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금과의 전쟁’ 중] 공시지가 현실화는 강행, 주식 양도세는 유예… 흔들린 조세 원칙
[한국은 ‘세금과의 전쟁’ 중] 공시지가 현실화는 강행, 주식 양도세는 유예… 흔들린 조세 원칙
확산하는 ‘세금 포비아’… ‘조세 정책 신뢰’ 살려야 #서울 강동구에 공시가 6억1000만원의 아파트를 보유한 A씨(51)는 최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1주택자이기에 아무 걱정하지 않고 있었는데, 정부가 공시가격을 현실화 한다고 발표하니 늘어날 재산세가 걱정이다. 급여로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하고 자녀들의 교육비·생활비를 지출하면 남는 게 거의 없어서다. 단지 내 동일평수의 최근 거래 가격이 13억원에 달해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르지 않더라도 수 년 후면 공시가격이 9억원을 넘어갈 게 자명하다. 이른바 ‘고가주택’이 되는 셈이다. A씨는 “당장 낼 재산세 자체가 크진 않지만 앞으로 늘어날 세금이 문제”라며 “퇴직금도 중간정산해 집 마련에 써버려, 몇 년 뒤 은퇴하면 소득은 없고 집 한 채만 달랑 남는다”고 토로했다. A씨는 이어 “뉴스를 보니 주식 시장에서 양도세 소득 기준은 강화를 유예했다고 하는데, 부동산에만 왜 이리 엄격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조세형평성과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정비에 나선 각종 세법과 행정조치가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직접적인 증세 법안이 아닌 ‘부동산 공시지가 현실화’와 ‘대주주 요건 강화’ 등이 논란의 핵심이다. 제도를 반발하는 쪽에선 이 정책들이 ‘꼼수 증세’로 귀결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끄러웠던 논란의 결과는 상이했다. ‘부동산 공시지가 현실화’는 큰 변동이 없이 강행된 반면, ‘대주주 요건 강화’는 특별한 명분 없이 유예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정부의 조세 원칙이 훼손됐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지난 7월 22일 정부가 발표한 2020년 세법개정안이 주택 보유자, 중소기업 등 곳곳에서 반발을 사고 있다. 정부의 세법 개정안은 기본적으로 ‘부자 증세’에 방점이 찍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소득 10억원 이상에 한계 세율을 높인 게 (42%→ 45%) 대표적이다.
조세반발은 부동산 보유세에서 나왔다. 보유세라는 개념 자체가 ‘미실현 수익에 대한 과세’이므로 조세반발이 클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실질적인 증세가 이뤄져 납세자들의 불만이 큰 상황이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는 종합부동산세 인상 내용이 포함됐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 부담을 강화한다는 정부가 세법 개정을 통해 다주택자 뿐 아니라 1주택자에 대해서도 종합부동산 세율을 높인 것이다. 정부 안에는 고령자 세액공제 확대 등의 대책이 포함됐지만 증세에 놓인 1주택자들의 우려가 크다.
물론 현재의 상황에선 종부세는 일부 고가주택만의 문제다. 다만 최근 발표된 ‘공시가 현실화’방안이 불안함을 키운다. 정부는 지난 11월 3일 현재 시세의 69% 수준인 아파트 공시가격을 10년 내로 9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내놨는데,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임의로 공시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이 조세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각종 과표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란 개념은 정부가 한국감정원에 위탁해 ‘객관성’을 갖추도록 돼있다. 그런데 정부의 계획에 따라 공시가격을 시세의 90%로 높이게 하는 것 자체가 주관성을 대입시킨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지난 10월 8일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국토부 장관이 ‘적정가격 반영을 위한 계획 수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이 조치가 조세법률주의에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홍기용 인천대 교수(경영학)는 “공시가격 목표치를 정해놓은 것은 정부가 납세자의 조세부담능력을 임의로 규정하는 것으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이렇게 하는 나라가 없다”며 “시행령 개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시가 현실화는 공포로 다가온다. 이론적으로 시세와 공시가격이 과도히 동떨어지면 시장 왜곡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집값에 ‘버블’이 포함됐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특히나 최근 집값 상승의 원인이 ‘정부의 규제 정책’에 기인했다는 인식이 큰 상황이다 보니 반발이 더 거셀 수밖에 없다.
