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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시대’에서 뇌를 해방시켜라

‘불안의 시대’에서 뇌를 해방시켜라

불안증에는 뇌의 여러 신경회로가 복합적으로 관여해 부작용 없는 표적 치료제 개발에 시간 걸릴 듯… 마음챙김과 운동도 증상 완화에 도움
끊임없이 접하는 뉴스 때문에 우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심지어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왼쪽부터) 텍사스주 엘파소의 총기난사 사건 후 희생자를 애도하는 가족, 신경과학자 조지프 르두 교수, 불안·우울증 치료제 프로작, 요즘은 휴대전화가 손에 없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 사진:AP/YONHAP; DIEMUT STREBE; WIKIMEDIA COMMONS(2)
우리는 지금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

미국 뉴욕대학의 신경과학자 조지프 르두 교수는 우리가 만약 불안한 시대에 산다고 생각한다면 중세의 삶이 어떠했겠는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제안한다. 2015년 베스트셀러가 된 책 ‘불안(Anxious)’의 저자이며 공포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 중 한 명인 르두 교수는 내게 “중세는 살기에 아주 좋지 않은 시대였을 것이고 질병과 빈곤 같은 삶의 스트레스가 엄청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르두 교수가 자신의 저서에서 주장한 내용과 같았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아주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르두 교수는 “우리는 우리가 가진 불안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불안이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불안이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안의 본질이 그렇다. 불안은 온 마음을 다 빼앗는다. 내 마음이 불안으로 가득하다면 다른 사람도 자신의 삶에서 나처럼 이렇게 불안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상상하기가 어렵다.”

적절한 지적이지만 완전히 납득할 순 없었다. 나는 인터뷰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그의 사무실에 도착했기 때문에 그를 기다리는 동안 내 스마트폰을 열어 봤다. 다음과 같은 뉴스가 떴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우림이 불타면서 지구온난화를 가속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600포인트 떨어졌다. 미국에서 최근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이 2건이나 발생했다.”

이런 뉴스가 우리 자녀와 지구, 나의 퇴직연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걱정하는 동안 내 기사를 담당하는 뉴스위크 편집자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불안에 관한 기사를 한 주 일찍, 그러니까 사흘 뒤에 끝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뭐라고? 어떻게 사흘 만에…바로 이런 것이 ‘불안의 시대’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한 가지는 르두 교수가 확실히 옳았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미래의 두려움과 씨름하는 사람이 분명히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지난 5월 발표된 미국정신의학협회(APA)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년 연속 미국인 3명 중 2명은 자신의 건강과 재정 상태, 자신과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는 문제에서 ‘극도로 또는 다소간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문제가 가장 심각한 연령층이 18~34세였다. 그들의 70%는 재정과 가족 부양에서 불안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또 그들의 3명 중 2명은 부부나 파트너와의 관계에서도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55세 이상 연령층에선 그 비율이 40%였다). 또 그들 중 약 20%는 불안증 치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여러 조사에서 특히 대학생과 대학을 갓 나온 연령층에서 불안증이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가을 조사에서 어느 세대보다 Z세대(1996년 이후 출생)가 정신건강이 나쁜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의 91%는 우울증과 불안증 등 스트레스와 관련된 신체적 또는 정서적 증상을 느꼈다고 답했다. 한편 대학생의 60% 이상은 전년도에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을 겪었다고 말했다. 교내 상담센터를 찾은 대학생도 2009~2015년 30% 이상 증가했다.많은 연구자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이런 추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저술가이자 불안증 치료사인 제니 타이츠는 “끊임없이 뉴스를 접하고 뉴스 사이트에서 지속적인 새 소식 알림을 받는 것이 아주 큰 스트레스를 주며 공황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선 총기난사 사건, 저기선 절도 사건 같은 정보들이 쏟아지면 위험이 우리 마음의 가장 앞쪽을 차지하게 된다. 일어나는 모든 나쁜 소식을 손가락 하나 미는 것으로 다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느긋하게 쉴 수 있겠는가?”

