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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엑소코바이오 조병성 “엑소좀 마케팅 말고, 기술로 말합니다”

바이오

“엑소좀의 피부과 적용에 대한 원천기술은 엑소코바이오만 가지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엑소좀 마케팅’일 뿐입니다.”조병성(53) 엑소코바이오 대표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내년 예정인 기업공개(IPO)와 관련한 집요한 질문에는 시종 말을 아끼던 그였다. 그러나 엑소코바이오가 보유한 엑소좀 원천기술과 75개에 달하는 특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사뭇 결이 달랐다. 2017년 창업 후 수백 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세우고 트렁크를 끌며 전 세계를 누빌 수 있었던 비결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엑소좀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 덕인 듯했다.엑소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코스메슈티컬 기업 엑소코바이오는 최근 바이오테크 업계가 주목하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엑소좀은 세포에서 분비되는 나노 크기의 소포체로 세포 간 신호 전달과 재생, 면역 조절 등의 역할을 한다. 조 대표는 항암치료제 등 주로 의약품으로 개발돼 온 엑소좀을 전 세계 최초 피부과에 적용하면서 이 분야 글로벌 정상에 올랐다. 최근 서울 금천구 본사에서 조 대표를 만나 엑소좀의 효능과 엑소코바이오의 기술력, 상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끝없는 연구와 압도적인 학술지 발표 실적, 원천기술 특허에 대한 굳은 믿음이 전해졌다. 엑소좀 재생 에스테틱 분야 절대강자“공부를 해보니 관심이 있었던 피부 재생 에스테틱 기술과 결합하면 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조 대표가 엑소좀 기술을 처음 접한 것은 2016년 3월이다. 서울대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한국기술투자 바이오텍 투자부장, 메디톡스 전략기획 재무이사, 로고스바이오시스템스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거쳐 엑소코바이오를 창업했다. 생물학 전문 지식과 바이오테크 투자에 관한 실전 경험을 두루 갖춘 조 대표는 엑소좀 기술을 보자마자 단번에 매료됐다.“우연히 엑소좀을 알게 돼 공부를 시작했는데 메시지 전달체인 엑소좀을 당시 업계가 집중하던 항암 치료제 개발이 아닌 피부 재생 분야에 적용해 상업화하면 반응이 클 것으로 확신했습니다.”조 대표는 2017년 1월 엑소코바이오를 창업하고 첫 해에만 약 201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엑소좀의 피부 미용 카테고리 연구와 개발에 집중하던 엑소코바이오는 2019년 피부과용 코스메슈티컬 제품 ‘에이에스씨이플러스(ASCE+)SRLV’ 개발에 성공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올해 기준 전 세계 1만7000곳의 병원에서 주사제가 아닌 비침습 또는 최소침습 방식으로 ASCE+SRLV를 활용한 피부 재생과 항염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 2020년 94억원 매출은 지난해 말 954억원까지 늘며 4년 만에 10배 이상 성장했다. 조 대표가 발로 뛰기 시작하면서 ASCE+의 글로벌 점유율도 90%를 넘어섰다.“학술논문을 통해 비침습 또는 최소침습 방식으로 ASCE+SRLV를 도포해 상처와 괴사, 백반증, 백발까지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엑소좀 관련 인력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 엑소코바이오입니다.” 압도적 기술력, K-엑소좀 뷰티를 향해 간다업계는 엑소코바이오의 성장 비결로 압도적인 기술력을 꼽는다. 엑소좀의 피부과 적용 분야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75개의 관련 특허·53편의 학술논문을 통해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인간의 피하지방에서 추출한 인체 줄기세포뿐 아니라 장미·치자·에델바이스· 캣닢·사과 등 5종의 식물 유래 엑소좀 개발에도 성공하며 국가별 규제와 윤리적 리스크를 해소했다. 장미 줄기세포 유래 엑소좀은 인체 유래 엑소좀과 유사한 마이크로 RNA 26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항염과 재생 효과 역시 유사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료 수급이 용이하고 대중성이 높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퍼스트 무버 어드벤티지(First Mover Advantage) 역시 경쟁력으로 꼽힌다. “기술 카피요? 물론 가능은 하겠지요. 하지만 효과와 효능을 우리처럼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개발과 생산 단계까지 끌어올리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엑소코바이오의 시선은 이제 미국 아마존과 일본 등 글로벌 K-엑소좀 뷰티를 향하고 있다. 12월에는 일반 소비자를 위한 장미 줄기세포 유래 엑소좀 화장품 15종을 출시하며 B2C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엑소밤 HR’과 미스트 타입 ‘엑소미스트 S’ 등 동결건조 엑소좀 기술이 적용된 제품들은 효능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꾸준하게 바르면 일반적인 데일리 케어 제품보다 훨씬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특히 피부과 레이저 시술 이후 발생하는 다운타임을 최대 50%까지 줄여줘 성형 후 애프터케어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엑소코바이오는 투자은행(IB) 업계로부터 높은 수준의 IPO 밸류로 관심을 받고 있다. 지분 34.1%를 보유한 최대주주 K2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가 지분 매각 의사를 내비치면서 글로벌 벤처캐피털(VC)과 사모펀드(PE)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조 대표는 기업공개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업계 안팎에서 거론되던 내년 4월 상장 추진 계획도 변화가 생겼다.“그간 다양한 일들이 있었지만, 현재 IPO는 미정입니다. 새로운 주주와 파트너십 경영을 통해 엑소코바이오를 더 성장시킨 뒤 다음 순서를 고민할 계획입니다.”

