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프로 환율 돋보기] 깊어진 달러화 약세의 빛과 그림자
[백프로 환율 돋보기] 깊어진 달러화 약세의 빛과 그림자
약세기에 달러화 자산 적립하면 시간이 보상해줄 때가 올 것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인식은 달러 강세기에 익숙해졌다. 달러화가 하락한 뒤에는 머지않아 더 크게 반등하는 패턴이 상당 기간 반복됐기 때문이다. 2014년 9월 원달러 환율 상승이 본격화된 이후 2020년 여름까지 6년 동안이나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었다. 달러화 강세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2020년 중 환율이 1200원을 넘은 상황에서도 환차익을 노리고 달러화를 사들인 투자자들이 있었다. 이 기간 달러화의 하락이 가장 오래 유지되었던 시기는 2017년 1월부터 13개월간으로 150원 가량 하락했다.
2014년 11월 이래 원달러 환율은 1050원 아래로 내려간 사례가 없었다. 2010년 이래 대부분 기간을 1050원에서 1200원 범위의 박스권에 머물며 등락하다 보니, 박스권 하단에서 매수한 뒤 오르면 매도하는 전략이 통했다. 이러한 방식의 달러화 저가 매수는 1년 이내에 이익을 취할 수 있었던 ‘이기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과연 앞으로도 그럴까.
지난 10년이 아니라 더 큰 사이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 금에 매여 있던 달러화의 족쇄를 풀어버린 ‘금태환 중단’ 이후, 달러화는 크게 보면 각각 3차례의 강세기와 약세기를 겪었다. 그리고 지금은 3차 달러 강세기가 종결된 듯 정황이 보인다. 만약 달러 약세기가 시작된 것이 맞다면 달러화를 적극적으로 거래하는 투자자에게 있어, 달러화 저가 매수 전략은 인고의 시간이 상당히 길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직전 달러 약세기였던 2002년~2010년 기간의 초입은 어떤 환경이었나. 1990년 대 후반은 IT 버블(bubble)이 정점을 향해 치달았던 시기다. 신경제(New Economy)가 도래했다며 금융시장이 환호했고 이내 도취됐다. 그리고 이 흐름을 선도했던 미국으로 글로벌 자본이 몰려갔다. 그렇게 차올랐던 IT 버블은 2000년 9월 이후 붕괴됐다. 미국 연준(Fed)은 2001년 1월 6.50%였던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해 2003년 6월에는 1%까지 내렸다. 이후, 방향을 선회하여 2004년 6월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다만 당시 여건에서는 조심스럽게 한 발씩 내딛는 베이비 스텝 수준에 그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IT 버블이 터지면서 미국에서 빠져 나오기 시작한 자본들은 고성장 국가들로 흘러갔다. 당시 글로벌 투자자은 신흥국의 성장 잠재력에 열광하여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자본을 집중 투입했다. 이에 한국 증시까지 달아올랐고 원화 가치도 거침없이 상승했다. 한국은 당시 조선업 호황기의 최대 수혜국이기도 했다. 이 기간 중 2002년부터 5년간 원달러 환율은 일방적으로 하락했다. 드문드문 있었던 반등은 미약했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달러화 약세에 익숙해진 나머지 환율 상승 리스크는 과소평가됐다. 이런 상황이 다신 없을 것이라 보장은 없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가 ‘동시에’ 침체에 빠졌던 것은 향후 회복 과정도 동시적으로 일어나며 글로벌 경제의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미처 백신이 보급되기도 전에, 중국이 가장 먼저 떨치고 일어나며 위안화 강세가 최근 원화 강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올 4분기 환율 하락이 가팔랐던 만큼 다소 주춤해지는 국면이 오겠지만, 그 이후 백신의 보급으로 미국과 유럽 경제도 정상화된다면 글로벌 경제의 선순환과 원화 강세에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이미 금융시장의 시선은 백신 보급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주변이나 언론에서 원화 강세 전망을 접하는 기업가들도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환율 하락은 수출액 감소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율 하락에 대한 민감도는 산업별, 기업별로 다르다. 수출액은 환율과 단가, 수출 물량의 함수다. 환율이 하락하더라도 수출 단가의 상승이나 물량 증가가 동반된다면 수출액은 오히려 증가할 수도 있다. 수출 단가는 해외 수요의 증가로 제품 자체의 가격이 상승할 수도 있지만, 가격이 높은 고부가가치 품목들의 수출 비중이 증가함으로써 상승할 수도 있다. 최근의 수출 회복세는 OLED, 의료기기와 같은 고부가가치 품목들의 수출이 증가하면서 수출 단가가 상승한 데서도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서면 수요가 증가하면서 수출 물량과 단가가 함께 상승하기도 한다. 메모리 반도체 D램, 낸드 등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경우다. 이런 상황들은 환율 하락을 상쇄하면서 기업의 수출액이 증가할 수 있는 사례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산업과 수출 기업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기업들은 환율 하락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어, 환헤지를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윌리엄 번스타인은 [현명한 자산배분 투자자]에서 “자산 가격이 하락할 때 올바른 대응은 조금 더 사는 것이고, 가격이 상승할 때 올바른 대응은 조금 팔아서 더 가볍게 하는 것”이라며 자산 리밸런싱의 중요성을 조언한다. 만약 환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한다면 그 과정에서 리밸런싱이 돈 낭비로 보이겠지만, 그 인내심은 나중에 보상받기 마련이다.