과학자들이 불안증을 이해하려면 환자가 그 증상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뿐만 아니라 서로 어떻게 소통하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위부터) 환자의 뇌파를 측정하는 연구자, 소크 연구소,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신경과학자 대니얼 파인 박사. / 사진:GETTY IMAGES BANK; CHRIS KEENEY/SALK INSTITUTE; COURTESY OF NIH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 르두 교수도 지금 우리가 “유난히 복잡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인정했다. “이전 세대는 인터넷을 모르고 살았다. 인터넷은 생물의 한 종으로서 우리 인간에게 일어난 가장 좋지 않은 일 중 하나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 사회의 불안증 증가는 뇌과학 분야의 놀라운 발견이 이뤄지는 시기와 맞물렸다. 뇌영상을 비롯해 근년 들어 여러 기술과 기법의 발달로 우리는 불안증의 신경학적인 근거를 더 많이 알게 됐고, 그에 따라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분야의 미래를 낙관하게 됐다. 과학자들은 불안이 복잡한 뇌 신경세포 회로의 종합적인 활동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은 그런 뇌 신경회로를 하나씩 찾아가면서 새로운 치료제와 치료법의 표적을 밝혀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소크 생물학연구소의 신경과학자 케이 타이 박사는 “첨단기술의 발달 덕분에 지금 우리는 정신건강 치료의 혁명이 시작되는 시점에 있다”고 말했다. “아주 흥분되는 시기다.”

하지만 우리 다수에겐 그 혁명이 늦은 감이 있다.공포와 불안의 이해를 넓히는 분야에서 르두 교수만큼 많은 기여를 한 과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1980년대 그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학계는 감각적 자극이 우리 뇌에서 사고를 담당하는 영역인 신피질을 먼저 통과한 다음 뇌의 감정처리 부위가 작동한다고 믿었다. 감정적 반응은 자극보다 나중에 나타나며, 특정 상황에 관한 우리의 의식적인 사고에 의해 촉발된다는 뜻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년)는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무의식적 요인’의 개념을 정립한 업적으로 잘 알려졌다. 그러나 르두 교수가 연구에 나서기 전까지는 그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었다. 르두 교수는 실험쥐를 연구하면서 의식적인 사고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뇌의 새로운 경로를 발견했다. 그로써 그는 감각의 자극 신호가 편도체로 알려진 뇌 부위로 직접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편도체는 감정을 지배하는 원시적인 뇌 부위다. 르두 교수의 발견은 의미가 매우 컸다. 이성적인 사고를 어떻게 감정이 압도할 수 있는지, 우리가 왜 가끔 비이성적인 공포에 사로잡히는지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1990년대 과학자들은 실험용 쥐를 연구하면서 직접적인 위험이 아닌 ‘모호한 위협’을 다룰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뇌의 작은 부위를 발견했다. 분계선조침대핵(BNST)으로 불리는 이 부위는 해바라기 씨 정도의 크기로 편도체 바로 곁에 위치한다. ‘투쟁이냐 도피냐’의 반응을 활성화할 때는 주로 편도체가 사용되지만, 우리가 미래의 모호한 위협을 두고 초긴장 상태를 유지할 이유가 있는 상황에선 BNST가 개입한다(불확실성에 직면하면 호르몬의 작용으로 우리 몸이 바짝 긴장한다). 르두 교수는 “편도체가 두려움과 관련 있다면 BNST는 불안과 연관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켄터키주에 있는 루이빌대학의 신경영상 실험실에서 브렌던 E. 드퓨 심리학 교수는 실험용 쥐에서 발견한 그 경로가 사람에게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여줬다. 드퓨 교수는 학생들을 한 명씩 기능성 뇌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에 앉힌 뒤 그들에게 무시무시한 얼굴 사진을 보여주거나 비명을 들려줌으로써 공포의 조건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 또 모호한 위협의 조건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그는 학생들에게 빈 화면만 보여주며 언제든 무시무시한 얼굴이 나타나거나 비명이 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다른 한편으로 또 언제든 평범한 얼굴이나 커피점의 웅성거리는 잡담 소리도 들릴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이런 조건 아래서 무서운 얼굴이나 비명이 나타나면 누구에게서든 편도체가 활성화됐고, 모호한 위협에서는 BNST가 좀 더 활성화됐다.

드퓨 교수는 “불안증을 호소하고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 사람 대다수는 공포 자극에 대한 반응과는 상관없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의 예감으로 고통받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그런 예감이 떠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 결과 환경에 대한 만성적이고 부적응적인 경계와 긴장이 생겨난다. 그런 증상은 편도체보다 BNST의 작용 때문일 수 있다.”그러나 편도체와 BNST가 촉발하는 호르몬 분비는 이 수수께끼의 한 조각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근년 들어 새로운 기법의 등장으로 연구자들은 뇌의 신경세포 회로를 더 세밀하게 추적하면서 뇌의 서로 다른 부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에 따라 이 분야의 관심이 크게 높아져 더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2011년 이래 소크 생물학연구소의 타이 박사는 유전자 변형 감광 단백질을 사용해 신경세포의 활성화와 비활성화를 유도하고 공포와 불안에 관여하는 여러 뇌 부위 사이의 연결을 체계적으로 추적했다.

