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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 찾기? 행복한 하루살이로 살아남는 법 [조지선 심리학 공간]

의미 추구와 행복과의 관계… 집착 대상에 머문다면 삶에 불행 가져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아무 생각없이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다가도 문득 이런 말을 내뱉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오늘 내가 하는 이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한동안 집중하던 작업이 ‘삽질’이었다는 자괴감을 느낍니다. 노력하고 있는데 기대했던 성과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을 때, 이렇게 끝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합니다. 이런 생각이 한동안 이어지면 나의 일과 삶 전체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아이고 의미 없다. 의미 없어.”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범 답안은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이 활동을 특별히 강조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빅토르 프랑클(Viktor Frankl)입니다.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영어 제목은 [Man’s Search for Meaning(삶의 의미를 찾아서)] 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그는 극단적으로 참혹한 상황에서 두 종류의 인간을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삶을 놓아버린 사람들과 다른 하나는 생존의 불꽃을 지키려고 애쓴 사람들이었어요. 이 두 집단 사이에서 그가 발견한 차이는 ‘의미 찾기’였습니다.  
 
“오늘 내가 하는 일이 너무 하찮아 보이거나, 아니면 넌더리가 날만큼 괴로워서 집어치우고 싶더라도 ‘이 모든 일에 내포된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을 할 때, 더 행복해지고 더 단단해진다!” 프랑클만 이렇게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연구들이 동일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소소한 일상적 행위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나에게 득이 되는 선택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한 사람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 속의 행복한 청소부입니다. “나는 지금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다네.” 의미 부여 ‘만렙(최고 레벨을 의미하는 게임 용어)’에 해당하는 감동적인 진술을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일상, 자체가 삶의 의미  

그런데요, 가끔은 ‘의미 찾기’가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따금 반항심이 올라오는 날이면 프랑클의 조언이 뙤약볕 운동장에 퍼지는 교장 선생님 훈시처럼 버겁습니다.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뭔 놈의 의미’를 찾으라는 것인지 되묻고 싶어집니다. 억지로 의미를 찾는 것은 결국 현실 부정이나 자기 기만이 아닐까? 혹은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화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죠. 어쩌면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으니 찾지 않겠다고 어깃장을 놓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심리학자 허지원 교수의 책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에서 다음 구절을 마주쳤을 때 무척 반가웠습니다. “삶에 큰 의미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의미입니다. 그것으로 당신은 다 한 겁니다. 살아 있는 부모, 살아 있는 친구, 살아 있는 자식, 살아 있는 나, 그거면 됐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수습하면서 살다가 문득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이 잦아지고, 또 그 다음엔 남에게 기여도 좀 하고요. 시간이 지나 그렇게 쌓인 일상이, 의미라면 의미겠지요.”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더 편안해 졌습니다. 의미 찾기 숙제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 오늘 나는 하루를 산 거야. 태어났으니까 그냥 오늘을 산 거야. 사실, 내가 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그래도 지금 살아있으니 하루 동안 나에게 주어진 일을 그럭저럭 해낸 거잖아. 크게 사고 치지 않고, 크게 다치지 않고 무탈하게 하루를 보낸 거지. 이 정도면 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혹시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가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에 이르렀습니다. 의미를 너무 열심히 추구하는 것,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닌가? 심리학자 마이클 스테거(Michael Steger)와 그의 동료들이 다양한 연령층에 속한 875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일부 얻을 수 있습니다. 연구에 사용된 삶의 의미 척도를 잠시 살펴볼까요?
 
‘의미 있음(presence of meaning)’: ‘삶의 의미를 얼마나 느끼는지’는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측정합니다.  
“나는 내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나는 내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이 항목에 높은 점수를 준 사람일수록 더 많은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에 중요한 목적이 있고 수행해야 할 인생 과업이 있다고 지각하고 있을수록 더 행복했습니다. 당연하게 보입니다.
 
‘의미 추구(search for meaning)’: ‘삶의 의미를 얼마나 추구하는지’를 측정하는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
“나는 내 삶의 중요성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들을 늘 찾고 있다.”
 
‘의미 추구 점수’와 행복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놀라운 것은 적극적으로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일수록 덜 행복했다는 사실입니다. 의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높을수록 삶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낮았고 긍정적인 정서를 덜 느끼고 있었으며 더 많은 부정적인 정서와 더 큰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 현상은 2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동일하게 관찰됐습니다.
 
관련 연구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역설적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삶이 (적어도 조금은)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의미 추구’와 ‘의미 있음’ 사이에는 부정적인 관계가 존재합니다. 예상 밖 결과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현재 삶의 의미를 찾고자 애쓰고 있다는 것은 아직 의미를 찾지 못한 상태를 뜻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두 개념 사이의 관계가 이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관계가 존재하지만 그 정도가 약한 수준이어서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현상이 관찰됩니다.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삶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의미를 추구하면서도 삶에 의미가 충만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 ‘의미 추구’가 나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일까요? 이 글의 첫머리에서 말했듯이 삶의 의미와 행복 사이의 정적인 관계는 수많은 검증을 거친 과학적 사실입니다. 그런데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니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심리학자 스테거 연구팀의 후속 논문을 살펴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의미를 느끼지 못해도 “괜찮다”  

이 연구는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삶의 의미를 느낄수록 더 행복한 현상은 삶의 의미 척도에서 ‘의미 추구 점수’가 높은 사람들에서만 관찰되었습니다. 의미 추구 점수가 낮은 사람들만 놓고 보면, 삶의 의미와 행복은 관련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삶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고 해도 자기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현재 삶의 의미를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의미 추구 활동을 열심히 했을 때는 더욱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의미를 추구했을 때는 오히려 삶의 만족도가 더 낮아졌습니다.  
 
현재 삶의 의미를 못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면 억지로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의미가 좀 없으면 어떠냐’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나, 왜 태어난 거야?’와 같은 답이 안 나오는 질문이나 인생 비전과 미션, 삶의 목적과 같은 짐스러운 개념들을 잠시 서랍 속에 넣어두는 것이죠. 대신 나의 뇌에 꽃밭을 펼쳐놓고(‘생각 없이 사는 무뇌’ 대신 쓸 수 있는 표현) 행복한 하루살이가 되는 겁니다.  
 
오늘 분량의 소소한 재미를 챙기고, 오늘의 친절함을 베풀고, 오늘 뭐라도 한 일이 있으면 수고했다고 말해주고요. 이렇게 살다가 컨디션 좋은 날,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들려면 뭘 해야 하지?”라고 가끔씩 질문하면 족하지 않을까요?
 
삶의 의미 따위는 집어치우라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삶의 의미처럼 중요한 것도 집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 동안 프랑클이 주장한 ‘의미 찾기’를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참혹한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았다면 그것은 바로 ‘살아있음’ 그 자체가 지닌 가치가 아니었을까요? 거창하고 추상적인 의미, 그 자체를 추구하기 보다는 오늘 살아있음을, 살아 숨쉬고 있기에 올려다 볼 수 있는 파란 하늘을, 구차하지만 살기 위해 오늘 내가 했던 작은 행동을 의미 있게 여기라는 제안이었을 겁니다.
 
 
*필자는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심리과학이노베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이다.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을,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학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아메리카 온라인(AOL)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Netscape)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못난 게 아니라, 조금 서툰 겁니다] 저자이자 유튜브 ‘한입심리학’ 채널 운영자다.

 

조지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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