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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중고 직거래에 숨은 ‘동네 연결’의 가치

한국인이 쿠팡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쇼핑 앱
이용자 절반은 40대 이상으로 세대 격차도 허물어

당근마켓 로고. [사진 당근마켓]
한국인이 쿠팡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쇼핑 애플리케이션은 어디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도 네이버쇼핑이나 G마켓을 떠올릴 것이다. 정답은 ‘당근마켓’이다. 물론 ‘신상’을 구매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고 거래를 중심으로 한국인들이 두 번째로 많이 이용하는 쇼핑 앱이다. 
 
2015년 여름, 판교 IT 밸리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만든 중고 장터로 출발해 불과 6년 만에 당근마켓이 이룬 성과는 놀랍다. 최근 AC닐슨이 발표한 당근마켓 모바일 앱의 월간 활성 사용자(MAU) 수는 올 초 기준 1200만명에 달한다 자산 가치는 60조원에 육박한다. 
 
원조 중고 거래 앱인 ‘번개 장터’나 ‘중고나라’를 제치고 2019년부터는 중고거래 시장에서의 1위를 차지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늘어난 영향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1년간의 성과는 더욱 눈부시다. 당근마켓은 무려 170%가 넘는 성장을 이뤄냈다. 이는 코로나19로 성장세를 보인 다른 플랫폼들과 견주어도 뛰어난 성과다.
 
당근 마켓의 성장은 질적으로도 괄목할 만하다. 디지털광고업체 인크로스가 201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당근마켓은 우리나라 전자상거래 앱 중 가장 많은 실행 횟수와 가장 긴 체류 시간을 가진 앱이다. 당근마켓의 이용자들은 단순히 목적한 바를 이루고 빠져나가는 패턴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플랫폼의 경쟁력이 체류 시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근마켓의 경쟁력은 기존 유통 강자들이 긴장할 만하다. 돈을 쏟아붓는 광고를 하지도 않으면서 내로라하는 유통 강자들을 제치고 우리나라 두 번째의 거래 플랫폼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앱의 실행도 가장 많이 하고 일단 앱에 들어온 사람들은 오랫동안 머무는 데엔 분명히 뭔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구인·구직·부동산 정보로 확대

당근마켓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6㎞ 반경 내의 우리 집 동네, 혹은 나의 직장 동네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는 ‘하이퍼 로컬(hyper local)’서비스를 표방하는 플랫폼이다. 출발은 같은 동네 사는 사람들끼리의 중고물건 거래 플랫폼이었지만 지금은 구인·구직·부동산 등 각종 지역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 유익한 생활 정보를 제공하다 보니 전국 지자체의 러브 콜을 받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발전하고 있다.
 
당근마켓의 사업 아이디어는 당시 카카오에 근무하던 김용현 당근마켓 공동대표가 사내 게시판에서 직원 간 중고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에서 비롯했다. 직거래다 보니 하루에도 열댓 번씩 게시판에 들락거리는 직원들을 보며 김 대표는 사업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근무에 바쁜 사람들이지만 ‘직접 거래’라는 관여도가 생기자 방문빈도도 늘어났다.
 
이런 사업 아이디어를 품고 있던 중 그는 카카오를 떠나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며 당근마켓의 전신인 ‘판교장터’를 앱으로 만들었다. 처음엔 판교 지역의 IT업체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했다. 당근마켓이 직장인 대상에서 지금처럼 지역 주민 대상으로 시장을 확장한 것은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당근마켓은 GPS를 이용해 동네 주민이라는 것을 확인해야 이용할 수 있다. [사진 당근마켓]
어느 날 판교장터에 아기 엄마 세 명이 찾아왔다. 판교 IT밸리에 근무하는 남편을 둔 이들이 김용현 대표를 만나 판교장터를 지역 주민들에게도 확대해 달라고 요구했다. 중고 거래는 남편보다 육아하는 아줌마들이 훨씬 많이 이용한다는 말을 하며 맘카페의 실상을 설명해 주었다. 
 
김 대표는 실제로 아이들이 쑥쑥 커 버리면 필요 없는 육아용품이 집에 많이 쌓이게 되고, 그로 인해 중고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육아용품과 장난감은 부피도 커서 택배로 배달하기 어렵다. 이때문에 지역민들끼리 직접 만나서 주고받는 것이 훨씬 편했고, 그러다 보니 맘카페의 거래량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맘카페의 문제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이었다. 여성들만 참여할 수 있고 거래를 하려면 카페 안에서 등급을 높여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웠던 것이다. 김 대표는 진입장벽을 낮추고, GPS로 해당 동네 주민이라는 것만 확인되면 누구나 거래할 수 있게 만들었다. 브랜드도 ‘당신 근처’라는 의미의 ‘당근’으로 바꾼 것이 당근마켓의 시작이다. 판교 직장인에서 지역 주민으로 대상을 바꾸자 사용자 수는 급속히 증가했다.
 
