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ISP와 소송에서 패소…10년 역사 ‘망 중립성 원칙’ 기로에
25일 서울중앙지법 “넷플릭스, 망 사용료 협상 나서야”
1년간 국내 사용자 2배 늘어난 넷플릭스, 사용료는 ‘제로’
10년간 이어져 온 국내 ‘망 중립성’ 원칙이 위태롭게 됐다. 한 콘텐트업체가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며 인터넷망 업체(ISP)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졌기 때문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ISP가 사용료에 따라 어떤 콘텐트를 먼저, 또 빨리 전송할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김형석)는 25일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낸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넷플릭스)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계약자유의 원칙상 계약체결 여부와 어떤 대가를 지급할지는 당사자 계약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며 “법원이 나서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넷플릭스가 협상을 통해 망 사용료 액수를 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넷플릭스는 그간 망 사용료를 두고 ISP와 협상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소관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 시도에도 완강한 입장을 보였다. 지난 2019년 SK브로드밴드는 방통위에 망 사용료 협상 중재를 요청하는 재정신청을 냈지만, 넷플릭스는 이를 거부했다. 이어 지난해 4월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를 콕 집어 망 사용료를 요구한 이유가 뭘까. 지난 몇 년간 가파르게 늘어온 이 업체 사용자 수에 있다.
단적으로 지난해 1월 470만명이었던 월 사용자 수는 지난 2월 1000만명을 돌파했다. 불과 1년여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또 넷플릭스는 초고화질(UHD)과 고화질(HD), 일반화질(SD)로 나눠 화질별로 요금을 달리 받는다.
중요한 건 넷플릭스 아닌 망 중립성
이렇게 사용자가 늘면서 넷플릭스가 차지하는 트래픽(데이터 전송량)도 무시 못 할 수준이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넷플릭스는 국내 전체 트래픽의 4.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위 구글(25.9%)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국내 주요 콘텐트 업체인 네이버(1.8%)와 카카오(1.4%)를 합친 것보다 많다.
그런데도 넷플릭스는 그간 국내 ISP에 망 사용료를 내지 않았다. 반면 네이버는 한 해 국내 통신사들에 망 사용료로 약 700억원을, 카카오도 약 300억원을 지불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ISP들도 사정은 있다. 크게 느는 트래픽 탓에 SK브로드밴드는 최근 3년간 매해 8000억~9000억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진행해야 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무임승차’로 보일 법한 상태가 이어져 온 것은 망 중립성 원칙 때문이다. ISP들이 모든 데이터에 대해서 송‧수신할 때 차별을 둬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선 2003년, 국내에선 2012년 1월 정부가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면서 확립됐다.
자칫 도덕적 구호로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ISP가 각자의 인터넷 설비를 무기 삼아 사용료 협상에 나서면, 인터넷의 속도와 개방 범위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망 중립성 원칙을 도입한 나라에선 인터넷에 최초 접속할 때만 ‘접속료’를 내고, ISP끼리 데이터를 송‧수신할 땐 사용료를 물리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고 주장했던 근거도 이 지점에 있다.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일본 도쿄나 홍콩에 둔 서버를 활용하는데, 이 서버를 제공한 업체에 접속료를 치렀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법원의 결정으로 넷플릭스는 사용료 협상에 나서야 할 처지가 됐다. 지난 9년 반 동안 국내 사업자들의 개정 요구에도 큰 틀에서 유지돼 왔던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도 변화를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ISP가 요구하는) 과금 행위는 유럽통신규제기구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가 공히 금지한 바 있다”라고 지적했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김형석)는 25일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낸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넷플릭스)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계약자유의 원칙상 계약체결 여부와 어떤 대가를 지급할지는 당사자 계약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며 “법원이 나서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넷플릭스가 협상을 통해 망 사용료 액수를 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넷플릭스는 그간 망 사용료를 두고 ISP와 협상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소관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 시도에도 완강한 입장을 보였다. 지난 2019년 SK브로드밴드는 방통위에 망 사용료 협상 중재를 요청하는 재정신청을 냈지만, 넷플릭스는 이를 거부했다. 이어 지난해 4월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를 콕 집어 망 사용료를 요구한 이유가 뭘까. 지난 몇 년간 가파르게 늘어온 이 업체 사용자 수에 있다.
단적으로 지난해 1월 470만명이었던 월 사용자 수는 지난 2월 1000만명을 돌파했다. 불과 1년여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또 넷플릭스는 초고화질(UHD)과 고화질(HD), 일반화질(SD)로 나눠 화질별로 요금을 달리 받는다.
중요한 건 넷플릭스 아닌 망 중립성
그런데도 넷플릭스는 그간 국내 ISP에 망 사용료를 내지 않았다. 반면 네이버는 한 해 국내 통신사들에 망 사용료로 약 700억원을, 카카오도 약 300억원을 지불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ISP들도 사정은 있다. 크게 느는 트래픽 탓에 SK브로드밴드는 최근 3년간 매해 8000억~9000억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진행해야 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무임승차’로 보일 법한 상태가 이어져 온 것은 망 중립성 원칙 때문이다. ISP들이 모든 데이터에 대해서 송‧수신할 때 차별을 둬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에선 2003년, 국내에선 2012년 1월 정부가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면서 확립됐다.
자칫 도덕적 구호로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ISP가 각자의 인터넷 설비를 무기 삼아 사용료 협상에 나서면, 인터넷의 속도와 개방 범위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망 중립성 원칙을 도입한 나라에선 인터넷에 최초 접속할 때만 ‘접속료’를 내고, ISP끼리 데이터를 송‧수신할 땐 사용료를 물리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고 주장했던 근거도 이 지점에 있다.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일본 도쿄나 홍콩에 둔 서버를 활용하는데, 이 서버를 제공한 업체에 접속료를 치렀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법원의 결정으로 넷플릭스는 사용료 협상에 나서야 할 처지가 됐다. 지난 9년 반 동안 국내 사업자들의 개정 요구에도 큰 틀에서 유지돼 왔던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도 변화를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ISP가 요구하는) 과금 행위는 유럽통신규제기구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가 공히 금지한 바 있다”라고 지적했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이승기, 과거 배신했던 만행…김민지 "절대 믿으면 안 돼"
2“고객 보고 1등 향하자”...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 첫 출근 메시지
3유아인, 이태원 주택 63억에 '급 처분'…'마약 공판' 영향일까
4필립스옥션, 11월 홍콩 경매 한국작가 이목하 작품 약 3억 원 낙찰
5"내집마련, 앞으로 더 힘들다"...입주물량 주는데 분양가는 고공행진
6갭투자 보단 '똘똘한 한 채' 뜬다…서울 원정투자는 '주춤'
7스타벤처스·제주대 손잡고 제주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 나선다
8미성년자 팬 맞았는데…제시 "인생은 롤러코스터"
9SPC그룹 정기 임원 인사...삼립 황종현·김범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