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이대로 괜찮나①] “판매 책임을 왜 투자자에게 떠넘기나”
상품 심사에서 위험 경고에도 불구, 기업은행 판매 강행
판매사들 “불완전 판매” VS 피해자들 “계약 착오”
보상액 두고 갈등 심화, 판매사 배임 여부가 관건 될 듯
2019년 터진 '사모펀드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를 비롯해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대형 사모펀드 사고는 금융사기, 불완전판매, 탈법, 관리감독부실 등 집단적 도덕적 해이로 인한 ‘비리 종합선물세트’였다. 수조 원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안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제도를 개편했지만 ‘사후약방문’이란 비판이 거세다. [이코노미스트]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판매한 디스커버리 펀드의 문제, 사모펀드 사건을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을 되짚어 반복되는 사고의 해결책을 찾아보았다. [편집자 주]
[사모펀드 이대로 괜찮나]
① “판매 책임을 왜 투자자에게 떠넘기나”
② 정관계 로비, 파면 팔수록 오리무중
③ “투자보호·업체견제·사기처벌 강화해야”
“30년간 기업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삼아 계좌관리를 맡겼습니다. 설비 투자를 위해 갖고 있던 돈이라 3~6개월 이상 묶어둘 수 없는 자금이란 것을 은행 프라이빗뱅커(PB)도 알고 있었습니다.”
IBK기업은행의 법인고객이었던 A씨는 “내가 ‘디스커버리 펀드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통보문을 받는 사건의 당사자가 될 줄 몰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PB가 (펀드 판매 당시) ‘지금 미국이 최고 호황을 누리고 있다. (과거처럼) 금융위기가 오더라도 (해당 펀드가 바로 타격 받는 것이 아니니) 6개월 정도는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기업은행은 2017~2019년 총 6700억원 상당의 해당 펀드를 판매했다. 하지만 미국 운용사가 펀드자금으로 투자한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모두 914억원 정도의 환매가 중단됐다.
“기업은행 PB, 위험 점검 없이 전화교육만 받고 판매”
투자제안서는 해외 소재 특수목적법인(SPV)인 DL글로벌(DLG)이 미국 소상공인에게 대출하고 그 대출채권 등을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에 선순위 90% 이상, 후순위 10% 정도로 투자(매입)한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PB가 ‘후순위 채권이 10% 정도’라며 안전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또한 “PB는 ‘미국 자산운용사인 DLI(Direct Lending Investment)의 3년간 꾸준한 운용실적을 바탕으로 한 짧은 만기의 구조화 상품이라 책임 운용이 가능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마치 DLI가 운영하는 DLG를 통해 직접 투자하는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투자구조는 DL글로벌의 자산이 DLI 모펀드인 DL 캐피털의 자펀드와 함께 ‘DLI Assets Bravo. LLC’(DLIB)에 펀드자금을 공동 투자해 26개 대출 플랫폼에 재투자되는 구조였다. 즉, DLI 펀드와 DL글로벌 펀드가 연동돼 위기가 발생하면 DL글로벌과 디스커버리 펀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높은 위험’ 등급의 상품이었던 것이다.
결국 지난해 4월 DLI는 실제 수익률과 투자 자산 실제 가치 등을 허위 보고한 행위가 적발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고발당했다. DLI가 운용하는 펀드 자산은 동결됐지만, 이후에도 국내에선 디스커버리 펀드가 계속 판매되고 있었다.
A씨는 “기업은행이 투자제안서와 실제 투자 구조를 사전에 심사하고 실사를 철저히 했다면 부실 발생이나 원리금 회수에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알고 보니 PB도 상품설명서 컨퍼런스 콜(전화로 하는 설명회) 교육에 기초해 펀드 가입을 권유한 것이었고, 위험요소에 대한 별도 점검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측은 “기업은행의 펀드는 제안서 대로 DLG가 발행하는 채권에 선순위 100% 또는 선순위 90%와 후순위 10%로 투자됐다”며 "디스커버리 펀드는 검토 당시부터 '매우 높은 위험' 등급인 것을 투자자들에게 고지했고, 전문 PB들을 통해서만 판매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영업점 교육을 통해 고객 확인서도 받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업은행의 부실 점검은 국회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기업은행 내부에서도 판매 전에 상품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이를 무시하고 판매를 강행한 것이 확인됐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기업은행에서 받은 ‘PB 전용상품 선정 및 사후관리 협의회 회의록’과 ‘신상품·신제도에 대한 리스크 검토서’를 보면, 리스크총괄부는 해당 펀드에 대해 “투자자 입장에서 해외 자산에 대한 정보 수집이 어렵고 같은 수익구조로 과거에 검증된 수익률이 없으므로 반드시 고객의 투자 의사를 반영한 신중한 판매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앞서 기업은행 WM사업부는 2016년 12월 디스커버리의 ‘US 핀테크 대출채권연계 DLS’ 펀드의 판매 가능성을 심사하는 회의에서 해당 펀드의 ‘최대 손실 가능 위험’ 항목에서 10점 만점에 2점만 부여했다. 2017년 11월 ‘유에스(US) 핀테크 부동산 펀드’ 상품 정량평가에서는 내부 평가위원 4명 모두 해당 펀드에 70점을 부여했는데 이는 상품 선정 협의회에 간신히 상정할 수 있는 ‘턱걸이’ 점수였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분쟁 조정 시 착오에 의한 계약 때문에 취소하는 경우 원금의 100% 반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조정안이 불완전 판매로 결정되면 배상 비율이 80%를 넘지 못한다. 피해자들은 “법원이 사기적 부정 거래를 인정한 만큼 투자금을 100% 돌려받는 ‘거래 취소’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즉각 반발했다.