직접적으로 공시가격이 오르면 각종 공시가격을 토대로 산정하는 재산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 방안을 발표하며 일부 주택의 재산세율을 한시적으로 낮춰주기로 했는데, 감면 기준이 일각에서 요구했던 9억원 이하가 아니라 6억원 이하로 확정됐다. 이 때문에 서울 및 수도권 거주자들 대부분은 재산세 감면 혜택에서 벗어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재산세가 감면되지만 3년 한시 적용이고, 6억원 이하라는 조건이 있어서 서울 지역 1주택자는 실질적인 혜택을 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고가주택보다는 덜해도 장기적으로는 중저가 주택 보유자도 세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공시가격 현실화에 병행돼야 할 ‘고가주택 기준’ 변경이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9억원 이상으로 규정된 고가주택 기준은 2008년 만들어진 것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시세)은 10억312만원으로, 2008년 12월(5억2529만원)보다 2배 가까이 뛰었다. 이에 따라 서울 대부분의 아파트는 시세에 따라 산정하는 양도세 기준 등에서 고가주택 취급을 받는다.
공시가율이 현실화하면 많은 사람이 ‘고액 부동산 보유자’에게 매기는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에 포함되게 된다는 게 또 다른 문제점이다. 1주택자라도 토지와 주택의 공시가격 합산이 9억원을 넘으면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이 되는데, 만약 공시가격이 시세의 90%가 된다면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인 10억원에 가까워지면서 9억원을 넘어간다. 결국 서울 평균가격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게 ‘종부세’를 매기겠다는 얘기가 된다. A씨와 같이 현재 공시가격으론 종부세 대상이 아니더라도 공시가격 현실화에 의해 몇 년 후에는 종부세 납부 대상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공시가격 인상이 아니라 그동안의 부동산에 부과된 원칙 없는 세금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본다. 한국납세자연맹의 김선택 회장은 “집값 안정을 위해서 세법을 개정한다면 보유세를 인상하더라도 집값에 거의 전가되는 취득세와 양도소득세를 인하하는 것이 맞는데, 이를 모두 인상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실행돼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교수(경제학)는 “부동산이건 주식이건 소득이 발생하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게 기본원칙이며 그 세율 또한 비슷해야 한다”며 “특히 공시지가의 경우 시가와 차이를 감안해 세율이 책정된 것이므로 공시지가가 오르면 세율을 낮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된 것은 공시가격 뿐만이 아니다. 당초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주식시장의 대주주 요건 강화 또한 지난 몇 주간 뜨거운 감자였다. 그런데 결국 부동산 공시가 현실화 정책과 상반되는 결정이 났다. 당초 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요건을 현행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출 계획이었지만 주식시장 참여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집권여당의 요구로 최근 이를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대주주 요건 강화는 2017년 세법 개정안에서 이미 예고된 내용이었다. 막상 시행 시점이 다가오자 큰 반발에 직면했다. 시장에선 해당 정책에 대해 뒤늦은 반발이 일어난 것에 대해 ‘정책 홍보의 부족’을 꼽는다. 또 최근의 저금리 상황 지속과 코로나 사태 이후 이른바 ‘동학개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주식 시장에 대거 참여하며 반발여론이 커졌다고 진단한다. 특히 이 정책이 주식시장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주주 요건과 관계가 없는 대중들도 반발심을 가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미 정해졌던 정책을 여론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엎은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세원칙이 무너졌다’고 평가한다. 홍 교수는 “당초 설정한 3억원이라는 기준이 현실적으로 과도했던 측면이 있었지만 2023년부터 주식양도세를 부과하겠다는 정책 목표와 조세형평성을 감안한다면 조금이나마 대주주 규모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도 “근로소득에 대해서는 칼같이 원천 징수를 하는 상황에서 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하는 것은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옳은 방향”이라며 “주식 투자자들의 표심을 우려해 이를 유예한 것은 조세형평성을 해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세원칙이 무너진 사례는 또 있다. 