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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관심의 ‘동의’와 ‘거부’ 사이

성적 관심의 ‘동의’와 ‘거부’ 사이

교수와 제자의 관계가 도를 넘을 때 피해자는 언제 어떻게 자신의 의사 밝혀야 할까



도나 프레이타스 박사는 ‘타이틀 나인(Title IX, 미국 교육계에서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제정된 법률)’ 연구자인 동시에 대학에서 ‘이성 관계 속의 성 동의’를 주제로 강연하는 강사다. 다음은 그녀의 회고록 ‘성 동의: 원치 않는 관심의 체험기(Consent: A Memoir of Unwanted Attention)’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회고록에서 그녀는 대학원 시절 논문 지도교수로서 멘토가 돼줄 것으로 기대했던 한 신부로부터 원치 않는 성적 관심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스토킹 당한 경험을 돌이킨다. 그녀는 또 성 동의가 무엇인지, 대학에서 교수와 제자 사이, 또는 직장에서 부하직원과 상사 사이에서 그 동의가 어떻게 복잡해질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프레이타스는 회고록에서 처음엔 그 교수가 자신의 연구에 관심을 보여 고마운 마음에서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고 돌이킨다. 그러다가 그 교수의 관심이 갈수록 부적절하고, 심지어 사악한 행동으로 발전했다. 결국 그 교수는 그녀에게 매일 수많은 편지를 보냈고, 툭하면 집이나 연구실로 전화를 걸었으며, 예고도 없이 그녀의 아파트에 불쑥 나타났다. 그녀는 그가 창을 통해 아파트를 들여다보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그녀에게 함께 연극을 보러 가자고 졸랐고, 주말이면 멀리 조용한 곳에 놀러 가자고 집요하게 종용했다. L신부(지금도 그녀는 그 교수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나이 차이가 큰 젊은 여성과 연애하는 성직자에 관해 자신이 쓴 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계속 물었고, 그녀에게 키스하려 했으며, 급기야 말기 투병 중인 그녀의 어머니에게도 연락하기 시작했다.
프레이타스는 정서적으로 괴롭힘에 시달렸다. 그녀의 물리적인 공간이 끊임없이 침범당했다. L신부는 프레이타스에게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강요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미래는 그의 평가와 직접 연결돼 있었다. 그는 프레이타스가 받는 수업 중에서 여러 필수 과목을 가르쳤다. 그녀의 박사 논문 통과와 미래의 교수직 추천에 그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프레이타스는 처음엔 자신의 불편한 느낌을 믿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한다. 그의 행동이 멘토로서 갖는 관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L신부의 도를 넘는 관심이 갈수록 집요해지면서 그녀는 그의 그런 행동이 갖는 강박적인 면을 더는 부인할 수 없었다.
결국 대학 당국에 신고하자 학교 측은 그 교수를 징계하겠다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학교 측은 ‘타이틀 나인’의 규정에 따라 법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180일 만기 시효가 지날 때까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었다. 결국 변호사를 동원해 그녀는 L신부와 접촉하지 않고 졸업할 수 있도록 학교 측과 합의했다.
그렇다면 L신부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교수 생활을 계속했다. 프레이타스는 졸업 후 강사가 된 직후 여러 학회에서 그를 봤다. 그녀가 교수직을 포기하고 저술과 강연에 전념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물론 L신부는 무슨 이유인지 설명도 없이 그녀를 교수로 추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프레이타스는 이 책을 왜 썼을까? 그녀는 “계속 침묵하는 것은 터무니없으며 내 마음에 독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레이타스는 괴롭힘이나 스토킹을 의무적으로 신고하는 정책은 오히려 피해자를 움츠러들게 한다고 설명한다. / 사진:LITTLE, BROWN PUBLISHING, GETTY IMAGES BANK
 혀를 잘라 내주고 얻은 해방
이 이야기는 원칙상 내가 해선 안 된다. 내 멘토가 나를 더는 괴롭히지 않도록 대학 당국이 막아주고, 또 약간의 피해 배상금을 받는 대가로 나는 지금 이야기하려는 여러 사건이 일어난 적 없는 체하기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기로 합의했다. 영원히 입을 다물겠다고 말이다.

