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34) 조직 내부의 불안에 대응하는 법] 리더는 혼자선 울어도 조직 앞에선 웃는다
[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34) 조직 내부의 불안에 대응하는 법] 리더는 혼자선 울어도 조직 앞에선 웃는다
불안은 성장과 반비례 … ‘생존·안전 욕구’ 충족시켜 ‘소속 욕구’로 이끌어야 3년 전쯤의 일이다. 이전 사무실 근처엔 식당이 많았고 그래서 식재료를 파는 트럭들의 왕래가 잦았다. 그 중 가장 단골이 많은 트럭이 있었다. 매주 화요일이면 나타나던 그 트럭은 씩씩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곤 했다. “지금 제주도 청정해역에서 갓 잡아 올린 성산포 은갈치를 5분 동안만 정말로 싸게 드립니다.”
왜 식당 주인들은 다른 트럭이 아닌 이 트럭에 몰릴까? 오며가며 보다 보니 궁금했다. 안면이 있던 식당 주인들에게 틈날 때마다 이유를 물었다.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물건이 좋다” “단골이라서” “(거래한 지) 오래됐어요.” 이게 전부일까? 알고 보니 이 트럭은 다른 트럭들과 달리 시작 초기부터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더 궁금해졌다. 트럭 주인에게 묻기도 했지만 평범한 대답뿐이었다. “열심히 하는 걸 알아봐주셔서 그러지 않을까요?”
가끔 시간이 날 때면 트럭을 따라다니며 이모저모 살피기도 했는데, 거래를 튼 지 얼마 안 된 식당 주인들에게서 진짜 대답이 나왔다. “물건이 좋기도 하지만, 항상 오는 날에 오고, 물건이 안 좋다고 하면 바로 반품해줘요.” 그랬다. 트럭에서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 맨 끝에 나오는 내용도 이걸 분명히 하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판매 차량입니다.” 다른 차량에는 없는 멘트였다. 왜 이게 비결일까? 식당 주인들은 ‘갓 잡아 올려 싱싱하고 맛있는’ 생선에도 마음이 끌리고, ‘정말로 싼 가격’에도 혹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식료품과 생선은 한 번 사면 제대로 반품도 안 된다. 뜨내기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트럭에게서 잘못 샀다간 낭패다. 그런데 그 트럭은 한결 같았다. 화요일에 어김없이 나타났고 물건도 좋았다. 반품까지 확실했다.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 마디로 그 트럭 행상은 식당 주인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었다. 사실 이런 특징은 10년, 20년 된 식당 주인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단골 거래처를 갖고 있다. 가격이 좀 싸다고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다.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재료에 대한 걱정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과 거래한다.
불확실성과 위험에서 오는 불안을 피하고 안심을 원하는 이런 성향이 식당 주인들만의 특성일까? 이런 성향은 우리 모두에게 짙게 깔려 있다. 우리는 불안을 원하지 않는다. 아니 원치 않을 정도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빨리 갈 수 있지만 어두컴컴한 지름길과 멀리 돌아가지만 환한 길, 두 길 중 어느 길을 갈까? 우리는 후자를 선택한다. 멀지만 환한 길에 안심과 안전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라고 다를까? 일은 많지 않은데 불안한 회사와 반대로 일은 많은데 불안하지 않는 회사, 우리가 원하는 회사는 어느 쪽일까? 말할 것도 없이 후자다. 지금까지 취재와 강의로 많은 회사를 접해봤지만 조직 내에 불안이 가득한 곳 치고 잘 되는 곳을 보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불안이 없는 회사 치고 잘 되지 않은 곳을 보지 못했다.
평상시에는 잘 되는 회사와 안 되는 회사의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나 코로나19 같은 사태가 터지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잘 되는 회사는 불안을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을 대개 윗사람들이 처리한다. 윗사람들이 먼저 움직이며 상황을 파악하고, 리더들끼리 모여 대비책을 마련해 구성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시하고 설명한다.