2025.12.22 07:49

4분 소요
세무사도 꼭 챙긴다…연금저축·IRP, 연말정산 막판 ‘절세 카드’ [연말정산 막판 점검]②

은행

연말이 다가오면 직장인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지금이라도 가능한 절세 수단’으로 옮겨간다. 이미 지나간 소비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은 납입 여부에 따라 연말정산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대표적인 절세 방법 중 하나다. 12월에도 세액공제가 가능한 구조 덕분에, 세무사들 또한 두 계좌를 연말정산 막판에 반드시 점검해야 할 항목으로 꼽는다.연금저축·IRP, 최대 148만원 환급연금저축과 IRP는 여전히 연말정산에서 가장 높은 절세 효율을 제공하는 기본 축이다. 두 계좌는 합산해 연 900만원까지 세액공제가 가능하다.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는 15%(지방세 포함 16.5%), 5500만원 초과 근로자는 12%(지방세 포함 13.2%)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를 환급액으로 계산하면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는 최대 148만5000원, 이를 초과하면 118만8000원이다. 이 같은 연금계좌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올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까지는 납입을 완료해야 한다. 연금저축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보완하는 ‘3층 연금제도’의 마지막 축으로 불린다. 소득이나 나이에 제한 없이 가입할 수 있고, 연간 납입 한도는 1800만원이다. 납입 자금은 펀드·상장지수펀드(ETF)·상장리츠 등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할 수 있어 운용의 자율성이 높다.IRP는 소득이 있는 근로자나 자영업자만 가입할 수 있는 퇴직연금 계좌다. 예금·채권·펀드·주가연계채권(ELB)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지만, 퇴직금 성격을 띠는 만큼 적립금의 30% 이상은 원리금 보장형 안전자산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이들 연금 계좌의 강점은 이중으로 적용되는 세제 혜택이다. 우선 운용 과정에서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납부 시기를 연금 수령 시기로 미루는 ‘과세 이연’ 혜택이 주어진다. 길게는 수십년 동안 세금 납부 없이 실현 수익을 재투자하면서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 추후 수령 단계에서는 수령 당시 연령에 따라 일반 계좌에서 발생하는 이자·배당 세율(15.4%)보다 낮은 3.3~5.5%의 연금소득세가 적용된다.일반적으로는 연금저축 600만원을 먼저 채운 뒤 IRP에 300만원을 추가하는 방식이 권장된다. 연금저축은 부분 인출이 가능해 자금 유연성이 높지만, IRP는 법정 요건 외 중도 인출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금저축과 IRP는 세무 전문가 스스로도 연말마다 가장 먼저 점검하는 항목으로 꼽힌다. 공제 구조가 단순하고 납입 여부에 따라 환급 효과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강동형 세무회계 사무소의 강동형 대표세무사는 “연금계좌는 조건에 따라 최대 135만원(900만원x15%)까지 세액 절감이 가능하다”면서 “한도가 정해져 있는 만큼 여유가 있고 노후 대비를 함께 고려한다면, 한도까지 납입하는 것도 합리적인 절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장태성 세무사 사무소의 장태성 대표세무사도 “개인적으로도 연금저축 납입액을 연말에 꼭 확인한다”며 “총급여 5500만 원 이하인 경우 납입액의 15%를 세액공제 해주는데, 이는 수익률로 따지면 확정 수익이나 다름없어 절세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연말 ‘절세 고객’ 잡기 총력연말정산 시즌을 앞두고 절세 수요가 집중되면서 금융권은 각종 혜택을 내걸고 고객 유치전에 나선 상태다. KB국민은행은 오는 12월 24일까지 ‘올해 절세, KB국민은행 IRP로 마무리 하세요!’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번 이벤트는 신규 가입(타 기관 연금 계좌 이전 포함) 및 추가 입금한 고객을 대상으로 하며, 납입 금액에 따라 ▲신세계상품권 2만원 ▲커피 쿠폰 등 경품을 제공한다.KB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번 이벤트로 많은 고객들이 연말정산에서 세액공제 혜택을 누리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KB국민은행은 고객의 절세뿐 아니라 안정적인 노후자산 마련을 돕기 위해 다양한 혜택과 맞춤형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iM뱅크 또한 12월 5일부터 2026년 2월 27일까지 세액공제 ‘개인형 IRP’ 상품 이벤트 ‘재테크 골든타임’을 진행한다. 이벤트 기간 내 IRP 계좌에 일정 금액을 입금하거나 펀드를 매수한 고객에게 신세계 상품권 등 다양한 경품을 제공한다. 해당 이벤트는 iM뱅크 개인형 IRP 계좌 신규 가입 고객과 기존 고객이 모두 참여 가능하다. KB증권 또한 연금저축·IRP 계좌에 신규로 입금하거나 타사 계좌를 이전한 고객에게 혜택을 준다. 고객들은 연말정산에 대비함과 동시에 IRP 이벤트에서 최대 3만원, 연금저축 이벤트에서 최대 200만원의 리워드를 제공받을 수 있다. 손희재 KB증권 디지털사업그룹장은 “연금계좌는 장기적인 노후 준비와 함께 연말정산 시기에 꼭 챙겨야 할 핵심 절세 상품”이라며 “고객이 절세와 더불어 편리하고 효율적인 연금자산 관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와 지원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5.12.22 07:01

4분 소요
치킨집 골든벨에 해군 소위 아들까지…회장님서 '재드래곤'으로

IT 일반

사법리스크를 털어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더는 어둠에 가려진 오너 경영자가 아니다. 치킨집에서 골든벨을 울리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아들의 경례를 받는 친근한 ‘재드래곤’으로 각인되고 있다.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올해 이 회장이 가장 많이 검색된 기간은 10월 26일부터 11월 1일까지다. 지난 10월 30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차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와 서울 삼성동 깐부치킨 회동이 화제가 된 덕분이다.이 회장 관련 인기 키워드도 해당 이벤트로 도배됐다. ‘이재용 깐부치킨’ ‘깐부치킨’ ‘젠슨 황 이재용 깐부치킨’이 각각 1, 2, 4위에 올랐다.이처럼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에서 벗어난 이 회장은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그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했다. 젠슨 황 CEO·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함께한 깐부치킨 치맥 회동은 연일 높은 관심을 받았다. 세 수장이 앉았던 자리는 이용 시간이 1시간으로 제한됐고, 테이블에 올랐던 음식들은 ‘AI 깐부’라는 신메뉴로 탄생하기도 했다.현장에서 이 회장의 인간다운 모습도 주목받았다. 흰색 셔츠와 밝은 회색 재킷의 편안한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황 CEO·정 회장과 러브샷을 하며 탄탄한 AI 파트너십을 재확인했다. 밖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시민들에게 다가가 치킨을 나눠주기도 했다. 매장 점주 아들에게는 ‘효자 되세요’라는 문구의 사인을 건네 눈길을 끌었다. 이날 해당 매장의 전체 테이블 식사비 약 250만원은 이 회장이 계산한 것으로 전해졌다.치맥을 즐긴 세 사람은 곧장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특유의 입담으로 관람객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무대에 오른 이 회장이 “안녕하세요. 이재용입니다”고 자신을 소개하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자, 잠시 머뭇거리던 이 회장은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아이폰이 많나”라는 농담을 던지며 현장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다음 날 이재명 대통령 접견 자리에서는 “생전 처음으로 젠슨 황이 시켜서 골든벨을 울렸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구글 트렌드의 이 회장 관련 인기 검색어 3위는 ‘이재용 장남’도 대중성을 더하는 키워드였다. 지난 11월 28일 경남 창원시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해군 학사사관후보생 139기 임관식은 이 회장의 장남 지호 씨가 기수 대표로 제병 지휘를 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이 회장이 5년 전 4세 경영을 포기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장남은 군에 입대하는 대신 해외에서 학업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 씨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해군 장교의 길을 택했다. 임관식에서 이 회장은 모친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명예관장과 나란히 서서 아들의 경례를 받았다. 이후 이 씨의 어깨를 툭툭 치며 “수고했다”고 격려했다. 뒤늦게 공개된 지호 씨의 좌우명도 이목이 쏠렸다. 임관식 전광판에 뜬 ‘고통 없이 인간은 진화하지 못한다. 그러니 즐겨라’는 좌우명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며 공감을 샀다.이처럼 깐부치킨 회동부터 장남의 병역 의무 이행까지, 이 회장은 과거의 편견을 깨고 ‘삼성의 얼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재용 회장의 이미지 변화는 단순한 개인 홍보 차원을 넘어 기업 신뢰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그간 재벌 총수에게 씌워졌던 경직되고 권위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소통하는 모습이 부각될수록 삼성 역시 투명하고 유연한 기업이라는 인식을 시장과 대중에게 줄 수 있다”고 말했다.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이미지 메이킹만으로 기업 가치가 높아지지는 않는다”"며 “현장 경영과 책임 경영, 장기 투자와 결합할 때 비로소 삼성의 브랜드 신뢰도와 글로벌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25.12.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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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왕좌 탈환 1년도 길었다…위기서 빛난 이재용 리더십

