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자 선호하는 ‘초품아’, 주택공급 악재로 작용하나
학교 일조권 문제, 정비사업 지연 변수로 작용…잠실5단지도 암초 만나
주택시장에서 실수요자 선호도가 높은 초·중·고등학교 인접 입지가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사업 진행을 늦추는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 학교부지 기부채납 문제와 일조권 침해 문제로 인해 설계를 변경해야 하거나 사업비 급증 우려에 시달리는 조합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천 가구 규모 대단지 조성을 계획 중인 서울시 내 주요 재건축 및 재개발 사업이 이 같은 문제를 겪고 있어 향후 수도권 주택공급에 새로운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정비계획 마련 7년 만에 서울시에서 재건축계획이 확정되며 사업 속도를 높이려던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조합이 최근 서울시 강동 송파교육지원청으로부터 “조합이 국유지를 매입한 후 이전 예정 부지를 서울시에 학교부지로 기부채납해달라”는 공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기존 잠실주공5단지 내에 신천초등학교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했다. 통상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추진 시 기존 단지 내에 있던 학교부지는 이전해야 하는 사례가 많다. 현행법상 학교로부터 직선거리 200m 이내 교육환경 보호구역 내에 21층 이상 건물을 짓는 경우 등에 대해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일조권 기준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교육환경보호법)’ 및 동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학교건물의 일조량은 동짓날을 기준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연속 2시간 이상, 또는 총 4시간 이상 유지돼야 한다.
이 때문에 잠실주공5단지는 기존에 단지 한가운데 위치한 신천초등학교가 재건축 건물로 인해 일조권 침해를 받지 않도록 단지 바깥쪽으로 옮길 계획이었다. 이 과정에서 조합과 서울시는 신규 이전부지를 기존 학교부지와 교환방식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일선 교육지원청에선 ‘국유재산법’ 상 국가가 직접 관리하지 않는 학교부지를 조합이 소유한 사유재산과 교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조합은 해당 부지를 사들이는 동시에 기부채납 면적을 늘려야 할 위기에 처한 상태다. 조합 입장에선 이로 인해 부지 매입비용이 추가로 드는 데다 기부채납이 늘어 재건축 사업성이 대폭 떨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업 또한 지체될 가능성 또한 크다.
주택공급 급한데…교육환경영향평가도 무력화
은평구 갈현1구역 재개발 조합은 신규 조성단지 내에 초등학교를 신설하는 방안에 대한 문제로 여전히 갈등을 겪고 있다. 지난해 서울 서부교육지원청이 초등학교 부지 면적을 기존에 계획된 7752㎡의 2배에 달하는 1만5315㎡로 확보하라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갈현1구역 조합은 1년째 학교부지 마련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정비사업 진행이 지연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취지로 지난해 말 교육환경 보호법이 일부 개정돼 지난달 29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새로 시행된 법에 따르면 정비사업 진행 시 교육환경평가서를 심의하는 시·도 교육환경 보호 위원회 위원을 임명할 때 “도시계획·건축·환경·재해 분야의 전문가로서 개발사업 및 정비사업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포함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환경 보호법 개정도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는 데 당장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시도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은 정비사업의 교육환경영향평가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정비사업 조합에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잠실주공5단지와 갈현1구역은 이미 교육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한 상태다.
이 같은 갈등으로 인해 몇 년째 가뭄에 시달리는 서울 주택공급은 더욱 늦어질 전망이다. 특히 단지 내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를 뜻하는 신조어)’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재개발, 재건축은 수천 가구 규모 대단지 정비사업이 많다. 잠실주공5단지는 총 6815가구, 갈현1구역은 4116가구로 조성될 예정이다. 기부채납으로 인해 설계가 변경되면 기존에 조합이 기부채납하기로 한 공공주택 가구 수도 줄게 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선 교육지원청 공무원 입장에선 현행법 위반 사항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을 때 감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비사업 지연과 상관없이 엄격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러나 지적대로 학교 기부채납을 늘리게 되면 결국 정비계획을 다시 마련해야 하는 등 사업지연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민보름 기자 brm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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