안 되는 회사는 반대다. 부서장이나 윗선들이 모이면 금방 해결될 일인데도 모이지 않는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고 얼굴 보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애꿎은 아랫사람들의 등만 떠민다. “빨리 대비책을 마련하라”고 압박한다. 실무자에게 전권을 주지도 않으니 만나봐야 진척이 없다. 또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아래로 내려 보내고 자신은 안전한 일만 한다. 불안을 견디지 못한 직원들의 퇴사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불안은 성장과 반비례한다. 불안이 많으면 성장이 사라지고, 불안이 사라지면 성장이 살아난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이 조직의 불안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다시 말해 불안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외부상황으로 불안이 높아질 때 불안을 줄여줄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세상의 거친 물결이 안팎으로 밀려들면 조직 내 불안 수치가 급격하게 높아진다. 높아진 불안은 소리 없이 조직을 흔들어 조용히 무너뜨린다. 외부의 적은 보이기나 하지만, 이런 내부의 적은 보이지 않아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그대로 놔두면 조직은 지리멸렬의 길로 빠르게 나아간다. 후회 막급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지난 3월 17일 페이스북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글 하나가 후끈 달아올랐다. 글쓴이가 CEO인 마크 저커버그라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더 중요한 건 내용이었다. 저커버그는 그 글에서 무섭게 번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를 설명하며 잘 극복하자고 했다. 여기까지는 여느 CEO들과 비슷했다. 뜨거운 눈길을 받은 내용은 따로 있었다. 전 세계 직원 4만5000여명 전부에게 1인당 1000달러(약 120만원)를 지급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직원 모두에게 ‘Exceed Expectation(기대 이상, 아주 잘함)’이라는 고과 평가를 줄 테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돈이 남아돌아서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조직에 불안이 번져 어수선하거나 술렁일수록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에 미리 선수를 친 것이었다. 120만원이라는 돈과 최고 고과 평점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지만, 상징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조직은 이걸 돈과 고과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안심해도 되겠구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럴 만한 사정이 안 된 회사나, 권한이 없는 단위조직의 리더들은 어떻게 조직을 추슬러야 할까? 조직의 불안을 줄이는 방법은 돈과 고과 평점만이 아니다. 어찌 보면 리더의 행동 하나하나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평상시 리더의 태도다.
밖에서 위기가 몰려올 때 구성원들은 가장 먼저 리더를 본다. 이때 리더의 행동이 안정적이면 자신들도 안정적인 태세를 취한다. 하지만 리더에게서 불안함을 발견하면 조직의 마음은 어수선해진다. 리더가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하거나 이랬다저랬다 하거나, 적절한 상황 파악이나 지시를 내리지 못하면 조직의 불안 수치는 급격하게 높아진다. 그래서 탁월한 리더들은 속으로는 불안에 떨지라도 조직에게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거나 호탕함을 보이기까지 한다. 혼자서는 울어도 조직에게는 웃는다. 조직은 리더에게서 기대하는 신호를 받지 못하면 생존을 위해 개별 행동에 나서고, 그러면 조직은 지리멸렬해진다. 구글의 자체 조사에서 나온 이후 유명해진 ‘심리적 안전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심리적 안전감이 사라진 자리에는 생존 본능이 들어선다. 생존 본능은 자신의 생존을 가장 우선하는 법. 조직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방어 태세로 돌입한다. 이제는 상식이 된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중 1단계(생존 욕구)와 2단계(안전 욕구), 그러니까 생존모드 상태가 된다. 방어는 ‘진지’ 구축으로 시작한다. 자기 영역에 울타리를 치고 침입을 경계한다. 정해진 일,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일만 하며 조금이라도 책임질 일이나 모험은 절대 사양한다. 이 때문에 비효율적일 정도로 일이 세분화되고 관례화된다. 정해진 일, 확실한 일, 책임지지 않는 일만 하니 새로운 게 나올 수 없다. “뭐 새로운 거 없어?” 해봤자 공허한 메아리만 되돌아온다. 움직이지 않는다.
