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이 반영한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대만·마케도니아 국명 두고 잡음…올림픽 조직위, 일본 ‘오십음도’ 적용해 해결
도쿄 2020 올림픽에는 205개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소속팀과 난민대표팀 등 206개 참가국 선수단 및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한 북한만 빠졌다. 도쿄 대회엔 북한을 포함해 207개가 참가한 지난 2016년의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팀이 참가했다. 코로나19라는 희대의 역병에 대응하는 인류의 용기와 의지를 보여주는 대회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도쿄올림픽도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피하진 못했다. 경기 외적인 부분뿐 아니라 경기 자체에서도 국제정치의 차가운 바람을 완전히 막을 순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나라 이름이다. 이번 대회에는 국내에서 부르는 자기 나라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출전한 팀이 둘이나 있다. 대만과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한 발칸반도 국가 마케도니아다.
대만은 중국의 압박으로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대회에 ‘차이니즈 타이페이’라는 이름으로만 참가할 수 있다. 타이페이는 타이베이(臺北)의 광둥(廣東)어 등 남방 계통 발음이다. 영어권에서 베이징을 남방식인 페킹(Peking)으로 표기하던 시절의 유산이다. 대만에서도 표준어를 쓰지만, 과거 남방식으로 쓴 게 영문 표기로 굳어졌다.
중국은 코로나19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위기에 처한 지난해에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도 유엔 회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만의 참가를 막았다. 인류의 생명과 건강 유지라는 보편적 가치보다 정치를 앞세운 셈이다. 타이베이는 대만의 수도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대만이 중화민국이라는 공식 국명은 물론 대만(臺灣)이라는 통칭도 쓰지 못하도록 압박한다. 이른바 ‘하나의 중국’을 이유로 내세운다.
올림픽 모토에 ‘함께’ 추가
오십음도 순의 마지막인 ‘레’로 시작하는 레소토·레바논이 개회식장에 행진해 들어왔다. 그 뒤로 차차기인 2028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를 유치한 미국과 2024년 파리 대회를 여는 프랑스 선수단이 각각 입장했다. 이번 대회 개최국인 일본이 관례에 따라 가장 마지막으로 경기장에 들어왔다.
조직위는 공식적으론 ‘차이니즈 타이페이’인 대만을 ‘차’ 항목이 아닌 ‘타’ 항목에 넣는 묘수를 발휘했다. 그래서 103번째로 입장한 ‘대한민국(일본어 발음으로 다이칸민코쿠)’의 다음으로 104번째로 대만이 입장했다. 이를 중계한 NHK 아나운서는 대만을 타이완이라고 발음했다고 DW가 전했다. 대만 뒤를 타지키스탄과 탄자니아가 이었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일본어로 추카진민쿄와코쿠)’이라는 명칭으로 110번째로 입장했다.
북마케도니아는 유고슬라비아 시절 마케도니아란 이름으로 연방 내 공화국 지위를 얻었으며,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지면서 1991년 마케도니아란 이름으로 독립했다. 지리적으론 고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왕국이 위치했던 지역이다. 현재 마케도니아인을 비롯한 남슬라브족은 7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발칸 반도로 이주해 그리스 전역까지 퍼졌다.
하지만 남쪽으로 국경을 맞댄 그리스는 슬라브족이 대다수인 나라가 고대 그리스인의 나라인 마케도니아라는 국명을 쓸 수 없다고 끈질기게 항의했다. 결국 ‘옛 유고연방 마케도니아’란 이름을 거쳐 2019년 나라 이름을 공식적으로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바꿨고, 지난해엔 국가 올림픽 위원회 이름도 이에 맞춰 변경했다. 이에 따라 이번 도쿄올림픽에선 북마케도니아(일본어로 키타 마케도니아)란 이름으로 캄보디아와 기니 사이에 입장했다.
러시아연방이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는 러시아는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이름과 깃발을 앞세우고 대회에 참가했다. 개막식에서도 그렇게 했으며,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메달 집계도 러시아란 이름 대신 ROC로 하고 있다. ROC는 대만이 공식 국호인 중화민국의 약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에선 ‘대만과 친한 일본에서 대회를 치른다고 대만을 그렇게 표시하느냐’ ‘대만이 그렇게 많은 메달을 따고 있느냐’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러시아가 이런 이름으로 참가하는 것은 도핑 의혹 때문이다. 러시아가 참가 자격을 박탈당하고 국가 올림픽 위원회 이름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선수가 개별적으로만 참가할 수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평가다. ROC 이름으로 메달을 집계하기도 한다.