약물 치료제는 불안증을 치료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운동과 마음 챙김이 불안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그 결과 편도체와 BNST 이외의 다른 뇌 부위도 불안을 느끼는 메커니즘에 관여한다는 증거가 발견됐다. 전전두엽, 해마, 대상회 등이 그 부위에 포함된다. 타이 박사는 “뇌 전체를 우리 세계로 보고 신경세포를 각각의 사람이라고 가정할 때 정보가 세계 전체로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가 어디에 사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누구에게 메시지를 전하는지, 누가 그 메시지를 듣고, 들은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 그 메시지가 뇌의 서로 다른 부위에 어떻게 보내지고 걸러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제는 편도체나 심지어 BNST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시대에 뒤졌다는 뜻이다. 편도체의 중요성을 입증한 업적을 인정받는 르두 교수도 그런 지적에 동의했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불안증과 관련된 뇌 신경회로 연구에서 편도체와 BNST보다 더 높은 단계의 부위가 담당하는 역할에 관심을 돌리도록 동료 연구자들을 설득했다. 편도체와 BNST만이 아니라 그 부위들이 뇌의 어떤 다른 부위와 상호작용하는지가 궁극적으로 더 효과적인 불안증 치료제를 찾는 데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르두 교수는 불안증의 진정한 이해가 신경과학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의 탐구에 달렸다고 믿는다. 의식의 속성을 말한다[의식은 그의 신저 ‘우리 자신의 깊은 역사(The Deep History of Ourselves)’의 주제다].

편도체나 BNST는 호르몬 분비를 촉발함으로써 우리 몸이 방어적으로 반응하게 하지만 우리 마음(뇌에서 더 높은 차원의 처리 부위)은 우리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가 ‘공포’와 ‘불안’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의식의 발현이다. 르두 교수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효과 있는 불안증 치료제를 찾으려면 행동과 호르몬 분비를 촉발하는 원시 뇌 부위를 뛰어넘어 경험에 의한 자극이 우리 자신의 인식을 형성하는 것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우리 모두에게는 불안 ‘기준점’이 있다. 일생 동안 계속 되돌아갈 가능성이 큰 불안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 기준점은 부분적으로는 유전적으로 결정되지만 경험 때문에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2011년 발표된 연구에서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있는 버지니아커먼웰스대학의 정신과 의사 찰스 가드너와 동료들은 세계 3대륙의 쌍생아 1만2000명에 대한 종단 연구에서 추출한 9가지 데이터 세트를 분석하면서 그들의 삶에서 각각 단계마다 보고된 불안과 우울 증상을 조사했다. 열 살이 된 일란성 쌍생아의 불안 기준점은 서로 같거나 거의 비슷했지만 사춘기를 지나 성인으로 접어들면서 그들의 기준점은 크게 달라졌다. 유전적 소인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르두 교수는 개인적인 경험도 ‘마음의 스키마’ 형성을 통해 불안 기준점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두려움이나 불안을 유발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활성화되는 기억 집단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부모가 ‘넌 잘할 수 없어’라고 말했거나 시험이 아주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들었거나 이전 시험에서 낙제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시험에 실패할까 두려워할 수 있다. 그러면 고사장에 들어갈 때마다 불안감을 갖게 된다. 르두 교수는 약물 치료제로 BNST와 편도체를 비활성화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런 ‘마음의 스키마’가 시험을 보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뇌 회로가 새롭게 관심을 끌고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새로운 도구가 속속 등장하면서 실험실의 과학자들이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안을 완화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1980년대에 나온 프로작 같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계열이 마지막으로 개발된 불안·우울 완화제였다.보스턴대학 산하 불안장애센터 심리요법·감정연구실 실장인 스테판 호프만 심리학 교수는 “불안증 치료제 개발은 상당 기간 침체된 상태에 있었다”고 말했다. “30여 년 전 SSRI가 거창한 선전으로 시판됐지만 그 이래 새로 개발된 확실한 불안증 치료제는 없었다. 사람들이 이제 새로운 치료제를 기대하지 않는 듯하다.”

