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였던 5년, 기지개 켜는 원전업계…대선 후 기상도 쨍쨍
이재명 “신규 원전 없다…신한울 3·4호 건설 재검토”
윤석열 “탈원전 정책 폐기…원전 최강국으로 발돋움”
EU 택소노미에 원전 포함되며 시장 다시 활기 찾는 듯
SMR 시장 선점에 지분 투자 등 국내 기업 참여 활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원자력 발전 업계에 다시금 봄이 찾아오는 모양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탈원전 정책 전면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탈원전 정책에 속도 조절을 할 의향을 내비치고 있는 탓이다.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EU)은 최근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했다. 한국의 원전 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원전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기업들의 기대감도 한껏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李 “감(減)원전” vs 尹 “원전 최강국 건설”
다만 문재인 정부 들어 국민 공론화위원회를 거쳐 건설 중단 결정이 내려진 신한울 3·4호에 대해서는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 역시 지난 6일 신한울 3·4호 건설 재개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송 대표는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신한울 3·4호 건설 관련) 찬반 양측의 주장을 투명하고 공정한 논의 절차를 바탕으로 지혜롭게 정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이유로 이 후보는 차기 정부의 원전 정책 방향에 대해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가 아닌 ‘감(減)원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에 속도조절을 하겠다는 의미다. 이 후보는 아울러 소형모듈원자로(SMR)의 연구에도 계속 참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를 전면에 내걸고 나섰다. 그는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탈원전 이후 에너지 주권을 상실한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전기를 수입하는 나라가 됐다”며 “원전 생태계를 회복하고 안전한 원전 기술을 발전시켜 앞으로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핵심 동력으로 삼겠다”고 탈원전 정책 폐기를 재차 강조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답변한 ‘제20대 대선 매니페스토 비교 분석을 위한 질의 답변서’에 따르면 윤 후보는 9번째 공약으로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과 원전 최강국 건설’을 내세웠다. 그는 “실효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 적응대책을 적극 추진하며, 원자력과 청정에너지 기술 구축을 통해 탄소중립 목표달성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발전에 지속적으로 투자, 친환경적 에너지 생산과 미래 먹을거리 확보, 전 세계에 원전 원천기술을 수출하겠다”라고도 밝혔다.
EU 택소노미에 포함된 원전…해외시장 꿈틀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EU 국가 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 EU 택소노미(Taxonomy)에 천연가스와 함께 원전이 포함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택소노미는 탄소중립에 투자하는 ‘녹색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 어떤 활동이 녹색경제활동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가이드라인이다. 당초 EU는 지난해 6월 1차 발표에서 원전을 제외했지만, 원전 의존도 70%에 달하는 프랑스의 강력한 주장으로 포함하기로 했다.
지난달 2일 맥기니스(McGuinness) EU 금융서비스 담당 집행위원은 택소노미 규정 확정을 발표하는 연설에서 원전과 관련해 “그동안 안전 기준과 폐기물 관리에서 많은 기술 진전이 있었다”며 원자력 발전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한다고 밝혔다. EU의 금융기관과 금융회사에게 원전 발전에 대출이나 투자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다만 앞으로 새 원전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핵폐기물 관리와 원전 설치 및 해체를 보장해야 하고 2045년 전까지 건축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공사 역시 2040년 전까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적어도 유럽에서는 원전 건설 시장이 20여 년은 유효하다는 의미다.
EU가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면서 원전 업계도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특히 소형모듈원전(SMR)에 대해 미국·영국·프랑스 등 선진국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SMR은 대형원전 대비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건설 공기가 짧은 이점이 있다. 방사성 폐기물 등 안정성 측면에서도 대형원전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우리 기업들도 보폭을 넓히는 상황이다. 미 정부가 2020년 발간한 ‘미국 원자력 경쟁력 회복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세계 원전 시장이 5000억~7400억 달러(570조~840조원)로 추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 SMR 주인공 명단에 국내 기업 들어가나
뉴스케일파워의 전략적 파트너로 핵심 기자재 공급권을 확보한 두산중공업은 SMR 설계와 엔지니어링, 조립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중공업 측은 향후 3조원 이상의 물량을 따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뉴스케일파워의 SMR 프로젝트에서 반응로 설치와 제반 시설 건설을 담당할 예정이다.
현대엔지니어링도 캐나다 SMR 사업 참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12월 캐나다 앨버타주와 ‘SMR 건설사업 추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소듐냉각형 SMR 건설에 나설 계획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등과 함께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데모 플랜트 건설사업에 나선다는 목표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양용 SMR 기술 개발을 위해 한국전력기술과 손을 잡았다. 해양 부유체 설계 제작 기술을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은 해양용 소형 원전인 ‘BANDI-60’을 개발한 한전기술과 해양부유식 원전개발 사업에서 시너지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EU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고 SMR 개발에 선진국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K-택소노미’에 원전 포함 등 차기 정부에서의 정책 방향이 지난 5년과는 상당 부분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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