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중앙화폐 전쟁 서막 올랐다…쟁점은 ‘세금’
세계 각국, 암호화폐 규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제작 나서
한국은행, “암호화폐 인정 못해” 자체 CBDC 법제화 착수
금융업계 “CBDC와 암호화폐 각자 역할로 결국 공존할 것”
세계 각국 정부들이 앞다퉈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연구·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이와 동시에 범람하는 민간 암호화폐(또는 가상화폐)에 대한 억제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선 민간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대응책으로 해석한다. 민간 암호화폐가 중앙 정부의 통제권에서 벗어난데다, 몰려드는 수요를 기반으로 가치·통용·지불·거래 역량을 높이고 종류도 급증하고 있어서다. 정부의 규제에도 일각에서는 훗날 암호화폐가 CBDC와 공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에콰도르·우루과이 등은 금융포용을 제고하기 위해 CBDC 시범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포용(financial inclusion)은 개인 또는 기업이 자신의 필요에 맞는 금융서비스를 적절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상태나 이용 가능하도록 돕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 반대말로 자신의 상황 때문에 원하는 금융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태를 금융소외(financial exclusion)라고 지칭한다. 중국과 스웨덴은 현금 이용 감소와 민간 암호화폐 출현 등에 대응해 CBDC 발행 준비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은행(한은)도 팔 걷고 나섰다. 최근 2년여 동안 CBDC와 관련해 시장 조사, 보고서 작성, 전담부서 신설 등을 추진했다. 지난해 6월엔 관련 법의 제·개정을 위해 법률자문단도 출범시켰다. 이어 7월에 디지털화폐 정책을 연구하기 위한 디지털혁신실도 신설했다. 부서 명칭을 ‘Digital Transformation’으로 정해 종이화폐를 디지털화폐로 전환할 중장기 계획을 시사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CBDC를 연구하면서도 민간 암호화폐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암호화폐는 화폐로 기능할 수 없으며 투자 목적의 가상자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은 한국은행이 지난 2월 CBDC의 법적 쟁점을 검토하기 위한 외부연구용역 결과 보고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관련 법적 이슈 와 법령 제·개정 방향’에서 엿볼 수 있다. 한국은행은 이 보고서에서 ‘CBDC는 발권력·강제통용력에 있어 현재 통용되는 한국은행권·주화와 같은 지위(법화)를 가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와 함께 “현행법상 한국은행이 아닌 기관이 발행하는 각종 가상자산은 명칭과 관계없이 CBDC에 해당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은행 관계자는 CBDC 개발에 대해 “외부에 공개할 정도의 내용이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최종 시험까지 진행할 계획”이라며 “민간이 발행한 가상자산과 한국은행이 발행한 화폐 간의 주도권 싸움이라 보기 어렵다”며 해석 확대를 경계했다. 그 이유에 대해 “비트코인의 화폐 가치를 인정할지 논란이 있지만, (한국은행은)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민간에서 발행한 화폐라는 전제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금융당국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4월 22일 민간의 암호화폐를 “인정할 수 없는 가상자산”이라고 저평가했다.
