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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화된 증시의 새로운 위험

고도화된 증시의 새로운 위험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은 증권시장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한 세 명의 학자에게 돌아갔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명 중에 시카고대의 유진 파마 교수와 예일대의 로버트 실러 교수가 동시에 수상했다는 것이다. 우선 유진 파마 교수는 잘 알려진 효율적 시장 가설의 창시자이다. 이와 달리 실러 교수는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증권시장의 비효율성에 주목한 학자이다. 증권시장의 효율성을 주장한 학자와 비효율성을 주장한 학자가 동시에 수상한 것을 보면 증권시장의 움직임을 논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둘 다 모두 나름의 의미를 부여 받은 셈이고, 결론 내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도 확인이 된다.

시장 효율성은 논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면이 있지만, 파마 교수에 따르면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결국 증권의 가격이 해당 증권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모두 잘 반영하고 있느냐의 여부로 귀결된다. 과거 정보, 현재 정보, 그리고 심지어 내부 정보까지 다양한 정보가 적절하게 잘 반영돼 주가가 결정되면 주식시장은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주식시장이 효율적이라면 거꾸로 주식시장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모든 주요한 정보가 이미 주가에 반영돼 있는 상황에서는 누군가 정보우위를 가지고 수익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식가격은 항상 적정 수준으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정보가 반영됐다는 것은 ‘네가 먹을 것은 안 남아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월가에 진출한 파마 교수의 제자들은 인덱스 펀드 내지 지수 추종 전략을 탄생시켰다. 모든 종목이 적정 가격으로 형성돼 있다고 할 때 특정 종목에서 수익을 얻기 힘들지만 주식시장의 전체적 상승만큼 이익을 내는 것은 가능하다. 즉 대부분의 주요 종목을 사들여 인덱스펀드에 편입시키면 주식시장 전체가 상승한 만큼 이익을 낼 수 있게 된다. 이를 패시브(Passive) 투자라고 고 한다. 단어 자체에 소극적인 태도가 담겨있다.

미국식 농담 하나.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앞에 20달러짜리 지폐가 떨어져 있는데 아무도 줍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저 지폐가 진짜라면 누군가 벌써 주워갔지 저기 그대로 있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믿음이 너무 강한 바람에 먹을거리가 많은 주식시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핀잔이 담겨있는 농담이다. 비아냥거림이 살짝 섞이기는 했지만 새겨볼 가치는 있다.

실러 교수는 주식시장의 비효율성과 이상과열 현상을 주로 연구했다. 필자는 몇해 전 상하이포럼에서 실러 교수를 만나 대담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필자는 여러 질문을 던지던 중 실러 교수에게 주식투자를 하냐고 질문했다. 그는 서슴없이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어떤 종목이냐고 묻자 바이오헬스 분야라고 답했다. 매우 흥미로웠다. 주식시장의 비효율성과 이상과열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을 거꾸로 해석해보면 저평가 되거나 고평가 되는 주식이 많다는 의미가 된다. 이 경우 저평가된 종목을 골라서 투자하는 전략이 가능해지는데, 이를 액티브(Active) 투자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믿는 그룹의 투자전략은 패시브 투자 쪽에 더 비중을 두고, 비효율적이라고 믿는 그룹은 액티브 투자에 비중을 두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액티브보다는 패시브 위주의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패시브 투자 증가율이 압도적인 것은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된 주식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얘기도 된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이른바 로보어드바이저 같은 최첨단 분석도구를 동원해 각종 정보를 분석하고 가치평가를 하는 상황에서 정보의 비교우위를 확보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정 개인이 특정 종목에 대해 정보와 분석의 비교우위를 가지기는 힘들고 주식시장 효율성이 증대되면 액티브보다는 패시브 투자를 통해 전체 시장의 움직임을 노리는 것이 나아지는 셈이다.

물론 패시브 투자의 비중 증대도 위험한 면이 있다. 많은 펀드가 비슷한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는 경우 중요한 순간에 쏠림이 일어나면서 시장에는 불안감이 조성될 수도 있다. 과거에 쏠림현상이 시장 불안정성을 대폭 증대시킨 사례로는 포트폴리오인슈런스 전략을 들 수 있다. 이 전략은 옵션 이론에서 영감을 얻어 콜옵션델타 비율이 0%에서 100%까지 움직인다는 점에 착안했다. 예를 들어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한다고 가정하고 펀드 운용 시작 시점에서 옵션델타가 50%로 계산된다고 할 때, 일단 주식을 500억원어치 사들이고 나머지는 채권을 산다. 만일 주가지수가 상승해 옵션델타가 60%가 되면 600억만큼을 주식에 투입하고 거꾸로 주가지수가 하락해서 옵션델타가 40%가 되면 주식 편입액을 400억으로 줄인다. 옵션델타는 주가지수가 오를수록 커지기 때문에 주가지수가 상승하면 주식을 더 사들이고 거꾸로 주가가 하락하면 주식을 팔게 된다.

그런데 이런 전략은 혼자 실행하면 괜찮은데 많은 펀드가 나서서 함께 움직이면 시장에 충격이 온다. 주가지수가 상승하면 너도 나도 주식을 사들이면서 주가는 더욱 상승한다. 거꾸로 주가가 하락하면 다 함께 매도하는 바람에 주가는 더 떨어진다. 전략이 비슷한 펀드가 여럿 나오면 쏠림이 나타나고 이들의 움직임으로 시장이 거꾸로 영향을 받는다.

1987년 10월 19일 이른바 블랙먼데이 당일 다우존스는 하루에 20% 이상 하락했다. 주가가 떨어지면서 포트폴리오 인슈런스 전략을 추종하는 많은 펀드가 한꺼번에 주식을 매도하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충격이 큰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여기에 주가지수 선물의 영향까지 겹치면서 주식시장의 하락폭을 더욱 크게 부추겼다. 포트폴리오인슈런스 전략에 따라 움직인 투자자들은 선물과 현물시장을 오가면서 거대한 하락의 흐름을 연출해 냈고 시장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두 시장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동시에 폭락하는 현상을 ‘폭포효과’로 명명하게 된 것도 이때이다.

그런데 최근 로보어드바이저가 나타나고 패시브 투자가 주종을 이루면서 주식시장에서는 새로운 위험 요인이 나타나고 있다. 전략을 어떻게 짜서 입력시키느냐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지만 큰 방향을 볼 때 지수추종형 전략은 주가가 어느 수준 이하로 폭락하면 매우 위험해진다. 공격적 매도자로 돌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펀드런 현상이다. 펀드런은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펀드를 해지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주가 하락 때 펀드를 해지하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할 때 액티브펀드를 해지하면 몇몇 종목만 매도하게 된다. 하지만 패시브 투자의 경우 해지 요청이 오면 편입된 모든 주식을 골고루 매도하게 된다. 시장 전반에 영향이 오는 것이다. 만일 글로벌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인덱스펀드가 대량 해지되면 세계 주식시장에서 모두 매도가 이루어지면서 여파는 세계로 퍼져나갈 수도 있다. 은행예금을 동시에 인출하는 뱅크런도 문제지만 투자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펀드를 해지하는 펀드런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패시브 투자의 경우 모든 주식을 골고루 매도하게 되므로 시장에 대한 충격은 상당한 수준이 될 수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자동으로 매도 주문이 나올 수 있고 이 경우 충격이 더 해진다.

주식시장이 고도화되고 글로벌화할수록 이와 발맞추어 새로운 위험 요소가 창출된다. 경제가 힘들어지고 어려워지면서 복잡해지는 와중에서 이런 리스크에 대한 다양한 대비와 준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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