내년부터 시행키로 한 ‘개인 유사 법인의 초과 유보소득 배당 간주 과세(배당 간주 과세)’ 제도다. 개인사업자와 유사한 법인사업자를 ‘개인 유사 법인’으로 보고 이들이 쌓아둔 유보금 일부를 배당으로 간주해 과세한다는 것. 이에 따른 기업발전 저해 우려는 차치하고서라도 ‘미실현소득에 대한 과세’라는 점과 대기업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조세원칙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조세원칙에 입각한 세금 징수와 동시에 조세 신뢰를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성 교수는 “기업을 포함해 납세자의 입장에서 정부의 조세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낮기 때문에 세법과 관련한 모든 움직임이 증세를 위해 추진되는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며 “납세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증세하고, 이 세금이 나를 위해 쓰인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회장은 “세금을 정치적으로 남용하는 부분이 너무 크다”며 “우리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걷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조세 저항이 적은 이유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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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조세형평성과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정비에 나선 각종 세법과 행정조치가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직접적인 증세 법안이 아닌 ‘부동산 공시지가 현실화’와 ‘대주주 요건 강화’ 등이 논란의 핵심이다. 제도를 반발하는 쪽에선 이 정책들이 ‘꼼수 증세’로 귀결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끄러웠던 논란의 결과는 상이했다. ‘부동산 공시지가 현실화’는 큰 변동이 없이 강행된 반면, ‘대주주 요건 강화’는 특별한 명분 없이 유예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정부의 조세 원칙이 훼손됐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공시가격에 정부개입, 부동산 버블에 ‘증세 포비아’
조세반발은 부동산 보유세에서 나왔다. 보유세라는 개념 자체가 ‘미실현 수익에 대한 과세’이므로 조세반발이 클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실질적인 증세가 이뤄져 납세자들의 불만이 큰 상황이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는 종합부동산세 인상 내용이 포함됐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 부담을 강화한다는 정부가 세법 개정을 통해 다주택자 뿐 아니라 1주택자에 대해서도 종합부동산 세율을 높인 것이다. 정부 안에는 고령자 세액공제 확대 등의 대책이 포함됐지만 증세에 놓인 1주택자들의 우려가 크다.
물론 현재의 상황에선 종부세는 일부 고가주택만의 문제다. 다만 최근 발표된 ‘공시가 현실화’방안이 불안함을 키운다. 정부는 지난 11월 3일 현재 시세의 69% 수준인 아파트 공시가격을 10년 내로 9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내놨는데,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임의로 공시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이 조세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각종 과표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란 개념은 정부가 한국감정원에 위탁해 ‘객관성’을 갖추도록 돼있다. 그런데 정부의 계획에 따라 공시가격을 시세의 90%로 높이게 하는 것 자체가 주관성을 대입시킨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지난 10월 8일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국토부 장관이 ‘적정가격 반영을 위한 계획 수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이 조치가 조세법률주의에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홍기용 인천대 교수(경영학)는 “공시가격 목표치를 정해놓은 것은 정부가 납세자의 조세부담능력을 임의로 규정하는 것으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이렇게 하는 나라가 없다”며 “시행령 개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시가 현실화는 공포로 다가온다. 이론적으로 시세와 공시가격이 과도히 동떨어지면 시장 왜곡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집값에 ‘버블’이 포함됐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특히나 최근 집값 상승의 원인이 ‘정부의 규제 정책’에 기인했다는 인식이 큰 상황이다 보니 반발이 더 거셀 수밖에 없다.
