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듣지 않는다’
‘약이 듣지 않는다’
항생제는 지난 수년간 수많은 생명 구했지만 치명적인 박테리아가 내성 키우면서 기적의 약효가 사라졌다. 의료계의 대안은 무엇일까 지난 1월 미국 뉴욕 소재 컬럼비아대학은 산하 어빙 메디컬 센터의 환자 4명이 일반적인 대장균(E. 콜라이)의 변종에 감염됐다고 밝혔다. 그 뉴스는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감염병 전문가 세계에 급속히 퍼져나갔다. 대장균은 흔히 서식하는 내장 안에 있을 때는 해롭지 않지만, 상추나 간 쇠고기 또는 인체 혈액 같은 엉뚱한 곳에 들어가면 치명적일 수 있다. 대장균 감염에 항생제가 듣지 않을 때는 감염 환자의 최대 절반이 2주 이내에 사망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컬럼비아대학 대장균은 상당히 걱정스러운 문제였다. 지난 10~20년 사이 대장균이 내성을 키운 항생제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일부 감염 환자의 경우엔 신장과 뇌 손상을 포함하는 잠재적인 부작용을 가진 독성 항생물질 콜리스틴이 마지막 희망이다. 컬럼비아대학 대장균의 유전자 MCR-1에는 콜리스틴도 이겨내는 무서운 속성을 부여하는 돌연변이가 있었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감염대책반의 에리카 셰노이 부팀장은 “준비된 항생제 후보가 전혀 없다”며 “감염환자를 치료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온다”고 말했다.
1942년 나이트클럽 화재 피해자 13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페니실린이라는 기적의 실험약이 긴급 수송된 이래 의학자들은 100종 이상의 항생제를 새로 발견했다. 하나하나가 요긴하게 쓰였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대장균뿐이 아니다. 포도상구균·장내세균 그리고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의 약제내성 균주들이 꾸준히 항생제를 극복해 왔다. 한 조사에선 2007~2015년 내성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5배 증가했다. 최근 칸디다속 진균의 항생제 내성 균주가 뉴욕시와 시카고 병원들에 출현해 감염 환자 중 절반이 사망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연간 200만 명이 주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나 균류에 감염되며 그로 인한 사망자가 2만3000명에 달한다. 감염관리역학전문가협회(APIC)의 캐런 호프먼 대표는 “필시 훨씬 더 많을 것”이라며 “확실한 다제내성 미생물(multiresistant organisms) 보고체계가 없어 실제로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 헬스케어 시스템에서 이런 내성 세균 감염 환자의 치료에 드는 비용이 연간 30억 달러를 웃돈다.
이런 암울한 트렌드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예측에 따르면 약제내성 병원균으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가 현재의 연간 70만 명에서 2050년에는 1000만 명으로 늘어난다. 그때 가선 암·심장병·당뇨병을 제치고 인류의 최대 사망원인이 된다. 항생제 등장 이전에는 작은 자상, 충치 또는 통상적인 수술로도 박테리아에 감염돼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기적의 약’ 페니실린과 기타 항생제가 수년에 걸쳐 수많은 생명을 구하며 세상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기적의 약 시대가 막을 내리는 듯하다.
의사들은 대규모 감염을 막기 위해 내성균을 찾아내 분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부랴부랴 항생제 사용 기준을 강화해 병원균의 내성 발달을 늦추려 한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런 전략으로는 약간의 시간만 벌 수 있을 뿐이다. 현재로썬 아주 고령의 쇠약한 입원 환자들이 영향을 가장 많이 받지만, 위험이 확산되고 있다. 보스턴 소재 터프츠 메디컬 센터의 감염병 전문의 헬렌 바우처 박사는 “뇨로와 피부 감염을 일으킨 건강한 젊은이에게도 치료제가 없다”고 말했다. “장기이식 심지어 인공관절 치환 같은 일상적인 수술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모두에게 정말 걱정스러운 문제다.” 의료 전문가들은 완전히 새로운 감염 대처전략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들은 바이러스, 물고기 점액 심지어 외계 행성 등 색다른 곳에서 세균을 죽이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 유전체학과 기타 분야에서 얻은 통찰을 이용해 세균을 죽이고 그 확산을 막는 신기술을 개발하려 한다. 그리고 병원과 기타 박테리아 전염원의 관행을 재점검하면서 인체와 병원의 더 통합적인 박테리아 관리 전략을 도입한다.
이런 대안들이 유망한 듯하지만, 먼 미래의 이야기다. 문 앞에 몰려든 좀비 군단처럼 슈퍼버그들이 우리의 방어기제를 압도하기 전에 신무기를 개발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매사추세츠대학 약제내성 연구원 마거릿 라일리는 “다른 대안들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15년 전에 그래야 했다”고 말했다.
