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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인 부산대 총장 인터뷰] 부산대, 명문 거점 국립대 부활의 날갯짓

[차정인 부산대 총장 인터뷰] 부산대, 명문 거점 국립대 부활의 날갯짓

지역인재 우선 선발… 교육과 취업 통해 지역사회도 활성화
사진:부산대학교
2학기 개강을 하루 앞둔 8월 31일. 차정인 부산대학교 총장에게 휴식시간은 없었다. 온종일 예약된 일정을 소화한 뒤 오후 4시께 부산대 총장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차 총장 자리 옆 테이블은 덕지덕지 붙은 노란색 포스트잇으로 빼곡했다. 차 총장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적어서 붙였다가 끝내면 메모지를 떼어 내는데, 아직 떼지 못한 게 많다”고 했다.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뜻으로 읽혔다.

차정인 총장은 지난 5월 12일 부산대 21대 총장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부산대가 거점 국립대학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지역발전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거침없이 말하는 그에게 취임 후 100일은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차 총장에게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물었다. “학생들이 교정에서 친구들과 선생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한 학기를 보냈어요. 교육과 안전이라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동시에 지키기 위해 학교 구성원들과 노력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학생이 최우선이라는 그의 교육 철학이 이 대답에서 묻어났다.
 “비인기학과도 유지하는 게 거점국립대 책무·역할”
부산대는 4개의 캠퍼스에 15개 단과대학, 1개의 독립학부, 104개의 학과를 보유하고 있다. 기초 응용학문과 인문학과를 포함하는 부산캠퍼스, 의생명과학과 양·한방 협진시스템을 구축한 양산캠퍼스, 나노·바이오 분야를 교육하고 연구하는 밀양캠퍼스, 최첨단 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전문질환센터를 운영하는 아미캠퍼스 등이다. 이 4개의 캠퍼스에서 학사과정 2만8124명, 석사과정 6574명, 박사과정 1662명 등 모두 3만6000여명이 공부하고 연구한다. 서울대(학·석·박사 과정 포함 2만8000여 명)보다 많은 숫자로, 국내 최대 규모다.

그럼에도 부산대는 학과 구조조정이 없기로 유명하다. 차정인 총장은 “세상에 필요 없는 학문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비인기 학과를 통폐합하는 학교도 있지만, 적어도 거점 국립대는 그 가치를 지키고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거점 국립대의 책무이고 역할이라는 것이다.

부산대는 현재 온라인 수업 90%, 대면 수업 10% 정도로 학사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실습이나 실험 등 대면 수업을 포기할 수 없는 과목은 철저한 방역과 칸막이 수업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차 총장은 “온라인 강의의 장점이 있지만, 친구들과 선생님을 마주하고 함께 듣는 수업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대학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인격을 형성하고 사회를 배우는 종합적인 장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를 논문 수로 평가하고 이를 연봉에 연계하는 제도에도 반대했다. 학자들을 몰아세워 논문만 많이 쓰게 만드는 게 학생과 교수에게 이로울 게 없다는 것이다.
 ‘BK21’ 평가에서 전국 대학 중 2위에 올라
부산대는 3개 캠퍼스에서 6개 주제 도서관을 운영한다. 소장 장서는 257만여 권에 달한다. / 사진:부산대학교
대학의 힘은 학생과 교수, 교육과 연구에서 나온다. 부산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신산업, 기초학문 분야 석·박사 인재를 키우기 위해 지원하는 ‘4단계 BK21(Brain Korea21)’사업 평가에서 지난 8월 최상위권 성적표를 받았다. 4단계 BK21은 2027년 8월까지 정부가 총 2조9000억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부산대는 36개 교육연구단(팀)이 지원 대상에 선정됐는데 이는 46개 연구팀이 선정된 서울대 다음이다. 성균관대(31개), 고려대·연세대(각 30개)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부산대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된 3단계 BK21 사업에서도 31개 사업단(팀)이 선정돼 서울대, 연세대에 이어 전국 3위를 기록한 바 있다. 차 총장은 “지역대학에 대한 배려도 있었겠지만, 부산대가 교육과 연구역량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했다. 지역 인재들의 ‘서울 쏠림’ 현상이다. 차 총장은 “전국의 많은 학생이 수도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현상을 보면 안타깝다”며 “거점 국립대학이 다른 학교에 비해 더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며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조건이 잘 갖춰진 점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줬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차 총장은 부산대에서 법학 학사와 석·박사 과정을 모두 거친 ‘부산대인(人)’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사로 재직한 후 경남지역에서 변호사로 10년 넘게 활동했다. 2006년부터는 부산대학교에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모교와 지역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부산대의 위상 하락은 더 아프게 다가왔다. “70년대 학생들이 예비고사를 통해 대학에 갔던 시절엔 부산대가 전국 2위 대학으로 평가받았어요. 서울대 다음이었죠. 지금도 역시 인재도 많고 교수진도 훌륭한데 그때만큼 평가받지 못하는 건 안타깝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차 총장의 생각은 다르다. “저는 그때의 영광이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학이 지향하는 목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도권 초집중 현상 때문에 지역 대학들이 저평가 받고 있는데, 정부와 지역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의과대 등 인기학과에 지역 인재 우선 선발
차정인 총장은 인재를 끌어안으면서 졸업한 인재들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활동할 방안을 고민했다. 그리고 내린 결정이 ‘지역인재전형’을 통한 신입생 선발이었다. 인기학과의 입학생 중 일정 비율을 부산·울산·경남지역 학생들에게 할당하는 방식이다. 향후 이 비중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부산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2학년도 입학전형 기본계획에 따르면 부산대는 ‘지역인재전형’으로 2020학년도 188명, 2021학년도 263명에 이어 2022학년도에는 462명을 선발키로 했다. 특히 의과대학은 내년 신입생의 67%를 지역인재전형으로 뽑을 예정이다.

