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30년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와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젤렌스키 “내게 필요한 건 피신이 아니라 실탄”
SNS로 러시아 부당함 알리며 각국에 지원 요청
우크라이나, 1991년 이후 젤렌스키 앞에 6명의 대통령 겪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가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사회는 새로운 리더십의 화신을 만났다. 바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이 발발하자 피신하지 않고 수도 키이우에 남아 전쟁을 지휘하고, 국민에게 항전 메시지를 보내며 저항을 독려하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키이우는 우크라이나의 북쪽에 있으며, 러시아의 맹방인 벨라루스의 국경에서 불과 90㎞정도 떨어졌다.
젤렌스키, 미국 피신 제안 거절 SNS로 항전 모습 알려
젤렌스키가 특히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다음날인 2월 25일 미국의 피신 제안을 사양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당국자를 인용해 이날 “미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탈출을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군사력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러시아가 침공하면서 젤렌스키는 바람앞의 등불 같은 운명이 됐다. 미국과 서방 진영은 우크라이나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본격적인 군사적 지원을 거부했다.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이나 대공 미사일 정도의 무기만 지원하는 정도에 그쳤다. 다만 러시아에 잡힐 경우 살아남을 가능성이 적은 젤렌스키와 가족의 피신을 돕는 제안을 한 것이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의 침공 앞에 미국의 동정으로 국외 탈출해 망명 정부나 꾸릴 처지가 됐다.
하지만 이튿날 대반전이 일어났다. 2월 26일 AP통신은 주영 우크라이나 대사관을 인용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가 침공하자 피신을 제안한 미국 측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보도했다.
“싸움은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다. 내게 필요한 건 피신이 아니라 실탄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선거로 뽑은 지도자로서 조국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게다가 희망을 잃지 않고 실탄을 지원하며 싸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젤렌스키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희생을 각오하고 국민을 결속시키는 지도자로 거듭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젤렌스키는 그날 저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영상에서 “우리의 결속과 용기가 러시아의 점령 시나리오를 깨뜨렸다”며 “세계는 우크라이나인의 강한 모습과 용기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에는 SNS 영상 메시지를 올리면서 키이우의 대통령 관저를 배경으로 찍은 ‘인증 영상’을 올렸다. 계엄령으로 인적이 드문 키이우의 밤거리에서 일행과 함께 서서 자신이 수도에 남아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며 끝까지 조국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러시아의 제거 표적 1순위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피신하는 대신 키에프에 남아 전쟁을 이끌고 있음을 국민에게 확인시킨 순간이었다.
러시아의 역정보 도구로 활용된다는 비판을 받아온 국영 스푸트니크 통신은 전날 하원 대변인을 인용해 “젤렌스키가 이미 폴란드 국경에 가까운 서부 리비우로 도주했으며, 영상은 사전 제작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젤렌스키의 영상에 나온 일행들은 휴대전화를 들어 액정에 표시된 촬영 날짜와 시간을 보는 이들에게 확인시켰다. 러시아의 역정보에 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술은 진실과 용기임을 새삼 확인시킨 순간이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쳐들어오자 자신이 키이우에 남아있는 모습을 셀카로 찍은 수많은 동영상을 SNS에 올리고 있다. 굳건한 항전 의지는 물론 실제 항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물리치는 전황도 알리면서 군과 국민을 이끌고 있다.
러시아의 부당함과 무도함, 잔혹함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각국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그는 특히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등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글로벌 청년층을 사로잡고 있다. 젤렌스키의 공식 SNS 팔로어는 1670만 명 이상이다.