직접적으로 공시가격이 오르면 각종 공시가격을 토대로 산정하는 재산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 방안을 발표하며 일부 주택의 재산세율을 한시적으로 낮춰주기로 했는데, 감면 기준이 일각에서 요구했던 9억원 이하가 아니라 6억원 이하로 확정됐다. 이 때문에 서울 및 수도권 거주자들 대부분은 재산세 감면 혜택에서 벗어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재산세가 감면되지만 3년 한시 적용이고, 6억원 이하라는 조건이 있어서 서울 지역 1주택자는 실질적인 혜택을 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고가주택보다는 덜해도 장기적으로는 중저가 주택 보유자도 세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공시가격 현실화에 병행돼야 할 ‘고가주택 기준’ 변경이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9억원 이상으로 규정된 고가주택 기준은 2008년 만들어진 것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시세)은 10억312만원으로, 2008년 12월(5억2529만원)보다 2배 가까이 뛰었다. 이에 따라 서울 대부분의 아파트는 시세에 따라 산정하는 양도세 기준 등에서 고가주택 취급을 받는다.
공시가율이 현실화하면 많은 사람이 ‘고액 부동산 보유자’에게 매기는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에 포함되게 된다는 게 또 다른 문제점이다. 1주택자라도 토지와 주택의 공시가격 합산이 9억원을 넘으면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이 되는데, 만약 공시가격이 시세의 90%가 된다면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인 10억원에 가까워지면서 9억원을 넘어간다. 결국 서울 평균가격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게 ‘종부세’를 매기겠다는 얘기가 된다. A씨와 같이 현재 공시가격으론 종부세 대상이 아니더라도 공시가격 현실화에 의해 몇 년 후에는 종부세 납부 대상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공시가격 인상이 아니라 그동안의 부동산에 부과된 원칙 없는 세금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본다. 한국납세자연맹의 김선택 회장은 “집값 안정을 위해서 세법을 개정한다면 보유세를 인상하더라도 집값에 거의 전가되는 취득세와 양도소득세를 인하하는 것이 맞는데, 이를 모두 인상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실행돼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교수(경제학)는 “부동산이건 주식이건 소득이 발생하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게 기본원칙이며 그 세율 또한 비슷해야 한다”며 “특히 공시지가의 경우 시가와 차이를 감안해 세율이 책정된 것이므로 공시지가가 오르면 세율을 낮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바닥 뒤집듯 원점 회귀한 ‘대주주 3억’
대주주 요건 강화는 2017년 세법 개정안에서 이미 예고된 내용이었다. 막상 시행 시점이 다가오자 큰 반발에 직면했다. 시장에선 해당 정책에 대해 뒤늦은 반발이 일어난 것에 대해 ‘정책 홍보의 부족’을 꼽는다. 또 최근의 저금리 상황 지속과 코로나 사태 이후 이른바 ‘동학개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주식 시장에 대거 참여하며 반발여론이 커졌다고 진단한다. 특히 이 정책이 주식시장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주주 요건과 관계가 없는 대중들도 반발심을 가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미 정해졌던 정책을 여론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엎은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세원칙이 무너졌다’고 평가한다. 홍 교수는 “당초 설정한 3억원이라는 기준이 현실적으로 과도했던 측면이 있었지만 2023년부터 주식양도세를 부과하겠다는 정책 목표와 조세형평성을 감안한다면 조금이나마 대주주 규모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도 “근로소득에 대해서는 칼같이 원천 징수를 하는 상황에서 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하는 것은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옳은 방향”이라며 “주식 투자자들의 표심을 우려해 이를 유예한 것은 조세형평성을 해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세원칙과 동반 추락한 조세 신뢰
전문가들은 조세원칙에 입각한 세금 징수와 동시에 조세 신뢰를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성 교수는 “기업을 포함해 납세자의 입장에서 정부의 조세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낮기 때문에 세법과 관련한 모든 움직임이 증세를 위해 추진되는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며 “납세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증세하고, 이 세금이 나를 위해 쓰인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회장은 “세금을 정치적으로 남용하는 부분이 너무 크다”며 “우리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걷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조세 저항이 적은 이유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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