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에서 환경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느냐고? [이윤정 에코앤로]
기후위기, 환경 오염 대응에 기업 역할 중요
기업 활동에 따른 환경 문제 야기 여부 살펴야
환경 문제 발생 시 해결할 시스템 구축도 중요
내가 로펌에서 환경 변호사로 일을 시작하던 20여 년 전, 지인들은 종종 신기하다는 듯이 ‘기업 자문 업무를 하는 로펌에서 환경 변호사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느냐?’라고 물어보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로펌 변호사의 이미지는 서류를 잔뜩 쌓아놓고 밤새 검토하거나, 외국인들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영어로 열띤 공방을 벌이거나, 멋진 수트를 입고 재판정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변론을 하는 모습일 터. ‘환경’을 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로펌 변호사와 환경은 좀 안 맞아 보였던 것 같다.
당시 새내기 환경 변호사였던 나는 사무실이나 재판정이 아니라 공장, 폐수처리장, 폐기물매립장 등을 주된 일터로 삼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장 가방을 싸서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전국 각지의 공장 현장으로 향했고, 거기서 2~3일에서 일주일씩 머물렀다. 공장에서 제품 원료로 쓰는 화학물질을 법에서 정한 기준에 맞추어 안전하게 보관하고 관리하는지, 생산 공정에서 나오는 대기오염 물질, 폐수, 폐기물은 법에서 정한 대로 처리하는지, 공장 부지 토양에 화학물질이나 기름이 누출·유출된 적은 없는지, 법 위반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더 개선해야 하는 시설이나 운영상 미비점은 없는지를 살폈다. 낮에는 공장 곳곳을 돌아보고 현장 담당자들과 면담을 했고, 밤에는 숙소에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잦은 출장, 고된 현장 업무 때문인지 함께 일했던 동료·선후배들이 전공 분야를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환경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어느 덧 25년차 환경 변호사가 되었다. 이제 누구나 기후위기와 환경 오염을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인지, 로펌의 환경 변호사가 더 이상 드문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아무도 나에게 ‘로펌에서 도대체 무슨 환경 일을 하느냐?’라고 묻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그 대신, 나는 요즘 ‘환경 변호사로서 기업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추측하건대, 로펌은 기업을 위해서 일하는 곳이고, 주로 기업에서 환경 문제가 발생하는데, 환경 변호사가 기업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과연 환경을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인 것 같다.
사람의 모든 활동은 환경 오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기업의 사업 활동은 개인의 활동보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개인의 활동에 비해 환경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업을 경영할 때 환경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체크하고, 만에 하나 환경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너무나 필요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 변호사가 기업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은 환경보전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환경보전기본법 제3조 제6호에 따르면, 환경보전이란 “환경 오염 및 환경 훼손으로부터 환경을 보호하고 오염되거나 훼손된 환경을 개선함과 동시에 쾌적한 환경 상태를 유지·조성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이 정의를 언뜻 보면 기업의 사업 활동을 가능한 억제하고 개발을 안 하면 환경보전에 유리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 대입하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이미 환경이 오염되고 훼손된 시대를 살고 있다. 때문에 오염되고 훼손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돈과 기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사업 기회를 보고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바다에 버려져서 해양 생물을 위협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현재까지 제시된 방안을 모아보면 ▶1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서 해양 쓰레기 양을 줄이는 방안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에 버려지지 않도록 수거 후 재활용하여 옷 등 다른 제품을 만드는 방안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에 버려지지 않도록 수거 후 소각하거나 매립하여 처리하는 방안 등이 있다.