IT 일반

삼성전자의 겨울은 오래 가지 않았다. 글로벌 왕좌 탈환이 유력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실적 신기록까지 예고하고 있다. 취임 4년 차에 접어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리더십을 앞세워 고비를 차근차근 넘어서고 있다.3분기부터 D램 매출 점유율 상승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4분기 글로벌 D램 1위 타이틀을 되찾아올 것으로 전망된다. 33년 만에 SK하이닉스에 선두를 내준 지난 1분기 이후 9개월 만이다.이런 분위기는 이미 올 하반기부터 감지됐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차이나플래시마켓(CFM)은 올해 3분기 삼성전자의 D램 매출 점유율이 34.8%로 1위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다만 업계 공신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만 트렌드포스와 영국 옴디아는 같은 기간 SK하이닉스가 여전히 우위에 있다고 봤다.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4분기에는 삼성전자가 확실하게 글로벌 D램 1위를 다시 꿰찰 것이라는 전망이다. 트렌드포스 기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점유율 격차는 순위가 뒤바뀐 올해 1분기 2.3%포인트에서 2분기 6%포인트로 확 벌어졌다. 그러다 3분기에 0.6%포인트로 삼성전자가 턱밑까지 추격하는 데 성공했다.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가 예상을 뛰어넘는 비트 출하량을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4분기에는 D램 공급 업체의 재고가 거의 소진되고, 비트 출하량 증가율은 크게 둔화할 것”이라며 “이에 전 분기 대비 가격이 일반 D램은 45~50%, HBM을 포함하면 50~55%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적 개선을 노리는 삼성전자에는 기쁜 소식이다.이처럼 삼성전자의 점유율 반등은 D램 가격 급등과 AI 수요 폭증이라는 시장 요인이 반영됐다. 차세대 메모리인 HBM 시장에서는 3분기 기준 SK하이닉스가 점유율 55~60%로 삼성전자(15~20%)를 여전히 압도하고 있다. 다만 불황기에도 생산 라인과 생산 능력(CAPA)을 유지하고 고부가 제품 비중을 확대한 삼성전자의 전략이 시장 변화에 적기 대응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은 분명하다. 위기 때 외친 이재용의 ‘사즉생’삼성전자는 반도체 ‘혹한기’ 2022~2023년에도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다 역대급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생산량을 하향 조정했다. 재고 해소와 가격 회복을 위한 결단이었다. 수요가 돌아왔을 때를 대비해 라인을 폐쇄하기보다 가동률을 조정하거나 제품 믹스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감산을 진행했다. 신규 라인 투자와 차세대 공정 전환도 지속했다. 이처럼 기존에 유지해 둔 대형 라인과 범용 D램의 비중에 힘입어 3분기 호황을 누리고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좁혔다.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사즉생’(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의 메시지를 꾸준히 던져왔다. 그는 지난 2022년 450조원 규모의 미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숫자는 모르겠고 그냥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위기의 심각성을 부각했다. 같은 해 경기도 기흥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기공식에서는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나가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는 경영 철학은 강조했다.또 이 회장은 기술 혁신과 조직 문화 쇄신 메시지를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경영진과의 거리를 확 좁혔다. 2023년부터 신년 사장단 만찬을 재개한 이유다. 특히 올해 3월 있었던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는 강도 높은 내부 비판으로 흐트러진 조직 기강을 바로잡았다. 이 회장은 영상 메시지에서 “인류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 혁신이 지속되고 있고, 국가 총력전의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며 “이전과는 다른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라고 힘줘 말했다. 또 “(삼성전자는) 과감한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은 찾아볼 수 없고 판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할 때”라고 따끔히 지적했다. 메모리 중심 구조로 대수술이 회장의 의지는 단순히 말로 끝나지 않았다. 혼란을 최소화하면서도 AI 메모리 역량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정비해 급격한 변화에도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2021년 말부터 이어져 온 DS(반도체)부문과 DX(모바일·TV·가전)부문 양대 축은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반도체 조직을 ‘선택과 집중’할 수 있는 구조로 다듬고 있다.올해 반영된 조직 개편에서는 DS부문의 3대 핵심 사업부(메모리·시스템LSI·파운드리) 가운데 메모리사업부를 대표이사 직할 체제로 강화했다. 메모리 중심으로 반도체 사업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녹였다. 또 DS부문 직속 사장급 경영전략담당 보직을 신설해 전략 기획 전문가인 김용관 사장을 앉혔다. 미래전략실 전략팀, 경영진단팀 등을 거치며 쌓은 사업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반도체 경쟁력 조기 회복 미션을 받았다. DS부문장은 대표이사로 내정해 부문별 사업책임제도 확립했다.여기에 지난 11월 DS부문 안에 D램과 낸드 등을 아우르는 조직인 ‘메모리 개발 담당’을 신설, D램 개발을 주도해 온 황상준 부사장이 지휘봉을 잡는다. 제품별 실 단위로 분산돼 있던 역량을 통합하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한 셈이다.SK하이닉스를 추격하기 위해 지난해 신설했던 HBM개발팀은 1년여 만에 D램개발실 산하 설계팀으로 흡수된다. HBM 사업이 일정 수준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 개발에 성공한 최신 5세대 HBM(HBM3E) 12단 제품을 최대 고객인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품질 테스트를 좀처럼 통과하지 못하면서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에 뒤처졌다. 그러다 지난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엔비디아에 납품하게 된 사실을 에둘러 전하면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켰고, 내년 6세대 HBM(HBM4)부터는 제대로 겨뤄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전영현 부회장에게 힘을 잔뜩 실어주고 있다. 2024년 DS부문장에 오른 전 부회장은 올해 3월 이사회에서 삼성전자 대표이사로 공식 선임됐다.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 입사해 D램·플래시 개발, 전략 마케팅 업무 등을 거쳐 메모리사업부장까지 역임했고, 2017년부터 5년간 삼성SDI에서 대표이사 역할을 수행하며 경영 감각도 키웠다. 2026년 사장단 인사에서는 선행 기술 연구 조직인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원장 겸직이 해제돼 메모리 사업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사법리스크 털고 글로벌 행보이렇듯 체질 개선에 정신없는 삼성전자에도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다. 이 회장의 발목을 10년 동안 붙잡고 있던 무거운 족쇄가 올해 비로소 풀렸다.대법원은 지난 7월 이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임원 등 14명에 대한 검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의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당시 최대 주주로 이름을 올렸던 제일모직의 가치는 부풀리고, 삼성물산의 가치는 눌러 합병 비율을 유리하게 설계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의 손해를 야기한 혐의를 받았다.검찰은 이 회장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그룹 핵심 계열사를 거느릴 수 있는 삼성물산의 지배권 확보를 목적으로 제일모직의 가치를 뻥튀기했다고 봤다.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에 가담했다는 주장도 펼쳤다.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사법리스크를 털어낸 이 회장은 날개가 달린 듯 아웃리치(대외 접촉)에 나섰다. 회사는 물론 국가 반도체 산업의 앞날을 가로막는 먹구름을 걷어내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이 회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9일 만에 마련한 재계 만남에서 “대통령 되시고 나서 제가 자서전을 읽어봤다”고 언급하며 정부와의 협력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이후 무죄 판결을 받은 이 회장은 곧장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한미 관세 협상을 측면에서라도 지원하기 위해서다. 이 기간 테슬라와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와의 파트너십을 다지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이미지센서 공급 계약 체결을 알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는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삼성전자와 맺은 약 23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급 계약 소식을 전하며 “두 회사(삼성전자·TSMC)와 일하는 것은 영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이 회장은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으로도 미국을 찾아 관세 협상에 힘을 보태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점검했다.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글로벌 AI 큰 손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와 포옹하는 장면이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10월에는 한국을 찾은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만나 700조원 규모의 초거대 AI(인공지능) 인프라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지원을 확정했다. 삼성전자는 고성능·저전력 메모리의 안정적인 공급을 책임지게 됐다.이 외에도 이 회장은 11월 중동 진출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UAE(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하고, 한국을 찾은 아시아 최고 갑부 무케시 암바니 인도 릴라이언스그룹 회장과 만나 반도체·통신 분야의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이달 중순에는 미국 출장에서 머스크 CEO와 리사 수 AMD CEO를 만나 파운드리 파트너십 강화와 AI 칩 고객 확대에 주력했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의 AI 칩 ‘AI4’를 공급 중이며, 차세대 ‘AI5’와 ‘AI6’는 미국 테일러 공장에서 생산할 것으로 관측된다.증권가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 진입과 HBM 격차 축소에 이어 사법리스크까지 해소되면서 삼성전자의 봄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올 상반기 5만~6만원으로 지지부진했던 주가는 10만원대로 치솟아 이제는 ‘15만 전자’를 바라보고 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올해 4분기, 내년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시장 컨센서스를 큰 폭 상회할 전망”이라며 “2026년 HBM 출하량은 올해 대비 3배 급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25.12.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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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공제 돼?” 연말정산, 놓치기 쉬운 공제 항목들 [연말정산 막판 점검]①