약제내성의 한 가지 문제는 병원균들이 신종으로 진화하는 속도가 놀랍도록 빠르다는 점이다. 인간은 15년 이상이 지나야 후손을 둘 만큼 성숙하는 반면 대장균 같은 병원균은 20분마다 번식한다. 인류가 수백만 년 걸렸을 진화 과정을 몇 년 만에 마칠 수 있다. 그런 진화에 약제를 견뎌낼 수 있는 유전적 속성의 획득이 포함될 수 있다. 항생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내성 병원균을 키우는 완벽한 실험실이다. 매사추세츠 병원의 셰노이 부팀장은 “새 항생제를 사용할 때마다 약 1년 뒤 첫 내성 병원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병원균이 내성을 갖게 되는 항생제를 대체할 만한 대안 약제가 거의 없다. 새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 약 20억 달러의 비용과 약 10년의 세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 투자를 감수할 만한 블록버스터 약품이 출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볼티모어 소재 존 스홉킨스 베이뷰 메디컬 센터의 조너선 제닐먼 감염병과장은 “새 항생제 개발의 포인트는 가능한 한 제한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회사가 왜 그런 시장을 겨냥해 신약을 개발하려 하겠는가?”
의학자들은 요즘 다른 접근법을 모색한다. 병원균과의 전쟁에서 진화론적 안목을 가진 생물학자를 모집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라일리 연구원은 1990년대 하버드와 예일대학에서 바이러스가 박테리아를 죽이고 박테리아끼리 서로를 죽이는 방법의 연구로 출발했다. 2000년 한 동료가 무심코 그 연구를 인체 건강에 응용할 길이 없는지 물었다. 그녀는 “그동안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문제에 몰두하게 됐다”고 말했다. 라일리 연구원은 그 뒤 20년 동안 인간의 내성균 감염 문제에 대한 바이러스 전쟁 전략의 적용을 조사해 왔다.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s)’로 불리는 바이러스들은 기본적으로 방어 단백질로 둘러싸인 유전 물질 덩어리다. 박테리아의 세포벽을 뚫고 들어가 유전기제를 점령해서 박테리아를 바이러스 생산 공장으로 탈바꿈시킨다. 라일리 연구원은 또한 박테리아가 때때로 먹이를 차지하려고 다른 박테리아를 어떻게 죽이는지도 연구한다. 박테리아 군집은 때때로 ‘박테리오신(bacteriocins)’이라는 독성 단백질을 생성해 경쟁자를 밀어낸다.
라일리 연구원의 사명은 위험한 박테리아를 죽일 뿐 아니라 유익한 세균을 보호하는 것이다. 각 인체에 서식하는 약 400조 개의 박테리아 중 대다수가 유익하거나 무해하다. 그중 1만 분의 1%만이 잠재적으로 유해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페니실린·시프로플록사신·테트라사이클린처럼 흔히 처방하는 ‘광범위한’ 항생제는 좋든 나쁘든 가리지 않고 모든 박테리아를 전멸시킨다. 내성균을 키울 뿐 아니라 환자에게 문제를 안겨준다. 라일리 연구원은 “항생제는 감염원에 수소 폭탄을 던지는 격”이라며 “체내 박테리아의 절반 이상을 죽이는데 건강한 박테리아가 사라지면 비만·우울증·알레르기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반면 박테리오파지와 박테리오신은 이론상 환자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균 군집만 제거하도록 조정할 수 있다. 정상적인 세균군집을 해치거나 내성균이 번식할 수 있는 온상을 조성하는 일은 전혀 없다.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의 바이오테크 업체 임뮤셀이 개발한 박테리오신은 젖소의 유선염(젖샘의 염증)을 치료한다. 낙농업계에 한 해 20억 달러의 손실을 안겨주는 질병이다. 라일리 연구원은 자신의 연구소 같은 곳에서 거의 모든 종류의 인체 병원균 감염 또한 조준 공격하도록 박테리오파지와 박테리오신을 개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 내성을 키울 위험은 거의 없다. 그녀는 “20억 년 전에 진화한 안정적이고 강인한 살상 메커니즘”이라고 말했다. 여러 건의 박테리오파지 요법 임상시험이 미국 포틀랜드, 동유럽의 조지아, 방글라데시에서 성공했다. 서방에선 족부궤양의 박테리오파지 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더 중증 감염에 대해 진행 중인 시험은 없지만,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비상사태 선언에 따라 캘리포니아주의 중증 다제내성균 감염 환자의 박테리오파지 치료에 성공한 뒤로 박테리오파지 치료제 개발을 연구하는 미국 의학자가 많아졌다. 라일리 연구원은 이 중 한두 건이 앞으로 2~3년 이내에 시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다제내성 결핵 치료제와 낭포성섬유증 환자의 폐 감염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박테리오신은 한참 뒤져 있다. 미국 정부는 이들 대안 요법 개발 노력에 2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암 연구자들은 면역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약을 널리 조사한다. 그리고 이들 면역요법이 쇠약한 환자들 몸에 자리 잡으려는 내성균을 퇴치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는 인간 항체를 젖소를 비롯한 동물에서 만들어냈다.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대학 부속 브리검여성병원은 약제내성 감염 환자를 살리기 위한 비상대책으로 항체와 항생제를 혼합해 주사했다고 보고했지만,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 밖에 감염 환자를 대상으로 이런 요법을 시험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과학자들은 내성 포도상구균 감염과 기타 내성균 백신도 연구 중이지만, 이들도 연구에 지나지 않는다. 코네티컷주 파밍턴에 있는 코네티컷대학 헬스 메디컬센터의 데이비드 버내크 감염예방학과장은 “이들 비항생제 치료법은 아직 조사 초기 단계지만 새로운 대안을 계속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단히 긴박한 문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유망한 솔루션을 임상시험과 상용화 단계로 진전시키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까? 거의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터프츠대학의 바우처 박사는 말한다. 정부는 연구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지만, 그 연구를 약품과 도구로 만들어내려는 민간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수백만 명이 복용하거나 1회분 가격이 수만 달러에 달할 가능성이 없는 약품으로 제약회사들이 이익을 남길 수는 거의 없다고 바우처 박사는 말한다. “경제성이 없다”는 의미다.