차 총장은 이런 신입생 선발방식에 대해 “지역인재를 뒷받침하고 지역사회를 살릴 수 있는 방안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출신 학생은 부산 의과대학을 졸업해도 서울로 돌아가는 일이 많다. 부산대에서 의사를 길러내지만 정작 부산에는 의사가 모자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뜻”이라며 “최근 지역 의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역인재전형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게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취업을 돕는 것도 대학의 역할이다. 차정인 총장은 “대학이 학생들에게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한다면, 부산대를 졸업한 인재들이 취업과 창업을 통해 지식과 재능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게 돕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부산대가 진행하는 ‘멘토링스쿨-선배와 손잡(job)기’ 프로그램은 직장인 선배 1명과 학생 3명을 한 팀으로 꾸려 멘토링 하도록 지원한다.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취업 준비 방법, 직무정보, 실무 경험 등을 공유한다. 2020년 상반기에는 LG전자, 삼성전자, 부산교통공사, 우리은행 등에 입사한 부산대 졸업생이 멘토 역할을 했다. ‘AI 자기소개서 솔루션’, ‘AI 면접 솔루션’도 진행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이 주관하는 ‘국가근로장학사업 취업연계 중점대학’ 평가에 부산대는 2016년부터 5년 연속 선정됐다. 차정인 총장은 부산대가 기업과 연계해 학생들의 취업을 도울 수 있는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많은 학생을 한꺼번에 취업하도록 할 수는 없지만, 향후 채용 인원을 늘릴 수 있도록 대기업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점 국립대 네트워크 활성화를 통해 지역 대학들의 발전을 꾀하는 것도 차정인 총장의 큰 그림 중 하나다. 서울대를 비롯해 부산대, 전북대 등 지역거점국립대 10곳의 학생과 교수진이 교류하는 형태로, 경남에 사는 전북대 학생이 부산대에서 수업을 들으면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차 총장은 “지난번 거점 국립대 총장협의회 회의에서 이런 방안을 논의했고 여러 총장님과 수업 교류를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거점 국립대 통합론에 대해선 “논의한 바 없고, 제안 받은 적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현 단계에서는 각 대학이 스스로 역량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차 총장은 “교육과 연구 역량 면에서 부산대는 수도권 어느 대학과 비교해도 우수하다고 자부할만한 종합 국립대”라며 “국립대 육성사업 등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 등을 활용해 학생들이 능력을 기르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생들과 시민의 관심이 있어야 지역의 명문 대학이 발전할 수 있다”며 “부산대도 지역 발전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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