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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피제 효력 인정해준 법원…기업들 한숨 돌리나[임피제 폐지 논란 기업들의 운명은②]

법원 "KT 임피제 연령차별 아니다"
학계 "임피제 회의론 잦아들 것"

 
 
서울시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외벽 모니터에 고령자 계속 고용장려금 광고가 나오는 모습. [연합뉴스]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이후 경제계 및 노동계가 술렁이고 있다. 주요 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상황에서 해당 제도가 위법이라고 판단될 경우 대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계와 노동계는 대법원 판결 후 대응책 마련에 나서며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 제시 후 20여 일만에 나온 하급심 판결에서 법원이 회사 측 손을 들어주면서 시한폭탄과도 같던 임금피크제 폐지 논란이 한풀 꺾일 것으로 예상된다.
 

임피제 폐지 논란…주목받은 KT 소송

지난달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이후 해당 제도의 폐지 주장이 거세게 일었다. 재판부는 한국전자기술연구원에서 퇴직한 근로자가 자사 임금피크제의 고령자고용법 위반을 지적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으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도입 목적의 정당 및 타당성 ▶실질적 임금 삭감 정도 ▶임금 삭감에 따른 업무 감소 여부 ▶감액된 재원의 사용처 등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핵심은 '기존 정년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유지형'의 형태를 부정한 것이다. 그 근거는 고용자고용법 제4조의4 제1항으로, '사업주는 임금 및 그 외 금품 지급, 복리후생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으로 근로자 등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다.
 
16일 KT 임금피크제 소송은 대법원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상황에서 열리는 하급심으로 주목받았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임금피크제 폐지 논란의 향후 분위기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 48부(부장판사 이기선)는 KT 임금피크제 관련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특정 연령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삭감한 경우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앞서 KT 전·현직 직원 1300여 명은 회사의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삭감된 임금 및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2019~2020년 두 해에 걸쳐 사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KT 노사는 2014년 4월 합의를 거쳐 2015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 2월에는 정년(기존 만 58세)을 60세로 연장하고, 만 56세부터 4년간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이번 소송에 나선 전·현직 직원들은 "밀실에서 체결된 임금피크제로 임금이 강제 삭감됐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정년 연장으로 근로자들이 혜택을 받았다"고 맞섰다.
 
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노사 간 합의한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만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고령자고용법에 따르면 임금체계 개편에 임금삭감이 포함된다. 이는 법 개정 회의록에도 나타난다"며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은 별도로 분리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업무량, 강도에 관한 명시적 저감조치가 없었다는 사정으로 KT 임금피크제를 합리적 이유가 없는 연령차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2014년 KT는 영업손실 7100억여 원, 당기순손실 1조1419억원으로 임금피크제를 실시할 절박한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밀실 합의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부정했다. 재판부는 "내부적 절차 위반이 있었다고 해도 노조를 대표하는 위원장이 체결한 합의 효력을 대외적으로 부정하기 어렵다"며 "노사는 여섯차례나 상생협의회를 거쳐 구체적 임금피크제 방안을 마련했다. 노조위원장의 대표권 남용으로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임피제 폐지 논란 한풀 꺾이나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공공기관의 일방적 임금체계 개편 중단과 임금피크제 지침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판결 후 주요 기업 노조들이 임금피크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완성차업계의 경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3개 기업(현대차, 기아, 르노코리아자동차)이 임금피크제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포스코, 삼성그룹 노조연대, KT 등도 임금피크제 폐지를 요구하거나 사측에 대법원 판결 관련 입장을 요구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특정 연령 또는 호봉에 도달할 경우, 이후부터 임금을 일정 비율로 감액하는 조건으로 고용 연장 또는 유지하는 제도다. ▶정년보장형(유지형) ▶정년연장형 ▶고용연장형 등으로 구분된다. 
 
정년보장형은 취업규칙 등에 명시된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정년이 도래하기 최소 3년 전부터 임금을 일정한 비율로 삭감하는 방식이다. 정년연장형은 정년을 연장하되 해당 기간 임금을 특정 비율로 삭감하는 것이다. 고용연장형은 정년퇴직 후에 계약직 형태로 재고용, 임금을 재조정하는 형태다. 
 
임금피크제 폐지 논란을 부추긴 이번 대법원 판결의 경우 정년보장형에 대한 판단이다. 반면, 이번 KT 임금피크제 소송은 정년연장형에 해당한다.
 
주요 기업들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상태다. 대법원과 이번 하급심 결과를 보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만으로 차별하는 제도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30대 기업의 95.7%는 정년연장형을 도입했다. 경총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원칙적으로 고령자고용법상 연령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라고 해도 기존 규정상의 정년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면 이번 판결을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임금피크제는 신규 채용 권장, 복지 및 인사제도의 혁신으로 자리를 잡아 왔다"며 "일부에서 임금피크제 본연의 취지에 맞지 않아 법적 소송 등 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이번 사태로 임금피크제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금피크제에 대한 회의론은 잦아들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지완 기자 anew@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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