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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의 작은 천국 ‘세이바’

열대의 작은 천국 ‘세이바’

네덜란드령 카리브해에 있는 오염되지 않은 섬… 언덕 위 동화 같은 마을 걷고 운무림과 바닷속 탐험하고 용암류 트레킹 할 수 있어
웰스 베이에서 매리스 포인트 트레일을 내려다본 풍경. / 사진:SUSAN PORTNOY
네덜란드령 카리브해 세인트 마틴 섬 남서쪽 45㎞ 지점에 있는 세이바 섬은 열대의 작은 천국이다. 스쿠버 다이버들 사이에선 다양하고 풍요로운 해양생물로 유명하지만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다.

섬사람들은 이 섬을 ‘태고의 아름다움을 지닌 카리브해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놀라운 생물 다양성, 그리고 관광 인파와 체인점의 부재 등을 그 이유로 꼽는다. 게다가 섬에서 마주치는 현지인은 다른 곳보다 더 친절하다. 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몇 시간도 안 돼 그곳 사람들과 서로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하게 되고 며칠 지나면 그들이 가족처럼 느껴진다.

7대륙 70개국을 여행한 여행작가 셰리 오트는 “현지인에게 이렇게 환영받는 건 매우 드문 일”이라며 “이곳에선 간단한 인사로 시작된 대화가 30분씩 이어진다”고 말했다. 2000명의 세이바 섬 주민은 이런 친화성을 타고났다. 대다수가 1600년대 중반 이곳에 처음 정착한 네덜란드인의 피를 이어받았다. 그 후 200년 동안 그들은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의 침략자들과 섬의 소유권을 놓고 싸웠다. 그러면서 여러 민족이 뒤섞여 가족이 되는 복잡한 가계도가 형성돼 지금까지 이어진다. 섬사람들의 관계가 친밀하다 보니 범죄가 거의 없다.
 어떻게 가나?
세이바 섬 공항의 활주로 길이는 396m로 세계 상업 활주로 중 가장 짧다. / 사진:SUSAN PORTNOY
세인트 마틴 섬에서 페리로 90분, 비행기로는 12분이면 도착한다. 세이바 섬 후안초 E.이라우스킨 공항의 활주로 길이는 396m로 세계 상업 활주로 중 가장 짧다. 활주로가 이렇게 짧다 보니 조종사가 자칫 실수라도 하는 날엔 비행기가 바다에 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절로 든다. 하지만 17인승 드 하빌랜드 트윈 오터에 탑승한 승객은 이 비행기가 착륙할 때 얼마나 재빠르면서도 부드럽게 감속하는지 놀라게 된다. 앞좌석 등받이에 얼굴을 부딪칠 듯한 느낌 같은 건 전혀 없다.

공항에서 나오면 택시를 타야 한다. 이 섬의 택시기사 15명은 단순히 교통편을 제공할 뿐 아니라 투어가이드와 역사학자, (호텔) 안내원을 겸한다. 섬 관광에 관해 궁금한 건 뭐든 물으면 그 자리에서 대답해주거나 그 답을 알 만한 사람을 곧바로 연결해준다. 그들은 또 섬 구석구석까지 길을 잘 안다.

이 섬의 중심도로 ‘더 로드(Road)’는 헬스게이트(Hell’s Gate)에서 공항과 네덜란드 식민지 스타일의 마을 3곳[윈드워드사이드(Windwardside)와 세인트 존(Saint John), 그리고 섬의 수도인 더 보텀(The Bottom)]을 연결해준다. 이 길은 섬 남서쪽 끝 지점인 포트 베이 하버(Fort Bay Harbor)에서 끝난다. 45도의 경사로와 급커브 구간이 많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신나는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자이언 힐에 이르는 첫 번째 오르막길만 해도 뱀처럼 구불구불한 커브 구간이 23개에 이른다. 이 길에는 신호등이나 멈춤 표시판이 없으니 자동차 앞 좌석에 앉아 섬의 기막힌 풍경을 감상하면 된다.
 윈드워드사이드
세이바 섬의 수도 ‘더 보텀’. / 사진:SUSAN PORTNOY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다수 여행객이 홈베이스로 삼는 윈드워드사이드가 있다. 세이바 섬 어디를 가나 눈에 띄는 경사진 빨간 지붕에 회반죽을 칠한 하얀 집들이 모여 있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부비 힐(Booby Hill), 더 레블(The Level) 같은 특이한 이름의 동네에 다다르는데 언덕 위 집들과 절벽 위에서 바라다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 소규모 호텔과 기념품점, 다이빙용품점, 트레일 숍(아웃도어 용품점), 레스토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게다가 이곳은 해발 400m의 고지대라 해가 쨍쨍한 더운 낮에도 선선하고 쾌적하다.
 트레킹 코스와 섬에 사는 동물
해안의 용암류에 있는 조수 웅덩이. / 사진:SUSAN PORTNOY
열대우림·운무림·산호초 등 3개의 생태계와 7개의 식생대가 존재하는 카리브해의 섬 중에서도 크기에 비해 세이바 섬만큼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곳은 몇 안 된다. 아침에 운무림을 탐험하고 오후엔 용암류를 트레킹할 수 있는 데 서두를 이유가 있을까?

하이커들은 지형과 난이도에 따라 24개 트레일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윈드워드사이드의 트레일 숍에서 지도를 구할 수 있다). 노스 코스트(North Coast) 트레일을 제외하곤 모두 셀프 가이드 코스다.

