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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시장의 위기] 증시 급락에 얼어버린 ‘IPO(기업공개) 시장’

[IPO 시장의 위기] 증시 급락에 얼어버린 ‘IPO(기업공개) 시장’

‘한해 농사 망칠까’ 탄식... “일시적 부진 아닌 증권업계 무게 중심 이동” 지적도
사진:© gettyimagesbank
2020년 IPO(기업공개) 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금융시장이 급속하게 냉각되면서 IPO를 포기하는 회사들이 속출하면서다. 이미 상장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기업들의 주가도 곤두박질치는 상황이라 신규 상장을 준비했던 기업들은 제 값을 받지 못할까봐 상장 시점을 미루거나 재검토하고 있다. 상장으로 자금 유입을 기대하던 기업들은 물론 투자자들에게도 아쉬운 상황이다.

오랜 기간 IPO 작업을 준비하던 증권사들 역시 타격이 불가피하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뒤에도 예전의 영화를 되찾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미 증권업의 무게 중심이 기업공개 등 주선 업무에서 자기자본투자(PI)로 옮겨 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184억원 공모에도 ‘끙끙’ 대어급은 ‘어불성설’
국내 증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코스피 시가총액 1000조원 붕괴를 경험하면서 IPO를 추진하던 회사들이 줄줄이 상장 철회를 선언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던 SCM생명과학은 3월 20일 상장 철회신고서를 제출하고 향후 일정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 보다 한주 전인 3월 13일에는 LS그룹 계열사인 LS EV코리아가 상장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이 회사는 배터리팩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로 지난 2월 13일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증시에서 코스피는 2200선 위에서, 코스닥은 600선 후반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예상할 수 없던 증시 급락에 한달 만에 상장 일정을 멈추고 뒷걸음치는 셈이다. LS EV코리아는 관계자는 “최근 주식시장이 급격히 하락한 여파로 회사의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상장과 관련한 나머지 일정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마케팅 서비스 플랫폼 업체로 코스닥 상장을 준비중이던 메타넷엠플랫폼도 3월 5일 한국거래소에 상장철회 신청서를 제출했고, 바이오업체로 코스닥 입성을 노리던 노브메타파마도 3월 18일 상장을 철회했다. 노브메타파마는 3월 3일부터 4일까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까지 진행했으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일정을 한차례 미루기도 했다. SCM생명과학 역시 일정을 뒤로 미루며 상장 의지를 보였으나 냉각된 투심 속에 상장철회를 결정했다. 건축구조솔루션업체 센코어테크는 3월 5일 상장 철회 후 최근 증권신고서를 다시 제출하고 상장 작업에 재돌입했다.

상장을 준비중인 기업들에게 증시 급락은 치명타가 됐다. IPO에 나서면 해당 기업의 주식 가치를 추정하기 위해 사업구조, 기업규모 등이 비슷한 상장사들의 주가를 참고한다. 따라서 지금처럼 모든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한 상황에서는 기존에 염두했던 가격을 받아내기가 어렵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훨씬 낮은 가격에 상장된 기업들의 주식을 살 수 있는데, 이제 상장하는 기업에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증권신고서를 고쳐서 대폭 할인에 나서지 않는다면 충분한 수요를 끌어오기 쉽지 않다. 실제로 화장품 소재 기업 엔에프씨는 상장 일정을 강행했으나 일반 투자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며 상장을 철회했다.