재테크

직장인들이 ‘13월의 월급’을 기대하는 연말정산 시즌이 돌아왔다. 환급금을 떠올리며 기대를 품는 동시에, ‘이번엔 또 얼마나 돌려줘야 할까’ 하는 불안도 앞선다. 실제로 연말정산 막판에 접어들수록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절세 꿀팁’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해진다.직장인 5명 중 1명은 ‘추가 납세’금융권에 따르면 내달 중순부터 ‘2025년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가 개통될 전망이다. 연말정산은 근로자가 한 해 동안 미리 납부한 세금과 실제 부담해야 할 세금의 차이를 정산하는 절차다. 하지만 이 과정이 항상 ‘환급’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국세청의 국세통계포털(TASIS)의 근로소득 연말정산 결과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귀속 근로소득 신고자 약 2053만4000명 가운데, 추가로 세금을 납부한 직장인은 398만2000명(19.4%)에 달했다. 직장인 5명 중 1명 꼴로 연말정산에서 오히려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는 연말정산의 중요성과 전략적 준비의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많은 직장인들이 간과하는 점은 연말정산이 ‘자동 환급 시스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세청 간소화 서비스는 참고 자료일 뿐, 모든 공제를 대신 챙겨주지는 않는다. 공제 요건을 충족하고도 신청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증빙을 제출하지 않아 혜택을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월세·의료비처럼 생활과 밀접한 항목일수록 ‘당연히 될 줄 알았다’는 착각이 잦다.홈택스만 믿었다가 놓친다…월세·중기 취업자 감면세무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대표적인 누락 항목은 ▲월세 세액공제 ▲중소기업 취업자 감면이다. 그 중에서도 월세 세액공제는 연말정산에서 가장 자주 빠지는 항목으로 꼽힌다. 총급여 8000만 원 이하 무주택 세대주라면 연간 월세액(한도 1000만원)의 15~17%를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집주인의 동의가 없어도 계약서와 계좌이체 내역만 있으면 가능하다. 다만 공제를 받기 위해선 월세를 내는 사람이 해당 주택에 거주해야 하고, 전입신고도 마쳐야 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세무사 장현수 사무소의 장현수 대표세무사는 “가끔씩 자녀가 월세집을 얻어서 혼자 살고 부모님이 자녀의 월세를 대신 내주는 경우에도 공제가 되는 것으로 아시는 분들이 많다”며 “하지만 이 경우는 공제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중소기업 취업자 감면 역시 놓치기 쉬운 항목이다. 중소기업에 재직한 지 5년 이내이면서 15~34세 청년에 해당할 경우, 연간 200만원 한도로 소득세의 90%를 감면받을 수 있다. 다만 중소기업 취업자 감면은 요건에 해당하더라도 회사에서 신청·제출 절차를 진행해야 적용돼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 의료비 공제도 마찬가지다. 안경·콘택트렌즈 구입비나 산후조리원 비용은 간소화 서비스에 자동 반영되지 않는 사례가 있다. 이 경우 홈택스에 조회되지 않으므로, 영수증을 따로 챙겨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특히 6세 이하 영유아의 의료비는 올해부터 한도가 폐지돼 전액 공제되므로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 또한 2024년 귀속분부터는 산후조리원 비용의 소득 요건도 폐지돼,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의료비 세액공제가 가능해졌다. “카드로 결제했는데 왜 안 되죠?”…대표적 착각 사례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카드를 얼마나 더 써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도 늘어난다. 하지만 신용카드 사용액 공제는 총급여의 25%를 초과해서 사용한 경우 적용된다. 이 기준을 넘긴 이후에는 공제율이 더 높은 체크카드나 현금영수증을 활용하는 편이 유리하다. 무작정 소비를 늘리기보다, 공제 구조를 이해한 뒤 결제 수단을 선택해야 ‘쓸데없는 소비’를 피할 수 있다.신용카드 결제 품목도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승용차 구입비는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대표적인 항목이다. 다만 2017년 이후 구입한 중고차에 한해서는 구입금액의 10%가 예외적으로 공제된다.강동형 세무회계 사무소의 강동형 대표세무사는 “연말정산에서 가장 흔한 오해는 ‘신용카드로 결제했으니 공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라며 “승용차를 신용카드로 구입한 경우 고액 결제라는 이유로 소득공제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동차 구입비용은 ‘지방세법’에 따라 취득세 및 등록면허세가 부과되는 재산에 해당해 신용카드 사용금액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설명했다. 끝났다고 끝은 아니다…5월 종소세‧경정청구 활용연말정산을 마쳤다고 해서 정산이 완전히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연말정산은 회사가 근로소득 부분을 대신 정리해주는 절차에 가깝다. 누락된 공제가 있다면 다음 해 5월 종합소득세 확정신고를 통해 보완할 수 있고, 과거 5년 이내라면 경정청구를 통해 환급을 신청할 수 있다. 개인이 공제 요건을 일일이 확인해 신고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납세 편의성과 신고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강동형 세무사는 “근로소득 외에 다른 소득이 있거나, 연말정산에서 공제 적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경우에는 5월 신고 단계에서 한 번 더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적용 요건과 증빙 준비가 중요하므로, 누락 가능성이 의심된다면 가능한 한 빨리 자료를 정리해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2025.12.22 06:01

