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산 붕괴 사고, 수익성만 쫓은 ‘애자일 경영'이 문제였나
수시로 바뀌는 조직, 타이트한 인력 운용에 직원들 불만
신속함과 효율성만 중시하다 보니 안전 소홀해진 현장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서 발생한 아파트 붕괴 원인이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애자일 경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이 효율성에 방점을 두고 조직을 운영하는 애자일 경영은 전문성 미비와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6월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4구역 철거현장 붕괴사고 때에도 애자일 경영의 문제점이 부각됐다.(☞정몽규 회장의 ‘애자일’ 경영 실패, '광주 참사' 원인 됐나)
‘효율’로 포장한 ‘비용절감’이 목적인 애자일 경영
효과는 확실했다. 애자일 경영 이후 HDC현대산업개발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급증했다. 2018년 연간 매출액 2조7927억원, 영업이익 3179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2019년에는 연간 매출액 4조2164억원, 영업이익 5514억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2020년에는 연간 매출액이 3조6702억원으로 감소했지만, 애자일 경영 전략 효과로 5857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2021년에는 광주 학동4구역 철거현장 붕괴사고 여파와 금호아시아나 인수 무산 후유증에도 불구 3분기(누적) 기준 2조3664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이는 전년 동기(2조7760억원) 대비 소폭 감소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172억원에서 2897억원으로 30.6% 줄어들었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애자일 경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효율성을 극대화한HDC현대산업개발의 애자일 경영은 인력 공백을 불러왔다. 최근 몇 년간 정규직을 비롯한 직원 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룹 인적분할 후인 2018년 말 정규직 1000명 등 총 1769명이던 직원 수는 2019년 1705명으로 소폭 감소한 뒤 2020년에는 1591명으로 100명 이상 줄었다. 실적이 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인력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내에서 크고 작은 팀 이동과 조직구성 변화도 흔하게 발생했다. 현장에선 상시적인 인력 부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실무를 담당할 신규채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안전담당 등 자체 인력도 비정규직이 대부분이고, 이마저도 부족하다는 불만이 많다.
문제는 HDC현대산업개발이 광주 학동4구역 대참사 이후에도 효율과 신속에 방점을 둔 애자일 경영을 고수해 왔다는 점이다. 오히려 정 회장은 애자일 경영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유병규·하원기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HDC현대산업개발 스스로 인사 배경을 애자일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인력은 부족한데 속도만 강조한 현장
RCS는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틀(갱폼)을 유압으로 올리는 자동화 방식(시스템 폼)이다. 시스템 폼은 3개 층에 걸쳐 설치되는데, 하층 2개 층이 갱폼의 무게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이 갱폼이 무너지면서 외벽 등이 무너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공법은 비용 절감이 가능하고, 공정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설비 자체가 무거워 대형 사고 발생 우려가 크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공법으로 미뤄볼 때 정 회장의 애자일 경영 전략이 이번 광주 대참사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성급하게 서두른 콘크리트 공법이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콘크리트 굳히는 작업을 뜻하는 ‘양생’이 기준에 맞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양생은 콘크리트가 하중, 외부 충격 등 유해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충분히 보호 관리되는 것을 뜻한다. 건축업계에서는 콘크리트 시공의 생명은 양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전언한다. 양생 작업은 그만큼 중대한 과정이지만 이 작업이 부실 공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일했던 일부 인력들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시공사의 지시로 겨울철 양생 기간을 5일 정도밖에 갖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건축업계에서는 날씨가 추운 겨울철에는 콘크리트가 잘 마르지 않아 더욱 양생에 긴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업계는 이번 참사 현장에서는 충분한 콘크리트 양생 기간을 거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기준에 맞게 콘크리트 양생 과정이 진행됐다면 건물 외벽이 무너지더라도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무게를 지탱하는 하부 2개 층의 콘크리트가 추운 날씨로 인해 제대로 양생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층수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하다 거푸집이 무너지고, 그 충격으로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는 설명이다.
아파트 건물의 뼈대를 구성하는 구조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도 지적됐다. 사고가 난 화정아이파크는 주상복합 아파트에 흔히 쓰이는 벽식구조가 아닌 무량판 구조로 건설됐다. 무량판 구조는 수직재의 기둥에 연결되어 하중을 지탱하고 있는 수평구조 부재인 보(beam)가 없이 기둥과 슬래브(slab)로 구성된다. 사고가 건물 최상층부에서 무너져 내린 것을 보면 무게를 지탱하는 기둥이나 벽을 최소화한 설계 구조상 취약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두현 기자 kim.doo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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