엔에프씨는 3월 18일과 19일 이틀간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주 청약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날은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될 정도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날이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1457.64, 428.35에 마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투자자는 청약에 관심을 두기 어려웠고 일각에서는 청약 납입을 취소했다. 그 결과 엔에프씨의 청약경쟁률은 0.44대1에 그쳤다. 저조한 경쟁률 속에 청약에 참여한 일반주주는 500명도 되지 않았고, 결국 엔에프씨는 3월 20일 상장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코스닥 상장 규정상 ‘주식 분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탓이다.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 상장 규정에서는 상장 후 일반주주 수가 각각 700명과 500명이 넘어야 한다. 공모 단계에서 청약에 참가한 일반주주가 이 숫자에 미치지 못하면 상장할 수 없다. 시장에서는 엔에프씨의 주식 분산 미달과 관련해 공모 규모에 주목하고 있다. 엔에프씨가 일반 공모에 적용한 확정 공모가는 1만200원, 공모주식 수는 180만 주로 총 공모금액은 184억원 수준이다. 이 정도 금액도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공모 규모가 훨씬 큰 대어급 후보들은 상장 작업을 꿈꾸기 어려워졌다. 2020년 IPO 시장을 빛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SK바이오팜과 CJ헬스케어, 카카오뱅크, 현대카드, 태광실업, 호반건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 ‘상장 대어’는 등판조차 기약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의 여파에 로 기업 공모 일정 연기 및 철회가 이어지면서 올해 IPO 시장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FI, M&A 활성화에 IPO 매력 떨어지기도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에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본질을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IPO는 성공한 기업의 상징처럼 여겨지는데 최근 수년간 한국 경제가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면서 조 단위 이상 공모에 나서는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집계된 2019년 신규 상장 기업수는 기업인수목적주식회사(스팩, 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를 제외하면 73곳이다. 한해 전인 2018년 77곳에 비해 4곳이 줄었다. 2015년 신규상장 기업수인 73곳에서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셈이다.

공모금액을 놓고 보면 오히려 퇴보했다. 2015년 한 해 동안 상장한 기업들의 공모 금액은 스팩을 제외하고 4조371억원인데 비해 2018년 공모 금액은 2조6120억원, 2019년은 3조2101억원에 그쳤다. 2016년과 2017년 상장 기업들의 총 공모금액은 각각 6조3272억원, 7조8188억원으로 최근 공모 규모의 두 배였다. 당시 넷마블,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대어급 IPO가 있었던 만큼 공모 규모가 커질 수 있었다. 2017년 넷마블이 상장할 당시 공모 규모는 2조7000억원으로 2018년 한해 상장한 모든 기업들의 공모 총액보다 많다. 대어급 상장사 기근은 현재진행형이다. 2015년에는 코스피 상장사가 16곳이나 됐지만 2019년과 2018년 코스피 신규상장사는 각각 7곳에 그쳤다. 2019년 신규 상장사 가운데 공모 선두는 롯데 리츠와 한화시스템으로 각각 4299억원, 4025억원에 그친다. 2020년 들어서는 3월 중순까지 새로 상장한 9개 기업 모두 코스닥 상장사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최근 기업들의 투자 유치 행보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사모펀드나 벤처캐피탈 등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거나 매각하는 사례가 늘면서 실력을 인정받는 기업들이 상장에 대해 매력을 갖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상장을 추진하려 해도 FI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 산정한 기업가치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기업공개 외면의 이유로 꼽힌다. 이 경우 투자금 대비 손실을 봐야 하는 FI의 반대로 상장이 성사되기 어렵다. 국내 대표 유니콘 기업으로 꼽히는 쿠팡, 우아한형제들, 위메프, 무신사 등은 모두 해외 사모펀드나 벤처캐피탈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거나 인수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2020년은 SK바이오팜과 CJ헬스케어, 카카오뱅크, 현대카드, 태광실업, 호반건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 ‘상장 대어’의 등판이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유니콘이나 스타트업이 아닌 대기업 계열사들도 FI의 투자 회수에 방점이 찍혀 있다. 우선 현대카드는 과거 합작 파트너인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금융 서비스 분야의 사업을 정리하면서 2017년 2월 현대카드 지분 43%를 매각했다. 당시에 FI로 어피너티컨소시엄이 지분 24%를 3766억원 매입했다. 구체적으로는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가 9.99%, 싱가포르 투자청 9.00%, 알프인베스트파트너스 5.01% 순이다. GE가 내놓은 나머지 지분 19%는 현대커머셜이 2981억원에 가져갔다. 당시 현대카드 IPO를 통해 현대카드 FI들의 자금회수를 돕겠다는 주주간 계약(SHA)을 체결했다. 다만 현대차(36.96%)와 기아차(11.48%), 현대커머셜(24.54%) 등 현대차그룹 관계사가 지분의 72.98%를 보유하고 있어 자금회수에 대한 시한은 정해놓지 않았다.