4분 소요
정년연장 연내 입법화 표류…무엇이 문제인가 [정년연장의 역설]③

정책이슈

정년연장의 연내 입법화가 표류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년연장특별위원회를 가동해 방안 마련에 나섰음에도 말이다.정년연장 연내 입법화 무산되나정년연장 입법화가 표류하는 것은 ‘단계적 정년연장’의 구체적인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과 지금도 3년 차이가 나고, 오는 2033년에는 5년의 간격이 발생하는 제도적 불일치를 해결하는 단계 설정의 구체안이 문제인 것이다. 언제부터 시작해서 언제까지 끝나도록 단계를 설정할지에 따라 정년연장의 영향은 판이하다.현실적으로 노후 소득공백을 가장 빨리 줄이는 방안은 2027년부터 매년 1세씩 상향하는 방안(A안)이다. 영향권도 67년생부터 70년생으로 가장 좁다. 2028년부터 매년 1세씩 상향(B안)하면 67년생부터 71년생까지 1년씩 소득공백 축소가 늦어진다.2028년부터 2년에 1세씩 상향하는 C안(이른바 민주당 1안)의 소득공백은 67년생부터 74년생까지 발생하며, A와 B안보다 3~4년 더 길어진다.D안(유력하다는 민주당 2안)은 2029년부터 ‘3·3·2·2’ 간격으로 상향해 2039년 65세에 도달하는 방안이다. 이는 오는 2029년부터 3년에 1세씩 상향하는 E안(민주당 3안)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지금부터 14~16년 걸리고, 78년생과 80년생까지 소득공백이 발생하는 방안을 정년연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차라리 정년연장 유예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다.노후소득 크레바스(직장에서 은퇴해 국민연금 등 공적소득이 시작되기 전까지 발생하는 소득공백 기간)로 인한 연간 소득감소액(정규직 평균 월임금 389만6000원 기준)은 D, E 안에서는 1억원을 넘어 소득공백 총량이 매우 크다. 2년 재고용 방안을 혼합하면 연금과 정년의 불일치로 인한 소득 크레바스의 보완정책으로 효과적이긴 하나 역시 D, E 방안으로는 역부족이다. 물론 희망자 모두가 다 채용되는 재고용 의무화 방안은 민주당 안에서 제시되지 않았다. 의무화가 아닌 재고용으로 인한 임금손실 감소 효과는 절반 이하로 봐야 한다. 원판이 안 좋으면 헐거운 보완책으로는 어림도 없다.시간을 이미 많이 흘려보냈다. 연내 입법화를 완수하되 정년연장에 걸맞은 방안을 도입하자. 유예에 가까운 안으로는 피해가 집중될 세대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광범위한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재고용 보완책은 필수적이지만 의무화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절반에 가까운 현재 기업이 이미 하니 만큼 상황을 개선하지 못한다. 정년연장 필수 불가결 올바른 길 찾아야우리가 정년연장을 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늙어서까지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나라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년층은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숙련도 경험도 건강도 갖췄지만 한계 일자리를 전전한다. 퇴직 연령인 60세가 지나도 국민연금이 지급되지 않는 국가 제도의 불합리성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나이가 들수록 더 힘들어질 것을 알면서도 감액을 감수하고 국민연금을 조기 수령하는 인구가 100만명이 넘었다. 그래서 주된 일자리에서 더 오래 머물게 해 근원적으로 노년 소득공백을 완화하는 정년연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물론 고민은 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지만, 아직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고 ‘할 만한 일자리’가 청년에게는 여전히 부족하다. 공공 부문에서는 총액인건비제와 경영평가제의 재정비가 필요하고, 민간 부문에서는 세대 상생 고용모델을 촉진하는 고용공시제 적용이 필수적이다. 세대 상생형 직무 공유 모델도 이제부터라도 자리 잡게 촉진해야 한다.노동자 소득 상위 20%는 오래 근무할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호봉제 적용 비율과 비슷하다.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서 법적 정년연장이 급격한 인건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다. 그 대응안으로 기업들은 고용연장 선택권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신규 입사에 준하는 재고용 방식과 기업의 선별 장치이다. 2000년대 초 이 방식을 선택한 일본은 노후 소득공백의 문제가 심각해서 재고용 의무화(희망자 모두)와 희망자의 3년 고용보장, 기존 임금 70% 권고를 채택했다.10년 안에 고령화 지수가 일본보다 높아지는 우리는 저들처럼 먼 길을 돌아올 여유가 없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예외 적용은 노동 전문가가 거론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합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객관적 이유를 바탕으로 한 임금조정을 법에 명시하고 직무·시간·역할의 조정 기제를 촉진 및 확산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이제까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남 탓만 해온 책임을 통감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2025.12.21 15:00