1950년대에 더 로드가 완공되기 이전 식민지 주민이 이용했던 역사적인 길 샌디 크루즈(Sandy Cruz) 트레일은 영화 ‘쥬라기 공원’을 연상시키는 열대우림 코스로 2시간 30분(편도)이 소요된다. 꼬불꼬불한 언덕길이 많아 몸은 고되지만, 풍경이 정말 예뻐 고생하는 보람이 있다. 가장 인기 높은 길은 1064개의 계단이 있는 마운트 시너리(Mount Scenery) 트레일로 윈드워드 사이드에서 시작해 운무림 정상에 이른다. 해발 910m로 네덜란드 영토 중 가장 높은 곳이다.

적어도 하나의 트레일은 현지 가이드 제임스 ‘크로커다일’ 존슨(69)의 안내를 받아 걸을 것을 권한다. 트레일 관리인이기도 한 그는 그 지역의 동식물에 관해 당신이 알고 싶은 모든 걸 말해줄 수 있다. 존슨의 안내를 받아 매리스 포인트까지 가면 1665년 그의 조상들이 식민지에 세운 건축물의 폐허를 볼 수 있다. 지금은 거의 자연 상태로 되돌아갔지만 일부 건물 토대와 수조, 묘지가 남아있다.

해안의 조수 웅덩이도 가이드의 안내를 받는 게 좋다. 혼자 걸을 수도 있지만, 공식적인 트레일이 없고 구불구불한 용암류를 따라 한참을 걸어야 하므로 가이드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동물에 관심이 많다면 세이바 섬에 서식하는 희귀한 초록색 이구아나를 찾아보자. 이 섬의 풍토종으로 자이언 힐 근처의 콘크리트 가드레일 위에서 일광욕할 때는 검은색을 띤다. 또 풍토 종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붉은부리 열대새도 찾아보자. 이 새는 바닷가 절벽에 둥지를 튼다. 과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번식기가 되면 전 세계에 서식하는 붉은부리 열대새의 약 10%가 이 섬에 모인다. 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염소도 마주친다. 염소 목축은 한때 세이바 섬의 주요 산업이었지만 인구가 증가하면서 어업과 관광업에 밀려났다.
 바닷속
과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번식기가 되면 전 세계 붉은부리 열대새의 10%가 세이바 섬에 모인다. / 사진:SUSAN PORTNOY
세이바 섬의 바다는 물이 맑아 시야가 좋고 지구상에서 해양생물이 가장 건강한 곳 중 하나다. 세이바 자연보호연맹(CSF)은 1987년 다이빙 지점 26곳을 포함해 섬을 둘러싼 바닷속 60m까지 세이바 국립해양공원으로 지정했다. 큰꼬치고기와 타폰, 비늘 돔류, 5종의 상어를 포함해 총 150종의 어류가 이곳에 산다.

카리브해 이외 지역에선 멸종한 푸른 바다거북과 혹스빌 바다거북이 카멜레온농어만큼이나 자주 눈에 띈다. 바닷속을 탐험할 때 산호와 해면으로 뒤덮인 바위를 보는 건 흔한 일이지만 그 밑에 있는 바위 자체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이바 섬 앞바다에선 화산 지역의 특성상 바닷속에서 뾰족한 바위와 급경사면, 터널, 동굴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야간 다이빙도 할 수 있다. 다이빙을 즐기지 않는다면 스노클링을 추천한다.
 야외활동 사이사이엔 뭘 할까?
퀸즈가든 리조트에 있는 프랜지패니(Frangipani) 스파에 가면 트레킹과 바닷속 탐험으로 지친 근육을 마사지로 달랠 수 있다. 윈드워드사이드에서 차로 몇 분이면 간다. 아니면 마을에 머무르면서 현지 장인이 만든 작품을 파는 매력적인 기념품점 ‘카코나(Kakona)’에 가보는 것도 좋다. 아름다운 장신구와 손으로 짠 숄, 그림, 유기농 미용제품 등을 취급한다. 이 기념품점을 운영하는 린 코스테나로는 “카코나는 수천 년 전 이 섬에 살았던 타이노족의 언어로 ‘가치 있는 물건’을 뜻한다”면서 “이 특별한 상점에 꼭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카코나에서 세이바 섬을 주제로 한 유리 예술 장신구와 작은 조각상을 만들어 파는 조빈 그레이엄은 여행객을 상대로 유리구슬 제작 워크숍을 열기도 한다.

10월에는 한 달 내내 ‘시&런(Sea & Learn)’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세계 각지의 과학자와 박물학자들을 초청해 이른 저녁 시간 프레젠테이션을 열고 환경 의식을 고취하는 현장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관련 행사가 모두 무료로 일반에게 공개된다.

저녁에는 웰스 베이(Well’s Bay)로 가서 석양이 절벽을 붉게 물들이는 장관을 감상하거나 줄리아나스(Juliana’s) 호텔의 팁시 고트(Tipsy Goat)에서 칵테일을 마신다. 이 호텔의 트로픽스(Tropics) 카페에서는 맛있고 신선한 ‘세이바’ 닭새우를 맛볼 수 있다. 낭만적인 분위기를 원한다면 브리가둔(Brigadoon) 레스토랑의 아늑한 세이바 전통 코티지에서 유럽 대륙식과 지중해식을 혼합한 퓨전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저녁 식사 후엔 스윙잉 도어스(Swinging Doors) 바에 가서 술 한잔하고 잠자리에 든다. 한잠 푹 자고 나서 아침이 되면 다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수 있다.

- 수잔 포트노이



※ [필자는 사진가 겸 여행가로 웹사이트 ‘The Insatiable Traveler’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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