위 3가지 방안 중에 2가지 방안(2안과 3안)이 실제로 기업들이 현재 사업 활동으로 하고 있는 일이다. 1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방안(1안)도 개인이 하는 것보다 기업들이 1회 용품 생산을 줄이거나 포장을 과도하게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사업에 적용한다면 상당히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쓰레기 수거, 처리(소각·매립), 재활용 사업을 하는 기업의 역할이 핵심적이다. 1회 용품과 포장재 사용을 줄이는 이슈가 기업 주도의 사업 기회가 될 지 여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마이클 셸렌버거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서 저자는 “해당 국가에 강력한 쓰레기 수거 및 관리 체계가 갖추어져 있느냐에 따라 쓰레기가 결국 바다로 흘러 들어갈지 여부가 결정된다”라고 주장하면서, 저개발 국가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해양에 버리지 않고 적절하게 처리(소각·매립) 할 수 있는 시설과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혹자는 소각·매립도 대기오염, 토양오염 등 환경 오염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좋은 해결 방안이 아니라고 비판할 수 있겠으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거나 재활용하는 방안만으로 넘쳐나는 해양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다면(저개발 국가의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적절한 오염 방지 시설을 갖춘 소각·매립 기업이 플라스틱을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해양 생물을 보다 신속하게 구하는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 환경 오염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사람들이 창조한 시대의 흐름이다. 블랙 록 등 세계 유수의 투자자들이 투자 대상 회사들에게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라고 요구하고, 애플과 나이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협력회사를 평가할 때 해당 기업이 환경 문제에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ESG 시대에 생존하고 번성하기 위해서 기업 경영진은 기업의 사업 활동에 따른 환경 문제가 없는지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무실보다 공장, 폐수처리장, 폐기물매립장과 같은 현장을 더 자주 방문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환경 법령 위반, 환경 오염 또는 환경 훼손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하게 체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경영진에 보고해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
오래 전 내가 면담했던 기업의 현장 담당자들 중에는 환경 문제가 생겨도 경영진에게 보고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나 부서 직원의 운영상 잘못인 경우에는 바로 보고를 하는데, 시설 투자가 필요한 경우에는 보고하는 것을 주저하는 경향이 있었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라고 월급 받고 회사 다니는데 해결 하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달라고 해야 한다니 회사에 염치가 없어서 입이 안 떨어진다’는 설명이었다. 경영진은 현장에 이러한 분위기가 있어서 보고가 지연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고가 늦으면 문제 해결의 시기를 놓치거나 문제가 더 커져 그만큼 기업과 경영진의 책임이 무거워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업의 주요 ESG 이슈에 관해 경영진이 적절한 보고를 받지 못한 경우, 보고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는 자체가 이사의 의무 위반으로 판단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에서 식중독 사고를 일으켜서 주가가 급락한 아이스크림 제조 기업의 주주가 이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기업이 관련 법 규제를 모두 준수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사회 수준에서 직접 식품 안전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사의 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필자는 환경법 전문가로, 현재 김앤장법률사무소의 변호사이다. 환경부 고문 변호사이자 중앙환경분쟁조정회 위원이다.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법제처 법령해석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2022년 환경의 날 대통령 표창 포상을 수상했다.
이윤정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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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새내기 환경 변호사였던 나는 사무실이나 재판정이 아니라 공장, 폐수처리장, 폐기물매립장 등을 주된 일터로 삼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장 가방을 싸서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전국 각지의 공장 현장으로 향했고, 거기서 2~3일에서 일주일씩 머물렀다. 공장에서 제품 원료로 쓰는 화학물질을 법에서 정한 기준에 맞추어 안전하게 보관하고 관리하는지, 생산 공정에서 나오는 대기오염 물질, 폐수, 폐기물은 법에서 정한 대로 처리하는지, 공장 부지 토양에 화학물질이나 기름이 누출·유출된 적은 없는지, 법 위반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더 개선해야 하는 시설이나 운영상 미비점은 없는지를 살폈다. 낮에는 공장 곳곳을 돌아보고 현장 담당자들과 면담을 했고, 밤에는 숙소에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환경 변호사가 환경 보전에 도움?
