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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의 혁신우혁신] 진짜 펫팸족이 만든 진짜 펫테크 기업

[Interview] 고정욱 핏펫 대표
국내 반려동물 업계에서 높은 인지도 확보
누적 투자액 300억원…4개 사업부 분할, 해외시장서도 입질
반려동물 관련 모든 생태계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 기업 목표

 
 

고정욱 대표는 “핏펫을 반려동물 생태계를 아우르는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강조했다.[전민규 기자]
“몇 년 만에 연매출 수백억 신화” “고졸이 대박집 사장이 되기까지” “유명 대기업에 수백억 투자 받은 비결” “스타트업, 나처럼 하면 성공한다”…. 창업 관련 기사를 수놓는 미디어의 헤드라인이다. 가시밭길을 밟아온 창업가의 역경 드라마를 소개하고,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식이다. 스타트업의 숱한 곡절을 생생하게 목격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전 디캠프 센터장)는 창업 시장이 일률적으로만 묘사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창업가의 성공에 손뼉만 치고 끝낼 게 아니라, 그들의 혁신 비법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공유하자.” [이코노미스트]가 ‘김홍일의 혁신우혁신’을 연재하는 이유다. 창업 요람의 리더 역할을 하던 VC 대표와 현직 기자가 스타트업 CEO를 만나 진중한 질문부터 가볍고 짓궂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릴 새 성장 동력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라서다. 세 번째로 고정욱 핏펫 대표를 만났다.[편집자]
 
고정욱 핏펫 대표는 핫한 산업 속 뜨는 기업의 CEO다. 핏펫이 겨냥하는 시장이 성장산업으로 꼽히는 반려동물 시장이라서다. 국내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인구가 1500만명을 넘었다. 네 집 중 한집은 동물을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는 올해 반려동물 관련 시장 규모가 ‘6조원+α’가 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반려동물을 다루는 ‘펫 스타트업’이 쏟아지고 있지만, 핏펫은 단연 돋보인다. 올해 상반기 시리즈B 라운드를 마무리한 핏펫의 누적 투자규모는 300억원이다. 펫 스타트업 가운데 최대 규모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인 검사키트 ‘어헤드’는 요즘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에선 필수 아이템으로 꼽힌다. 어헤드의 여러 제품군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건 ‘어헤드 베이직’, 반려동물용 소변검사 키트다. 간질환, 당뇨병, 요로 염증, 방광결석, 방광염 등 10여 개가 넘는 질병의 이상 징후를 99.6%의 정확도로 파악할 수 있다. 
 
사용법도 간단하다. 시약 막대에 소변을 묻히고 비색표에 올려 스마트폰 앱으로 촬영하면 검사 결과가 드러난다. 덕분에 해외에서도 잘 팔린다. 핏펫엔 이런 신통방통한 제품만 있는 게 아니다. 온라인 커머스인 ‘핏펫몰’, 동물병원 플랫폼 ‘병원찾기’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 중이다.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건 아니다. 2018년, 핏펫은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설립한 창업지원 기관인 디캠프에 작게 둥지를 틀었다. 당시 디캠프 센터장이었던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는 고정욱 대표를 두고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참 애처로웠다”고 회상했다. 김홍일 대표가 업계 스타 CEO로 발돋움한 고정욱 대표를 다시 만났다.  
 