항생제가 효과적일 때는 정말 기적의 약이지만, 현재의 문제는 일정 부분 의료계가 거기에 너무 많이 의존한 데서 비롯됐다. 의사들은 귀감염·인후염·뇨로감염에 항생제를 처방한다. 내과의들은 수술 후 감염 예방에 항생제를 사용한다. 박테리아가 내성을 기를 수 있어 박테리아의 확산을 관리하고 감염에 대처하는 전체적인 접근법의 일환으로 항생제를 사용하는 방식이 가장 합당하다. 항생제의 유용성이 떨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의료 전문가들은 요즘 다면적인 전략으로 박테리아를 저지한다.
예방조치를 강화하고 표적 항생제를 이용해 잠재적인 감염 급증의 탐지와 대응에 더 신속히 착수할수록 감염병 유행을 둔화 또는 예방할 수 있다. 개발 중인 새 검사법을 이용하면 환자 또는 주위에서 발견되는 모든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보건 당국에서 신속하고 저렴하게 확인할 수 있다. 셰노이 부팀장은 “모든 내원 환자를 대상으로 모든 병원균의 분자 검사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짚더미에서 바늘 찾는 격이다. 그러나 고위험 환자들을 신속히 검사할 수 있다면 적절히 조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150년 전에 개발된 박테리아 유행의 표준검사 기법보다는 분명 진일보하는 셈이다. 감염 전문의들은 병원에 내성균이 발생할 때 환자들 사이에 퍼뜨리지 않고 억제하는 데도 초점을 맞춘다. 미국 병원의 전체 환자 중 약 5%가 ‘원내(nosocomial)’에서 병균에 감염된다. 그 과정은 뻔하다. 병원은 면역체계가 약화하고 각종 상처와 자상을 입은 병자가 밀집한 곳이다. 의료 관계자들이 모든 병실을 회진하며 똑같은 손과 도구로 끊임없이 환자들을 찌르고 누른다.
인구 고령화와 새 의료기법으로 환자들이 한층 더욱 취약해졌다. 존스홉킨스의 제닐먼 감염병과장이 실시한 비공식 조사에선 조사 대상 환자의 절반 이상이 체내에 일반적인 감염원인 임플란트를 해 넣었다. “요즘 병원의 환자들은 사상 어느 때보다 훨씬 병약하다”고 그는 말한다. 감염관리역학전문가협회의 호프먼 대표는 “조사에 따르면 병원에서 올바른 예방조치를 따르지 않는 빈도가 평균적으로 절반에 달한다”며 “우리의 가장 큰 골칫거리”라고 말했다.
