓰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또 그는 자신이 중국 공산당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차이나 데일리의 편집방향을 반드시 지지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차이나 데일리에 자주 기고했다. 그쪽에서 나를 원한 게 아니라 내가 쓰고 싶었다. 나는 그 신문의 공식 입장을 반드시 지지하진 않지만 주로 공감하는 편이다.”
베이징에 있는 CCG의 연구원이기도 한 지아 교수는 중국 런민대학 산하 국가발전전략연구원과도 관련 있다. 지아 교수 역시 지난 9월 말 허드슨연구소의 심포지엄에 패널리스트로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중국과 미국의 더 가까운 관계가 필요하다며 중국계 미국인 사회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자선사업에 더 많이 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아 교수 같은 인물이 중국 공산당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해도 양국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승인 받았다고 본다. 사실상 외교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CIA 분석가를 지낸 피터 매티스는 “그런 인물이 특정한 방향으로 분위기를 유도하기 위해 목소리를 만들어내고 사회의 담론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인 로비와는 완전히 다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분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국 기업도 미국에서 사업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로비스트를 고용한다. 미국 법무부에 제출된 문건에 따르면 중국 정부와 비정부 조직이 지난해 1월 이래 미국에서 로비에 지출한 자금이 2200만 달러였다. 그 자금의 많은 부분은 차이나 데일리 같은 비정부 조직이 지출했다. 그와 함께 중국 기업도 미국 사업을 위해 로비스트를 동원함으로써 무역분쟁의 타격을 줄이려고 애쓴다.
지난 6월 중국과 미국이 서로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분쟁의 수위를 높였을 때 중국 회사 완콰화학은 로비업체 AUX 이니셔티브를 고용했다. 루이지애나주 공장 건설을 위해 관세 면제를 받으려는 의도였다. 또 중국 랴오닝성에 본부를 둔 건설업체 차이나 릴린 인더스트리얼 그룹이 고용한 중미클럽이라는 회사는 최근 미국 법무부에 제출한 문건에서 사업적 이익을 위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활동은 선거 개입과는 무관해 보인다. 사이버공격 예방을 위해 20년 가까이 매사추세츠주 지방검사실에서 일한 애덤 북바인더는 “중국이 경제 발전과 정보 수집에 전념한 결과 그쪽 방면에선 매우 뛰어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미국 정치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도 뉴스를 본다. 그들은 러시아가 미국 선거에 개입해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다는 사실을 잘 안다. 또 그들은 막대한 자원과 기술을 갖고 있다. 그 모든 것을 고려하면 우리가 그들의 활동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경각심을 갖는 것이 합당하다.”
- 크리스티나 마자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인 10월 4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같은 연구소에서 연설하며 11월 중간선거에 중국이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미국의 여론, 2018년 중간선거와 2020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려고 전례 없는 시도를 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은밀한 행위자, 선전집단, 선전대원을 동원했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은 미국 전역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영향력이 큰 인물)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싱크탱크, 대학, 언론을 통해 친중국 견해를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식으로 중국이 이번 중간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적극 활동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증거가 없다고 본다. 커스틴 닐슨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도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중국이 중간선거를 방해한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보안 전문가들도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미국 사이버보안업체 리코디드 퓨처의 프리실라 모리우치 연구원은 “사이버공격 측면에서 중국 해커들이 미국 정부 시스템을 표적으로 삼고 데이터를 빼내려 하지만 그들이 미국의 지방이나 연방 차원에서 선거 시스템을 표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아직 못 봤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취임한 이래 미국의 정치 분석가들과 시사평론가들은 오로지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문제만 파고들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러시아인이 표적화된 소셜미디어 공격과 민감한 정치 정보 해킹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숙적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떨어뜨리고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작전을 펼쳤다고 결론지었다. 보안 관리들은 러시아 해커들이 선거 결과를 조작하진 않았지만 20개 주 이상의 선거 시스템 침투를 시도했다고 판단했다.그러나 러시아의 선거 개입 스캔들이 미국 언론의 머릿기사를 장식하는 상황에서도 해외의 일부 보안 관리들은 미국이 집중해야 할 적은 러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러시아보다 더 은밀하고 자원이 많으며 막강한 적이 눈에 띄지 않게 미국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미국인의 마음을 흔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고 경고했다.