김홍일 : 디캠프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직원 4명이 동분서주하고 있었죠. 고 대표의 건강이 악화해 적잖이 걱정했었습니다.
고정욱 : 맞습니다. 그땐 사소하게 어긋나는 일로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죠. 어헤드를 내놓고 시장 반응이 좋았는데도 왠지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습니다.
김홍일 : 그때 고 대표의 매체 인터뷰도 기억에 남습니다. 창업을 꿈꾸는 후배에게 “창업하지 마라,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고정욱 : 맥락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창업을 무작정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운명처럼 엮이는 게 아니라면 깊게 고민해보라는 취지였습니다. 미디어가 그리는 창업은 달콤하고 낭만적이죠. 고난과 역경을 마주하는 스토리도 거쳐 가는 과정처럼만 보입니다. 사실은 극복하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김홍일 : 당시 고 대표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게 무엇이었나요.
고정욱 : 개인의 삶을 온전히 회사에 쏟아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업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창업엔 쉼이 허락되지 않더군요.
김홍일 :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일에 몰두하던 고 대표의 모습이 선명합니다. 다행히 지금은 비즈니스가 궤도에 올랐습니다. 잃기만 한 건 아닐 겁니다. 삶을 다 쏟아붓고, 고 대표는 무엇을 얻었을까요.  
고정욱 : 대기업에 남아있었다면 평생 얻지 못했을 인생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그전엔 융통성 없는 고집쟁이였는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교과서적인 이론으로는 스타트업을 경영할 수 없고, 정해진 정답도 없더군요. 매 순간 회사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솔루션을 쫓는 것뿐이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도 안 되더라고요.
 
고 대표의 말을 듣던 김홍일 대표는 “처음 볼 땐 소나무 같았는데, 지금은 대나무가 됐다”고 비유했다. 성질이 강한 소나무 가지는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지는데, 대나무는 아무리 눈이 내려도 구부러지기만 하고, 부러지는 일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110여 명의 직원을 둔 스타트업으로 성장할 때까지 부러지지 않고 잘 극복했다는 뜻이다.
 

해외 시장서 통하는 핏펫의 기술 경쟁력

“표정이 굳어있던 3년 전과 달리 지금은 밝아졌는데, 그 비결이 뭔가”란 김 대표의 질문에 고정욱 대표는 “회사의 발전이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학습하고 빨아들인 덕분”이라고 답했다.
 
그래서일까. 핏펫은 통상의 스타트업과 판이한 길을 걸었다. 제조업과 플랫폼을 넘나드는 핏펫의 행보는 펫 스타트업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신생기업인데도 바이오·핏펫몰·병원플랫폼·펫보험 등 4개 사업부를 두고 있다. 각각의 부서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김홍일 : 많은 창업가가 사람이 바라는 걸 충족시켜주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중심으로 창업에 나섭니다. 핏펫은 왜 반려동물을 타깃으로 시작했습니까.  
고정욱 : 제가 오랫동안 반려동물을 키워온 견주입니다. 이름은 ‘제롬’인데, 요로결석으로 힘들어하는 제롬이를 보면서 어헤드의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쉽고 편하게 반려동물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김홍일 : 소변으로 질병 검사가 가능하다고요. 정말 요긴한 기능입니다.
고정욱 : 반려동물은 말을 못 하기 때문에 견주가 어디가 아픈지를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미리 알 수 있다면, 치료의 효율도 높일 수 있죠.
김홍일 : 참 다양한 반려동물 관련 제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고성장 산업으로 꼽히는 이유죠. 체감하고 있습니까.  
고정욱 : 물론입니다. 요즘처럼 금융업계의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처음 창업할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입니다.  
김홍일 : 그땐 홀대를 받으셨군요.  
고정욱 : 어헤드를 중점에 둔 사업설명서를 들고 노크를 할 때마다 이런 핀잔을 들었습니다. “그 제품, 시장엔 없는 거죠?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김홍일 : 그런 구태가 현장에서 창업가의 성취욕을 꺾고 있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반려동물이란 말이 정착한 것만 봐도 산업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을 텐데요. 애완(愛玩)동물은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물건이지만, 반려(伴侶)동물은 그야말로 일생을 나누는 가족의 개념이죠. 그만큼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고도화했다는 얘기입니다.
고정욱 : 펫(Pet)과 패밀리(Family)의 신조어인 ‘펫팸’족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요샌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 사람과 반려동물을 동일시하는 인간화 현상인 ‘펫 휴머니제이션’ 트렌드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준하는 수준의 음식 및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견주가 적지 않죠.
김홍일 :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강아지에게 무슨 옷을 입히냐는 핀잔도 들었는데요. 요새 가톨릭에선 반려동물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느냐를 두고 치열한 담론을 벌일 정도입니다. 다만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입장에서 선뜻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이토록 아끼고 사랑하게 된 이유는 뭘까요. 이 산업의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고정욱 : 일차적으론 외로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홀로 사는 가구가 늘어났고, 고령화도 가파르게 진전되고 있으니까요. 동물을 인생의 ‘반려자’로 여기는 분위기가 자리 잡게 됐습니다.  
 
