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결말 보여주는 일반적인 픽션과 달리 현실 세계는 비극적인 경우 더 많아… 세상이 공정하다는 환상 깨트려야 ‘왕좌의 게임’은 시청자에게 특정 캐릭터에 지나친 애착을 갖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 사진:HBO‘왕좌의 게임’은 술수와 탐욕, 음모가 난무하는 남부에서부터 야만이 숨 쉬는 광활한 대지의 동부, 어둠의 존재들로부터 왕국을 지키기 위해 높은 장벽을 쌓은 북부에 이르기까지 펼쳐지는 대서사시다. 가상의 대륙 웨스테로스를 배경으로 7왕국이 연맹 국가의 통치권인 ‘철의 왕좌’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이 드라마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제 이 드라마의 마지막 시즌을 맞아 팬들은 웨스테로스에 남아 있는 영웅들이 모두 좋은 결말을 맞는 해피 엔딩을 기대할 것이다.
나도 이 드라마를 즐기는 시청자로서 선이 악을 이기는 끝을 보고 싶다. 하지만 드라마와 영화 같은 픽션의 정치적 효과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나는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8이 이 시리즈의 첫 다섯 시즌처럼 잔혹할 정도로 부당한 상황을 끝까지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화이트 워커들(백귀)이 북부를 점령한 뒤 존 스노와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을 죽이거나, 세르세이 라니스터가 영웅들과 함께 죽은 자들의 군대와 전투를 벌여 승리한 뒤 자신이 철의 왕좌를 차지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반대 세력을 제거하려고 그들을 배신하는 플롯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최근 몇몇 학생과 함께 ‘왕좌의 게임’에 관한 실험연구를 통해 불행한 대단원을 향한 나의 기대는 더욱 굳어졌다. 비극으로 끝맺는 드라마와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하다는 점을 연구 결과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따라서 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대중을 겨냥한 대다수의 픽션은 주인공이 올바른 일을 하고 궁극적으로 그 노력에 보상받는 것으로 끝난다. 흔히 그런 권선징악과 인과응보의 주제를 ‘시적 정의(poetic justice)’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많은 해피 엔딩에는 정치적인 대가가 따른다. 적어도 한 연구자에 따르면 그렇다.
독일의 커뮤니케이션 심리학자 마르쿠스 아펠은 2007년 발표된 논문에서 드라마와 코미디를 즐겨 보는 사람들이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사람보다 ‘세상은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믿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대중적인 픽션이 ‘시적 정의’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우리 뇌에 주입함으로써 세상이 전반적으로 정의롭다는 과도한 낙관론을 심어주는 데 일조한다는 것으로 그 연구 결과를 해석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볼수록 그들은 세상이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믿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믿음이 정치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당하고 공정하다고 믿으면 좋은 사람에겐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사람에겐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세계관이 특정 정책의 지지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이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으면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건 마땅한 일이라고 믿을 수 있다. 따라서 그런 세계관은 빈곤퇴치 프로그램과 ‘어퍼머티브 액션’(입학과 취업에서 소수집단을 우대하는 정책)을 향한 반대 의견과 연결되는 경향을 보인다. 아울러 가난한 사람과 권위주의에 관한 부정적인 느낌과도 연관된다.
이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것은 학대와 범죄, 경제적 재앙과 전쟁의 희생자를 목격하는 불편함을 경험하는 것과 관련된 심리적인 반응 때문에 활성화되는 듯하다. 그런 세계관을 가지면 그 같은 피해자를 목격하면서 갖게 되는 복잡한 감정으로 번민하도록 강요받지 않고 대신 세상은 공정하다는 믿음이 방패처럼 자신을 감싸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만약 그들이 받아 마땅한 고통을 받는다면(세상은 공정하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서적으로 에너지와 자원을 그들에게 쏟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왕좌의 게임’은 2011년 첫 시즌이 시작됐을 때부터 대다수 다른 드라마와 달라 보였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이 올바른 일을 하고 그 노력에 보상받는 전형적인 플롯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그 반대로 최대한 나아가면서 시청자에게 잔혹하고 악랄한 불의를 넘쳐나게 선사했다. 예를 들면 가학성 성격장애를 가진 어린 왕이 주인공의 참수를 명령하고,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신체적·심리적 고문을 자행하고, 어린 여자아이에게 결혼을 강요한 뒤 그들을 성폭행하는 등 갖가지 끔찍한 플롯이 펼쳐졌다. 이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특정 캐릭터에 지나친 애착을 갖는 것은 금물이라는 교훈을 가르쳤다. 애착이 갈만한 캐릭터는 십중팔구 잔인하고 부당한 운명을 맞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가졌다. 아펠의 주장대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픽션이 공정한 세상에 관한 믿음을 증가시킨다면 ‘왕좌의 게임’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듯한 불의를 계속 본다면 그 반대 효과를 가져와 공정한 세상에 관한 믿음이 줄어들 수 있을까?
학생들과 나는 그 효과를 테스트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는 두 학기 동안 설문조사와 실험을 한 가지씩 실시한 뒤 두 번째 실험으로 그 결과를 확인했다. 설문조사와 실험을 위해 우리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했다. 나는 그들을 무작위로 세 그룹으로 나눠 각각 다른 과제를 맡겼다. 첫째 그룹은 ‘왕좌의 게임’ 중 여섯 편을, 둘째 그룹은 좀 더 공정한 세상을 그린 판타지 드라마 ‘트루 블러드’ 중 여섯 편을 봤다. 마지막 그룹은 설문조사에만 응했다. 두 번째 후속 실험에선 대규모 학급에서 학생들을 임의로 나눠 한쪽은 ‘왕좌의 게임’ 다섯 편을, 다른 쪽은 영화 ‘호빗: 다섯 군대 전투’를 봤다.
그 결과 ‘왕좌의 게임’을 본 참가자들은 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을 적게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참가자의 다른 특성을 고려했을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왕좌의 게임’을 보는 것이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본 것과 유사한 효과를 가져왔다는 뜻이다.
내가 ‘왕좌의 게임’이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불행하고 비극적인 대단원이 바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물론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나 드라마에 심취하면서 현실 세계의 추악함으로부터 도피하는 것도 가끔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권선징악을 권장하는 픽션이 지배하는 미디어 환경에선 세상이 반드시 그처럼 멋지게 펼쳐지진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도록 자주 충격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왕좌의 게임’ 첫 다섯 시즌에서 바로 그런 가치를 확인했다. 그래서 이번 마지막 시즌이 특히 비극적인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 앤서니 기어진스키
※ [필자는 미국 버몬트대학 정치학 학과장이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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