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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3D시뮬레이션 기업이 창원에 새 둥지를 튼 이유는

[인터뷰] 조영빈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
창원에 3D 익스피리언스 이노베이션 센터 오픈
영남 지역 기업 경쟁력 향상 및 맞춤형 인재 육성 주요 목적
프랑스 본사도 흔쾌히 OK, 외국계 기업으론 이례적 행보

 
 
조영빈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는 “영남본부를 통해 지역 중소·중견기업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최재승 객원기자]
 
지방소멸. 무시무시한 말인데도 누구나 입에 올리는 단어가 됐다. 국내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고, 상장기업 10곳 중 7곳의 본사가 수도권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향후 30년 내에 전국 228개 시·군·구 중 86개는 지도에서 사라진다는 연구보고서도 나왔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 등으로 혁신도시·기업도시를 곳곳에 세웠지만, 반짝 효과에 그치고 말았다.  
 
무엇보다 기업이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세금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줘도 손사래를 쳤다. 똑똑한 기업 경영진이 지방과 견줘 압도적으로 풍부한 수도권의 인프라 혜택을 놓칠 리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일자리가 많은 곳에 몰리고, 일자리는 산업이 성장하는 곳에 생겨난다. 기업의 수도권 쏠림은 지방소멸을 앞당기는 무서운 시그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7월 9일 오전 11시 경남 창원 STX오션타워 18층에서 열린 행사는 진풍경이었다. 김경수 경남지사, 허성무 창원시장, 이호영 창원대 총장, 박민원 경남창원스마트산단사업단장 등 지역 고위인사가 한자리에 모였는데, 목적은 다쏘시스템코리아의 지역 사무실 개소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이날 다쏘시스템코리아는 이 지방 도시에 ‘3D 익스피리언스 이노베이션 센터’란 이름의 영남본부를 열고, 지역 기업 경쟁력 향상과 인재 육성을 다짐했다.  
 
흥미로운 건 이 회사의 이력이다. 다쏘시스템코리아는 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외국계 기업이다. 기계공업이 발달한 창원지역과 합이 맞는 제조기업도 아니다. 다쏘시스템코리아의 주력 상품은 IT 소프트웨어다.  
 
왜 한국 기업도 마다하는 지방에 외국계 기술기업이 새 둥지를 틀었을까. [이코노미스트]가 드넓은 창원광장이 한눈에 보이는 창원 3D 익스피리언스 이노베이션 센터에서 조영빈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를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서울 강남에 큰 규모의 사무실이 있다. 창원까지 발을 넓힌 이유는 뭔가.
그간 창원의 중소·중견 제조기업과 긴밀하게 지내왔다. 당연히 우리 제품을 쓰는 협력사도 많았다. 지역 대학과 교육 사업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사실 지난해 문을 열기로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미뤄졌다. 회사 입장에선 많은 비전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 기대가 크다.
 
국내 IT 기업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강남·판교에 몰려있다. 다쏘시스템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회사길래 지방에 거점이 필요한가. 기업 사이에선 유명하다는데, 설명을 부탁한다.  
엑셀엔 언두(Undo) 기능이 있다. 방금 한 작업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쓴다. 엑셀에선 간단히 할 수 있지만 인생에선 ‘언두’가 불가능하지 않나. 기업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한번 내린 경영 결정은 되돌리기 어렵다. 제조기업도 시제품을 만들어 테스트하지 않으면 상용 제품을 내놓기 어렵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 불가능할 것 같은 언두 단축키를 대신 눌러주는 회사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카티아, 시뮬리아, 솔리드웍스 등이 우리 회사의 대표 애플리케이션이다. 기능은 제각각이지만 목적은 같다. 3D 가상현실에서 미래를 예측하게 돕는 거다. 가령 자동차 회사에 제품 생산 전 과정을 디지털 시스템으로 전환하도록 지원한다. 시제품으로 차 수백 대를 만들어 도로 위에 굴리지 않아도, 플랫폼 안에서 미리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에도 쓰는 기업이 많겠다.
삼성전자, 포스코, LG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도 우리 고객사다. 이 밖에도 국내에서 2만2000개의 기업이 우리 제품을 쓴다. 물론 영남본부는 단순히 우리 제품을 팔기 위해 만든 사무실이 아니다. 그런 일은 서울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제품을 파는 게 다가 아니라면.
영남본부엔 우리 회사 직원도 있지만, 지역 협력사도 함께 입주한다. 다쏘시스템의 플랫폼을 연구하고, 이를 자사 제품에 순조롭게 적용하기 위해서다. 한국 중소·중견 제조업의 위기는 결국 디지털 전환으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 플랫폼을 활용하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가능하다. 아울러 지역 대학과 협의해 학생들도 방문해 우리 플랫폼을 만질 수 있는 공간을 꾸렸다. 지역의 산·학·연을 연결하는 커뮤니티이자, 워크 스페이스인 셈이다.
 