모스크바 서쪽 교외 지역인 노보오가료보의 대통령 별장에서 주변에 온통 아날로그 전화기가 즐비한 사무실에 앉아있는 푸틴과 대조가 되는 장면이다. 푸틴은 보안을 우려해 휴대전화는 물론 디지털 기기를 일절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아날로그 세대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실시간 홍보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푸틴 앞에서 당당한 젤렌스키…협상 제안 항전 의지 고취
젤렌스키는 사실 위기가 고조되던 올해 초까지 러시아로부터 협상 상대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러시아와 서방 국가의 담판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젤렌스키는 당당했다. 러시아군이 침공 이틀 만에 수도 키이우에 접근하자 푸틴 대통령에게 협상을 제안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협상하자고 제안하자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만나자고 역제안을 하며 샅바 싸움에 들어갔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가까운 벨라루스의 고멜에서 첫 휴전 회담을 열 수 있었다. 2차 회담은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와 가까운 벨라루스 서남부의 벨라베슈 숲에서 열렸다. 1991년 12월 8일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우크라이나의 레오니트 크라프추크 대통령, 벨라루스의 스타니슬라프 슈스케비치 최고회의 의장이 모여 소련의 해체와 독립국가연합(CIA) 창설을 결정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미 30년 전에 다른 나라로 결별했음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는 장소다.
우크라이나가 거센 저항을 계속하자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무기와 자금 등의 추가 지원에 나섰다. 분쟁 지역에 살상 무기를 제공할 수 없다던 독일도 2월 26일 입장을 바꿨다. 지대공미사일과 대전차 로켓 발사기 등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기로 했다. 성능 좋은 독일산 대전차 무기인 판자 파우스트 1000대와 미국산 지대공 미사일 스팅어 500기다. 러시아가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무기다.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이튿날인 2월 27일 분데스타크(독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 특별방위기금 1000억 유로(약 125조원)를 한꺼번에 증액하고 올해부터 매년 국방비로 GDP의 2%를 쓰겠다고 밝혔다.
CNN은 수도에 남아 군과 국민을 독려하는 젤렌스키에 대해 “TV에서 대통령을 연기하던 배우에서 반항적인 전시 지도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독일은 나토에 현행 GDP의 1.5% 수준인 국방비를 2024년부터 GDP의 2%로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젤렌스키의 분전으로 이를 2년 앞당겼다. GDP의 3.5%를 국방비로 지출해온 미국은 나토의 유럽 회원국에 2% 국방비를 요구하지만, 매번 미지근한 대답만 받았는데, 러시아의 침공과 우크라이나의 분전이 분위기를 일신한 셈이다.
러시아와 협력 관계인 주요 산유국 아제르바이잔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석유 지원을 약속했다. CNN은 수도에 남아 군과 국민을 독려하는 젤렌스키에 대해 “TV에서 대통령을 연기하던 배우에서 반항적인 전시 지도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젤렌스키는 배우와 제작자 출신으로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은 중등학교 교사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그린 연작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주인공을 맡아 인기를 끌다 같은 이름의 정당을 창당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2019년 결선 투표에서 72%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했다.
그런 젤렌스키는 SNS와 화상 연설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3월 8일 영국 하원에서 화상 연설을 하면서 감동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다.
젤렌스키는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숲에서, 들판에서, 해변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싸울 것이다”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당시 윈스턴 처칠 총리가 했던 연설을 인용하며 항전 의지를 다졌다.
처칠은 1940년 6월 나치 독일이 프랑스에 침공하자 원정군을 보냈던 영국이 영불 해협의 작은 항구에서 어선까지 동원한 필사의 탈출 작전으로 영국군, 프랑스군, 네덜란드군 수십만 명을 철수시킨 됭케르크 작전 뒤에 의회에서 이런 내용의 연설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항전 의지를 불태우게 했다.
뿐만 아니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에서 인용해 우크라이나는 ‘살기(to be)로 결론지었다’고 말해 갈채를 받았다.
2013년 EU와 경제협력과 가입을 위한 절차 진행을 백지화하자 국민이 들고일어나 이듬해 수도 키이우의 유로마이단 광장에서 100여 명이 숨지는 유혈사태를 빚으면서다. 친러파인 야누코비치는 서구의 일원이 되어 러시아의 입김을 피하고 싶다는 국민의 열망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반EU, 친러시아 정책을 추진하다 국민의 저항을 받고 물러나게 된 것이다.