그럴 수 있겠다싶지만, 이 욕구가 해결되지 않는 한 조직의 마음이 다음 단계로 갈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각자 진지 안에서 꼼짝하지 않으려 하기에 팀워크가 생겨날 리 없다. 날마다 회의를 열어 설득하고 다그쳐봤자 도루아미타불이다. 이럴 때 리더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게 있다.(이전 회에 다룬 게 거시적이라면 이번 회에 다루는 건 미시적인 것이다) 우선, 회의를 하거나 구성원을 만날 때에는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한 문장(가능하면 단문)으로 집약한 후 만나야 한다. 내용이나 선택지가 많으면 구성원은 ‘복잡하다’는 것만 기억한다. 가장 핵심적인 하나에 집중하고, 이게 이뤄지면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둘째는 목적에 따라 회의 방식을 다르게 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회의 형태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정보 공유, 의사결정, 토론. 시간이 없다고 리더의 마음대로 하면 조직은 혼란을 느끼기 쉽고, 마음이 급한 리더는 자기도 모르게 압박을 가하기 쉽다. 마음의 문을 더 닫는 결과를 만든다. 셋째, 가능한 한 숫자와 팩트, 구체적인 사례로 말해야 한다. 신뢰도가 높아진다.
넷째가 특히 중요하다. 구성원이 이유를 물으면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궁금증이 공개적으로 해명되지 않으면 은밀하게 소통되고 의혹이 되어 조직을 흔든다. 다섯째, 리더도 불안하다 보니 말이 많아질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의 80%만 하는 게 좋다. 코로나19 사태를 설명하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좋은 예다. 기자들이 어떤 질문을 해도 소상하게 답변하고 수치로 말하며 간략하게 말한다.
여섯째, 반대(자)가 있을 때 ‘나는 맞고 당신은 틀리다’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조직은 반대(자)가 맞고 틀리는 것보다 그런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주시한다. 아래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런 장애물을 넘어야 조직의 마음이 바뀌며 마음의 문을 연다.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마무리 역시 단문으로 된, 하나의 명확한 결론(행동지침)으로 정리해야 한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서는 조직의 마음에 한마디가 확실하게 각인되어야 한다.
경험한 이들은 알겠지만, 이 7가지는 결코 쉽지 않다. 하나하나가 우리의 본능과 대치되는 까닭이다. 리더도 인간인 이상 상황이 급박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행동해버린다. 특히 여섯 번째가 고비다. 다섯 번째 ‘고개’까지 잘 넘은 이들도 여기서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난코스이고, 또 그렇기에 중요하다. 무엇보다 불안에 휘둘리던 조직의 마음이 여기서 돌아설 수 있다. 불안은 세균과 비슷해 숨을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밖으로 나올수록 줄어드는데 이런 불안을 조직의 마음에서 꺼낼 수 있다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
불안 수위가 높아질수록 조직은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건 무조건 감춘다. 실수나 몸의 이상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의 문까지 닫아건다. 분위기가 살아날 수 없다. 원인이 되는 불안을 밖으로 꺼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앞에서 말한 생존과 안전 본능이 가장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다. “김 과장, 요즘 내가 자꾸 이상한 일거리를 갖고 와 스트레스가 많지? 일은 일대로 쌓이는데, 후배들은 나 몰라라 하고. 죽겠지? 이러다 밀려나는 거 아닌가 싶고 말이야. 모르는 거 아니야. 아직 말할 때가 아니어서 그렇긴 한데 내가 생각한 게 있으니 일단 해보자고.”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한 게 이런 말 한 마디에 굳게 닫힌 문이 스르르 열린다.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지기도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혼자 괜히 스트레스 받았구나 싶다. 바로 전까지 축 처진 몸에 생기가 확 돈다. 알아주는 힘이란 이렇게 세다. 동조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생각에 맞춰주면 안에 웅크리고 있던 불만과 불안이 밖으로 나온다. “아, 그럴 만하네요.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이런 말들이 그렇다. 사람은 자기에게 동조(인정)해주면 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속마음을 드러낸다. 불만과 불안이 밖으로 나오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이러는 동안 조직의 마음은 생존모드를 넘어, 매슬로의 5단계 욕구 중세 번째인 ‘소속 욕구’로 이동한다. 소속감, 그러니까 팀워크가 살아난다. 옛 페르시아 시인 루미가 했던 말이 있다. “꽃을 자라게 하는 건 천둥이 아니라 비다.”