이런 희비극 속에서도 도쿄올림픽에선 올림픽의 가치를 추구하는 체육인들의 열정을 볼 수 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7월 23일 도쿄 올림픽 개회식에서 다소 긴 연설을 하면서 의미있는 내용을 언급했다. 기존의 올림픽 모토인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라틴어: Citius, Altius, Fortius 영어: Faster, Higher, Stronger)’를 도쿄 2020년 올림픽부터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 그리고 함께(Faster, Higher, Stronger & Together)’로 한 단계 진화시켰다는 사실이다.
바흐 위원장은 지난 3월 10일 열린 제137차 IOC 화상 총회에서 진행한 차기 위원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찬성 93표, 반대 1표, 기권 4표로 연임이 결정되자 올림픽 모토에 ‘함께(Together)’를 추가하겠다고 발표했다. 개회식 연설에서 바흐 위원장은 이를 결의해준 IOC 회원국에 감사를 표시했다.
각 국가나 공동체별 경제·사회·정치의 차이를 넘어 모두 함께한다는 시대정신을 추가한 것이다.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1863~1937년)이 1894년 제안하고 1924년 IOC가 공식화한 올림픽 모토에 한 세기 만에 글로벌 연대를 강조하는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이런 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종목이 바로 태권도다. 태권도는 남자가 58㎏급(플라이급), 68㎏급(페더급), 80㎏급(웰터급), 80㎏ 이상급(헤비급), 여자가 49㎏, 57㎏급, 67㎏급, 67㎏급 이상급 등 남녀 각각 4개 체급에서 경기를 치른다. 금메달과 은메달 각각 8개, 동메달 16개 등 모두 32개의 메달이 걸려있다. 7월 24~28일 치른 경기에서 모두 21개국이 메달을 나눠 가졌다. 도쿄올림픽에서 추가된 올림픽 모토인 ‘함께’에 가장 걸맞은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태권도 21개 메달, 12개국서 고루 나눠 가져
태권도에선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도 평등한 여러 나라의 하나에 불과했다. 미국이 금메달 1개밖에 얻지 못한 것을 비롯해 중국도 동메달 1개에 그쳤다. 차이니즈 타이페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한 대만도 동메달 하나를 얻었다. 영국이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 등 3개의 메달을 가져갔다. 대한민국은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 등 3개의 메달을 얻었다. 이슬람국가인 우즈베키스탄·요르단·튀니지·이집트·터키도 메달을 따갔다.
뉴욕타임스(NYT)는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된 뒤로 12개국 이상에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고 소개했다. 아프리카 서부의 코트디부아르와 중동의 요르단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참가 이래 첫 올림픽 금메달을 태권도에서 따냈다. 요르단에선 당시 첫 금메달이 태권도에서 나오자 3개월 만에 태권도복이 5만 벌 이상 팔렸다고 NYT는 소개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출전 이래 첫 올림픽 메달인 동메달을 확보한 종목도 태권도였다.
NYT는 우즈베키스탄이 대학에 태권도학과를 설치했으며, 요르단·터키·르완다의 난민 캠프에는 태권도 도장이 설치돼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계태권도연맹에는 난민 대표단을 포함해 도쿄올림픽 참가 국가·단체보다 많은 210개 국가와 단체가 소속돼 있다. 도쿄올림픽에도 모두 61개국에서 128명이 참가했다.
태권도 종목에는 난민 올림픽팀 선수 3명도 동참했다. 난민팀의 참가 선수 29명 중 3명이 태권도 선수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압둘라 세디키는 남자 68㎏급에 출전했지만 16강전에서 중국 선수에게 20대 22로 석패했다. 25세인 세디키는 2017년 살해 위협을 피해 벨기에로 이주해 난민으로 살고 있다. 2019년 스페인 오픈에서 은메달, 2020년 네덜란드 오픈에서 동메달을 딴 경력이 있다.
