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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새 수장, 과거 발언 짚어보니…'가계부채 다이어트’

고승범 후보자, 관료 출신이지만 ‘카드·저축은행’ 사태로 매파 성향
금통위원 시절 가계부채 증가세의 ‘나비효과’에 꾸준히 경고음 내
DTI 도입 등 부동산 식견도 보유…금리 인상과 함께 대출 옥죌까?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된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지난 6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자 기자들이 질문하며 둘러싸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금융정책의 한 축을 담당할 금융위원장에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금통위원)이 내정되면서 그가 펼칠 정책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행정고시(행시) 28회로 재무부와 금융위 등을 거친 관료 출신이다. 2016년 한국은행(한은) 금융통화위원으로 자리를 옮길 당시에는 경기 부양을 뒷받침하는 비둘기파(완화적 통화 정책 선호)로 분류됐지만, 연임 후엔 통화 긴축 의견을 제시하는 등 매파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고 후보자는 지난달 15일 열린 금통위에서 위원 7명 중 유일하게 ‘금리 인상’을 주장한 소수의견을 내 주목 받았다. 2018년 10월에도 당시 이일형 위원과 함께 금리 인상 소수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가 확장적 재정 정책을 주로 펴는 ‘관료’ 출신이라는 점과 최근 소수의견으로 드러낸 ‘통화 긴축’ 성향은 한 선상에 두고 봤을 때 어색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간의 그의 행적과 발언을 종합해보면 재정의 확대나 축소를 떠나 ‘안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가계부채와 부동산금융 증가에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는 점은 금융위원장으로서 그가 앞으로 추진할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의 15년 전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과장 시절 모습(왼쪽)과 현재 모습. [사진 금융위원회·청와대]
 

“과거에도 과도한 신용이 금융권·실물경기 악화시켜”

고 후보자는 지난 7월 15일, 금통위에서 금리 인상을 의미하는 ‘통화 정책 완화 정도의 조정’을 언급하면서 그 배경으로 제일 먼저 꺼낸 근거는 가계부채였다. “최근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의 증가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부동산시장 등 자산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이 지속하고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는 지난 5월 여신금융협회가 개최한 강연에서도 민간 부채와 부동산 금융 증가 속도에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저축은행과 카드사를 비롯한 비은행권의 가계 신용대출 급증도 지적한 바 있다.
 
금융위원장 내정 소감문에서도 “가계부채, 자산가격 변동 등 경제·금융 위험요인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비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가계부채는 고 후보자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로 꼽힌다. 
 
고 후보자가 가계부채 증가세를 경계하는 배경에는 과거의 경험이 있다. 2003년 7월 청와대 경제복지노동특보실에서 금융위원회(당시 금융감독위원회) 비은행감독과장으로 복귀했다. ‘카드 대란 사태’ 해결이라는 중책을 떠안고 금융위로 돌아온 것이다. 당시 카드사들은 외환위기 수렁에서 벗어나 회복세로 전환되던 시기에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으로 연쇄 부실이 난 상황이었다.  
 
고 후보자는 신용카드 규제 강화와 카드사 부실채권 인수 등 카드사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면서 최악의 사태를 막았다. 사석에서 그는 최근 가계부채가 증가 속도가 빨라지는 것에 대해 18년 전 카드 사태를 종종 언급하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2010년 금융위 서비스금융국장 재직 시절에는 저축은행 사태도 경험했다. 당시 저축은행들이 건설사 대출사업인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2008년 말 세계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자 부실로 이어졌다. 고 후보자는 당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미달하는 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조치를 진행하는 등 저축은행 사태 부실 정리를 주도했다.  
 
금융 리스크를 몸소 겪은 고 후보자는 지금의 상황도 가볍게 보고 있지 않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그는 “역사적 경험을 보면 과도한 신용은 버블의 생성과 붕괴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은행 등 금융부문의 건전성과 자금중개 기능의 약화를 초래, 결국에는 실물경기를 큰 폭으로 악화시키곤 했다”고 발언한 것이다. 가계부채 증가의 ‘나비효과’(작은 변화가 예상치 못한 큰 사건을 일으키는 현상)를 우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그의 경험과 발언으로 비춰 볼 때 한은의 금리 인상과 함께 가계부채 옥죄기는 수순으로 보인다. 지난 6일 인사청문회 준비 출근길에서 “가계부채 대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책의 효과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해 나가겠다”고 밝힌 것은 어떤 식으로든 가계부채에 손을 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운데)가 지난달 1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왼쪽에서 세 번째)는 '금리 인상' 소수의견을 제시했다. [사진 한국은행]
 

DTI 도입 장본인이 내놓을 집값 억제책은?  

하지만 고민도 있다. 코로나19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오는 9월 말에 종료되기 때문이다. 당국은 재연장 여부 논의에 들어간 상태이지만 은행권은 부실 후폭풍에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은행권이 지난해 초 코로나19 사태 직후 정부의 금융지원 방침에 따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만기를 연장해준 대출 규모는 100조원에 육박한 상황이다. 만기 연장과 유예 조치가 종료되면 부실이 한꺼번에 물밀 듯 밀려들어 자영업자 연쇄 파산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고 후보자는 지난 6일 “실물경제 상황, 방역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생각해 9월까지 상황을 보면서 방안을 만들어나가도록 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012년 금융위 금융정책국장 재직 시절 고 후보자가 한 언론사 좌담회에서 밝힌 내용을 유추해 보면 가계부채와 관련해 종합적으로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가계부채 대책은 금융위 힘만으로 할 수는 없다. 금융당국은 마이크로 대책을 만드는 것이고, (가계부채는)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매크로한 문제일 수 있다. 우리는 금융만 보지만 가계부채를 줄이려면 소득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일자리 창출을 통해 소득을 늘려야 합니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소득 증대 등 가계의 손익 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결국 매크로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가계부채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 문제도 고 후보자가 마주할 큰 산이다. 그는 지난달 금통위에서 금리 인상을 주장하면서 “완화적 통화 정책이 급격한 실물경제 위축을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자산시장 가격 상승도 동시에 초래했다”고 말했다. 낮은 금리가 집값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지난 5월 여신금융협회 강연에서도 “금융기관 등의 부동산 금융 익스포저(위험에 노출된 금액) 증가세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당국은 고 후보자의 부동산 관련 식견에도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참여정부 때인 2005년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과장 시절 처음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 제도의 도입을 주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DTI는 부동산 등의 담보 대신 채무자의 상환능력(소득)을 따져 대출한도를 정하는 방식으로,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시장 거품이 사회문제로 번지자 도입한 금융 규제 장치다.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그가 금융위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거시건전성 정책을 효율적으로 풀어가는 한편 금통위원으로서 근무한 만큼 한은 통화 정책의 협조도 끌어내길 기대하고 있다.  
 
동시에 갈등을 빚어왔던 금융감독원과의 관계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관계부처 협조가 굉장히 중요하고, 제일 중요한 게 금융감독원”이라며 “정은보 신임 금융감독원장과 통화했고, 앞으로도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 원장과 고 후보자는 행시 28회 동기다.  
 
정 원장 역시 지난 6일 취임식에서 “한계기업과 자영업자의 부실 확대, 자산가격의 거품 심화 등 다양한 위험요인이 일시에 몰려오는 소위 퍼펙트 스톰이 발생할 수 있다”며 현 민간부문 부채 상황에 우려를 표명한바 있다.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은 태풍이 다른 자연현상과 만나 파괴력이 커지는 현상으로 두 가지 이상의 악재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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