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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팔리는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이건희 기증관' 속도 내나

LH가 5580억원에 매입 후 서울시 옛 서울의료원 남측 부지와 맞교환 예정
시민단체, 이건희 기증관 졸속추진 비판

종로구 서울공예박물관 옥상에서 바라본 이건희 기증관 건립부지로 결정된 송현동 일대 모습.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1월 서울공예박물관에서 '(가칭)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공동취재사진)]
경복궁 옆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가 13년 만에 팔린다. 대한항공은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48-3번지 외 21필지의 송현동 부지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처분하기로 결정했다고 23일 공시했다. 매각 대금은 5578억원이다.
 
이번 매각 결정으로 대한항공은 5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확보하면서 자금난에 대한 걱정을 덜게 됐다. 대한항공은 2018년 568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2019년과 2020년에는 영업이익이 각각 1760억원, 1089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여행수요가 줄었고 전 세계 항공사들과 여행업계로 불어닥친 한파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화물 운송에 대응하면서 위기를 돌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자금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해 초 3조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고 인천 영종도의 레저 시설인 왕산마리나를 운영 중인 왕산레저개발의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LH 매입 뒤 서울시 옛 서울의료원 남측 부지와 맞교환 

송현동 부지 매각이 순조롭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2008년 대한항공이 삼성생명으로부터 약 2900억원에 해당 부지를 매입할 당시 대한항공은 이 땅에 7성급 호텔을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학교 반경 200m 안에는 관광호텔을 세울 수 없다는 법에 가로막혔다. 풍문여고, 덕성여중·고 등이 인접해 있기 때문이었다.
 
호텔 건립이 무산되고 회사의 자금 사정도 나빠지면서 대한항공은 송현동 부지를 매각하려 했지만, 서울시가 이 땅을 공원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매각은 또다시 무산됐다. 공원이 조성되면 이익을 남길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입찰에 참여한 15개 업체가 모두 입찰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시가 매입하겠다며 4670억원의 보상금액을 제시했지만, 대한항공은 시세에 맞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권익위원회 중재까지 간 끝에 올해 3월 대한항공과 서울시, LH가 송현동 부지 매각을 위한 조정에 합의하며 갈등이 봉합됐다. LH가 대한항공으로부터 송현동 부지를 사들이면 서울시가 보유한 강남구 삼성동 옛 서울의료원 남측 부지와 맞교환하는 조건이었다.
 
송현동 부지가 새 주인을 찾으면서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이 명예회장이 모았던 2만3000여 점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나라에 기증하자 국보급 예술품 등 이건희 컬렉션을 따로 보관하고 전시할 미술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서울시를 비롯해 각 지자체에서도 이건희 기증관을 유치하기 위해 공을 들였는데, 서울 송현동 부지에 짓는 것으로 최종 확정됐다. 지난 11월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는 이건희 기증관 건립지로 종로구 송현동 48-9번지 일대 9787㎡를 확정하는 내용에 최종 합의했다. 송현동 부지 전체 면적 3만7141㎡ 가운데 기증관이 들어서는 면적 이외 부분은 공원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내년 하반기에는 국제설계 공모 절차를 실시하고 설계·공사에 들어가 2027년 완공·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건희 기증관' 건립 속도…시민단체는 '졸속 추진' 비판 

송현동 부지 인근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을 비롯해 60여개 갤러리가 있고 5대 고궁과 북촌한옥마을 등 문화·관광 인프라도 풍부하다. 서울시는 서울공예박물관, 세종문화회관 등 시립시설을 포함해 광화문과 송현동 일대 문화자원을 연계해 미국 워싱턴DC의 내셔널몰, 독일 베를린의 박물관 섬(Museum Island) 같은 문화·관광 지구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문화연대,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위해 원칙도 절차도 명분도 없는 방식으로 기증관 건립을 강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1년도 지나지 않은 기간에 기증관 구상, 추진 계획 수립, 관계부처 협의, 부지 확정이 충분한 논의 없이 이뤄졌다”며 “대규모 국가 예산이 예상되는 사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 문화정책과 연계성, 기증품 검증, 기증관의 지속가능성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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