반대를 일단 수용하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반대하는 사람은 온갖 머리를 짜내 자신이 하는 말을 합리적인 것으로 포장한다. 그러니 일단 받아주고 시작해야 안에 있는 말이 나온다. 화를 내면 한 발 옆으로 비켜서 ‘직사포’를 쏘도록 한다. 그렇게 감정을 털어낸 다음 물어본다. “화나시죠? 들어보니 그럴 만하네요.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이런 식으로 속마음을 드러내도록 한다. 속을 잘 알수록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다. 불안해하는 조직의 마음을 다잡는 또 다른 방법은 ‘하지 마라’보다 ‘하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를 책임지고 있는 염경엽 감독이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를 맡아 하위권에서 맴돌던 팀을 상위권으로 만들었을 때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런 말을 했다. “투수들에게 ‘포볼(볼넷)을 던지지 마라’ 하는 대신 ‘3구 안에 승부를 보라’고 했다.”
‘하지 말라’고 하면 사람은 ‘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현재 유지에 집중한다. 실수하지 않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그러다 안타를 맞으면 무너진다. 반면 ‘3구 안에 승부를 보라’고 하면 초점이 달라진다.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한다. 미래지향적이다. ‘하지 말라’가 불안감을 만들어낸다면 ‘하라’는 절실함을 만들어 낸다. 불안이 두려움으로 이어진다면, 절실함은 창조로 이어진다.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불안해하지 말라’라고 백 번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자’고 한 번 하는 게 백 번 낫다.
하는 일이 걸림돌에 걸리거나 벽에 부닥치면 많은 리더들이 혼자 끙끙댄다. 그러다 항상 같은 물음 앞에 선다. ‘왜 나를 따르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작아진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싶어 졸아들고, ‘나는 아닌가’ 싶어 쪼그라든다. 다들 자신만 그러는 줄 알지만 내가 알기로는 거의 모든 리더들이 그렇다. 대기업 사장, 회장들도 마찬가지다. 드러내지 않을 뿐이고 노련해졌을 뿐이다.
질문을 바꾸는 게 좋다. ‘내가 어떤 불확실성을 주고 있는가?’로 말이다. 일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좋지 않은 신호들을 전하면서도 이런 것들이 조직에 ‘폭탄’으로 인식된다는 걸 모르는 이들이 많다. 생각해보자. 폭탄을 안겨주는 리더를 어떻게 믿고 가까이 오겠는가? 폭탄은 적에게 안기는 것이지 조직에 터트리는 게 아니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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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식당 주인들은 다른 트럭이 아닌 이 트럭에 몰릴까? 오며가며 보다 보니 궁금했다. 안면이 있던 식당 주인들에게 틈날 때마다 이유를 물었다.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물건이 좋다” “단골이라서” “(거래한 지) 오래됐어요.” 이게 전부일까? 알고 보니 이 트럭은 다른 트럭들과 달리 시작 초기부터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더 궁금해졌다. 트럭 주인에게 묻기도 했지만 평범한 대답뿐이었다. “열심히 하는 걸 알아봐주셔서 그러지 않을까요?”