당시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에 서명해야 하는지에 개의치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L신부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의 멘토가 돼야 마땅했을 남자, 대학원 시절부터 그 이후의 직업적인 장래까지 나의 길잡이가 돼줘야 했을 남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 남자로부터 해방될 수만 있다면 그들이 내게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안겨줄 생각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이 원했던 건 내 목소리였다. 말도 안 되지만 나는 그들이 원하는 내 목소리를 기꺼이 넘겨줬다. 대학 사무실에서 나의 혀를 잘라내 그것을 넘겨받는 것이 본업인 여성에게 건네줬다. 훤한 대낮에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스스로 내 혀를 잘라냈다. 피가 흐르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옆 교실에서 공부하며 읽은 여권운동 관련 책에 따르면 나는 여성이 가진 가장 중요한 것을 넘겨줬다.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나는 나 자신을 상대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대학 사무실에 갔을 때도 학생의 연약한 몸을 희생시켜서라도 학교와 교수를 보호하려는 매정한 사람들을 내가 마주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내가 박사 학위를 받으려고 입학한 이 대학, 나에게 희망과 빛의 등대가 돼야 마땅한 이 학교가 스토킹의 두려움 없이 수업을 받고 싶다는 여학생의 가장 기본적인 소원을 이뤄주는 대가로 그 여학생에게 목에서 성대를 제거하라고 요구할 정도로 저질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사실 그런 경험을 한 게 나만이 아니다. 미국 어디서든, 어떤 대학이나 직장이든, 심지어 좋은 일을 하고 세상을 더 낫게 만든다고 번드르르하게 자랑하는 회사에도 피가 철철 흐르는 여성의 혀로 가득한 파일 캐비넷이 있다. 캐주얼한 복장, 정장, 패션 감각 있는 스커트 차림을 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우리에게서 넘겨받은 혀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완전히 적법하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일말의 동정심 없이 원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우리를 불구로 만들면서 늘 하던 일인 듯이 행동한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그들에게 몸을 맡긴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성의 혀는 그들에게 상당히 위험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들이 우리에게 혀를 그냥 갖고 있도록 허용하면 말이다. 기관과 직장, 회사는 그런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에게 혀를 잘라내 넘겨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이 우리 몸에서 캐낸 그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갖기 위해 거액을 지불하는 것도 마다치 않는 이유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이 그 혀를 되찾는 것을 보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나는 되찾은 내 혀에 적응하는 중이다. 내 혀가 아직도 입 안에서 두툼하고 생소하게 느껴진다.
 “이 부근에 올 일이 있었어”
프레이타스의 교수는 그녀가 등교하면 주차장에서 그녀를 지켜봤고 사전 통보 없이 그녀의 집 앞에 불쑥 나타났다. / 사진:GETTY IMAGES BANK
L신부가 내 아파트 밖에서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창의 높이가 보도와 같은 반지하 아파트였다. 나는 현관문에 달린 우편함에 든 우편물을 가지러 갔다가 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는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소를 짓지도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추운 날이었다. 2월 말이나 3월 초였다. 그는 그냥 그곳에 서서 작은 유리창을 통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를 만나러 온다는 얘기도 없었고, 그날 그 시간에 내가 집에 있는지, 내 집에 들러 안부를 물어도 되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그곳에 왔다.