당근마켓은 코로나 팬데믹의 덕을 톡톡히 봤다. 앱으로 만나 대면으로 거래를 마무리 하는 서비스의 특성 상 코로나 19가 비즈니스에 방해가 될 것 같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집안에 필요 없는 물건을 발견하게 되고, 또 뉴노멀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물건을 필요로도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월, 500만명 수준이던 월간 활성 이용자(MAU)가 불과 5개월 만에 900만명이 되더니 올 초엔 1200만명으로 늘었다. 나아가 이제는 1500만 명의 MAU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기간에 당근마켓이 다른 중고 거래 플랫폼들보다 거의 세 배 수준의 성장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역설적이게도 비대면이 아닌 대면 거래를 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판교 직장인 플랫폼에서 전국구 대상으로   

AC닐슨은 ‘번개장터’나 ‘중고나라’는 택배를 통해 물건을 주고받는 데 비해, 여러 명이 만나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가까운 이웃 둘이 직접 만나 1분 만에 거래를 끝내는 당근마켓은 사기를 염려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또 친근한 이웃과의 생산적 만남을 만들어 준 것이라고 분석한다. 
 
당근마켓의 놀라운 성장에는 거래 방식뿐 아닌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 특별함은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에 있다. 당근마켓은 지역 주민들의 더 나은 중고 거래 플랫폼으로서의 가치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더욱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역 커뮤니티 플랫폼 속에서 ‘동네 연결’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은 당근마켓과 함께 ‘위드유’ 에피소드를 선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당근마켓의 PPL이라고 생각 했겠지만 사실은 당근마켓 상에서 보여지는 사용자들의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를 보고, 프로그램 제작진이 먼저 먼저 협업을 제안한 것이다. 
 
당근 마켓은 이 협업을 통해 그들이 생각하는 동네 연결의 가치를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당근마켓’의 ‘같이해요’ 탭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고, 제작진이 연락을 취해 유재석이 동네 주민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함께 하는 방식이었다. 
 
당근마켓을 통해 동네에서 ‘함께 고기먹을 이웃을 만난 장면’은 뜻밖의 재미를 줬고, ‘자전거 가르쳐줄 이웃을 만나 어머니가 자전거 배우기에 성공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무엇보다 당근마켓이 단순한 중고 거래 플랫폼이 아니라 지역의 커뮤니티와 문화를 만드는 플랫폼이라는 것을 잘 알린 브랜딩이었다. 
중고 직거래를 넘어 지역 커뮤니티의 기능을 확장해 동네 상권을 활성화 등을 돕는다. [사진 당근마켓]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당근의 중고제품 거래는 지역주민 간의 만남이 주는 하나의 효용일 뿐이다. 당근마켓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비전은 강아지 산책을 대신해 줄 동네 사람을 찾아 주고, 우리 할머니가 여는 꽃꽂이 교실에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게 도와주어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시켜 주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당근마켓은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 대면이 필요 없어진 이 시대에 대면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킬수 있는 곳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이러한 ‘당근’만의 독특한 가치가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이곳에 머물게 만드는 비결일 것이다.
 

동네 장터만의 ‘사람 냄새’가 경쟁력

당근마켓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동네 장터의 따뜻함과 소소하지만 정이 넘치는 ‘사람다움’이다. 앱 내의 문구에서 사용되는 ‘변경 됐습니당~’과 같은 표현은 캐릭터인 토끼 만큼이나 귀엽고 친근하지만 당근의 ‘당’을 연상시키고 자기다움을 강화 시키는 매력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동네 생활’ 게시판에는 “사는게 힘들어 위안을 받기 위해 글을 올렸는데 감사하게도 선뜻 나눔을 주어 행복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다. 사용자들의 연령도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다.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40대 이상이니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역적 연대감이 세대간의 격차 조차도 줄이는 독특한 플랫폼인 것이다. 좀 더 싼 제품, 좀 더 빠른 배송을 무기로 처절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디지털시대에 ‘사람다움’의 문화가 살아 있는 플랫폼 브랜드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그것이 아마도 당근마켓에 모든 플랫폼들이 긴장하는 이유일 것이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대학교수다. 제일기획과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 마케팅에 관심을 가졌고,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플랫폼 기업의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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