외국도 중앙 정부의 통제권을 벗어난 암호화폐에 부정적이다. 특히 중국은 CBDC 보급과 암호화폐 근절에 적극적이다. 중국 정부는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라고 이름 붙인 암호화폐 ‘디지털 위안화’를 서둘러 만들었다. 이를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전까지 선보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주요 도시에서 시범 유통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비트코인처럼 중앙 통제를 벗어난 지불·거래 매개체를 사용하는 행위는 중국의 통화 주권을 침해한다고 보고, 현금을 디지털로 전환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안유화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DCEP를 추진하는 배경으로 인민은행과 중국 상업은행(시중은행) 간의 힘겨루기로 분석했다. 안 교수는 “중국은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돈이 상업은행을 통해 유통된다. 신용을 확장시킬 수 있는 힘을 은행이 쥐고 있다는 의미”라며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신용 관리 파워를 갖고 오려는 데에서 DCEP 발행의 주 요인을 찾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DCEP는 디지털 화폐이므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 DCEP에 고유 식별 번호를 지정해 특정 영역 안에서만 유통·활성화되도록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인민은행은 통제력을 갖고 통화정책을 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중앙 통제를 벗어난 암호화폐에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판이페이 중국 인민은행 부총재도 지난해 10월 ‘금융가 포럼 연례회의 및 제 2회 청팡 핀테크 포럼’에서 “인민은행은 급변하는 금융 혁신과 복잡하고 위험한 현실에 처해있다”며 “금융기술 규제 도입을 빠르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은 최근 암화화폐 채굴장에 대한 단속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19일 중국청년보에 따르면 중국은행업협회·중국인터넷금융협회·중국지불청산협회는 18일 밤 공동으로 ‘암호화폐 거래·투기 위험에 관한 공고’를 발표했다. 협회는 공고를 통해 ‘최근 세계적인 암호화폐 투기 현상이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위협하고 정상적인 금융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암호화폐는 진정한 화폐가 아니므로 시장에서 사용해선 안 된다. 중국에서 암호화폐를 신규 발행하거나 암호화폐 관련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것은 불법 금융활동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20일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財新)에 따르면 네이멍구 자치구는 지난 18일부터 암호화폐 채굴장에 대한 신고망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조치가 “국가적인 에너지 절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관내 암호화폐 광산을 없애버리겠다”고 강조했다. 신고 대상에는 암호화폐 채굴 기업과, 이들 기업에 토지나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포함했다.
미국도 암호화폐에 대한 감시망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미국 재무부는 20일(미국 현지시각) “앞으로 1만 달러 이상 암호화폐를 거래하면 국세청(IRS)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한다”고 발표했다. 시행 배경에 대해 재무부는 “암호화폐는 탈세를 포함한 불법활동이 만연해 중대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이날 “암호화폐 사용이 급증하고 있어 적절한 규제·감독의 틀을 적용,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연방준비제도(Fed)가 올 여름 ‘디지털 달러’에 대한 구상을 담아 보고서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각국이 탈중앙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에 나서고 있지만, 일각에선 암호화폐가 나름의 입지를 구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자문위원은 “정부만 화폐 기능을 독점하는 것은 오늘날 금융환경에 맞지 않다. 민간도 화폐적 기능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각국이 중앙은행을 통해 CBDC를 들고 나오는 배경에 대해 그는 “세금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금융 당국이 (암호화폐에 대해) 신경을 써오지 않다가 세금 징수가 국가의 통제 영역에서 벗어나자 문제를 인식하게 됐고 CBDC를 통해 국가적인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의 생존 가능성을 묻는 [이코노미스트]의 질문에 최 위원은 “CBDC와 암호화폐, 이 둘은 함께 갈 수 밖에 없다”며 “민간에서 암호화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믿음이 존재하는 한 암호화폐의 생존력은 유지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 “사용자가 신뢰라는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암호화폐가 통용력을 지닐 수 있게 된다. 그 기반은 플랫폼으로서의 지불능력”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궁극적인 질문은 국가가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지불 영역에서 국경의 의미는 많이 퇴색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법정화폐와 민간화폐가 공존하는 모습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CBDC는 국가 간의 거래나 실시간 총액결제(RTGS) 같은 거액 거래에서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고, 소액 거래에선 민간의 결제 수요는 암호화폐가 분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래 화폐에 대래 “CBDC와 암호화폐의 공존은 마찰을 빚고 있으며 정리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공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현재의 마찰은 일반인이 편리한 세상으로 가는 과정이자 진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웅모 디코인 부대표도 공존 가능성을 전망했다. 그는 “CBDC의 본질적인 가치는 현재의 현금과 다를 바 없다. 비용 절감 등 세부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물리적 형태를 갖추지 않은 현금일 뿐 정부가 발행한 화폐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CBDC와 암호화폐는 용도가 다르다. 암호화폐가 종류가 많지만 현금을 대체하려는 것은 없다. 대표적인 예로 비트코인은 가치 저장소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맡게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현금에 대해선 “현재 용도대로 활용될 것이다. 다만, (CBDC를 도입하면) 손실·망실이 없는 편의성과 집행·관리 비용을 절감하는 이점을 얻게 될 것이다. 암호화폐와 영역이 달라 서로를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외국의 CBDC 발행 움직임에 대해 “CBDC는 국가별 상황에 따라 달리 봐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의 인식은 암호화폐를 정부의 발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보기 때문에 부정적이다. 그러므로 CBDC를 발행하는 국가는 암호화폐에 적대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책의 문제다. CBDC를 발행하는 제3세계 국가는 암호화폐에 친화적”이라며 “베네수엘라의 경우 석유를 담보로 페트로를 발행하는 등 국가 상황에 맞춰 활용할 수 있다”고 예를 들었다. 베네수엘라는 2018년 암시장 환율 급등, 하이퍼 인플레이션, 시중 화폐 부족 등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국산 원유 1배럴의 가격과 연동하는 암호화폐 ‘페트로’(화폐 단위 ‘PRTR’)를 선보였다. 정부 주도로 만든 암호화폐로 세계 처음이다.