병원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쓰레기통 모양의 로봇을 이용해 자외선으로 벽을 소독하는 곳이 많다(자외선이 인체에도 해로워 사람들을 외부로 내보내야 한다). 시카고 남쪽 리버사이드 메이컬 센터에선 제넥스라는 회사의 로봇 2대로 하루 30여 개 병실을 소독한다. 탁상과 의류 같은 표면에 박테리아가 들러붙지 않는다면 병원의 청결 유지가 쉬울 것이다. 콜로라도주립대학 생의학 엔지니어 멜리사 레이널즈는 새로운 박테리아 내성 소재를 개발 중이다. 헬스케어 종사자의 의류와 기타 병원 자재·표면에 처음부터 세균이 달라붙지 않는다면 소독할 필요도 없다. 박테리아 퇴치는 우연한 기회에 레이널즈 연구원의 사명이 됐다. 그녀는 의사들이 환자의 동맥을 벌리는 데 사용하는 메쉬(그물망) 내의 응고를 막는 방법을 조사하고 있었다. 메쉬에 구리 나노결정 코팅을 입혔더니 혈액세포가 표면에 달라붙지 않는 듯했다. 박테리아도 나노결정 코팅에 달라붙지 않았다. 그 뒤 그녀 실험실의 한 학생이 놀라운 발견을 했다. 면직물을 나노결정 용액에 담가 박테리아가 천에 달라붙지 않게 하면 어떨까? 레이널즈 엔지니어는 “강한 항생물질의 특성을 가진 신소재들을 발견했다”며 “그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박테리아 방지 의류 아이디어는 지금까지 일련의 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녀는 “가공 처리된 천을 온갖 박테리아에 여러 차례 노출했는데 전혀 달라붙는 게 없었다”며 “메커니즘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온갖 박테리아에 효과적인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형 의료용품 업체와 협력해 그 나노 결정을 싸게 제조공정에 통합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현재 그녀는 스테인리스스틸·페인트·플라스틱 등 병원에서 사용하는 그 밖의 다양한 소재에 나노 결정을 통합하는 방법을 조사하고 있다. 이처럼 가공 처리된 소재는 일반 살균제로 씻어낸 기존 병원의 표면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박테리아가 생기지 않는다고 그녀는 말한다. 박테리아를 막는 또 다른 잠재적인 무기로 레이저도 있다. 퍼듀대학 생물학자 모하메드 셀렘 연구팀은 혈액 샘플에서 감염성 박테리아를 신속히 찾아내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샘플에 다양한 색깔의 레이저광을 쏘는 방식을 이용했다. 그 과정에서 특정한 약제내성 박테리아에 약한 청색 레이저광을 쏘았더니 몇 초 뒤 금색에서 흰색으로 색깔이 바뀌었다. 이들 ‘광퇴색(photobleached)’ 세균 중 일부는 죽었고 나머지도 크게 힘을 잃고 일반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잃었다. 알고 보니 청색광이 박테리아 외막의 색소에 타격을 줬다. 셀렘 연구원은 “특정 색소에만 영향을 미친다”며 “다른 어떤 세포도 해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셀렘 연구팀은 현재 다른 내성균을 겨냥해 레이저광의 색깔을 조정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성공할 경우 의료 관계자들이 손전등 크기의 레이저로 환자 피부의 위험한 박테리아를 안전하게 죽이거나 병원을 소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의료 종사자의 피부와 의류에 레이저를 쏘아 감염의 확산을 저지할 수도 있다. 연구팀은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셀렘 연구원은 위험한 중증 내성 혈액 감염에도 레이저광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혈액순환 장치에 환자를 연결해 혈액이 장치를 통과할 때 레이저광을 쬐는 방법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환자의 혈액을 뽑아내 소독한 뒤 환자의 몸에 돌려주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항생제를 거의 포기했지만, 과학자들은 새 항생제 발견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항생제 혁명은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휴가를 떠났다가 영국 런던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왔을 때 시작됐다. 열린 창문 곁에 놓아뒀던 접시에서 기이하게 생긴 곰팡이가 자라고 있었다. 그 뒤로 과학자들은 자연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제2의 대형 박테리아 킬러를 찾아내려 애썼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곤충·해조류, 치어의 점액, 아일랜드의 비소가 풍부한 흙, 심지어 화성의 토양 등이 내성 박테리아도 죽일 만한(하지만 인체에는 안전할 수 있는) 물질의 새로운 공급원으로 꼽힌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의 한 연구팀은 완전히 새로 인공 박테리아를 개발하려 한다. 그것을 개조해 새로운 항생제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의사들은 또한 새로운 내성 균주의 발달을 둔화시키는 방법으로 기존의 항생제를 최대한 활용하려 노력한다. 그러려면 슈퍼버그의 진화를 촉진하는 항생제의 과도한 남용을 줄여야 한다. 한 지역의 내성균이 종종 다른 지역에서 건너오는 경우가 많아 전 세계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개도국에서 위협적인 박테리아가 발생해 미국으로 건너오는 일이 잦아진다고 코네티컷대학의 버내크 감염예방학과장은 설명한다. 조사에 따르면 세계 대다수 지역에서 항생제가 지역사회 약국에서 처방도 없이 간단히 유통됐다. 그에 따라 2000~2015년 글로벌 항생제 사용이 65%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내성균이 세계 여행자 수백만 명의 뱃속에 들어앉아 세계 각지를 아무런 저항 없이 돌아다닌다. “이런 나라들의 항생제 남용뿐 아니라 생활·환경 조건이 내성균의 세계적인 확산을 촉진 한다”고 그는 말한다. 환자들의 역할도 빠지지 않는다. 경미한 울혈, 뇨로감염 또는 잘 낫지 않는 상처에 항생제를 처방해 달라고 의사를 압박해 항생제 남용과 그에 따른 내성을 조장한다. 매사추세츠주 공중보건 당국은 10여 년 전부터 의사와 일반인 대상으로 항생제 사용을 줄이도록 캠페인을 벌여 4년간에 걸쳐 처방이 16% 감소하는 성과를 올렸다. 지금껏 대체로 지고 있던 큰 전쟁에서 어쩌면 작은 승리다.