드디어 지난 9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안보리 회의를 주재하면서 폭탄발언을 쏟아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중국이 나의 정부를 음해하기 위해 다가오는 11월 중간선거에 개입하려고 시도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상·하 양원의원 및 공직자 선거로,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실제로 출마하는 건 아닌데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나 또는 우리(공화당)가 승리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왜냐면 내가 무역과 관련해 중국에 문제를 제기한 역대 첫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역에서 이기고 있다. 우리는 모든 단계에서 승리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중국 관리들은 돌처럼 굳은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처음엔 전문가들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과장 심한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과 관련해 자신의 선거 캠프와 러시아 사이의 결탁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에 쏠리는 이목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일까?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기자회견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재차 강조하며 중국의 개입에 관한 기밀 증거가 많다며 곧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다음 며칠 동안 트럼프 정부의 다른 관리들도 같은 주장을 내놨다. 예를 들어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펜스 부통령은 “러시아가 했다는 일은 미국에서 중국이 하고 있는 일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14일 CBS방송 ‘60분’과 가진 인터뷰에서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 개입 의혹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곧바로 ‘중국’으로 화제를 돌리며 “중국도 개입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중국이 더 큰 문제다.” 그러나 정보기관들은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중국 문제 분석가 중 다수는 중국의 위협이 실제라고 믿는다. 그러나 러시아와 달리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중국의 작전은 보다 장기적이고 정교하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드러내 놓고 미국의 중간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한다. 2016년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한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뜻이다. 그보다는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미국인의 대중국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미국 학계에서 중국 문제 권위자로 꼽히는 앨런 칼슨 코넬대 정치학과 교수는 “러시아가 미국에서 지금까지 해왔고 계속 하고 있는 폭넓은 개입 활동의 증거는 많지만 그에 비해 중국의 활동은 훨씬 적으며 증거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중국이 완전히 깨끗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2016년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한 것을 인정하기 꺼리는 미국 정부로선 중국이 다소간 편리한 표적이 됐다는 뜻이다.”
워싱턴 D.C. 소재 싱크탱크 애트랜틱카운슬의 중국 전문가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이 제시한 중국의 중간선거 개입 증거(아이오와주 디모인 레지스터 신문에 중국이 낸 광고 등)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 그들이 중국의 선거 개입과 관련해 언급한 증거는 대수롭지 않다. 신문 광고는 중국이 수년 동안 해오던 일이다. 나 같으면 예를 들어 러시아가 선거 시스템을 해킹하기보다 광고를 내는 게 훨씬 더 속 편하겠다.”매닝 연구원은 중국 관리들과 신랄한 대화를 자주하지만 자신의 중국 정책 연구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미국의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려고 대학이나 싱크탱크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려 하지만 별 소용없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영향을 미치려면 소프트파워를 구축해야 하는데 중국은 소프트파워가 별로 없다. 시진핑 주석이 모든 것을 공산당화하는 일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각종 단체와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면서 중국에 관해 권위 있는 인물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나라가 없다. 하지만 현재 미국이 중국을 보는 시각을 감안하면 중국이 그런 방면으로 아무리 애써도 효과가 별로 없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 크리스 존슨은 전·현직 중국 관리들이 자신을 찾아오는 건수를 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국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중국 외무부의 전직 또는 현직 관리가 나 같은 연구원을 자주 찾아온다. 그런 방문 증가는 중국 측에 우려가 있다는 표시다. 바로 몇 달 전이 그랬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중국 담당 분석가를 지낸 존슨 연구원은 중국이 소프트파워를 이제야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관리들이 미국의 싱크탱크에 재정적으로 지원한 뒤 그 기관이 중국의 공산당 노선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존슨 연구원 자신은 중국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지원을 받으면 복잡하게 얽히고 다른 조건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CSIS가 대만에 관한 학술대회를 주최했을 때 중국 관리들로부터 ‘우호적인 경고’를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은 중국 정부로부터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난 그것이 나의 활동에 방해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독재 정권이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상당히 노골적이다. 우리가 잘 지켜보며 주의해야 할 문제지만 질겁할 일은 결코 아니다.”
한편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는 중국의 일부 전술은 쉽게 눈에 띈다. 현재 미국에서 운영되는 중국 매체는 최소한 60개 정도다. 소규모 신문부터 라디오 방송, 온라인 뉴스 매체까지 다양하다. 그런 매체 대부분은 중국계 미국인 사회를 표적으로 삼는다.
최근 미국 법무부는 중국 국영매체인 신화통신과 중국국제텔레비전(CGTN)에 외국로비공개법(FARA) 대상인 ‘외국 대행기관’으로 등록할 의무가 있다고 통보했다. 언론사가 아니라 중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 단체로 규정하겠다는 뜻이다. 중국의 관영 매체인 영자신문 차이나 데일리는 1983년부터 외국 대행기관으로 등록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차이나 데일리가 미국 전역의 신문에 ‘선전용 광고’를 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차이나 데일리의 FARA 신고 내용에 따르면 이 매체는 지난해 초 이래 미국에서 친중국 여론 조성 활동으로 약 1600만 달러를 썼다. 그중 일부는 월스트리트저널과 워싱턴포스트 같은 미국 주요 신문에 광고를 내는 데 사용됐다.차이나 데일리는 드러내 놓고 중국을 옹호한다. 예를 들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광고는 중국의 선거 개입이라는 트럼프 정부의 주장을 일축하며 대만에 무기 판매를 중단하도록 트럼프 정부에 압력을 넣으려는 중국의 노력을 강조했다.