독립부터 유로마이단까지…신생 우크라이나 이끈 대통령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국민은 젤렌스키 앞에 6명의 대통령을 겪었다.
초대인 레오니트 크라프추크(88) 대통령은 1991년 12월 소련이 무너지고 독립한 직후부터 1994년 7월까지 자리를 지켰다. 공산당이 무너지면서 무소속으로 대통령을 맡았던 크라프추크는 옐친 등과 소련의 붕괴에 합의했다. 크라프추크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의 모든 전직 대통령은 전원 아직 생존해 있다. 우크라이나는 젊은 나라이다.
2대인 레오니트 쿠츠마(83)는 1994년 7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1기를, 그리고 그 뒤 1999년 11월부터 2005년 1월까지 2기에 걸쳐 대통령을 지냈다. 역시 무소속이었다.
3대 대통령인 빅토르 유셴코(68)는 2005년 1월부터 2010년 1월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인민 연합 ‘우리 우크라이나’라는 정당 연합 소속이었다. 민족주의를 지향한 그는 유럽연합(EU)과 나토 가입을 추진했다. 거대한 러시아의 입김에서 나라의 독립과 국민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서구화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는 독 공격을 받아 얼굴이 흉하게 변했다. 유셴코의 얼굴은 우크라이나의 고난을 상징하게 됐다.
4대인 빅토르 야누코비치(71)는 1997~2002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의 주지사를 지낸 친러 인사다. 2002~2005년과 2006~2007년 총리를 지냈다. 2004년 지역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다가 당선자로 발표됐지만, 부정선거 논란으로 재선거를 한 결과 당선하지 못했다. 대신 유셴코가 당선해 5년 임기를 지냈다. 2010년 출마해 당선했지만 2010년 2월~2014년 2월에만 재임하고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탄핵당하고 러시아로 피신했기 때문이다.
2013년 EU와 경제협력과 가입을 위한 절차 진행을 백지화하자 국민이 들고일어나 이듬해 수도 키이우의 유로마이단 광장에서 100여 명이 숨지는 유혈사태를 빚으면서다. 친러파인 야누코비치는 서구의 일원이 되어 러시아의 입김을 피하고 싶다는 국민의 열망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반EU, 친러시아 정책을 추진하다 국민의 저항을 받고 물러나게 된 것이다.
유로마이단 유혈사태 여파로 야누코비치는 2014년 2월 22일 탄핵당했다. 그해 푸틴은 크림 반도를 병합했으며,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동부 도네츠크 주와 루한스크 주에는 분리주의자 정부가 들어섰다.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 국민에 ‘반역자’로 낙인 찍혔다.
유로마이단과 야누코비치의 탄핵으로 빈 정치 공백은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57) 대통령 권한 대행이 2014년 2월부터 그해 6월까지 맡았다. 그는 모든 우크라이나 연합 ‘조국’ 소속으로 중립적으로 차기 대통령 선출까지 정부를 맡았다.
그 결과 페트로 포로셴코(56)가 2014년 6월부터 2019년 5월까지 한 차례 대통령 임기를 맡았다. 서남부 오데사 인근 출신인 그는 페트로 포로셴코 블록 ‘연대’를 이끌었다. 포로셴코는 소련 말기에 과자 공장을 비롯한 기업의 관리인을 맡았다가 소련 붕괴 뒤 민영화 과정에서 이를 불하받아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축적한 부자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에서 ‘초콜릿 아저씨’로 불린다. 그는 퇴임 뒤 동부 돈바스 지역을 불법 지원한 혐의 등을 받자 해외에 망명했다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귀국해 예비군에 지원했다. 부정 의혹이 있지만,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조국을 위해 얼마든지 목숨을 바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우크라이나는 이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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