씨티은행도 CBDC와 암호화폐의 공존에 무게를 두는 보고서 ‘돈의 미래’를 작성했다. 보고서엔 ‘CBDC 같은 디지털화폐와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는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기존의 화폐·은행·지불 구조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돈이 포맷 전쟁을 시작했지만, 유사한 갈등을 겪었던 비디오나 전기와는 달리 승자 독식의 경쟁으로 보지 않는다. 기존 화폐, CBDC, 암호화폐가 모두 공존할 것’이라는 전망을 담았다.
이와 함께 ‘암호화폐가 현재의 금융기관을 탈피해 은행의 변동성과 비용을 증가시키고 수표·카드 같은 기존 결제수단을 대체하며, 이론적으로는 미국 달러의 패권에 도전할 수도 있다. 다만 지금의 비트코인은 (부침이 심한) 가격 변동성 등의 문제로 화폐 역할을 수행하는데 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씨티은행은 지난 3월 발표한 ‘비트코인’ 보고서에서 “탈중앙화한 암호화폐가 법 테두리를 벗어난 거래를 부추기고 기존 결제 수단에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출시 초기엔 덧없는 꿈처럼 보였다. 게다가 정부·은행·규제 당국은 암호화폐의 성장을 제한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저항은 이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세계를 변화시킬 힘으로서 비트코인의 비전은 불과 몇 년 안에 자명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약칭으로 실물 명목 화폐를 대체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다. 기존 실물 화폐와 달리 가치가 전자적으로 저장되며 이용자 간 자금이체 기능으로 지급결제가 이뤄진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통화로서 암호화폐와 달리, 기존 화폐와 동일한 교환비율이 적용되므로 가치 변동의 위험이 적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에콰도르·우루과이 등은 금융포용을 제고하기 위해 CBDC 시범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포용(financial inclusion)은 개인 또는 기업이 자신의 필요에 맞는 금융서비스를 적절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상태나 이용 가능하도록 돕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 반대말로 자신의 상황 때문에 원하는 금융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태를 금융소외(financial exclusion)라고 지칭한다. 중국과 스웨덴은 현금 이용 감소와 민간 암호화폐 출현 등에 대응해 CBDC 발행 준비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은 “CBDC가 유일한 강제통용 화폐, 비트코인은 가상자산”
한국은행(한은)도 팔 걷고 나섰다. 최근 2년여 동안 CBDC와 관련해 시장 조사, 보고서 작성, 전담부서 신설 등을 추진했다. 지난해 6월엔 관련 법의 제·개정을 위해 법률자문단도 출범시켰다. 이어 7월에 디지털화폐 정책을 연구하기 위한 디지털혁신실도 신설했다. 부서 명칭을 ‘Digital Transformation’으로 정해 종이화폐를 디지털화폐로 전환할 중장기 계획을 시사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CBDC를 연구하면서도 민간 암호화폐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암호화폐는 화폐로 기능할 수 없으며 투자 목적의 가상자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은 한국은행이 지난 2월 CBDC의 법적 쟁점을 검토하기 위한 외부연구용역 결과 보고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관련 법적 이슈 와 법령 제·개정 방향’에서 엿볼 수 있다. 한국은행은 이 보고서에서 ‘CBDC는 발권력·강제통용력에 있어 현재 통용되는 한국은행권·주화와 같은 지위(법화)를 가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와 함께 “현행법상 한국은행이 아닌 기관이 발행하는 각종 가상자산은 명칭과 관계없이 CBDC에 해당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은행 관계자는 CBDC 개발에 대해 “외부에 공개할 정도의 내용이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최종 시험까지 진행할 계획”이라며 “민간이 발행한 가상자산과 한국은행이 발행한 화폐 간의 주도권 싸움이라 보기 어렵다”며 해석 확대를 경계했다. 그 이유에 대해 “비트코인의 화폐 가치를 인정할지 논란이 있지만, (한국은행은)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민간에서 발행한 화폐라는 전제가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금융당국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4월 22일 민간의 암호화폐를 “인정할 수 없는 가상자산”이라고 저평가했다.