현재의 불안증 치료제에 관한 불편한 진실은 대부분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한 불안증으로 치료제를 복용하는 환자의 75%는 ‘증세가 상당히 호전됐다”고 말하지만 의학 전문가들은 그런 호전에서 어느 정도까지가 치료제 때문이고, 어느 정도가 위약 효과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 불안증 완화에 효과적인 약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 또 환자의 25%가 어떤 치료제에도 반응하지 않는 이유도 또 다른 수수께끼다.

한 가지 문제는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정신장애를 진단하고 분류하는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불안증 등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의사의 진단 기준은 거의 70년 동안 정신질환진단통계편람(DSM)이었다. 다양한 정신질환을 분류하고 그에 따르는 증상을 명시한 진단 지침서다. 그러나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이 분야의 많은 전문가는 DSM으로는 환자의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고 본다.

가장 최근의 개정판 DSM-5 작성에 참여한 호프만 교수는 “특정 질환에 따르는 증상이 30~40가지씩 열거됐지만 그중 너덧 가지만 맞으면 특정 질환으로 진단할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우울증과 일반 불안장애로 진단받는 증상의 조합이 너무 많다. 결과적으로 광범위한 부류의 환자가 같은 진단을 받는다. 그들은 겉보기에 비슷한 증상이 있는 것 같아도 그런 증상을 나타내는 문제는 아주 다를 수 있다.”호프만 교수에 따르면 대다수 정신건강 전문가는 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합의를 이루고 접근법을 바꾸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릴 수밖에 없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대니얼 파인 박사는 앞으로 유전학·신경과학·신경영상 등의 분야에서 개별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수단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특정 증상을 겪는 환자를 분류하는 좀 더 구체적이고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첫 단계다.

뇌의 자기장 변화를 측정하는 기계(위 사진), 일란성 쌍둥이 연구에 따르면 경험이 개인의 불안 ‘기준점’에 영향을 미친다. / 사진:WIKIPEDIA, GETTY IMAGES BANK
그러나 제약업계는 뇌의 특정 신경회로나 그 일부를 정확히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신약 개발에 아직 새로운 과학을 적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크 생물학연구소의 타이 박사는 제약업계가 아직도 대부분 시행착오 접근법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요행을 바란다는 뜻이다. 또 우리 뇌에서 불안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이 너무 복잡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제약회사 다수는 항불안제를 위한 연구개발(R&D)의 지출을 크게 줄였다.

타이 박사는 “현재의 약물 치료제는 환자의 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약을 집중적으로 복용하면 순환계에 들어가고 ‘혈액-뇌 장벽’을 통과한다. 그러면 약이 헝클어진 우리 뇌 회로 전체를 적시게 된다.”

그에 따라 약이 특정 회로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회로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타이 박사는 설명했다. 정반대 기능을 가진 회로도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첫째, 약의 영향으로 서로 반대 효과를 내는 신경세포가 각각의 영향력을 상쇄시켜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일부 환자에게 약이 듣지 않는 이유가 그로써 설명될 수 있다. 둘째, 표적으로 삼으려는 신경세포와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는 신경세포들까지 약의 영향을 받아 바람직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타이 박사는 그런 접근법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대표적인 치료제로 클로노핀(클로나제팜), 자낙스(알프라졸람), 바륨(디아제팜) 같은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을 꼽았다. 벤조디아제핀은 핵심 신경전달물질을 줄여 두려움과 불안을 관장하는 뇌 부위의 활동을 억제하지만 다른 부위의 신경전달물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운동과 호흡이 억제되고 인지 능력이 손상될 수 있다.

그런데도 타이 박사는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진 않는다. 그녀는 불안증이나 다른 정신장애에 관여하는 모든 뇌 신경회로가 확인된다면 특정 문제를 일으키는 회로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좀 더 구체적인 신경회로를 표적으로 삼는 약이 개발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뇌 회로 중 많은 부분을 확인하는 데만 5~10년은 걸릴 수 있다.