3분 소요
정년연장에 속내 복잡한 2030…청년고용 붕괴 오나[정년연장의 역설]②

산업 일반

대한민국이 늙어가고 있다. 초저출생과 고령화라는 거대한 인구 구조의 변화 속에서 ‘정년연장’은 이제 선택이 아닌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행정안전부와 대구광역시 등 지자체를 중심으로 공무직 정년을 최대 65세로 연장하는 움직임이 시작된 상황속에서, 정부와 여당 주도하에 65세 정년 연장을 둘러싼 입법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 거대한 사회적 합의의 파도 아래에 2030 청년 세대의 복잡하고 불안한 시선이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점이다. 기성세대에게는 ‘노후 빈곤 탈출의 동아줄’이지만, 사회 진입을 앞둔 청년들에게는 ‘취업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정년연장 논의가 속도를 내는 가장 큰 배경에는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급격한 감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일할 사람은 줄어들고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숙련된 고령 인력의 활용은 국가 경쟁력 유지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대안으로 떠올랐다.여기에 '소득 크레바스' 문제도 불을 지폈다. 현재 법적 정년은 60세지만,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는 나이는 점차 늦춰(현재 63세, 향후 65세)지고 있다. 은퇴 후 연금을 받을 때까지 최대 5년 동안 소득이 '0'이 되는 죽음의 계곡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 기간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정년연장은 시급한 민생 과제로 꼽힌다.실제로 최근 여론은 정년연장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최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정년 연장에 대해 ‘찬성한다’는 응답이 79%에 달했다. 반대(18%) 의견보다 무려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우리 사회는 이미 정년연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끝난 것처럼 보인다.찬성 79% 속에 숨겨진 '세대 간 온도차'하지만 통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미묘한 균열이 감지된다. 연령별 찬성률을 분석해 보면 세대 간의 입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은퇴를 목전에 두거나 은퇴 후의 삶을 고민하는 40대(85%)와 50대(80%), 70세 이상(81%)에서는 압도적인 찬성 비율이 나타났다. 이들에게 정년연장은 당장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이자, 노후 빈곤을 막아줄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다. 대다수의 장년 및 고령층 입장에서는 정년연장을 반대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반면 20대(64%)와 30대(73%)의 찬성률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물론 과반이 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청년 세대가 정년연장 자체를 무조건 반대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80%를 상회하는 기성세대의 열광적인 지지에 비하면, 2030세대의 지지는 유보적이거나 조건부적인 성격이 강하다. 왜 청년들은 정년연장이라는 사회적 흐름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일까.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30대 김모씨는 “정년이 늘어나는 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내 밥그릇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20대인 사촌동생만 해도 계약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은 생각도 못한다”며 “대학교 후배들 중에는 20대 후반 나이에도 집에서 쉬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단기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이것이 바로 2030세대가 느끼는 공포의 핵심이다.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특성상, 정년연장은 필연적으로 청년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이다. 특히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한정돼 있다. 기업 입장에선 고연봉을 받는 고령 근로자의 정년을 연장하면, 그만큼 인건비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한정된 인건비 총액 안에서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비용 절감책은 신규 채용 축소다. 즉 아버지 세대의 고용 연장이 아들 세대의 고용 절벽을 초래하는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이미 여러 연구에서 지난 2017년 정년 60세 의무화를 실행한 이후 청년층 고용이 줄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0년 발표한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 보고서를 보면 민간 사업체(10~999인)에서 정년 연장의 예상 수혜자가 1명 증가할 때 청년층 고용은 약 0.2명 줄었다.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간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에서도 2016~2024년 고령층(55~59세) 근로자 1명이 증가할 때 청년층 근로자는 0.4~1.5명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대기업처럼 청년층 선호도가 높은 사업장일수록 정년 연장에 따른 청년 고용 감소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기업들 역시 난색을 표하고 있다. 경영계는 “임금 체계 개편 없는 일률적인 정년연장은 기업 경영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고임금 근로자를 강제로 더 오래 고용해야 한다면, 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 신규 투자가 위축돼 결국 청년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악순환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이에 기업들은 정년연장의 전제 조건으로 ‘직무급제 도입’이나 ‘임금피크제 확대’ 등 임금 유연성 확보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반면 노동계는 “정년연장과 임금 삭감을 연계해서는 안 된다”며 맞서고 있다. 국민연금 수령 시기까지 소득을 온전히 보전해 주는 것이 정년연장의 취지인데, 임금을 깎는다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이다.‘세대 상생’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 필요전문가들은 정년연장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그 부작용을 최소화할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법적 정년을 숫자로 늘리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어느 한쪽의 희생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2030세대가 정년연장을 반대하는 기저에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깔려 있다. 이 불안을 해소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는 정년연장은 심각한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한인상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원은 지난 8월 발간된 ‘정년 65세 시대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보고서를 통해 “정년연장은 고령자의 소득 공백 해소와 연금재정 안정, 숙련 인력 활용 등에 긍정적이나, 청년고용 위축과 기업 부담 증가 등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정년연장의 주요 쟁점은 정년연장의 방식,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 간의 연계, 임금체계 개편 등이며, 노사는 정년연장 방식과 임금체계 개편 등에 대해 이견이 있다. 정년연장은 기존 노사정 중심을 넘어선 확대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충분한 합의를 도출하고 사업체 규모와 업종별 특성을 고려한 단계적·점진적 시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동시에 임금·근로시간 조정, 맞춤형 정책 지원, 청년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모니터링 등이 종합적으로 병행돼야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연착륙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25.12.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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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 논의하는데…재계는 희망퇴직 ‘칼바람’[정년연장의 역설]①