프랑스 IT 기업, 한국 제조업 심장에서 디지털 전환 확산

수익을 꾀하는 계획처럼 들리진 않는다.
1997년에 한국법인을 설립해 업력이 꽤 되지만, 우리는 천천히 성장해왔다. 매출과 이익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술에 투자하고 고용을 늘리는 데에 더 힘을 쏟았다. 덕분에 지금 300명이 넘는 직원을 한국에서 고용 중이다. 영남본부 역시 초기 운용인원은 30~40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익을 내기 위한 일이 아니라니, 본사에선 반기지 않을 것 같은데.
투자와 고용에 방점을 찍고 기업의 책무를 다하자는 게 프랑스 본사의 방침이다. 얼마를 더 버느냐보다 몇 명을 더 고용할지가 버나드 샬레 다쏘시스템 회장의 관심사다.
 
영남본부를 개소하는 일엔 본사의 허가도 필요했을 텐데.  
다쏘시스템이 세계 각국에 법인을 두고 있지만, 이렇게 본사 외에 지방에 따로 사무실을 여는 건 흔치 않다. 특히 다른 협력사와 함께 사무실을 쓰는 경우는 전 세계에서 처음인 사례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흔쾌히 허락했다.
 
조영빈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버나드 샬레 다쏘시스템 회장은 한국의 경제 상황에 꽤 박식하다. 수출 비중이 큰 데도 제조업이 점차 위기를 겪고 있는 점을 두고 종종 우려 섞인 메시지를 보낼 때가 있었다는 거다. 조영빈 대표가 경남본부 개소 아이디어를 본사에 전달했을 때, 샬레 회장이 반겼던 이유다.
 
특히 산학연이 협력하는 특별한 공간이란 점에서 한국 제조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길 조 대표에게 당부했다. 실제로 버나드 샬레 회장은 개소식 축사를 통해 “대한민국 청년들이 더욱 큰 포부를 세울 수 있도록 다쏘시스템이 지닌 지식과 노하우를 미래 인재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뒷배가 든든하니 조 대표 역시 코로나19 위기를 뚫고 지역 거점 개소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다쏘시스템은 지난해 기준 기업가치가 65조원에 이르는, 프랑스에서 첫손에 꼽히는 회사다.
 
채용도 지역민을 중심으로 진행한다고.
지역에 좋은 일자리가 많으면 청년들이 구태여 고향을 등지고 수도권으로 몰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런 불균형을 맞추는 일에 작게나마 일조하고 싶다. 물론 이런 거창한 가치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 지역에서 자라난 이들이 뭐가 문제인지, 뭐가 대안인지를 제일 잘 안다.  
 
다쏘시스템코리아는 외국계 기업의 행보로는 이례적으로 경남 창원에 새 거점을 세웠다.[최재승 객원기자]
 
생존에 급급한 중소·중견기업이 다쏘시스템의 프로그램을 잘 다룰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너무 복잡하다며 손사래 치는 경영진이 있긴 있다. 하지만 효과가 확실하고, 다양한 제조혁신이 가능하다 보니 중소·중견 협력사의 숫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더 밀착해서 효능을 알리고 싶어 영남본부를 연 것도 있다. 지역 대학과 협력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가령 학생들이 우리 플랫폼을 사용할 줄 알면, 회사에 취업했을 때에 유능한 인재로 통할 것이다.
 
지역 경제와의 인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들었다.
2010년, 대구지역 최초로 외국계 기업의 R&D 센터를 설립했다. 50여명의 지역 청년 일자리를 창출했다.
 

중소·중견기업 중심의 디지털 경제체계 전환

외국계 기업으로 드문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다쏘시스템코리아는 B2G(기업·정부거래)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KF-21 시제기 개발 사업에 참여한 게 대표적이다. 공공의 폐쇄성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 같은데.
공공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국민의 행복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면 본사가 프랑스에 있는 회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 성과를 낸다면 공공 특유의 고리타분함도 뚫을 수 있다. 물론 기술 관점에서 보면, 공공의 행보가 아쉬울 땐 있다.
 
어떤 점인가.
과거 싱가포르 스마트시티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이때 관(官)이 던지는 질문이 참 인상 깊었다. 가상환경에서 인구가 늘었을 때 발생하는 폐해나 지진이 났을 때 취약점 등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이들이 국민의 행복을 목적에 두고 행정을 전개하는 걸 체감했다. 반면 국내에선 관련 프로젝트를 벌이면 경제효과 같은 숫자가 가장 최우선의 가치다. 이런 하드웨어만을 중시하는 문화도 바뀌길 바란다.
 
창원에 입성하면서 지역 커뮤니티와의 접점이 더 늘어나게 됐다. 인사말을 전한다면.
뜬금없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이 도시가 미래교육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수도권 명문대 입성만이 값진 결과로 통하는 게 아니라, 지역 안에서도 충분히 도전하고 성과를 낼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그런 기회를 만드는 건 우리 어른들의 몫인 것 같다. 다양한 지역 교육 활동을 통해 다쏘시스템코리아도 힘껏 돕겠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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