이처럼 쉽게 예견할 수 있는 위기에 10여 년 전에 미리 대처하지 못한 탓에 심각한 질병과 사망의 물결이 확산하는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에볼라 같은 킬러 바이러스처럼 대대적으로 발생해 많은 사망자를 내는 수준에는 이르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내성균 감염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의료계·정부·업계가 컬럼비아대학 대장균 같은 내성균 감염을 퇴치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는 대대적인 노력에 당장 착수한다 해도(그런 기미는 거의 안 보이지만) 그 결실은 10여 년 뒤에나 보게 될 것이다.
- 데이비드 H. 프리먼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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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런 점에서 컬럼비아대학 대장균은 상당히 걱정스러운 문제였다. 지난 10~20년 사이 대장균이 내성을 키운 항생제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일부 감염 환자의 경우엔 신장과 뇌 손상을 포함하는 잠재적인 부작용을 가진 독성 항생물질 콜리스틴이 마지막 희망이다. 컬럼비아대학 대장균의 유전자 MCR-1에는 콜리스틴도 이겨내는 무서운 속성을 부여하는 돌연변이가 있었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감염대책반의 에리카 셰노이 부팀장은 “준비된 항생제 후보가 전혀 없다”며 “감염환자를 치료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온다”고 말했다.
1942년 나이트클럽 화재 피해자 13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페니실린이라는 기적의 실험약이 긴급 수송된 이래 의학자들은 100종 이상의 항생제를 새로 발견했다. 하나하나가 요긴하게 쓰였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대장균뿐이 아니다. 포도상구균·장내세균 그리고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의 약제내성 균주들이 꾸준히 항생제를 극복해 왔다. 한 조사에선 2007~2015년 내성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5배 증가했다. 최근 칸디다속 진균의 항생제 내성 균주가 뉴욕시와 시카고 병원들에 출현해 감염 환자 중 절반이 사망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연간 200만 명이 주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나 균류에 감염되며 그로 인한 사망자가 2만3000명에 달한다. 감염관리역학전문가협회(APIC)의 캐런 호프먼 대표는 “필시 훨씬 더 많을 것”이라며 “확실한 다제내성 미생물(multiresistant organisms) 보고체계가 없어 실제로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 헬스케어 시스템에서 이런 내성 세균 감염 환자의 치료에 드는 비용이 연간 30억 달러를 웃돈다.
이런 암울한 트렌드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예측에 따르면 약제내성 병원균으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가 현재의 연간 70만 명에서 2050년에는 1000만 명으로 늘어난다. 그때 가선 암·심장병·당뇨병을 제치고 인류의 최대 사망원인이 된다. 항생제 등장 이전에는 작은 자상, 충치 또는 통상적인 수술로도 박테리아에 감염돼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기적의 약’ 페니실린과 기타 항생제가 수년에 걸쳐 수많은 생명을 구하며 세상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기적의 약 시대가 막을 내리는 듯하다.
의사들은 대규모 감염을 막기 위해 내성균을 찾아내 분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부랴부랴 항생제 사용 기준을 강화해 병원균의 내성 발달을 늦추려 한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런 전략으로는 약간의 시간만 벌 수 있을 뿐이다. 현재로썬 아주 고령의 쇠약한 입원 환자들이 영향을 가장 많이 받지만, 위험이 확산되고 있다. 보스턴 소재 터프츠 메디컬 센터의 감염병 전문의 헬렌 바우처 박사는 “뇨로와 피부 감염을 일으킨 건강한 젊은이에게도 치료제가 없다”고 말했다. “장기이식 심지어 인공관절 치환 같은 일상적인 수술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모두에게 정말 걱정스러운 문제다.” 의료 전문가들은 완전히 새로운 감염 대처전략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들은 바이러스, 물고기 점액 심지어 외계 행성 등 색다른 곳에서 세균을 죽이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 유전체학과 기타 분야에서 얻은 통찰을 이용해 세균을 죽이고 그 확산을 막는 신기술을 개발하려 한다. 그리고 병원과 기타 박테리아 전염원의 관행을 재점검하면서 인체와 병원의 더 통합적인 박테리아 관리 전략을 도입한다.
이런 대안들이 유망한 듯하지만, 먼 미래의 이야기다. 문 앞에 몰려든 좀비 군단처럼 슈퍼버그들이 우리의 방어기제를 압도하기 전에 신무기를 개발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매사추세츠대학 약제내성 연구원 마거릿 라일리는 “다른 대안들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15년 전에 그래야 했다”고 말했다.
약제내성의 한 가지 문제는 병원균들이 신종으로 진화하는 속도가 놀랍도록 빠르다는 점이다. 인간은 15년 이상이 지나야 후손을 둘 만큼 성숙하는 반면 대장균 같은 병원균은 20분마다 번식한다. 인류가 수백만 년 걸렸을 진화 과정을 몇 년 만에 마칠 수 있다. 그런 진화에 약제를 견뎌낼 수 있는 유전적 속성의 획득이 포함될 수 있다. 항생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내성 병원균을 키우는 완벽한 실험실이다. 매사추세츠 병원의 셰노이 부팀장은 “새 항생제를 사용할 때마다 약 1년 뒤 첫 내성 병원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병원균이 내성을 갖게 되는 항생제를 대체할 만한 대안 약제가 거의 없다. 새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 약 20억 달러의 비용과 약 10년의 세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 투자를 감수할 만한 블록버스터 약품이 출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볼티모어 소재 존 스홉킨스 베이뷰 메디컬 센터의 조너선 제닐먼 감염병과장은 “새 항생제 개발의 포인트는 가능한 한 제한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회사가 왜 그런 시장을 겨냥해 신약을 개발하려 하겠는가?”