가끔 시간이 날 때면 트럭을 따라다니며 이모저모 살피기도 했는데, 거래를 튼 지 얼마 안 된 식당 주인들에게서 진짜 대답이 나왔다. “물건이 좋기도 하지만, 항상 오는 날에 오고, 물건이 안 좋다고 하면 바로 반품해줘요.” 그랬다. 트럭에서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 맨 끝에 나오는 내용도 이걸 분명히 하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판매 차량입니다.” 다른 차량에는 없는 멘트였다. 왜 이게 비결일까?
잘 되는 트럭 행상의 비결은 ‘확실성’
불확실성과 위험에서 오는 불안을 피하고 안심을 원하는 이런 성향이 식당 주인들만의 특성일까? 이런 성향은 우리 모두에게 짙게 깔려 있다. 우리는 불안을 원하지 않는다. 아니 원치 않을 정도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빨리 갈 수 있지만 어두컴컴한 지름길과 멀리 돌아가지만 환한 길, 두 길 중 어느 길을 갈까? 우리는 후자를 선택한다. 멀지만 환한 길에 안심과 안전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라고 다를까? 일은 많지 않은데 불안한 회사와 반대로 일은 많은데 불안하지 않는 회사, 우리가 원하는 회사는 어느 쪽일까? 말할 것도 없이 후자다. 지금까지 취재와 강의로 많은 회사를 접해봤지만 조직 내에 불안이 가득한 곳 치고 잘 되는 곳을 보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불안이 없는 회사 치고 잘 되지 않은 곳을 보지 못했다.
평상시에는 잘 되는 회사와 안 되는 회사의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나 코로나19 같은 사태가 터지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잘 되는 회사는 불안을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을 대개 윗사람들이 처리한다. 윗사람들이 먼저 움직이며 상황을 파악하고, 리더들끼리 모여 대비책을 마련해 구성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시하고 설명한다.
안 되는 회사는 반대다. 부서장이나 윗선들이 모이면 금방 해결될 일인데도 모이지 않는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고 얼굴 보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애꿎은 아랫사람들의 등만 떠민다. “빨리 대비책을 마련하라”고 압박한다. 실무자에게 전권을 주지도 않으니 만나봐야 진척이 없다. 또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아래로 내려 보내고 자신은 안전한 일만 한다. 불안을 견디지 못한 직원들의 퇴사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불안은 성장과 반비례한다. 불안이 많으면 성장이 사라지고, 불안이 사라지면 성장이 살아난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이 조직의 불안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다시 말해 불안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외부상황으로 불안이 높아질 때 불안을 줄여줄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세상의 거친 물결이 안팎으로 밀려들면 조직 내 불안 수치가 급격하게 높아진다. 높아진 불안은 소리 없이 조직을 흔들어 조용히 무너뜨린다. 외부의 적은 보이기나 하지만, 이런 내부의 적은 보이지 않아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그대로 놔두면 조직은 지리멸렬의 길로 빠르게 나아간다. 후회 막급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페이스북 저커버그의 발빠른 대처
돈이 남아돌아서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조직에 불안이 번져 어수선하거나 술렁일수록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에 미리 선수를 친 것이었다. 120만원이라는 돈과 최고 고과 평점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지만, 상징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조직은 이걸 돈과 고과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안심해도 되겠구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럴 만한 사정이 안 된 회사나, 권한이 없는 단위조직의 리더들은 어떻게 조직을 추슬러야 할까? 조직의 불안을 줄이는 방법은 돈과 고과 평점만이 아니다. 어찌 보면 리더의 행동 하나하나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평상시 리더의 태도다.