여자 49㎏급에 출전한 디나푸리우네스(29)는 이란 출신으로 2015년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푸리우네스는 네덜란드의 망명신청자 센터에 살고 있던 그해 9월 폴란드 오픈에 참가했다. 2017년 터키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태권도 선수권 챔피언에 오른 첫 난민 선수가 됐다. 도쿄올림픽에선 16강전에서 탈락했다.
도쿄올림픽 난민팀 태권도 종목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선수는 이란 출신의 키미아알리자데흐(23)다. 알리자데흐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 이란 국가대표로 출전해 57㎏급으로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이란 여성이 여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딴 메달이다. 하지만 2020년 1월 이란을 떠나 독일로 떠나 운동을 계속했다. 그는 이란을 떠난 이유에 대해 “나는 이란에서 억압받는 수많은 여성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아닌 거주지인 독일 대표로 참가하는 방안도 생각했지만 최종적으로 난민팀에 합류했다.
알리자데흐는 1차전에서 이란의 나히드키아니를, 16강전에서 영국의 제이드 존스를, 4강전에서 중국의 저우리쥔(周俐君)을 각각 눌렀지만 준결승에서 ROC의 타티아나 미미나 선수에게 패배했다. 미미나는 최종적으로 은메달을 땄다. 패자부활전에선 터키의 하티제 큐브라 일균 선수에게 패배했다. 일균 선수는 동메달을 가져갔다. 알리자데흐는 도쿄올림픽에서 메달권에 가장 근접한 난민 선수로 기록됐다.
이란 출신의 유도 선수로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몽골 국가대표로 출전한 사에이드몰라에이(29)는 스포츠 정신 위배에 대한 ‘내부 고발자’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81㎏급에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했다 1차전에서 러시아의 하산 할무르자에브 선수에게 1차전에서 고배를 마신 그로선 짜릿한 스포츠 드라마를 연출한 셈이다. 할무르자에브는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으니 몰라에이는 대진운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절치부심해 2017년 부다페스트 대회에선 은메달을, 2018년 바쿠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대망의 금메달을 각각 땄다.
문제는 그 뒤에 발생했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 등에 따르면 2019년 도쿄 유도선수권 대회에서 이란 당국은 그에게 준결승전에서 일부러 패배하도록 강요했다. 결승전에서 이스라엘의 사기 무키 선수를 만나서 시합하면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경기대회에서 이스라엘 선수와 맞붙는 걸을 비공식적으로 회피해왔다고 한다. 일부 종목에서 이런 식으로 미리 경기를 포기해 이스라엘 선수와 부딪히는 걸 원천적으로 막아온 것이다. 공식적으로 기권하면 이란에 비난이 쏟아지고 국제스포츠 단체의 조사와 제재를 받을 수 있으니 ‘승부조작’으로 이스라엘 선수와의 대결을 피해온 셈이다.
몰라에이는 지시를 어기고 압박감 속에서 경기에 임했지만 패배해 이스라엘 선수와 겨루지는 못했다. 무키 선수는 2019년 도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몰리에이는 자국 유도협회 등의 조치에 실망해 대회가 끝난 뒤 2년 비자를 받고 독일로 향했다. 그는 2019년 몽골 국적을 얻어 대표선수로 도쿄올림픽에 참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스라엘 선수와 경기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일은 도쿄올림픽에서 이미 두 건이 발생했다. 독일 국제방송인 DW에 따르면 유도에서 알제리의 페티 누린 선수에 이어 수단의 무함마드 압달라술 선수가 줄줄이 이스라엘 선수인 토하르부트불 선수와의 시합을 피하기 위해 기권했다. 부트불 선수는 “스포츠 정신에 위배된다”며 반발했지만 누린 선수는 “나는 기권함으로써 알제리를 대표한다”고 말하며 시합을 포기했다.
알제리는 이스라엘과 국교가 없지만, 수단은 지난해 이른바 아브라함 협약에 따라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한 국가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준다. 정부는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무슬림이 상당수인 국민은 여기에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스라엘이나 미국 선수·지도자와 악수를 하거나 서로 인사하는 이란 스포츠 인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그치지 않는 이유가 그 나라의 체제나 이념, 국민 인식이 글로벌 스탠다드인 스포츠 정신과는 동떨어진 정치 지향적이거나 민족주의적, 또는 증오를 당연시하는 사회 풍조 때문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더 많은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도 올림픽은 계속 열리고 있다는 데서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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