그는 내 아파트에 들어오면서 “이 부근에 올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날 조지타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했다는 설명이었다. 어쩌면 다른 신부들과 만남이었을 수도 있고, 필요한 책을 대출하러 도서관에 간 것일 수도 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볼 일이 전혀 없이 단지 내 아파트 부근에 오기 위해 핑계를 댔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참 뒤에야 내가 그에게 아파트 주소를 알려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기가 쉽지 않은 곳에 있는 아파트였기에 길 안내가 필요했을 텐데 난 우리 집이 어디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대학원에 있는 내 개인 서류에서 주소를 찾아본 게 분명했다. 나의 담당 교수였고 당시엔 학과장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서 주소를 찾아 메모지에 옮겨 적은 다음 정확한 위치를 알아보려고 동네를 샅샅이 돌아봤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그렇게 찾아올 수가 없었다. GPS나 구글 맵이 나오기 한참 전인 1990년대였기 때문이다.
 생존자이면서 피해자 ‘이중 정체성’
벳시 디보스 교육장관은 대학이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권리도 보호해야 한다며 ‘타이틀 나인’의 개편을 시사했다. / 사진:AP/YONHAP
대학원에서 1년이 지나갔다. L신부는 집에 있는 내게 툭하면 전화를 걸었다. 반지하 아파트에서도 그랬고, 새집으로 옮겼을 때도 그랬다. 내가 이사를 해도 어떻게 알았는지 새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는 새 주소만이 아니라 다음 학기의 내 수업 시간표까지 알고 있었다. 이사한 뒤에도 그가 계속 전화를 걸어오자 나는 지나친 집착이고 스토킹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더는 생각하지 않고 덮어두려고 노력했다. 그해 여름 나는 아주 바빴다. L신부는 내게 자주 편지를 보냈다. 새 주소로도 편지가 배달됐다. 끊임없이 배달되는 그의 편지에 나는 익숙해졌다. 처음엔 편지를 읽었다. 그다음은 받아서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고는 내 새 사무실의 창턱에 따로 쌓아뒀다.

그는 전화도 계속했다. 때로는 매일, 어떤 때는 하루 한 번 이상 전화를 걸었다. 편지도 늘어났다. 때로는 하루 세 통도 받았다. 난 더는 그의 편지를 즉시 개봉하지 않았다. 대다수는 아예 뜯지도 않았다. 그냥 사무실 창턱에 계속 쌓아 올렸다. 그렇게 쌓인 편지가 100통 가까이 됐다. 거의 전부 열어보지도 않았다. 그 편지들이 창턱 여기저기로 흘러내렸다. 그곳에 있는 그 편지들을 보기가 너무 싫었다. 그 편지들이 마치 나를 조롱하는듯했다. 결국 산더미를 이룬 그의 편지들을 감당할 수 없어 쓰레기통을 창턱 아래로 가져와 한쪽 팔로 편지들을 쓸어 쓰레기통에 담았다.

여러 면에서 나는 한 사람이 아니다. 같은 몸, 같은 심장, 같은 마음, 같은 영혼을 가진 두 여자로 분리돼 있다. 한쪽은 공적으로 자신만만하고 권위 있는 나다. 박사 학위를 가진 연구자이자 강사, 저술가다. ‘타이틀 나인’과 성폭력을 포함해 대학 교내 성문제에 관한 나의 연구물은 널리 인용되고 있다.

다른 한쪽은 여전히 숨겨진 나다. 불안해하고, 2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나의 삶을 부끄러워하며, 그 일이 그토록 오래 지속되도록 내버려 뒀고, 나도 그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나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나다. 이런 나의 사회생활은 L신부에 의해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얼룩졌다. 그의 자제할 수 없는 성향, 부적절한 행위를 그만둘 수 없는 성향으로 내 삶은 영원히 달라졌다. 그는 시선은 늘 나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시선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나는 생존자이면서도 피해자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 이런 이중 정체성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모두 다 내가 대변할 수는 없지만 나 자신에 관해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피해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오로지 생존자로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몸을 움츠리는 피해자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또 가장 암울한 순간의 내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모든 것은 그의 잘못이며, 그가 나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고 말이다. 내가 나를 탓하진 않는다고 말이다. 나는 연극에서 맡은 역할의 대사를 연습하듯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계속 연습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내가 실제로 믿는 때는 잠깐뿐이다. 나머지 시간 동안 내 마음은 의구심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동료들과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당신이 가르치는 여학생 한 명과 함께 앉아 있고, 그녀로부터 당신의 경우와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녀에게 뭐라고 말할 건가? 비록 부분적이라도 그녀의 잘못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없다”가 그 질문의 당연한 답변이다. 나는 내 학생에게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여성의 그런 경험에 관해 들으면 나는 그녀는 전혀 잘못이 없다고 믿는다.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잘못이 없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런데 내가 나의 경우를 생각하면 왜 명백하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걸까? 왜 나는 수치스러운 피해자에서 자랑스러운 생존자로 가뿐이 올라설 수 없을까? 서로 경쟁하는 이 두 개의 자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해결이 가능한 일이긴 할까?