밖에서 위기가 몰려올 때 구성원들은 가장 먼저 리더를 본다. 이때 리더의 행동이 안정적이면 자신들도 안정적인 태세를 취한다. 하지만 리더에게서 불안함을 발견하면 조직의 마음은 어수선해진다. 리더가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하거나 이랬다저랬다 하거나, 적절한 상황 파악이나 지시를 내리지 못하면 조직의 불안 수치는 급격하게 높아진다. 그래서 탁월한 리더들은 속으로는 불안에 떨지라도 조직에게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거나 호탕함을 보이기까지 한다. 혼자서는 울어도 조직에게는 웃는다. 조직은 리더에게서 기대하는 신호를 받지 못하면 생존을 위해 개별 행동에 나서고, 그러면 조직은 지리멸렬해진다. 구글의 자체 조사에서 나온 이후 유명해진 ‘심리적 안전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심리적 안전감이 사라진 자리에는 생존 본능이 들어선다. 생존 본능은 자신의 생존을 가장 우선하는 법. 조직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방어 태세로 돌입한다. 이제는 상식이 된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중 1단계(생존 욕구)와 2단계(안전 욕구), 그러니까 생존모드 상태가 된다. 방어는 ‘진지’ 구축으로 시작한다. 자기 영역에 울타리를 치고 침입을 경계한다. 정해진 일,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일만 하며 조금이라도 책임질 일이나 모험은 절대 사양한다. 이 때문에 비효율적일 정도로 일이 세분화되고 관례화된다. 정해진 일, 확실한 일, 책임지지 않는 일만 하니 새로운 게 나올 수 없다. “뭐 새로운 거 없어?” 해봤자 공허한 메아리만 되돌아온다. 움직이지 않는다.
그럴 수 있겠다싶지만, 이 욕구가 해결되지 않는 한 조직의 마음이 다음 단계로 갈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각자 진지 안에서 꼼짝하지 않으려 하기에 팀워크가 생겨날 리 없다. 날마다 회의를 열어 설득하고 다그쳐봤자 도루아미타불이다. 이럴 때 리더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게 있다.(이전 회에 다룬 게 거시적이라면 이번 회에 다루는 건 미시적인 것이다)
속으로는 울어도 밖으로는 웃어라
둘째는 목적에 따라 회의 방식을 다르게 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회의 형태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정보 공유, 의사결정, 토론. 시간이 없다고 리더의 마음대로 하면 조직은 혼란을 느끼기 쉽고, 마음이 급한 리더는 자기도 모르게 압박을 가하기 쉽다. 마음의 문을 더 닫는 결과를 만든다. 셋째, 가능한 한 숫자와 팩트, 구체적인 사례로 말해야 한다. 신뢰도가 높아진다.
넷째가 특히 중요하다. 구성원이 이유를 물으면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궁금증이 공개적으로 해명되지 않으면 은밀하게 소통되고 의혹이 되어 조직을 흔든다. 다섯째, 리더도 불안하다 보니 말이 많아질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의 80%만 하는 게 좋다. 코로나19 사태를 설명하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좋은 예다. 기자들이 어떤 질문을 해도 소상하게 답변하고 수치로 말하며 간략하게 말한다.
여섯째, 반대(자)가 있을 때 ‘나는 맞고 당신은 틀리다’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조직은 반대(자)가 맞고 틀리는 것보다 그런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주시한다. 아래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런 장애물을 넘어야 조직의 마음이 바뀌며 마음의 문을 연다.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마무리 역시 단문으로 된, 하나의 명확한 결론(행동지침)으로 정리해야 한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서는 조직의 마음에 한마디가 확실하게 각인되어야 한다.