의학자들은 요즘 다른 접근법을 모색한다. 병원균과의 전쟁에서 진화론적 안목을 가진 생물학자를 모집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라일리 연구원은 1990년대 하버드와 예일대학에서 바이러스가 박테리아를 죽이고 박테리아끼리 서로를 죽이는 방법의 연구로 출발했다. 2000년 한 동료가 무심코 그 연구를 인체 건강에 응용할 길이 없는지 물었다. 그녀는 “그동안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문제에 몰두하게 됐다”고 말했다. 라일리 연구원은 그 뒤 20년 동안 인간의 내성균 감염 문제에 대한 바이러스 전쟁 전략의 적용을 조사해 왔다.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s)’로 불리는 바이러스들은 기본적으로 방어 단백질로 둘러싸인 유전 물질 덩어리다. 박테리아의 세포벽을 뚫고 들어가 유전기제를 점령해서 박테리아를 바이러스 생산 공장으로 탈바꿈시킨다. 라일리 연구원은 또한 박테리아가 때때로 먹이를 차지하려고 다른 박테리아를 어떻게 죽이는지도 연구한다. 박테리아 군집은 때때로 ‘박테리오신(bacteriocins)’이라는 독성 단백질을 생성해 경쟁자를 밀어낸다.
라일리 연구원의 사명은 위험한 박테리아를 죽일 뿐 아니라 유익한 세균을 보호하는 것이다. 각 인체에 서식하는 약 400조 개의 박테리아 중 대다수가 유익하거나 무해하다. 그중 1만 분의 1%만이 잠재적으로 유해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페니실린·시프로플록사신·테트라사이클린처럼 흔히 처방하는 ‘광범위한’ 항생제는 좋든 나쁘든 가리지 않고 모든 박테리아를 전멸시킨다. 내성균을 키울 뿐 아니라 환자에게 문제를 안겨준다. 라일리 연구원은 “항생제는 감염원에 수소 폭탄을 던지는 격”이라며 “체내 박테리아의 절반 이상을 죽이는데 건강한 박테리아가 사라지면 비만·우울증·알레르기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반면 박테리오파지와 박테리오신은 이론상 환자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균 군집만 제거하도록 조정할 수 있다. 정상적인 세균군집을 해치거나 내성균이 번식할 수 있는 온상을 조성하는 일은 전혀 없다.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의 바이오테크 업체 임뮤셀이 개발한 박테리오신은 젖소의 유선염(젖샘의 염증)을 치료한다. 낙농업계에 한 해 20억 달러의 손실을 안겨주는 질병이다. 라일리 연구원은 자신의 연구소 같은 곳에서 거의 모든 종류의 인체 병원균 감염 또한 조준 공격하도록 박테리오파지와 박테리오신을 개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 내성을 키울 위험은 거의 없다. 그녀는 “20억 년 전에 진화한 안정적이고 강인한 살상 메커니즘”이라고 말했다. 여러 건의 박테리오파지 요법 임상시험이 미국 포틀랜드, 동유럽의 조지아, 방글라데시에서 성공했다. 서방에선 족부궤양의 박테리오파지 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더 중증 감염에 대해 진행 중인 시험은 없지만,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비상사태 선언에 따라 캘리포니아주의 중증 다제내성균 감염 환자의 박테리오파지 치료에 성공한 뒤로 박테리오파지 치료제 개발을 연구하는 미국 의학자가 많아졌다. 라일리 연구원은 이 중 한두 건이 앞으로 2~3년 이내에 시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다제내성 결핵 치료제와 낭포성섬유증 환자의 폐 감염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박테리오신은 한참 뒤져 있다. 미국 정부는 이들 대안 요법 개발 노력에 2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암 연구자들은 면역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약을 널리 조사한다. 그리고 이들 면역요법이 쇠약한 환자들 몸에 자리 잡으려는 내성균을 퇴치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는 인간 항체를 젖소를 비롯한 동물에서 만들어냈다.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대학 부속 브리검여성병원은 약제내성 감염 환자를 살리기 위한 비상대책으로 항체와 항생제를 혼합해 주사했다고 보고했지만,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 밖에 감염 환자를 대상으로 이런 요법을 시험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과학자들은 내성 포도상구균 감염과 기타 내성균 백신도 연구 중이지만, 이들도 연구에 지나지 않는다. 코네티컷주 파밍턴에 있는 코네티컷대학 헬스 메디컬센터의 데이비드 버내크 감염예방학과장은 “이들 비항생제 치료법은 아직 조사 초기 단계지만 새로운 대안을 계속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단히 긴박한 문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유망한 솔루션을 임상시험과 상용화 단계로 진전시키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까? 거의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터프츠대학의 바우처 박사는 말한다. 정부는 연구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지만, 그 연구를 약품과 도구로 만들어내려는 민간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수백만 명이 복용하거나 1회분 가격이 수만 달러에 달할 가능성이 없는 약품으로 제약회사들이 이익을 남길 수는 거의 없다고 바우처 박사는 말한다. “경제성이 없다”는 의미다.