산업 일반

연말을 맞아 산업계 전반에서 희망퇴직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희망퇴직은 그동안 ‘젊은 피’ 수혈과 비용 절감을 위한 연례행사였으나 올해는 그 강도가 유독 강하다는 것이 업계 전반의 평가다. 정년연장 입법화 논의가 맞물리면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의 폭을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올해 연말 재계를 강타한 키워드는 단연 ‘희망퇴직’이다. 과거 경영난에 시달리는 한계 기업이나 사양 산업에 국한됐던 인력 감축이, 이제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핵심 주력 계열사까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번 인력 감원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선 인공지능(AI) 전환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 차원의 ‘체질 개선’이라는 점에서 그 충격이 남다르다.아모레퍼시픽 5년 만의 결단…유통·소비재 ‘군살 빼기’ 본격화칼바람의 시작은 소비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유통·소비재 업계였다. K-뷰티의 상징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최근 전사적인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이는 지난 2020년 12월 이후 약 5년 만의 일로, 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이번 희망퇴직 대상은 전사 지원 조직 및 오프라인 영업 조직 내 근속 15년 이상 또는 45세 이상 경력 입사 직원이다. ‘45세’라는 기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하던 퇴직 유도선이 40대 중반, 즉 경제 활동이 가장 왕성해야 할 허리 계층으로 내려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아모레퍼시픽의 이번 결정은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 장기화와 소비 트렌드의 급격한 디지털 전환에 기인한다.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영업 조직이 비대해진 상황에서, 온라인과 글로벌 이커머스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려는 의도다. 회사 측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체질 개선’이라고 설명하지만, 내부 직원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극에 달해 있다.이러한 흐름은 아모레퍼시픽만의 문제가 아니다. 롯데그룹과 GS그룹 등 전통적인 유통 강자들도 유사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롯데면세점, 롯데호텔 등은 이미 지난해 희망퇴직을 진행했으며, 롯데칠성음료는 최근 창사 75년만에 첫 희망퇴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속 10년 이상, 1980년 이전 출생자가 대상이다. GS리테일도 최근 만 46세, 근속 20년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고정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지 않고서는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다.‘석화 불황’ LG화학, 첨단소재까지 칼 댄다제조업의 쌀이라 불리는 석유화학 업계의 겨울은 더욱 혹독하다. 중국의 공격적인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 침체가 맞물리면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사상 유례없는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LG화학의 행보는 이러한 위기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LG화학은 이미 수익성이 악화된 석유화학 부문에서 희망퇴직을 진행한 데 이어, 최근에는 미래 먹거리로 꼽히던 첨단소재 부문으로까지 희망퇴직 범위를 확대했다. 첨단소재 사업부는 양극재 등 배터리 소재를 다루는 핵심 부서다. 하지만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이 길어지면서 전방 산업의 수요가 위축되자, 선제적인 인력 효율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현대차그룹도 최근 재계의 희망퇴직 칼바람에 동참했다. 최근 현대위아가 희망퇴직을 실시한 데 이어, 그룹의 핵심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까지 사실상 희망퇴직 절차에 돌입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2월 8일 ‘리스타트 프로그램(Re-start)’ 공지를 통해 만 50세 이상 직원에게 기본연봉의 50%에 남은 근속연수를 곱한 금액을 위로금으로 지급한다고 밝혔다. 최대 인정 기간은 6년이며, 지급 상한은 기본연봉의 300%다. 이외에도 자녀 학자금 1000만원, 경력개발비 1000만원, 휴가비와 차량 구매 지원금 등이 포함돼 있다. 현대모비스는 이 프로그램의 성격에 대해 “희망퇴직이 아니라 퇴직 예정자의 경력 재설계와 교육 지원을 위한 전직 지원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고액 위로금과 다양한 지원금이 포함된 점을 들어 실질적인 희망퇴직의 변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년 65세 논의의 허망함…‘사오정’의 부활이처럼 재계 전반에 희망퇴직 칼바람이 불면서,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정년 연장’ 이슈가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는 지적이 나온다.현재 행정안전부는 공무직의 정년을 65세로 연장했고, 여당은 법적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늘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늦춰짐에 따라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일하는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모두가 공감한다.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은 '모두를 위한 정년연장의 쟁점과 과제' 정책브리핑을 통해 “정년연장은 고령화와 정년-연금수급연령 불일치 등으로 노인 빈곤율이 높은 한국에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연의 문제”라며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노동시장 및 소득보장제도 개혁으로 노인 빈곤과 미래세대 부양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하지만 기업 현장의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다. 정년 연장은 기업에게 막대한 인건비 부담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정년 연장이 법제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고연차 직원들을 내보내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다.통계청에 따르면 평균 퇴직 연령은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52.9세, 2차 베이비부머(1964~1969년생)가 46.9세로 임금근로자들은 정년보다 7~13년 이른 시점에 일터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결국 ‘정년 연장’이라는 이상과 ‘조기 퇴직’이라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가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단순히 법으로 정년을 늘리는 것을 넘어, 중장년층을 위한 재취업 교육, 직무 중심의 임금 체계 개편, 사회 안전망 확충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매년 겨울 반복되는 ‘칼바람’은 더욱 매서워질 수밖에 없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지난 6월 발간한 ‘정년연장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중고령 노동시장 정책의 재구성’을 통해 정년제도가 실제 노동시장에서는 극히 제한된 효과만을 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약 80%가 법정 정년에 이르기 전에 주된 일자리에서 이탈하고 있다”며 “고령자 고용정책은 정규직 중심 설계에서 벗어나 고용 안정성과 경력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양질의 비정규직’ 제도화를 중심으로 과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25.12.21 13:00

4분 소요
특목·자사고보다 ‘동네 최상위 일반고’가 인기 끄는 이유는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2028학년도부터 대입 내신과 수능 체제가 전면 개편되면서 고교 선택 지형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첫 적용 대상이었던 현 고1에 이어, 두 번째 적용 대상인 중3 학생들이 치른 2026학년도 서울 고교 입시에서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국제고의 희비가 엇갈렸다. 서울권 15개 자사고 지원자는 전년보다 583명(8.4%) 줄어든 반면, 7개 외고·국제고 지원자는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지역 15개 자사고의 2026학년도 평균 경쟁률은 1.12대 1로 집계됐다. 2024학년도 1.25대 1, 2025학년도 1.22대 1에 이어 3년 연속 하락세다. 같은 기간 지원자 수도 2024학년도 7255명에서 2026학년도 6369명으로 줄었다.꺾이는 자사고 기세내신 5등급제가 처음 적용되는 2028학년도 대입을 앞두고 치러진 지난해와 올해 고교 입시 모두 자사고 지원자는 감소 추세다. 현행 내신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의 전환에 따른 부담이 자사고 기피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서울권 15개 자사고 가운데 5개교가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서울 동대문구 경희고를 제외한 세화고·양정고·세화여고·휘문고 등 4개교는 모두 강남·서초·양천 등 전통적 교육특구에 있는 학교들이다. 특히 강남구 휘문고는 일반전형과 사회통합전형을 합산한 평균 경쟁률이 0.50대 1에 그쳤다. 전체 모집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셈이다.반면 서울권 7개 외고·국제고는 상황이 다르다. 2026학년도 지원자는 전년보다 152명(6.3%) 증가했다. 지원자 수는 2024학년도 2290명, 2025학년도 2402명, 2026학년도 2554명으로 매년 늘었다. 평균 경쟁률도 1.48대 1→1.55대 1→1.65대 1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7개교 모두 미달 없이 정원을 채웠다.외고·국제고는 그동안 문과 중심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 주로 선택됐다. 상위권 일반고 상당수가 이과 중심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인문계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외고·국제고의 선호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8학년도부터 문·이과 완전 통합이 이뤄지면서 수능에서 사실상 계열 구분이 사라진다. 이 때문에 외고·국제고 등 기존 ‘문과’ 이미지가 강한 학교에서도 수능 성적만 받쳐준다면 의과대학 등 자연계 학과 진학이 가능해진다. 대학 진학 경로가 지금보다 넓어지는 만큼, 2028학년도 대입 이후 이과 계열 진학자도 상당폭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자사고에 비해 외고·국제고 지원자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학교별로 보면 자사고 중에서는 은평구 하나고의 경쟁률이 2.62대 1로 가장 높았다. 이화여고(중구)가 1.45대 1, 신일고(강북구)가 1.34대 1, 배재고(강동구)가 1.30대 1, 현대고(강남구)가 1.20대 1로 뒤를 이었다.반면 세화고는 0.995대 1, 양정고 0.86대 1, 세화여고 0.85대 1, 경희고 0.77대 1, 휘문고 0.50대 1로 5개교는 모두 모집 정원보다 지원자가 적었다.외고·국제고는 서울국제고가 2.12대 1로 가장 높았고, 명덕외고 1.79대 1, 대일외고 1.68대 1, 대원외고 1.62대 1, 이화외고 1.60대 1, 한영외고 1.51대 1, 서울외고 1.38대 1 순이었다. 7개교 정원 1550명에 2554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은 1.65대 1을 기록했고, 한 곳도 미달이 발생하지 않았다.사회통합전형에서는 자사고의 미달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서울권 하나고를 제외한 나머지 14개 자사고 모두 사회통합전형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14개교 통합 기준 사회통합전형 모집 정원은 1135명이었으나 실제 지원자는 408명에 그쳐 평균 경쟁률은 0.36대 1이었다.학교별로 보면 휘문고(강남구)는 98명 모집에 5명만 지원해 0.05대 1에 불과했다. 세화고(서초구)는 84명 모집에 6명 지원(0.07대 1), 세화여고(서초구)는 84명에 11명 지원(0.13대 1), 양정고(양천구)는 84명에 13명 지원(0.15대 1), 현대고(강남구)는 84명에 16명 지원(0.19대 1)으로 모두 강남·서초·양천 지역 학교에서 사회통합 지원자가 극히 적게 나타났다.반면 하나고는 사회통합전형에서 40명 모집에 51명이 지원해 1.2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외고·국제고의 사회통합전형은 340명 모집에 303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0.89대 1을 보였다. 학교별로는 서울국제고가 1.38대 1, 대일외고가 1.08대 1로 정원을 넘겼고, 명덕외고 0.98대 1, 대원외고 0.82대 1, 이화외고 0.60대 1, 서울외고 0.60대 1, 한영외고 0.56대 1 등 5개교는 미달이었다. 학군지 쏠림은 심화종합하면 2026학년도 서울 자사고는 내신제도 개편에 따른 부담으로 지원자 수가 감소했지만 외고·국제고는 ▲문·이과 통합 ▲대입제도 개편에 대한 기대감 ▲고교학점제 도입 효과 ▲문과 학생에게 유리하다는 기존 이미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원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이 같은 흐름은 일반고 재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반적으로 서울 일반고 가운데 지역 내 상위권 일반고의 쏠림이 심화하고, 학교 내신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학생 수가 많은 학교에 지원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목·자사고에 진학하는 것보다 해당 지역에서 ‘좋은 일반고’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반고 선호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학군지 이동이 한층 더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대입 제도 변화와 고교 서열 재편 논의가 맞물리면서, 특정 학군에 대한 수요가 더 집중되는 구조적 변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2025.12.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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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 이제 초조해하지 마라”…50대 직장인을 위한 위로의 책 [새로나온 책]