미·중, 암호화폐 감시 강화, 중앙 정부 디지털 화폐 띄우기
외국도 중앙 정부의 통제권을 벗어난 암호화폐에 부정적이다. 특히 중국은 CBDC 보급과 암호화폐 근절에 적극적이다. 중국 정부는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라고 이름 붙인 암호화폐 ‘디지털 위안화’를 서둘러 만들었다. 이를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전까지 선보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주요 도시에서 시범 유통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비트코인처럼 중앙 통제를 벗어난 지불·거래 매개체를 사용하는 행위는 중국의 통화 주권을 침해한다고 보고, 현금을 디지털로 전환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안유화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DCEP를 추진하는 배경으로 인민은행과 중국 상업은행(시중은행) 간의 힘겨루기로 분석했다. 안 교수는 “중국은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돈이 상업은행을 통해 유통된다. 신용을 확장시킬 수 있는 힘을 은행이 쥐고 있다는 의미”라며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신용 관리 파워를 갖고 오려는 데에서 DCEP 발행의 주 요인을 찾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DCEP는 디지털 화폐이므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 DCEP에 고유 식별 번호를 지정해 특정 영역 안에서만 유통·활성화되도록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인민은행은 통제력을 갖고 통화정책을 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중앙 통제를 벗어난 암호화폐에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판이페이 중국 인민은행 부총재도 지난해 10월 ‘금융가 포럼 연례회의 및 제 2회 청팡 핀테크 포럼’에서 “인민은행은 급변하는 금융 혁신과 복잡하고 위험한 현실에 처해있다”며 “금융기술 규제 도입을 빠르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은 최근 암화화폐 채굴장에 대한 단속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19일 중국청년보에 따르면 중국은행업협회·중국인터넷금융협회·중국지불청산협회는 18일 밤 공동으로 ‘암호화폐 거래·투기 위험에 관한 공고’를 발표했다. 협회는 공고를 통해 ‘최근 세계적인 암호화폐 투기 현상이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위협하고 정상적인 금융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암호화폐는 진정한 화폐가 아니므로 시장에서 사용해선 안 된다. 중국에서 암호화폐를 신규 발행하거나 암호화폐 관련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것은 불법 금융활동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20일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財新)에 따르면 네이멍구 자치구는 지난 18일부터 암호화폐 채굴장에 대한 신고망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조치가 “국가적인 에너지 절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관내 암호화폐 광산을 없애버리겠다”고 강조했다. 신고 대상에는 암호화폐 채굴 기업과, 이들 기업에 토지나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포함했다.
미국도 암호화폐에 대한 감시망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미국 재무부는 20일(미국 현지시각) “앞으로 1만 달러 이상 암호화폐를 거래하면 국세청(IRS)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한다”고 발표했다. 시행 배경에 대해 재무부는 “암호화폐는 탈세를 포함한 불법활동이 만연해 중대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이날 “암호화폐 사용이 급증하고 있어 적절한 규제·감독의 틀을 적용,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연방준비제도(Fed)가 올 여름 ‘디지털 달러’에 대한 구상을 담아 보고서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 “정부 규제는 세금 징수 때문, 결국 공존할 것”
이처럼 각국이 탈중앙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에 나서고 있지만, 일각에선 암호화폐가 나름의 입지를 구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자문위원은 “정부만 화폐 기능을 독점하는 것은 오늘날 금융환경에 맞지 않다. 민간도 화폐적 기능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각국이 중앙은행을 통해 CBDC를 들고 나오는 배경에 대해 그는 “세금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금융 당국이 (암호화폐에 대해) 신경을 써오지 않다가 세금 징수가 국가의 통제 영역에서 벗어나자 문제를 인식하게 됐고 CBDC를 통해 국가적인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의 생존 가능성을 묻는 [이코노미스트]의 질문에 최 위원은 “CBDC와 암호화폐, 이 둘은 함께 갈 수 밖에 없다”며 “민간에서 암호화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믿음이 존재하는 한 암호화폐의 생존력은 유지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 “사용자가 신뢰라는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암호화폐가 통용력을 지닐 수 있게 된다. 