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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그림자 대통령’

트럼프의 ‘그림자 대통령’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북 협상 등에서 의사결정 과정 장악하고 자신의 의제 관철시킨다는 소문 무성해
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확대정상회담에 참석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왼쪽 맨 앞).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에서도 그의 영향력이 상당히 커 보인다. / 사진:JOONGANG PHOTO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두고 “어느 누구보다도 더 강경한 매파”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호적수로 만난 것 같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볼턴 보좌관은 미국의 정책을 자신의 강성 이미지에 맞춰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지난 3월 4일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보좌관에게 자신의 임기 동안 제발 전쟁만은 일으키지 말라고 농담조로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경박함은 제쳐두고라도 그런 농담은 미국과 적대 국가(이란·베네수엘라) 사이의 고조된 긴장과 북한을 상대로 하는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새로운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볼턴 보좌관은 이 3개국 모두를 대상으로 군사행동을 위협한 적 있다.

그는 지난해 현직에 임명된 이래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자리 잡았다고 알려졌다. 그가 종종 전문가 토론을 배제한 채 밀실 회의에서 강경 노선을 밀어붙여 대외정책에 관한 백악관의 의사결정 과정을 장악하고 자신의 의제를 관철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한 고위 관리는 “볼턴 보좌관이 자신은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언제 어디서든 대통령 곁에 있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백악관 전체에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며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독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열정적인 보수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를 두 번이나 지시함으로써 해외에서 수행하는 ‘끝없는 전쟁’을 중단시키려 나서면서 동료 공화당 의원들과 불협화음을 냈다. 아울러 그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비핵화-평화협정 거래를 추진하면서도 일부 공화당 의원의 회의론을 부추겼다.

시리아·북한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례 없는 노력에도 그 두 가지 목표 중 어느 하나도 달성되지 않았다. 시리아에서 미군 주둔은 규모가 크게 축소되지만 ‘평화유지군’ 형태로 계속 남을 것이고, 베트남 하노이에서 지난 2월 말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도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났다. 전문가들은 중대한 외교정책 이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을 변화시키는 데 볼턴 보좌관이 주된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시리아에서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상대로 하는 미군의 전투를 이란의 영향력 억제 쪽으로 방향을 틀게 만들었고, 하노이 북미 회담에서도 볼턴 보좌관이 막판에 새로운 요구를 내놓음으로써 합의를 무산시켰을 수 있다.

또 지난 3월 5일 볼턴 보좌관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는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들여다볼 것”이라면서 강경 노선을 다시 드러냈다. 그는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폐기 등과 관련해 설명하며 이 같이 답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과된 참담한 경제제재의 완화도 얻지 못할 것이다.”

볼턴 보좌관이 “중요한 것은 싱가포르에서 1차 정상회담을 통해 대통령이 북한에 문을 열어뒀다는 것”이라며 “그들은 걸어들어오지 않았고, 대통령은 하노이에서 다시 문을 열어뒀다. 그런데 그들은 거기서도 역시 걸어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이 내민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열려 있는 ‘기회’의 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문을 열어뒀다”며 “북한은 밝은 경제적 미래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단지 모든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을 포기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다른 많은 분야에선 볼턴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를 바꾸기보다 더욱 증폭시켰다. 두 사람 모두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매우 비판적으로 본다. 그들은 이란이 외국 무장단체들을 대상으로 혁명 시아파적 관점을 퍼뜨리려 한다고 비난했고, 베네수엘라의 경우 심화되는 정치·경제 위기를 사회주의의 단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볼턴 보좌관은 자신의 직책을 이용해 그 두 나라에 개인적으로 위협을 가했다.

지난해 5월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는 볼턴이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지 한 달만에 나왔다. 볼턴 보좌관이 관여해 미국이 폐기한 국제 협정은 그뿐이 아니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탄도미사일제한 조약에서 탈퇴했을 땐 볼턴이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이었다. 그는 그 직책을 이용해 이라크와의 전쟁을 적극 지지했고, 리비아와의 핵협상에 반대했다(하지만 리비아 문제에서는 그가 성공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 아래선 볼턴 보좌관이 러시아와 체결한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의 이행 중단을 선언하는 데 주된 역할을 했다(미국은 지난 2월 러시아의 9M729 순항 미사일 개발·배치를 이유로 러시아가 INF 조약을 이행하지 않아 INF 조약이 유명무실화됐다며 INF 이행중단을 선언했다). 러시아 관리들은 미국과 러시아의 핵병기고를 제한하는 ‘뉴스타트’(New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신전략무기감축협정) 폐기가 그 다음 차례일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볼턴 보좌관은 또 국제형사재판소(ICC) 같은 유엔 산하 기구도 맹렬히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연설에서 ICC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전쟁범죄 의혹(불법 고문)을 수사한다고 공격하며 판사들을 제재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 후 ICC의 고위 판사 1명이 트럼프 정부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정치적 외압’에 항의하며 사임했다. 그는 ICC가 아프가니스탄 주민을 고문한 혐의를 받던 미군 병사들에 대해 예비 조사를 진행하자 볼턴 보좌관이 공개 연설에서 ICC 폐쇄를 언급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스위크 외에도 최근 미국의 여러 매체가 트럼프 정부에서 커지고 있는 볼턴 보좌관의 영향력에 관해 보도했다.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지난 3월 초 게재한 기사에서 볼턴 보좌관을 ‘숨은 권력집단의 그림자 대통령(the shadow president of the deep state)’이라고 묘사했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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