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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위드 위스키

워킹 위드 위스키

스카치 위스키의 본고장 돌아보는 ‘위스키 워크’, 스코틀랜드 유명 양조장 120여 곳에서 시음과 주변 관광 즐길 수 있어
사진:GETTY IMAGES BANK
세계 곳곳의 유명 포도원을 돌아보는 와인 투어도 좋지만 요즘은 스카치위스키의 본고장을 여행하는 ‘위스키 워크(whisky walks)’가 관심을 끈다. 타탄 킬트(tartan kilt, 전통적으로 스코틀랜드 남자들이 입던 격자무늬 모직 스커트)의 땅인 스코틀랜드는 언제나 인기 여행지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다양한 스카치위스키를 맛보려는 특별한 목적을 지닌 여행객이 늘어난다.

스카치위스키는 스코틀랜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부터 있었다고 말할 만큼 역사가 길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업으로 자리 잡은 건 위스키가 합법화되고 수익성이 있다고 인식되기 시작한 19세기에 와서였다. 오늘날 스코틀랜드에는 캠벨타운, 하이랜드, 아일라 섬, 로우랜즈, 스페이사이드 등 5개 지역에 걸쳐 120개가 넘는 위스키 양조업체가 있다.

미국에서 위스키 르네상스가 계속되면서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사업은 더욱 번창하고 있다. 최근엔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지에 위스키 전문 바들이 문을 열어 좋은 술을 마시려는 밀레니엄 세대 고객을 끌어모은다.

위스키 르네상스는 자연스레 그 술의 제조과정을 살펴보려는 여행 수요로 이어졌다. 스카치위스키 협회(SWA)에 따르면 지난해 스카치위스키 양조장을 찾은 여행객이 190만 명(2017년엔 160만 명)에 달했다. 그중 다수가 독일과 미국에서 왔으며 올해는 방문객 수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위스키 투어 사업이 이렇게 번창하다 보니 위스키 업체 라가뷸린(Lagavulin)을 소유한 대표적인 증류주 기업 디아지오는 지난해 향후 3년 동안 스카치위스키 투어 여행객에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1억9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스카치 위스키의 주재료인 보리.
난 이 스카치위스키 붐을 직접 느껴보려고 지난 5월 아일라 섬으로 향했다. 스코틀랜드 서해안 헤브리디스 제도 남부의 바람이 거센 이 작은 섬은 아일랜드에서 북쪽으로 40㎞ 지점에 있다. 아일라는 블루벨(청색이나 흰색의 작은 종 모양 꽃이 피는 식물)이 가득 핀 들판과 오래된 숲, 끝없이 이어지는 자연 그대로의 해변이 아름다운 섬이다. 이 섬에는 유명한 증류주 업체 9곳이 있는데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명성이 높고 값비싼 싱글 몰트 위스키가 여기서 생산된다.

글래스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일라 섬에 내리자마자 서쪽 로크 인달 협만에 있는 현대 수제 위스키의 명가 브루크라디(Bruichladdich) 양조장을 찾아갔다. 브루크라디는 역사가 18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2001년 와인 유통업자 마크 레니에와 사이먼 코글린이 인수하기까지 6년 넘게 문을 닫았었다. 레니에와 코글린은 소량생산 체제를 유지하기로 마음먹고 빅토리아 시대의 장비와 저장고를 재정비했다. 이들은 수제 위스키 생산 방식을 고수하면서 저장 통에 변화를 줬다. 스카치위스키를 숙성시킬 때는 버번이나 셰리를 저장하던 통을 쓰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양조장에서는 포도원에서 쓰던 와인 통을 이용했다.

이 모험은 큰 성공을 거둬 브루크라디는 2012년 레미 쿠엥트로에 약 7400만 달러에 팔렸다. 이전의 크래프트 증류 방식을 유지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현재 브루크라디는 아일라 섬 지방 정부에 이어 이 섬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고용주다. 이 양조장은 샘물과 보리 등 현지에서 나는 재료를 주로 이용한다. 보리는 ‘흙의 대부(Godfather of Soil)’로 불리는 현지 농부 제임스 브라운에게 공급받는다.이 여행이 꽤 흥미진진할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위스키에 관해 아는 거라곤 갈색빛이 나고 맛이 좋다는 정도뿐이라면 여행의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떠나기 전 공부를 좀 해두는 게 좋다. 여기서 내가 증류전문가 아담 한나트에게 배운 기초상식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아일라 섬의 라가뷸린 디스틸러리. 아일라 섬의 유명 양조장 9곳에서 다양한 위스키를 맛보고 해변을 걸으면서 ‘위스키 워크’를 즐길 수 있다 (위 사진). 브루크라디 디스틸러리의 브루크라디 위스키.
우선 위스키 시음은 와인 시음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테루아르(술이 만들어지는 자연환경)와 재료, 과일이나 곡물이 알코올로 변하는 과정, 최종 제품의 맛에 관심을 집중하는 건 같다. 그러나 와인은 시음한 뒤 뱉어내지만 위스키는 삼킨다는 차이점이 있다. 스카치위스키는 천천히 조금씩 음미하면서 마셔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입안에 머금으면 혀에서 맛이 살아나고 삼킬 때 목을 뜨겁게 데우면서 부드럽게 넘어간다.