김홍일 대표는 고정욱 대표를 두고 “3년 전 디캠프에서 마주했을 때보다 표정이 훨씬 밝아졌다”고 평가했다.[전민규 기자]
김홍일 : 외로움이 원동력이면 반려동물 산업을 위협할 업종이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령 메타버스 같은 거요.
고정욱 : 단기적으론 대체하기 어려울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반려동물과 서로 의지하고 교감하는 영역까지 닿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죠. 물론 시간이 더 지나면 모르겠습니다. 사람과 강한 애착을 형성할 만한 특별한 기술이 나올 지도요.  
김홍일 : 반려동물에 좋은 대접을 하는 건 견주가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는 아닐까요. 가령 불고기 맛이 나는 사료를 주는 게 과연 반려동물도 기뻐할 일일지 의문입니다. 또는 반려견에게 아무리 좋은 옷과 멋진 액세서리를 사줘도 반려견이 그것을 온전히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고정욱 : 좋은 걸 주면 분명 피드백이 옵니다. 그냥 먹는 거랑, 게눈 감추듯 먹는 게 다르거든요. 영양상태가 개선되기도 하고요. 견주의 개인적인 만족도 물론 있겠지만, 반려동물에도 좋은 영향이 가는 건 확실합니다.  
김홍일 : “반려동물을 정말 사랑하는군요. ‘개통령’ 강형욱 씨는 방송에서 개똥도 먹어봤다고 하던데, 고 대표는 반려견을 위해 무엇을 해봤습니까.”  
고정욱 : “제롬이가 슬개골탈구 수술만 세 번을 했는데도 계속 아팠습니다. 수영이 도움이 된다는 얘길 듣고, 1년간 꾸준히 욕조에 물을 받아서 수영 훈련을 시켰습니다. 퇴근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수영 훈련만은 거르지 않았죠. 실제로 제롬이의 움직임이 나아져서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홍일 대표는 3년 전 인터뷰 질문을 찾아 곱씹었다. “후배들이여 창업하지 말라는 말,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가.” 고정욱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창업은 어렵습니다. 내가 쏟는 열정에 비해 가시적으로 성과가 나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죠. 본인이 선택한 길이니 그저 참고 견뎌라라는 말도 가혹하기만 합니다. 다만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그땐 얘기가 달라집니다. 숱한 난관에도 꿈쩍 않고 밀고 나가십쇼. 창업하세요.”
 

기자가 본 고정욱 대표

인터뷰 내내 고정욱 대표는 반려견 제롬이를 향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핏펫은 이런 애정을 기업가 정신으로 승화한 스타트업인 셈이다. 이후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업 모델을 확장했다.  
 
고 대표의 반려동물을 향한 애정은 핏펫의 고정팬을 늘리기에 충분해 보였다. 사랑하는 일에 몰입하면 그만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요샌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춘 상품이나 정보를 필요로 하는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핏펫은 단순히 유행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트렌드를 리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 대표의 목표는 핏펫이 반려동물과 관련된 총체적인 생태계를 아우르는 솔루션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물론 고 대표 혼자만의 역량만으론 닿기 어려운 목표다. “핏펫은 스포츠팀입니다. 팀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을 함께 꾀하고 있죠. 투명하고 탁월하게 움직이는 팀원들 덕분에 펫 스타트업으론 최초로 예비유니콘 특별보증에 선정됐습니다. 핏펫은 지금도 유능한 분들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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