그 기반은 플랫폼으로서의 지불능력”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궁극적인 질문은 국가가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지불 영역에서 국경의 의미는 많이 퇴색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법정화폐와 민간화폐가 공존하는 모습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CBDC는 국가 간의 거래나 실시간 총액결제(RTGS) 같은 거액 거래에서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고, 소액 거래에선 민간의 결제 수요는 암호화폐가 분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래 화폐에 대래 “CBDC와 암호화폐의 공존은 마찰을 빚고 있으며 정리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공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현재의 마찰은 일반인이 편리한 세상으로 가는 과정이자 진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웅모 디코인 부대표도 공존 가능성을 전망했다. 그는 “CBDC의 본질적인 가치는 현재의 현금과 다를 바 없다. 비용 절감 등 세부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물리적 형태를 갖추지 않은 현금일 뿐 정부가 발행한 화폐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CBDC와 암호화폐는 용도가 다르다. 암호화폐가 종류가 많지만 현금을 대체하려는 것은 없다. 대표적인 예로 비트코인은 가치 저장소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맡게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현금에 대해선 “현재 용도대로 활용될 것이다. 다만, (CBDC를 도입하면) 손실·망실이 없는 편의성과 집행·관리 비용을 절감하는 이점을 얻게 될 것이다. 암호화폐와 영역이 달라 서로를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외국의 CBDC 발행 움직임에 대해 “CBDC는 국가별 상황에 따라 달리 봐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의 인식은 암호화폐를 정부의 발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보기 때문에 부정적이다. 그러므로 CBDC를 발행하는 국가는 암호화폐에 적대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책의 문제다. CBDC를 발행하는 제3세계 국가는 암호화폐에 친화적”이라며 “베네수엘라의 경우 석유를 담보로 페트로를 발행하는 등 국가 상황에 맞춰 활용할 수 있다”고 예를 들었다. 베네수엘라는 2018년 암시장 환율 급등, 하이퍼 인플레이션, 시중 화폐 부족 등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국산 원유 1배럴의 가격과 연동하는 암호화폐 ‘페트로’(화폐 단위 ‘PRTR’)를 선보였다. 정부 주도로 만든 암호화폐로 세계 처음이다.
씨티은행 “정부 억압에도 기존화폐·CBDC·암호화폐 공존할 것”
씨티은행도 CBDC와 암호화폐의 공존에 무게를 두는 보고서 ‘돈의 미래’를 작성했다. 보고서엔 ‘CBDC 같은 디지털화폐와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는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기존의 화폐·은행·지불 구조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돈이 포맷 전쟁을 시작했지만, 유사한 갈등을 겪었던 비디오나 전기와는 달리 승자 독식의 경쟁으로 보지 않는다. 기존 화폐, CBDC, 암호화폐가 모두 공존할 것’이라는 전망을 담았다.
이와 함께 ‘암호화폐가 현재의 금융기관을 탈피해 은행의 변동성과 비용을 증가시키고 수표·카드 같은 기존 결제수단을 대체하며, 이론적으로는 미국 달러의 패권에 도전할 수도 있다. 다만 지금의 비트코인은 (부침이 심한) 가격 변동성 등의 문제로 화폐 역할을 수행하는데 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씨티은행은 지난 3월 발표한 ‘비트코인’ 보고서에서 “탈중앙화한 암호화폐가 법 테두리를 벗어난 거래를 부추기고 기존 결제 수단에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출시 초기엔 덧없는 꿈처럼 보였다. 게다가 정부·은행·규제 당국은 암호화폐의 성장을 제한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저항은 이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세계를 변화시킬 힘으로서 비트코인의 비전은 불과 몇 년 안에 자명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약칭으로 실물 명목 화폐를 대체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다. 기존 실물 화폐와 달리 가치가 전자적으로 저장되며 이용자 간 자금이체 기능으로 지급결제가 이뤄진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통화로서 암호화폐와 달리, 기존 화폐와 동일한 교환비율이 적용되므로 가치 변동의 위험이 적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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