보험용 자산인 달러화를 ‘지금 이때다’ 하고 한 방에 매수하는 방식을 지양하는 대신, 조금씩 적립한다면 결국 시간이 보상해줄 때가 올 것이다. 환율 하락이 깊어지고 장기화될수록 환율 하락에 대한 믿음도 견고해지겠지만, 한 방향 움직임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또 다른 문제점을 잉태한다. 2002년 이후의 달러 약세기에 위험을 과소평가한 투자의 쏠림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싹을 틔운 것처럼 말이다.
경제 외적인 측면을 보면 가까이는 미국 대통령 취임 첫해에, 북한이 집중적으로 도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환율 반등 국면이 나타날 수 있다. 그보다 더 강력한 변수는 미·중 관계일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신냉전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냈고, 서로 너무나 다른 역사적 배경과 체제, 문화 때문에 현안들을 대화로 풀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 미·중 관계에서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양국이 결국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가거나 국지적인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미·소 냉전 당시 쿠바 미사일 위기와 같은 상황이 언젠가 올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는 달러화 가치가 급등할 가능성이 높지만, 문제는 사후적으로 대응하면 늦을 것이고 그 시기를 미리 예측할 수도 없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4년 11월 이래 원달러 환율은 1050원 아래로 내려간 사례가 없었다. 2010년 이래 대부분 기간을 1050원에서 1200원 범위의 박스권에 머물며 등락하다 보니, 박스권 하단에서 매수한 뒤 오르면 매도하는 전략이 통했다. 이러한 방식의 달러화 저가 매수는 1년 이내에 이익을 취할 수 있었던 ‘이기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과연 앞으로도 그럴까.
지난 10년이 아니라 더 큰 사이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 금에 매여 있던 달러화의 족쇄를 풀어버린 ‘금태환 중단’ 이후, 달러화는 크게 보면 각각 3차례의 강세기와 약세기를 겪었다. 그리고 지금은 3차 달러 강세기가 종결된 듯 정황이 보인다. 만약 달러 약세기가 시작된 것이 맞다면 달러화를 적극적으로 거래하는 투자자에게 있어, 달러화 저가 매수 전략은 인고의 시간이 상당히 길어질 수도 있다.
달러화 강세 사이클에 길들여진 시각
IT 버블이 터지면서 미국에서 빠져 나오기 시작한 자본들은 고성장 국가들로 흘러갔다. 당시 글로벌 투자자은 신흥국의 성장 잠재력에 열광하여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자본을 집중 투입했다. 이에 한국 증시까지 달아올랐고 원화 가치도 거침없이 상승했다. 한국은 당시 조선업 호황기의 최대 수혜국이기도 했다. 이 기간 중 2002년부터 5년간 원달러 환율은 일방적으로 하락했다. 드문드문 있었던 반등은 미약했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달러화 약세에 익숙해진 나머지 환율 상승 리스크는 과소평가됐다. 이런 상황이 다신 없을 것이라 보장은 없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가 ‘동시에’ 침체에 빠졌던 것은 향후 회복 과정도 동시적으로 일어나며 글로벌 경제의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미처 백신이 보급되기도 전에, 중국이 가장 먼저 떨치고 일어나며 위안화 강세가 최근 원화 강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올 4분기 환율 하락이 가팔랐던 만큼 다소 주춤해지는 국면이 오겠지만, 그 이후 백신의 보급으로 미국과 유럽 경제도 정상화된다면 글로벌 경제의 선순환과 원화 강세에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이미 금융시장의 시선은 백신 보급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주변이나 언론에서 원화 강세 전망을 접하는 기업가들도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환율 하락은 수출액 감소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율 하락에 대한 민감도는 산업별, 기업별로 다르다. 수출액은 환율과 단가, 수출 물량의 함수다. 환율이 하락하더라도 수출 단가의 상승이나 물량 증가가 동반된다면 수출액은 오히려 증가할 수도 있다. 수출 단가는 해외 수요의 증가로 제품 자체의 가격이 상승할 수도 있지만, 가격이 높은 고부가가치 품목들의 수출 비중이 증가함으로써 상승할 수도 있다. 최근의 수출 회복세는 OLED, 의료기기와 같은 고부가가치 품목들의 수출이 증가하면서 수출 단가가 상승한 데서도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서면 수요가 증가하면서 수출 물량과 단가가 함께 상승하기도 한다. 메모리 반도체 D램, 낸드 등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경우다. 이런 상황들은 환율 하락을 상쇄하면서 기업의 수출액이 증가할 수 있는 사례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산업과 수출 기업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기업들은 환율 하락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어, 환헤지를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달러화는 보험용 자산이다
보험용 자산인 달러화를 ‘지금 이때다’ 하고 한 방에 매수하는 방식을 지양하는 대신, 조금씩 적립한다면 결국 시간이 보상해줄 때가 올 것이다. 환율 하락이 깊어지고 장기화될수록 환율 하락에 대한 믿음도 견고해지겠지만, 한 방향 움직임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또 다른 문제점을 잉태한다. 2002년 이후의 달러 약세기에 위험을 과소평가한 투자의 쏠림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싹을 틔운 것처럼 말이다.
경제 외적인 측면을 보면 가까이는 미국 대통령 취임 첫해에, 북한이 집중적으로 도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환율 반등 국면이 나타날 수 있다. 그보다 더 강력한 변수는 미·중 관계일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신냉전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냈고, 서로 너무나 다른 역사적 배경과 체제, 문화 때문에 현안들을 대화로 풀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 미·중 관계에서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양국이 결국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가거나 국지적인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미·소 냉전 당시 쿠바 미사일 위기와 같은 상황이 언젠가 올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는 달러화 가치가 급등할 가능성이 높지만, 문제는 사후적으로 대응하면 늦을 것이고 그 시기를 미리 예측할 수도 없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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