사람의 모든 활동은 환경 오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기업의 사업 활동은 개인의 활동보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개인의 활동에 비해 환경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업을 경영할 때 환경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체크하고, 만에 하나 환경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너무나 필요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 변호사가 기업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은 환경보전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환경보전기본법 제3조 제6호에 따르면, 환경보전이란 “환경 오염 및 환경 훼손으로부터 환경을 보호하고 오염되거나 훼손된 환경을 개선함과 동시에 쾌적한 환경 상태를 유지·조성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이 정의를 언뜻 보면 기업의 사업 활동을 가능한 억제하고 개발을 안 하면 환경보전에 유리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 대입하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이미 환경이 오염되고 훼손된 시대를 살고 있다. 때문에 오염되고 훼손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돈과 기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사업 기회를 보고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바다에 버려져서 해양 생물을 위협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현재까지 제시된 방안을 모아보면 ▶1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서 해양 쓰레기 양을 줄이는 방안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에 버려지지 않도록 수거 후 재활용하여 옷 등 다른 제품을 만드는 방안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에 버려지지 않도록 수거 후 소각하거나 매립하여 처리하는 방안 등이 있다.
위 3가지 방안 중에 2가지 방안(2안과 3안)이 실제로 기업들이 현재 사업 활동으로 하고 있는 일이다. 1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방안(1안)도 개인이 하는 것보다 기업들이 1회 용품 생산을 줄이거나 포장을 과도하게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사업에 적용한다면 상당히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쓰레기 수거, 처리(소각·매립), 재활용 사업을 하는 기업의 역할이 핵심적이다. 1회 용품과 포장재 사용을 줄이는 이슈가 기업 주도의 사업 기회가 될 지 여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마이클 셸렌버거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서 저자는 “해당 국가에 강력한 쓰레기 수거 및 관리 체계가 갖추어져 있느냐에 따라 쓰레기가 결국 바다로 흘러 들어갈지 여부가 결정된다”라고 주장하면서, 저개발 국가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해양에 버리지 않고 적절하게 처리(소각·매립) 할 수 있는 시설과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혹자는 소각·매립도 대기오염, 토양오염 등 환경 오염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좋은 해결 방안이 아니라고 비판할 수 있겠으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거나 재활용하는 방안만으로 넘쳐나는 해양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다면(저개발 국가의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적절한 오염 방지 시설을 갖춘 소각·매립 기업이 플라스틱을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해양 생물을 보다 신속하게 구하는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 환경 오염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사람들이 창조한 시대의 흐름이다. 블랙 록 등 세계 유수의 투자자들이 투자 대상 회사들에게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라고 요구하고, 애플과 나이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협력회사를 평가할 때 해당 기업이 환경 문제에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ESG 시대에 생존하고 번성하기 위해서 기업 경영진은 기업의 사업 활동에 따른 환경 문제가 없는지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무실보다 공장, 폐수처리장, 폐기물매립장과 같은 현장을 더 자주 방문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환경 법령 위반, 환경 오염 또는 환경 훼손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하게 체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경영진에 보고해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
오래 전 내가 면담했던 기업의 현장 담당자들 중에는 환경 문제가 생겨도 경영진에게 보고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나 부서 직원의 운영상 잘못인 경우에는 바로 보고를 하는데, 시설 투자가 필요한 경우에는 보고하는 것을 주저하는 경향이 있었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라고 월급 받고 회사 다니는데 해결 하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달라고 해야 한다니 회사에 염치가 없어서 입이 안 떨어진다’는 설명이었다. 경영진은 현장에 이러한 분위기가 있어서 보고가 지연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고가 늦으면 문제 해결의 시기를 놓치거나 문제가 더 커져 그만큼 기업과 경영진의 책임이 무거워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업의 주요 ESG 이슈에 관해 경영진이 적절한 보고를 받지 못한 경우, 보고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는 자체가 이사의 의무 위반으로 판단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에서 식중독 사고를 일으켜서 주가가 급락한 아이스크림 제조 기업의 주주가 이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기업이 관련 법 규제를 모두 준수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사회 수준에서 직접 식품 안전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사의 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필자는 환경법 전문가로, 현재 김앤장법률사무소의 변호사이다. 환경부 고문 변호사이자 중앙환경분쟁조정회 위원이다.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법제처 법령해석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2022년 환경의 날 대통령 표창 포상을 수상했다.
이윤정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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