그토록 오래 기다릴 수 없는 환자에게도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이 있다. SSRI와 벤조디아제핀 계열 같은 약 외에 인지행동요법 같은 정신치료 접근법도 부정적인 행동과 감정을 부추기는 생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운동이 불안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최근 정신건강 분야에서 가장 흥미로운 추세 중 하나는 수천 년 전부터 사용된 기법의 사용이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마음챙김이다. 불교 수행 전통에서 기원한 심리학적 구성 개념으로 현재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수용적인 태도로 자각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처럼 환자가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도록 돕는 기법이 미래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위스콘신대학 공중보건대학원의 잭 니츠케 교수는 “불안의 핵심은 불확실성”이라고 설명했다. “불안은 미래에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관한 우려이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대부분 비현실적이며 시간 낭비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가장 자주 걱정하는 일 10가지 중 9가지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니츠케 교수는 “미래에 나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 때 지금 우리가 미래가 아니라 현재 이 방의 의자에 앉아 있으며 그런 먼 앞날을 상상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일종의 마음챙김”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우리 마음이 어디로 가 있었는지 깨달으면 다시 현시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처럼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 마음챙김은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첨단기술이 뇌과학 분야의 발달을 이끄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뇌를 다스리는 가장 유망한 기법이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명상법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한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기술은 우리에게 과도한 정보를 안기고 우리를 현재에서 미래로 밀어내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불안을 확실히 없애고 긴장을 완전히 풀어주는 강력한 신약이 개발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엄습하는 불안에 시달린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TV를 끄고, 현재의 순간에 존재하려고 집중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라. 사랑하는 사람과 산책하며 얼굴에 와 닿는 햇볕을 느껴보라. 무엇보다 SNS를 보거나 뉴스를 읽지 마라. 물론 뉴스위크는 예외다!

- 애덤 피오르 뉴스위크 기자
 [박스기사] 뇌는 잘 아는 노래 0.1초 안에 알아챈다 - 초고속 인식회로 작동하는 덕분인 듯… 치매 환자의 음악치료에 활용될 가능성 커
과학자들은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얼마나 빨리 인식할 수 있는지 연구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우리 뇌는 자주 들은 노래를 빠르면 0.1초 안에 판별할 수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과학자들은 자원자 22명을 대상으로 1초 미만 길이로 여러 노래의 일부를 들려주는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그중 10명에게 잘 아는 노래나, 선택한 노래와 비슷하거나, 이전에 들은 적이 없는 노래의 일부를 들려줬다. 나머지 12명의 자원자는 그 노래 중 어느 것도 들은 적이 없는 대조군 역할을 했다.

연구팀은 노래를 듣는 자원자의 동공 반응(뇌의 정보 처리를 시사한다)과 뇌 활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잘 아는 노래를 들은 자원자의 동공은 노래가 시작된 지 0.1~0.3초 만에 확장했다. 그에 따라 기억과 연관된 뇌 부위도 활발하게 작동했다.

연구팀은 뇌가 익숙한 자극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정확히 이해하면 치매 같은 기억 관련 증상과 뇌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팀은 그런 신경퇴행성 질환이 있는 환자도 기억의 다른 부분은 작동하지 않아도 음악은 기억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논문의 주 저자인 마리아 체이트 UCL 청각연구소 교수는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연구는 잘 아는 노래와 모르는 노래가 섞여 있어도 뇌는 그중에서 잘 아는 노래를 아주 빨리,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길어도 4분의 1초 안에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초고속 인식회로가 작동한다는 뜻이다.”

또 체이트 교수는 뇌의 활동이 탐지되기 전에 동공이 먼저 확대된다는 사실도 놀라운 발견이었다고 덧붙였다. “초기의 인식은 대부분 급속 피질하 회로(뇌간 회로)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는 아주 활발하고 명백한 인식 과정을 입증했다. 이와 똑같은 패러다임이 ‘객관적인 인식 측정’에도 사용될 수 있다. 특정 노래가 익숙한지 생소한지 표현할 수 없는 환자에게서 그런 측정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요즘 치매 환자를 음악으로 치료하는 방법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우리가 사용한 접근법이 그런 환자의 치료에 사용할 노래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올해 초의 다른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절대음감 현상을 탐구했다. 우리 대다수가 색상을 알아보는 것처럼 쉽게 음을 정확히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그런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 뇌의 일차청각피질이 더 크다고 결론지었다. 당시 미국 델라웨어대학 생체의학·뇌촬영 센터 소장으로 그 논문의 공동저자였던 키스 슈나이더 교수는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의 일차청각피질이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그 덕분에 더 넓은 영역대의 주파수를 조율할 수 있는 듯하다. 따라서 음악을 들을 때 그 피질의 더 많은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 캐슈미라 갠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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