CJ헬스케어 역시 H&Q코리아, 미래에셋자산운용PE, 스틱인베스트먼트 등 FI들의 투자회수를 위해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곳이다. CJ헬스케어는 2018년 4월 한국콜마를 새주인으로 맞이한다. 당시 한국콜마는 자회사인 씨케이엠을 통해 국내 PE 3곳과 함께 컨소시엄 구성했다. 한국콜마와 FI들은 각각 씨케이엠 지분 50.7%와 49.3%씩을 나눠 가졌다. 한국콜마와 FI들은 5년 내 IPO를 재개하는 조항을 포함한 약정을 맺었다. FI들은 자금회수 문제 때문에 기한 내 상장이 성사되지 않으면 동반매도요구권을 사용할 수 있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최근 사모펀드를 중심으로 기업 초기 투자 열풍이 불면서 투자 환경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2020년은 또 다른 의미로 IPO 시장에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투자 회수를 위한 기업 가치 부풀리기, 무리한 상장 시도 등이 예상되기 때문에 기업의 본질 가치에 더욱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기업공개 앞서 투자받는 기업들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탈 등 FI가 기업 초기 투자에 열을 올리자 증권업의 판도 변화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최근 수년간 국내 증권사들은 앞다퉈 IB 수익 비중을 높이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초대형증권사는 물론 중소형사까지 모두 대표이사들의 신년사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마법의 단어가 ‘IB 수익 강화’였다. 전통적인 IB 사업 영역은 IPO와 인수합병, 채권 발행 등을 주선하거나 기업 신용공여 등을 제공하는 분야다. 이 가운데 특히 경쟁이 치열한 곳이 IPO를 주관하는 ECM(equity capital market, 주식발행시장)부서다. 전통적 IB 사업 영역 가운데 그나마 문턱이 낮아서다.

ECM 분야 경쟁은 더욱 더 심화될 전망이다. 2020년 1분기 국내 증시에 상장한 기업은 총 15곳인데 상장 작업을 맡은 증권사는 제각각이다. KB증권이 가장 많은 두 곳의 상장 작업에서 대표 주관사를 맡았고 전통의 강호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각각 한 곳을 맡았다. 이외에도 미래에셋대우와 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 교보증권, 유안타증권, 신영증권, 케이프투자증권 등이 각각 한 곳을 담당했다. 문제는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수익 역시 줄었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의 상장시 증권사에 지급하는 수수료 평균치는 공모금액의 150bp(1bp=0.01%) 가량에 불과하다. 쉽게 이야기 하면 공모시 인수하는 금액의 1.5%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다수의 증권사가 인수물량을 나눈다면 개별 증권사 몫은 줄어든다. 이것도 공모금액이 커질수록 수수료가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 2019년 일반 상장 기업 가운데 공모 규모가 가장 컸던 한화시스템은 80bp를 적용했다. 공모금액 4025억원을 감안하면 32억원 가량이다. 당시 상장 주관사에는 3개 증권사가 인수단에는 4개 증권사가 참여했다. 33억원을 7개 증권사가 나눠가졌다는 이야기다. 상장 작업에 통상 1년 이상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이제 증권업 판도를 좌우할 격전지는 자기자본투자(PI)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증권업 판도 변화 신호탄
국내 대표 증권사들은 모두 자기자본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기업공개 시에도 자기자본투자와 연계는 필수 코스가 됐다. 단순히 상장 작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규 상장하는 주식 일부를 자기자본으로 인수하고 상장 후 주가가 상승하면 시장에 내다 팔아 수익을 내는 식이다. 일부 증권사들은 IPO를 통해 벌어 들이는 수익보다 자기자본투자 수익이 많아졌다. 2019년 연간 상장 주관 실적 1, 2위 증권사인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모두 상장 전 지분투자를 활용해 수익 늘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와 KB증권 등 국내 초대형투자은행 대부분이 늘어난 자본금을 바탕으로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IPO보다 자기자본투자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증권가 일각에서는 푸념도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주니어들 사이에서 ECM은 금융업이 아니라 노동집약 산업이라고 부른다”며 “이미 증권사 IB 업무의 무게 중심이 자기자본 투자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탄은 쏘아올려졌다”고 말했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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