한나트는 이렇게 설명했다. “좋은 위스키는 맛이 천천히 살아나며 입안에 머금고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다른 맛이 난다. 또 같은 상표가 붙은 제품이라도 통마다 맛이 다르다. 아일라 섬에는 여러 개의 소생태계(micro ecosystem)가 있다. 우리는 모든 공정을 손으로 하고 재료를 이 섬 안에서 그때그때 구할 수 있는 걸로 쓰기 때문에 통마다 다른 맛이 난다. “

그날 난 그 양조장의 이름과 똑같은 브루크라디 위스키와 포트 샬로트(Port Charlotte) 위스키를 맛봤다. 브루크라디는 맥아를 훈연할 때 토탄을 쓰지 않았고, 포트 샬로트는 토탄을 많이 써서 만들었지만 둘 다 복숭아 같은 과일 향이 진하게 풍겼다. 또 이 양조장이 세계에서 가장 토탄 향이 많이 나는 위스키라고 자부하는 옥토모어(Octomore)도 마셔봤다. 예상했던 만큼 토탄 향이 강하진 않았지만 입안에 오랫동안 맴돌았고 목으로 넘길 때 거슬리지 않았다. 맛이 아주 좋았다.다음 날은 농부 제임스 브라운의 차를 얻어 타고 그가 일하는 현장을 따라다녔다. 토탄을 캐고, 샘에서 물을 퍼 올리고, 소 떼에게 먹이를 줬다. 브라운은 습지 쪽으로 차를 몰면서 토탄이 뭔지 설명했다. “토탄은 석탄처럼 식물이 땅속에 묻혀 열과 압력의 영향을 받아 탄화되면서 만들어진 광물인데 석탄보다 탄화 정도가 낮고 수분이 더 많다. 최근까지도 아일라 섬의 모든 주민이 겨울에 집을 난방하고 차를 끓이고 위스키를 훈연할 때 토탄을 썼다.”

아드벡 디스틸러리의 코리브레칸 화이트 위스키(왼쪽 사진), 브루크라디 디스틸러리의 저장고. 이 양조장에서는 위스키 저장용으로 포도원에서 쓰던 와인 통을 이용한다.
땅속에서 토탄 덩어리를 캐내는 작업은 매우 힘들고 위험할 수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층이 성글고 불안정해 어떤 지점으로 들어가면 늪처럼 빠져들 수도 있다. 다행히 브라운은 주변 지역을 잘 알고 있어서 우리는 무사히 그곳을 벗어났다. 그다음엔 브루크라디 위스키에 들어가는 물을 공급하는 지하 샘을 방문했다.

그다음 며칠은 아일라 섬의 다른 양조업체 8곳을 돌아다녔다. 다양한 위스키를 맛보고 자연 그대로의 해변을 걸으면서 그야말로 ‘위스키 워크’를 즐겼다. 포트 샬로트에서 자동차를 타고 남동쪽 해안을 돌아 황록색 숲과 13세기에 지은 성을 지나니 유명한 양조업체 3곳이 나타났다. 아드벡(Ardbeg)과 라가뷸린, 그리고 라프로이그(Laphroaig).
 [박스기사] 위스키 워크를 위한 팁 - 내 위스키 워크 체험을 바탕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팁 몇 가지를 소개한다


숙박:
아일라 하우스(Islay House) 호텔은 블루벨이 가득 핀 들판에 자리 잡은 18세기 건물로 로크 인달 협만이 바라다보여 전망이 뛰어나다. 라간 베이의 언덕에 있는 5성급의 마크리(Machrie) 호텔도 훌륭하다.



교통편: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많은 여행객이 글래스고에서 차를 렌트해 타고 가는 쪽을 선호한다. 드라이브하면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답지만 여정이 길고 강한 바람이 불어 운전이 쉽지 않다. 더구나 위스키 시음을 할 생각이라면 운전은 포기하는 게 마땅하다. 내가 했던 대로 글래스고의 킴튼 블라이스우드 스퀘어(Kimpton Blythswood Square)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비행기나 버스, 페리 편으로 아일라 섬까지 가서 택시를 이용하는 게 좋다. 섬의 택시기사 대다수가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터라 지역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다. 또 그들은 각 양조장의 위치를 잘 알아 효율적으로 이동하면서 도중에 풍경이 아름다운 곳들을 안내해줄 수 있다.



아일라 섬 이외의 위스키 명소:
스카치위스키 하면 아일라 섬을 제일 먼저 꼽지만 스코틀랜드에는 유명한 위스키 산지 4곳이 더 있다. 아일라 섬에서 가까운 캠벨타운은 양조장이 총 3곳으로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위스키 산지다. 스프링뱅크(Springbank)·글렌 스코샤(Glen Scotia)·글렌가일(Glengyle) 양조장은 훌륭한 몰트 위스키로 이름이 알려졌다. 하이랜드는 스코틀랜드 최대의 위스키 산지로 북부 산악지대에 달모어(Dalmore), 글렌모란지(Glenmorangie), 브로라(Brora) 등 47곳의 양조장이 있다. 로우랜즈는 스코틀랜드 최남단 지역으로 위스키 맛이 가볍고 달콤한 게 특징이다. 오켄토션(Auchentoshan), 로즈뱅크(Rosebank), 글렌킨치(Glenkinchie) 등이 유명하다. 스페이사이드는 거친 하이랜드와 애버딘셔의 농장들 사이에 있다. 지명은 스페이 강에서 따왔다. 스코틀랜드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지역에 있는 스페이사이드는 글렌리벳(Glenlivet)과 글렌피딕(Glenfiddich), 매캘란(Macallan) 등 유명한 양조장이 있고 ‘몰트 위스키 트레일(The Malt Whisky Trail)’이라는 위스키 워크 코스가 있다.

- 폴라 프롤리크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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