지난 10월 8일 차이나 데일리에 실린 기명 칼럼은 펜스 부통령의 허드슨연구소 연설이 중국을 향한 인종적이고 이념적인 편견을 드러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캘리포니아주 소재 채프먼대학의 지아원산 교수가 쓴 이 칼럼은 이렇게 주장했다. “펜스 부통령의 연설은 전형적인 기독교 선교사의 어조로 자신이 잘난체 하는 방식으로 전달됐다. 중국의 활동에 관해 헛소문에 불과한 정보를 나열하고 중국의 세계적인 전략 의도를 터무니없이 추측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국제 미디어, 미국의 중국 유학생 등이 도마에 올랐다. 가장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중국을 보는 사고 방식이 중국을 폄하하고 배척하는 인종적·이념적 편견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지아 교수는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을 미국에서 20년 이상 다문화 소통을 연구해온 이중언어 사용자이자 이중문화 지식인으로 묘사했다. 그는 오렌지카운티 레지스터 신문 등에 칼럼을 쓰고 CGTN 방송에 출연한다. 워싱턴포스트와 외교 전문잡지 포린어페어스에도 칼럼을 쓰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또 그는 자신이 중국 공산당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차이나 데일리의 편집방향을 반드시 지지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차이나 데일리에 자주 기고했다. 그쪽에서 나를 원한 게 아니라 내가 쓰고 싶었다. 나는 그 신문의 공식 입장을 반드시 지지하진 않지만 주로 공감하는 편이다.”
베이징에 있는 CCG의 연구원이기도 한 지아 교수는 중국 런민대학 산하 국가발전전략연구원과도 관련 있다. 지아 교수 역시 지난 9월 말 허드슨연구소의 심포지엄에 패널리스트로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중국과 미국의 더 가까운 관계가 필요하다며 중국계 미국인 사회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자선사업에 더 많이 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아 교수 같은 인물이 중국 공산당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해도 양국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승인 받았다고 본다. 사실상 외교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CIA 분석가를 지낸 피터 매티스는 “그런 인물이 특정한 방향으로 분위기를 유도하기 위해 목소리를 만들어내고 사회의 담론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인 로비와는 완전히 다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분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국 기업도 미국에서 사업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로비스트를 고용한다. 미국 법무부에 제출된 문건에 따르면 중국 정부와 비정부 조직이 지난해 1월 이래 미국에서 로비에 지출한 자금이 2200만 달러였다. 그 자금의 많은 부분은 차이나 데일리 같은 비정부 조직이 지출했다. 그와 함께 중국 기업도 미국 사업을 위해 로비스트를 동원함으로써 무역분쟁의 타격을 줄이려고 애쓴다.
지난 6월 중국과 미국이 서로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분쟁의 수위를 높였을 때 중국 회사 완콰화학은 로비업체 AUX 이니셔티브를 고용했다. 루이지애나주 공장 건설을 위해 관세 면제를 받으려는 의도였다. 또 중국 랴오닝성에 본부를 둔 건설업체 차이나 릴린 인더스트리얼 그룹이 고용한 중미클럽이라는 회사는 최근 미국 법무부에 제출한 문건에서 사업적 이익을 위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활동은 선거 개입과는 무관해 보인다. 사이버공격 예방을 위해 20년 가까이 매사추세츠주 지방검사실에서 일한 애덤 북바인더는 “중국이 경제 발전과 정보 수집에 전념한 결과 그쪽 방면에선 매우 뛰어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미국 정치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도 뉴스를 본다. 그들은 러시아가 미국 선거에 개입해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다는 사실을 잘 안다. 또 그들은 막대한 자원과 기술을 갖고 있다. 그 모든 것을 고려하면 우리가 그들의 활동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경각심을 갖는 것이 합당하다.”
- 크리스티나 마자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김천 묘광 연화지, 침수 해결하고 야경 명소로 새단장
2"겨울왕국이 현실로?" 영양 자작나무숲이 보내는 순백의 초대
3현대차 월드랠리팀, ‘2024 WRC’ 드라이버 부문 첫 우승
4'1억 4천만원' 비트코인이 무려 33만개...하루 7000억 수익 '잭팟'
5이스타항공 누적 탑승객 600만명↑...LCC 중 최단 기록
6북한군 500명 사망...우크라 매체 '러시아 쿠르스크, 스톰섀도 미사일 공격'
7“쿠팡의 폭주 멈춰야”...서울 도심서 택배노동자 집회
8다시 만난 ‘정의선·도요타 아키오’...日 WRC 현장서 대면
9 신원식 “트럼프, 尹대통령에 취임 전 만나자고 3~4차례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