지금 우리는 여성과 여자아이를 표적으로 삼는 성적 괴롭힘과 공격이 언제 어디서나 너무나 흔하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트라우마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동안 나타나는 자아의 분리를 헤아려야 할 필요가 있다. 피해를 본 여성은 자신에게 끔찍한 일이 없었다는 듯이 견뎌낼 수 있도록 훌륭한 연기자와 뛰어난 거짓말쟁이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두 개의 자아와 두 개의 뇌, 수년 동안 간직해야 할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데 따르는 개인적이고 직업적인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잘못한 사람이 자신일 수 있다는 느낌, 그것이 자아 인식에 주는 피해, 자신에 관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를 알 수 있는 능력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성 동의’를 아주 간단한 개념으로 만들었다. ‘노’라는 단 하나의 단어처럼 ‘동의’도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 우리는 자신과 서로를 속이고 있다. 누군가의 행동을 중지시키는 것이 ‘노’라는 단어 하나를 말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쉽다면, L신부의 행동이 그토록 오래 지속되진 않았을 것이다. 나의 경우엔 ‘노’라는 단어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때문에 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 대가를 나는 아직도 치르는 중이다.

내가 그 경험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동의’와 ‘거부’가 무한히 복잡하고 끊임없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두 사람이 서로 간의 관계에 얽혔을 때는 특히 그렇다.

- 도나 프레이타스



※ [이 글은 도나 프레이타스의 저서 ‘성 동의: 원치 않는 관심의 체험기(Consent: A Memoir of Unwanted Attention)’에서 발췌했다. Copyright ⓒ 2019 by Donna Freitas. Used with permission of Little, Brown and Company, New York. All rights reserved.]
 [박스기사] “더는 비밀 혼자 간직할 수 없었다” - ‘성 동의: 원치 않는 관심의 체험기’를 쓴 도나 프레이터스 인터뷰
사진 : NINA SUBIN


왜 지금 이 책을 내기로 결심했나?


‘대학 교내의 성 동의: 선언(Consent on Campus: A Manifesto)’이라는 책을 쓸 때 ‘성 동의’에 관한 나의 주장이 내가 대학원 시절 겪은 일을 상세히 되짚지 않고서는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이 내겐 큰 충격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나의 학문적인 연구와 캠퍼스 행동주의를 내가 오래전 겪었던 일과 연결하지 않았다. 그래서 랩톱에서 새 문서를 열어 쓰던 책과는 별도로 나의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더는 이 비밀을 혼자만 간직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은 어떻게 그 경험을 공개적으로 쓰고 강연할 수 있는가?


계속 침묵하는 것은 터무니없으며 내 마음에 독이 된다고 판단했다. 교수의 스토킹을 학교가 막아주는 대가로 내가 그런 일이 없었던 듯이 입다물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내가 그냥 받아들였던 게 잘못이었다.