피해자들 “불완전 판매 아닌 착오” 금감원 조정안 거부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분쟁 조정시 착오에 의한 계약 때문에 취소하는 경우 원금의 100% 반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조정안이 불완전 판매로 결정되면 배상 비율이 80%를 넘지 못한다. 이에 따라 디스커버리 펀드 피해자들은 평균 55%~70% 수준에서 배상을 받게 된다.
A씨는 “허위로 기재된 투자제안서를 토대로 투자를 권유하고 수익성을 기대하게 만든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면서 “제공한 정보가 잘못된 정보인 것을 알면서도 이를 그대로 판매에 활용한 것은 사기가 아니면 뭔가”라고 반문했다.
부산은행 라임펀드 피해자인 B씨도 최근 분조위가 결정한 배상 비율 61% 조정안을 수락하지 않기로 했다. B씨는 “금융감독원(금감원)이 피해자들에게 자기 책임(비율 39%)을 강요하고 있다”며 거부 입장을 밝혔다. 금감원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해소하기보단 금융업체 편을 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B씨의 설명에 따르면 부산은행은 B씨에게 상품 가입을 권유하면서 투자 자산의 60%를 차지하는 모펀드(플루토-FI D-1)의 위험성이 ‘초고위험’이란 설명을 누락했다. 게다가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동의 없이 신청인의 투자 성향을 ‘공격 투자형’으로 임의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라임 펀드 판매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대신증권에 대한 조정안도 투자자들이 수락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조위는 대신증권에 최대 80%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관련 책임자였던 장모 전 대신증권 반포WM센터장의 자본시장법상 ‘부정 거래 금지’ 위반이 법원에서 확정된 영향이 컸다. 피해자들은 “법원이 사기적 부정 거래를 인정한 만큼 투자금을 100% 돌려받는 ‘거래 취소’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100% 전액 보상’하기로 한 한국투자증권의 결정도 앞으로 피해자들의 조정안 수락 여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지난 7월 16일 “부실 사모펀드 가입 고객 전원에게 원금 100%를 보상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하고, 디스커버리 US핀테크를 비롯해 라임, 옵티머스, 삼성Gen2, 팝펀딩(헤이스팅스), 팝펀딩(자비스), 피델리스 무역금융, 헤이스팅스 문화콘텐츠, 헤이스팅스 코델리아, 미르신탁 등 문제가 됐던 10개 사모펀드 원금을 보상했다. 앞서 라임 플루토 TF-1호(무역금융펀드), 옵티머스 펀드는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가 적용돼 원금 전액 반환 결정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의환 전국사모펀드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판매사들이 배임에 해당한다며 거부했던 100% 보상이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남은 펀드에 대해서도 사적화해를 통하면 전액 보상이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업계 분위기는 '불편함'이다. 한국투자증권의 전액 보상은 같은 운용사의 펀드라도 판매사에 따라 배상 비율이 다르게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며, 한국투자증권의 ‘과한’ 조치가 다른 판매사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속마음이다.
다른 한 판매사 관계자는 “보상 금액이 많은 판매사의 경우에는 이사회의 결정을 받기 쉽지 않다”며 “사모펀드 가입에서 투자자의 책임도 있는데 이를 전혀 감안하지 않은 결정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사모펀드 이대로 괜찮나 ②] 정관계 로비, 파면 팔수록 오리무중
▶ [사모펀드 이대로 괜찮나 ③] “투자보호·업체견제·사기처벌 강화해야”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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