얼마 전 종영한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한국의 50대 직장인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인기를 얻었다. 류승룡 배우가 열연한 김 부장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자신의 현재, 혹은 가까운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김 부장의 고뇌가 남 일 같지 않은 이유는 대한민국에서 50이라는 나이가 갖는 무게감 때문이다.직장인에게 가장 잔인한 시기가 40~50대일 것이다. 실무 능력보다 조직 관리 능력이 요구되고, 임원이 되지 못하면 ‘집에 갈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은 크지만, 당장의 업무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치여 여유를 갖기란 요원하다.몸과 마음이 쫓기는 50대 직장인들에게 마음의 쉼표를 제안하는 책이 출간됐다. 신간 ‘오십에 읽는 명리의 지혜’는 불안한 중년들에게 명리학(命理學)을 권한다. 저자는 명리학을 단순한 점술이 아닌, 인생의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데이터 분석 도구’이자 ‘마음 경영의 기술’로 정의한다.저자는 50대가 겪는 초조함의 원인을 ‘자신의 때’를 알지 못하는 데서 찾는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듯 인생에도 흐름이 있는데, 겨울에 억지로 꽃을 피우려 하니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명리학은 자신이 현재 인생의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타고난 기질(명)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운용(리)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저자는 “명리를 알면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막막함이 걷히고, 비로소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강조한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내 운의 흐름이 바뀌는 변곡점일 뿐이며, 이를 미리 알고 대비한다면 두려움 대신 기대감으로 인생 후반전을 맞이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이 책이 여타 명리 서적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저자의 독특한 이력에 있다. 저자 김원은 연세대 공대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소니·액센츄어·삼성경제연구소·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거쳐 현재 글로벌 기업의 임원으로 재직 중인 정통 ‘기업인’이다. 30대 중반, 잦은 이직과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명리학에 입문한 그는 20년 이상 명리를 연구하며 비즈니스와 인생의 접목을 시도해왔다. 현실의 벽 앞에서 길을 잃은 이 시대의 김 부장들에게 가장 실용적이고 따뜻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저자는 “체면보다 실속, 정면 승부보다 현명한 회피, 이것이야말로 더 깊어진 인생 2막을 지혜롭게 버텨내는 힘이다”라고 50대에게 조언한다. 휴먼 코드 AI가 질주한다, 당신의 무기는 무엇인가 ‘인공지능(AI) 시대 당신의 무기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AI 시대에 대응하는 방법을 조언하는 책이다.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는 속도로 질주하는 지금, 단순히 도구를 쓰는 능력(리터러시)만으로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이 책은 AI 리터러시를 넘어, 기술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가치인 ‘휴먼 코드’(Human Code)를 재설계하라고 강조한다. 싱턴대 경영대 교수 출신이자 스타트업 창업가인 저자 성소라는 글로벌 리더 55인과의 심층 대담을 통해 AI 시대의 새로운 생존법을 탐구했다. 저자는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을 차용해 AI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AI 종속자’부터 기술을 놀이처럼 다루는 ‘AI 경계 파괴자’까지 4단계로 분류한다. 일, 감각, 관계, 소유, 사회 등 5가지 영역에서 ‘나’를 잃지 않고 기술의 주인이 되는 법을 제시하는 이 책은, AI 피로감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트럼피즘과 관세전쟁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관세(Tariff)’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언은 이제 냉혹한 현실로 다가왔다. 이 책은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으로 무장한 ‘트럼피즘 2.0’의 실체와 그 파장을 정밀하게 분석한다.책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니라, 미국 제조업 패권 회복을 위한 ‘경제 전쟁’의 서막임을 경고한다. 저자는 모든 수입품에 대한 보편적 기본 관세 부과와 대중국 디커플링이 초래할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특히 반도체, 자동차 등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맞닥뜨릴 위기를 진단한다. 미·중 사이에서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외교·경제적 해법을 모색한다. 불확실성의 파고 속에서 한국 기업과 투자자가 반드시 숙지해야 할 생존 전략을 담고 있다. 양자컴퓨팅 혁명 슈퍼컴퓨터가 1만 년 걸릴 계산을 단 200초 만에 끝내는 세상. 공상과학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양자(Quantum) 시대’의 본질을 파헤친 책이 나왔다. 최종현학술원과 플루토가 펴낸 신간 ‘양자컴퓨팅 혁명’은 난해한 물리학 이론을 넘어, 이 거대한 기술 파도가 어떻게 세상을 뒤바꿀지 조망한다.책은 최종현학술원의 ‘과학혁신 시리즈’ 4번째 결과물이다. 김기문·정연욱·김재완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중첩’과 ‘얽힘’이라는 양자역학의 기묘한 원리가 어떻게 신약 개발, 금융, 암호 보안 등 산업 전반을 혁신하는지 대중의 눈높이에서 설명한다. 특히 구글, IBM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치열한 기술 패권 경쟁과 미·중 갈등 속 안보 전략까지 깊이 있게 다뤘다. 디지털 시대를 넘어 퀀텀 시대로 진입하는 지금, 미래의 부와 기회를 선점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필수적인 안내서다.

2025.12.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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