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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일+얇은지갑’ VS ‘주40시간+임금보존’…당신의 선택은

한국, OECD 국가보다 근로시간 길고 노동생산성 낮아
“여가 확대” vs “임금 감축”, 근로자들도 찬·반 엇갈려
대선 주자들 너도나도 도입 공약에 재계 우려 분위기
전문가 “다변화 시대, 사회적 논의로 첫 단추 끼울 때”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첫날이었던 2018년 7월 2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전자상거래 기업 위메프 본사에서 직원들이 정시 퇴근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치권이 쏘아 올린 ‘주4일제’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됐다. 지난 4월 서울시장 선거에 이어 이번엔 대선 주자들마다 잇따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주4일제가 근로시간 단축이 근로자 복지 향상과 노동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임금 조정, 일자리 감소 등 노사 갈등으로 기업 경쟁력 감소를 불러올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가운데, 근로자들조차 긍정 의견과 부정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확보를 기대하지만, 한편에선 업종이나 고용형태에 따라 임금이 줄어드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는 주4일제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주4.5일제로 공약 경쟁을 벌였다. 이번에도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 심상정 정의당 의원, 양승조 충남도지사 등 내년 3월 대선에 나선 주자들마다 주4일제 도입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기상조라며 반대하던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도 “노인 일자리 확대에 활용하겠다”며 한발자국 물러섰다.    
 
주4일제 본격 논의는 이제 시작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재택근무와 유연근무 등 다양한 근무형태가 자리 잡으면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커진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주4일제 등 근로시간 단축이 중요한 의제로 검토될 전망이다.  
 

근로자들 “노동시간 줄면, 생산성 높아질 것”

근로자들은 주4일제를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지난 8월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성인 4155명을 대상으로 주4일제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약 83.6%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휴식권 보장과 워라밸 문화 정착’(72.4%·복수응답), ‘충분한 재충전을 통한 업무 효율 향상’(51.7%)을 장점으로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건강 관리(32.1%) ▶휴일 증가로 인한 내수 진작과 경제 성장(21.2%) ▶자녀 돌봄(20.1%) 등의 이유도 뒤를 이었다. 주4일제가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추면서도 업무 효율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OECD 국가의 근로자당 연평균 근로시간
OECD 국가의 근로자당 연평균 노동생산성
근무시간 단축의 필요성이 근로자들에게 힘을 얻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들의 노동시간(지난해 연간 기준)을 보면, 한국은 1908시간이었다. OECD 국가 중 근로자의 노동시간이 우리보다 긴 나라는 콜롬비아(2172시간)·멕시코(2124시간)·코스타리카(1913시간) 뿐이었다. 독일(1332시간)·덴마크(1346시간)·영국(1367시간)·노르웨이(1369시간)·네덜란드(1399시간) 등 유럽 선진국들의 노동시간은 우리나라의 70%에 불과했다.  
 
한국 근로자들은 이렇게 장시간 일하면서도 노동생산성은 하위권으로 조사됐다. 1일 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GDP per hour worked)은 41.8달러(한화 약 4만9100원)로 확인됐다. 노동생산성을 집계한 42개국 중 28위다.  
 
반면 근로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유럽 회원국들 가운데 노르웨이(85.5달러)·덴마크(75.4달러)·네덜란드(67달러)·독일(66.9달러)·영국(61.3달러) 등은 한국보다 시간당 20달러가량 생산성이 높았다. 이들 나라의 근로자들은 적은 시간을 효율성 있게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의 야근 문화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시간 업무로 인해 업무 집중도와 효율성이 함께 떨어지는 역효과가 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단축 근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노동유연성 높은 유럽 국가들과 단순 비교 어려워”  