항생제가 효과적일 때는 정말 기적의 약이지만, 현재의 문제는 일정 부분 의료계가 거기에 너무 많이 의존한 데서 비롯됐다. 의사들은 귀감염·인후염·뇨로감염에 항생제를 처방한다. 내과의들은 수술 후 감염 예방에 항생제를 사용한다. 박테리아가 내성을 기를 수 있어 박테리아의 확산을 관리하고 감염에 대처하는 전체적인 접근법의 일환으로 항생제를 사용하는 방식이 가장 합당하다. 항생제의 유용성이 떨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의료 전문가들은 요즘 다면적인 전략으로 박테리아를 저지한다.
예방조치를 강화하고 표적 항생제를 이용해 잠재적인 감염 급증의 탐지와 대응에 더 신속히 착수할수록 감염병 유행을 둔화 또는 예방할 수 있다. 개발 중인 새 검사법을 이용하면 환자 또는 주위에서 발견되는 모든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보건 당국에서 신속하고 저렴하게 확인할 수 있다. 셰노이 부팀장은 “모든 내원 환자를 대상으로 모든 병원균의 분자 검사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짚더미에서 바늘 찾는 격이다. 그러나 고위험 환자들을 신속히 검사할 수 있다면 적절히 조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150년 전에 개발된 박테리아 유행의 표준검사 기법보다는 분명 진일보하는 셈이다. 감염 전문의들은 병원에 내성균이 발생할 때 환자들 사이에 퍼뜨리지 않고 억제하는 데도 초점을 맞춘다. 미국 병원의 전체 환자 중 약 5%가 ‘원내(nosocomial)’에서 병균에 감염된다. 그 과정은 뻔하다. 병원은 면역체계가 약화하고 각종 상처와 자상을 입은 병자가 밀집한 곳이다. 의료 관계자들이 모든 병실을 회진하며 똑같은 손과 도구로 끊임없이 환자들을 찌르고 누른다.
인구 고령화와 새 의료기법으로 환자들이 한층 더욱 취약해졌다. 존스홉킨스의 제닐먼 감염병과장이 실시한 비공식 조사에선 조사 대상 환자의 절반 이상이 체내에 일반적인 감염원인 임플란트를 해 넣었다. “요즘 병원의 환자들은 사상 어느 때보다 훨씬 병약하다”고 그는 말한다. 감염관리역학전문가협회의 호프먼 대표는 “조사에 따르면 병원에서 올바른 예방조치를 따르지 않는 빈도가 평균적으로 절반에 달한다”며 “우리의 가장 큰 골칫거리”라고 말했다.
병원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쓰레기통 모양의 로봇을 이용해 자외선으로 벽을 소독하는 곳이 많다(자외선이 인체에도 해로워 사람들을 외부로 내보내야 한다). 시카고 남쪽 리버사이드 메이컬 센터에선 제넥스라는 회사의 로봇 2대로 하루 30여 개 병실을 소독한다. 탁상과 의류 같은 표면에 박테리아가 들러붙지 않는다면 병원의 청결 유지가 쉬울 것이다. 콜로라도주립대학 생의학 엔지니어 멜리사 레이널즈는 새로운 박테리아 내성 소재를 개발 중이다. 헬스케어 종사자의 의류와 기타 병원 자재·표면에 처음부터 세균이 달라붙지 않는다면 소독할 필요도 없다. 박테리아 퇴치는 우연한 기회에 레이널즈 연구원의 사명이 됐다. 그녀는 의사들이 환자의 동맥을 벌리는 데 사용하는 메쉬(그물망) 내의 응고를 막는 방법을 조사하고 있었다. 메쉬에 구리 나노결정 코팅을 입혔더니 혈액세포가 표면에 달라붙지 않는 듯했다. 박테리아도 나노결정 코팅에 달라붙지 않았다. 그 뒤 그녀 실험실의 한 학생이 놀라운 발견을 했다. 면직물을 나노결정 용액에 담가 박테리아가 천에 달라붙지 않게 하면 어떨까? 레이널즈 엔지니어는 “강한 항생물질의 특성을 가진 신소재들을 발견했다”며 “그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박테리아 방지 의류 아이디어는 지금까지 일련의 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녀는 “가공 처리된 천을 온갖 박테리아에 여러 차례 노출했는데 전혀 달라붙는 게 없었다”며 “메커니즘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온갖 박테리아에 효과적인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형 의료용품 업체와 협력해 그 나노 결정을 싸게 제조공정에 통합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현재 그녀는 스테인리스스틸·페인트·플라스틱 등 병원에서 사용하는 그 밖의 다양한 소재에 나노 결정을 통합하는 방법을 조사하고 있다. 이처럼 가공 처리된 소재는 일반 살균제로 씻어낸 기존 병원의 표면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박테리아가 생기지 않는다고 그녀는 말한다. 박테리아를 막는 또 다른 잠재적인 무기로 레이저도 있다. 퍼듀대학 생물학자 모하메드 셀렘 연구팀은 혈액 샘플에서 감염성 박테리아를 신속히 찾아내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샘플에 다양한 색깔의 레이저광을 쏘는 방식을 이용했다. 그 과정에서 특정한 약제내성 박테리아에 약한 청색 레이저광을 쏘았더니 몇 초 뒤 금색에서 흰색으로 색깔이 바뀌었다. 