현재 괴롭힘이나 스토킹을 겪고 있는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 터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의 판단을 믿을 수 있는 나의 능력을 문제의 교수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내가 그에게 가진 모든 의심이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고 의심하도록 나를 유도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내가 괜히 신경을 곤두세우는 걸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까 두려웠고, 또 그를 곤경에 처하게 하기도 두려웠다. 따라서 그러지 않으려면 혼자서만 생각하고 대처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솔직히 밝히는 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교내 괴롭힘이나 스토킹을 신고하는 문제와 관련해 여성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나는 의무적인 신고 정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겪는 일을 털어놓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무적인 신고는 대학이 기록을 유지하고 캠퍼스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처하도록 한다는 면에서 좋은 아이디어처럼 생각된다. 또 학교도 비밀을 유지하고 신고 과정이 어렵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이 겪지 않고서는 폭로하거나 신고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기 힘들다. 나의 경우 20여 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다 뭔가를 약간 추가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두려워진다. 그래서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일을 오히려 비밀로 간직할 가능성이 더 크다.



‘타이틀 나인’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교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과 성희롱, 성적인 괴롭힘에 학교가 대처하도록 하고 예방 교육을 하도록 의무화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의무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에 화가 난다. 또 캠퍼스 안에서 ‘타이틀 나인’을 실천하는 방식도 형편없다. ‘성 동의’와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투자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것이 ‘예스’는 ‘예스’, ‘노’는 ‘노’라는 식으로 아주 간단하게 생각한다. 또 학생들에게 ‘타이틀 나인’에 관한 교육을 한 번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고방식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성폭력을 근절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성 동의’의 진정한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



성직자의 아동 성학대와 관련해 가톨릭 교회 내부의 은폐가 드러났을 때 자신의 경험과 비슷하다고 느꼈는가?


내가 겪은 일이 가톨릭 성직자의 성학대 스캔들과 연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확신이 서진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나에게 일어난 일을 대학이 은폐한 것과 같은 수법을 사용했다. 내 경험이 그들에게 선례가 됐다고 생각하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근년 들어 ‘미투’ 운동이 그처럼 강한 힘을 얻은 이유는?


교내 성폭력이 수년 동안 시선을 끌면서 ‘미투’ 운동의 발판이 됐다고 생각한다. 영화 ‘헌팅 그라운드’, 또 컬럼비아대학에서 자신을 성폭행한 남학생의 처벌이 지지부진하자 이에 항의하고자 자신이 사용하던 침대 매트리스를 들고나와 교내에서 항의 퍼포먼스를 펼친 에마 설코위츠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나는 현재 좀 더 기다리며 지켜보자는 생각이다. 캠퍼스나 직장의 성폭력에 관한 공공 논의가 시작됐다. 이건 아주 중요하고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동안 우리가 모두 꼭꼭 숨겼던 이런 일을 밝히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현시점이 중대한 개혁의 시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은 많은 여성이 자신을 성적으로 공격한 사람이라고 지목하는 남자를, 또 그 자신도 그런 행동을 자랑하는 남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런 현실은 우리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말해준다.



앞으로 계획은?


수영하고, 요리하고, 먹고, 평생 좋아하는 사람과 어울려 지내고 싶다. 또 내 회고록의 제목이 너무 어둡고 뻔해 사람들이 제목을 물을 때 어떻게 더 잘 말해줄 수 있을지 생각 중이다. 지난 학기에 회고록 강의를 했는데 학생들에게 내 회고록 제목은 말해주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그 제목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 내년에는 내가 쓴 성인용 소설이 처음 나올 예정이다. 제목은 ‘로즈 나폴리타노의 아홉 개의 삶(The Nine Lives of Rose Napolitano)’이다.



회고록에서 밝힌 사건들 이후로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원치 않는 전화나 스팸 메일을 차단하는 앱을 사용하는가?


난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 아직도 똑똑한 ‘스마트폰’이 아니라 바보 같은 ‘덤폰’을 갖고 있다. 그래서 원치 않는 전화가 잘 걸려오진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아주 개인적인 성향으로 변했다. 소셜미디어가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연결성과 공개성은 내게 너무 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그래서 난 소셜미디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 메러디스 울프 샤이저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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