하지만 근로시간과 노동생산성을 유럽 국가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반박도 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자영업자 비중이 높아 이들이 긴 시간을 일한다는 것이다. 반면 유럽은 단시간 근로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무조건 노동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생산성이 낮은데 근로시간만 줄이면, 기업 경쟁력만 약화할 수 있다는 비판이 경영계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경영계는 우리나라가 노동유연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문제로 지적한다. 현 상황에서 근무시간만 줄이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덴마크·노르웨이·독일·네덜란드 4개국의 세계경제포럼(WEF) 노동유연성 평가 점수 평균은 68.9점이었다. 반면 한국은 54.1점을 받아 OECD 37개국 중 35위를 차지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들은 장시간 일하면서도 노동생산성은 하위권으로 조사됐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단축 근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주4일제를 도입한 기업들 중엔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대신 월급을 삭감한 기업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4일제 시행에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근로자들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주 4일제를 도입한 기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배달의민족·카카오게임즈 등 정보통신(IT) 업계는 인재 영입 수단으로 주4일제를 전면 내세우고 있는 추세다. 2015년부터 주4.5일제를 시행 중인 배달의민족 임직원들은 매주 월요일 오후 1시 출근하고 있다. 숙박앱 ‘여기 어때’도 같은 제도를 2017년부터 도입했다. 카카오게임즈는 지난 4월부터 ‘놀금(노는 금요일)’을 격주로 운영 중이다. 롯데면세점이나 신라면세점도 주4일제를 하고 있다.   
 
문제는 주4일제를 도입한 기업들 중엔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대신 월급을 삭감한 기업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4일제 시행에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근로자들도 있다.  
 
지난 8월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주4일제에 반대하는 응답자 가운데 60.4%(복수응답)는 그 이유로 ‘임금 삭감 가능성’을 우선 꼽았다. 이와 함께 ▶업무 강도 상승(45.3%) ▶업무 감각과 생산성 하락(19.6%) ▶상대적 박탈감(15.4%) ▶기업 경쟁력 악화·성장 둔화(15.1%) 등을 반대 이유로 제시했다. 대체로 임금삭감과 노동 양극화를 우려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우려는 우리나라에 주5일제가 도입된 이듬해인 2005년에 이미 불거진 바 있다. 이경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주5일제 시행 이후 사업장 규모별 양극화가 심해진 것이 확인됐다. 5인 이상 사업장과 500인 이상 사업장의 평균임금 격차가 2004년 92만7000원에서 2005년 103만4000원으로 벌어진 것이다.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의 경우 근로시간은 더 큰 폭으로 줄어든 반면, 법정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그만큼 초과근무 수당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주52시간제와 주5일제 시행이 임금 감소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올해 10월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91.8%가 52시간제로 ‘임금이 감소’했다고 답했으며, 71.3%(복수응답)가 임금 감소에 별다른 대책이 없으며 40.8%는 ‘투잡’(2개 직업)을 뛰고 있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 후보가 1일 주4일제 정책 공약행보 첫번째 일정으로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 내 전국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사무실을 방문해 노조원들과 주4일제 근무와 관련해 간담회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는 주4일제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근로 형태가 업종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코로나19 이후 법정근로시간 자체가 의미가 없는 시대가 왔다”면서 “주4일제 논의도 정치적 논의로 촉발됐을 뿐 사람들이 크게 호응할 것 같지는 않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재택 위주로 일하고 있는 근로자를 예로 들며 “주5일에서 주4일로 근로시간을 줄일 테니 임금도 깎자고 하면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주4일제의 방향성을 긍정하면서 도입을 위한 실험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주4일제는 해외에서도 아이슬란드·스페인 등 소수 국가에서만 실험에 나섰다. 아직 어떤 효과가 있을지, 우리나라에서 어떤 구조로 도입할지에 대해서 나온 것도 없는 데 논의 자체를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뿐만 아니라, 탄소중립 대응이나 산업재해 감소 등의 이유로 주4일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측도 있다”면서 “이제 첫 단추를 끼워야 하는 만큼, 일방적인 찬반보다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지원 기자 jung.jee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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