이들 ‘광퇴색(photobleached)’ 세균 중 일부는 죽었고 나머지도 크게 힘을 잃고 일반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잃었다. 알고 보니 청색광이 박테리아 외막의 색소에 타격을 줬다. 셀렘 연구원은 “특정 색소에만 영향을 미친다”며 “다른 어떤 세포도 해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셀렘 연구팀은 현재 다른 내성균을 겨냥해 레이저광의 색깔을 조정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성공할 경우 의료 관계자들이 손전등 크기의 레이저로 환자 피부의 위험한 박테리아를 안전하게 죽이거나 병원을 소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의료 종사자의 피부와 의류에 레이저를 쏘아 감염의 확산을 저지할 수도 있다. 연구팀은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셀렘 연구원은 위험한 중증 내성 혈액 감염에도 레이저광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혈액순환 장치에 환자를 연결해 혈액이 장치를 통과할 때 레이저광을 쬐는 방법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환자의 혈액을 뽑아내 소독한 뒤 환자의 몸에 돌려주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항생제를 거의 포기했지만, 과학자들은 새 항생제 발견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항생제 혁명은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휴가를 떠났다가 영국 런던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왔을 때 시작됐다. 열린 창문 곁에 놓아뒀던 접시에서 기이하게 생긴 곰팡이가 자라고 있었다. 그 뒤로 과학자들은 자연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제2의 대형 박테리아 킬러를 찾아내려 애썼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곤충·해조류, 치어의 점액, 아일랜드의 비소가 풍부한 흙, 심지어 화성의 토양 등이 내성 박테리아도 죽일 만한(하지만 인체에는 안전할 수 있는) 물질의 새로운 공급원으로 꼽힌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의 한 연구팀은 완전히 새로 인공 박테리아를 개발하려 한다. 그것을 개조해 새로운 항생제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의사들은 또한 새로운 내성 균주의 발달을 둔화시키는 방법으로 기존의 항생제를 최대한 활용하려 노력한다. 그러려면 슈퍼버그의 진화를 촉진하는 항생제의 과도한 남용을 줄여야 한다. 한 지역의 내성균이 종종 다른 지역에서 건너오는 경우가 많아 전 세계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개도국에서 위협적인 박테리아가 발생해 미국으로 건너오는 일이 잦아진다고 코네티컷대학의 버내크 감염예방학과장은 설명한다. 조사에 따르면 세계 대다수 지역에서 항생제가 지역사회 약국에서 처방도 없이 간단히 유통됐다. 그에 따라 2000~2015년 글로벌 항생제 사용이 65%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내성균이 세계 여행자 수백만 명의 뱃속에 들어앉아 세계 각지를 아무런 저항 없이 돌아다닌다. “이런 나라들의 항생제 남용뿐 아니라 생활·환경 조건이 내성균의 세계적인 확산을 촉진 한다”고 그는 말한다. 환자들의 역할도 빠지지 않는다. 경미한 울혈, 뇨로감염 또는 잘 낫지 않는 상처에 항생제를 처방해 달라고 의사를 압박해 항생제 남용과 그에 따른 내성을 조장한다. 매사추세츠주 공중보건 당국은 10여 년 전부터 의사와 일반인 대상으로 항생제 사용을 줄이도록 캠페인을 벌여 4년간에 걸쳐 처방이 16% 감소하는 성과를 올렸다. 지금껏 대체로 지고 있던 큰 전쟁에서 어쩌면 작은 승리다.
이처럼 쉽게 예견할 수 있는 위기에 10여 년 전에 미리 대처하지 못한 탓에 심각한 질병과 사망의 물결이 확산하는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에볼라 같은 킬러 바이러스처럼 대대적으로 발생해 많은 사망자를 내는 수준에는 이르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내성균 감염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의료계·정부·업계가 컬럼비아대학 대장균 같은 내성균 감염을 퇴치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는 대대적인 노력에 당장 착수한다 해도(그런 기미는 거의 안 보이지만) 그 결실은 10여 년 뒤에나 보게 될 것이다.
- 데이비드 H. 프리먼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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