경험한 이들은 알겠지만, 이 7가지는 결코 쉽지 않다. 하나하나가 우리의 본능과 대치되는 까닭이다. 리더도 인간인 이상 상황이 급박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행동해버린다. 특히 여섯 번째가 고비다. 다섯 번째 ‘고개’까지 잘 넘은 이들도 여기서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난코스이고, 또 그렇기에 중요하다. 무엇보다 불안에 휘둘리던 조직의 마음이 여기서 돌아설 수 있다. 불안은 세균과 비슷해 숨을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밖으로 나올수록 줄어드는데 이런 불안을 조직의 마음에서 꺼낼 수 있다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
불안 수위가 높아질수록 조직은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건 무조건 감춘다. 실수나 몸의 이상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의 문까지 닫아건다. 분위기가 살아날 수 없다. 원인이 되는 불안을 밖으로 꺼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앞에서 말한 생존과 안전 본능이 가장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다. “김 과장, 요즘 내가 자꾸 이상한 일거리를 갖고 와 스트레스가 많지? 일은 일대로 쌓이는데, 후배들은 나 몰라라 하고. 죽겠지? 이러다 밀려나는 거 아닌가 싶고 말이야. 모르는 거 아니야. 아직 말할 때가 아니어서 그렇긴 한데 내가 생각한 게 있으니 일단 해보자고.”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한 게 이런 말 한 마디에 굳게 닫힌 문이 스르르 열린다.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지기도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혼자 괜히 스트레스 받았구나 싶다. 바로 전까지 축 처진 몸에 생기가 확 돈다. 알아주는 힘이란 이렇게 세다. 동조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생각에 맞춰주면 안에 웅크리고 있던 불만과 불안이 밖으로 나온다. “아, 그럴 만하네요.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이런 말들이 그렇다. 사람은 자기에게 동조(인정)해주면 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속마음을 드러낸다. 불만과 불안이 밖으로 나오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이러는 동안 조직의 마음은 생존모드를 넘어, 매슬로의 5단계 욕구 중세 번째인 ‘소속 욕구’로 이동한다. 소속감, 그러니까 팀워크가 살아난다. 옛 페르시아 시인 루미가 했던 말이 있다. “꽃을 자라게 하는 건 천둥이 아니라 비다.”
반대를 일단 수용하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반대하는 사람은 온갖 머리를 짜내 자신이 하는 말을 합리적인 것으로 포장한다. 그러니 일단 받아주고 시작해야 안에 있는 말이 나온다. 화를 내면 한 발 옆으로 비켜서 ‘직사포’를 쏘도록 한다. 그렇게 감정을 털어낸 다음 물어본다. “화나시죠? 들어보니 그럴 만하네요.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이런 식으로 속마음을 드러내도록 한다. 속을 잘 알수록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다.
‘내가 어떤 불확실성을 주고 있는가?’
‘하지 말라’고 하면 사람은 ‘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현재 유지에 집중한다. 실수하지 않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그러다 안타를 맞으면 무너진다. 반면 ‘3구 안에 승부를 보라’고 하면 초점이 달라진다.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한다. 미래지향적이다. ‘하지 말라’가 불안감을 만들어낸다면 ‘하라’는 절실함을 만들어 낸다. 불안이 두려움으로 이어진다면, 절실함은 창조로 이어진다.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불안해하지 말라’라고 백 번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자’고 한 번 하는 게 백 번 낫다.
하는 일이 걸림돌에 걸리거나 벽에 부닥치면 많은 리더들이 혼자 끙끙댄다. 그러다 항상 같은 물음 앞에 선다. ‘왜 나를 따르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작아진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싶어 졸아들고, ‘나는 아닌가’ 싶어 쪼그라든다. 다들 자신만 그러는 줄 알지만 내가 알기로는 거의 모든 리더들이 그렇다. 대기업 사장, 회장들도 마찬가지다. 드러내지 않을 뿐이고 노련해졌을 뿐이다.
질문을 바꾸는 게 좋다. ‘내가 어떤 불확실성을 주고 있는가?’로 말이다. 일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좋지 않은 신호들을 전하면서도 이런 것들이 조직에 ‘폭탄’으로 인식된다는 걸 모르는 이들이 많다. 생각해보자. 폭탄을 안겨주는 리더를 어떻게 믿고 가까이 오겠는가? 폭탄은 적에게 안기는 것이지 조직에 터트리는 게 아니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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