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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꼭 닮았네…치열한 정치와 다툼이 있는 월트디즈니컴퍼니 [한세희 테크&라이프]

급작스런 CEO 교체…15년 동안 디즈니 부흥 이끈 밥 아이거 복귀

 
 
2년 만에 월트디즈니컴퍼니 최고경영자로 복귀한 밥 아이거. [로이터=연합뉴스]
디즈니 영화 속 세상에서는 영웅들이 힘을 합쳐 어려움에 맞서 싸우고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 하지만 꿈과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디즈니 회사 내부는 현실의 다른 모든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내부 정치와 다툼이 있다.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다는 점만은 디즈니가 만드는 영화와 같다.
 

잘 가요 밥, 또 뵙네요 밥

월트디즈니컴퍼니는 지난 20일(현지시간) 밥 차펙 CEO가 물러나고 밥 아이거가 다시 CEO를 맡는다고 급작스럽게 발표했다. 아이거는 2005년부터 CEO로서 디즈니를 이끌다 2020년 차펙에게 자리를 넘겼다. 자신이 정한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가, 그를 제치고 다시 최고경영자 자리에 돌아왔다.
 
사실 그는 퇴임 후에도 이사회 의장 자리를 올해 초까지 유지하며 회사에 영향을 미쳐왔다. 15년 간 CEO로서 디즈니의 부흥을 이끈 그의 유산은 여전히 디즈니 회사는 물론, 디즈니 팬들 사이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는 2005년 CEO에 오른 후 이듬해 스티브 잡스가 창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를 74억 달러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09년과 2012년 마블과 루카스필름을 각각 40억 달러에 인수했다. 2019년에는 20세기폭스스튜디오와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을 거느린 폭스를 713억 달러에 인수하는 초대형 거래를 성사시켰다. 1990년대 ‘인어공주’와 ‘라이온킹’ 등 명작 애니메이션을 잇달아 내놓은 황금기 이후 부진하던 디즈니는 아이거의 공격적 인수합병 전략을 통해 어벤저스와 스타워즈, 심슨 가족 등 현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대표 콘텐트를 손에 쥔 초거대 미디어 기업으로 완벽히 부활했다.
 
무엇보다 이들 콘텐트는 디즈니가 넷플릭스에 대항하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플러스를 런칭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1951년 태어난 아이거는 1974년 미국 ABC 방송국에 입사해 경력을 시작, 1996년 ABC가 디즈니에 인수된 후 ABC 회장이 되었다. 주요 의사결정을 임원진에 과감히 맡기는 경영 스타일과 공감과 소통에 능한 성품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 거물로 자리잡았다.
 
또 다른 밥, 차펙은 1960년생으로, 1993년부터 디즈니에서 일한 디즈니맨이다. DVD 유통 등의 사업을 맡기도 했으나 주로 디즈니랜드 등 테마파크 부문에서 잔뼈가 굵었다.
 

테크 기업처럼 일하는 콘텐트 기업?

공교롭게도 차펙이 취임한 직후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디즈니 경영자로서는 최악의 시기라 할 수 있다. 디즈니랜드 테마파크와 크루즈 여행 등 주력 상품들의 운영을 기약 없이 중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장 수익도 당연히 줄었다.
 
한편 이 시기는 비대면 디지털 서비스들이 약진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도 성장 기회를 맞았고, 방대하고 다양한 콘텐트를 가진 디즈니플러스는 가장 유리한 입장이었다.
 
이런 중요한 때, 차펙의 디즈니는 몇 가지 일로 구설수에 오른다. 2021년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 ‘블랙 위도우’를 극장과 디즈니플러스에서 동시 개봉했다가 “5000만 달러 수준의 극장 수익 러닝 개런티를 손해 봤다” 등의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 또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동성애 관련 교육을 금지하는 플로리다주의 새 법에 대해 침묵해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다가, 급작스레 이 법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혀 주 의회의 분노를 샀다. 디즈니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랜드 운영을 위해 거의 자치구에 가까운 혜택을 받고 있는데, 이번 일로 주 의회는 혜택을 박탈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영화나 TV 콘텐트 제작에 대한 예산 권한을 제작 책임 임원들에게서 빼앗아 자신의 심복인 카림 다니엘서에 몰아준 것도 내부의 불만을 샀다. 경기 침체를 맞아 정리해고와 채용 동결, 출장 자제 등의 조치를 취했는데, 이는 요즘 주요 테크 기업들에서 모두 취하는 조치지만 그간 불만이 쌓인 내부 분위기에 불을 지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더구나 차펙은 물러난 아이거가 상왕 노릇을 하려 한다며 불만을 드러내 둘 사이도 소원해졌다.
 
이런 일들이 쌓이며 결국 차펙은 계약 기간을 못 채우고 CEO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그리고 왕이 돌아왔다.
 
특히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임원들의 콘텐트 제작 예산 권한을 빼앗은 그의 조치는 창작자를 중시하는 디즈니의 문화에 반하는 것이라는 반발을 샀다. 다니엘의 부서는 이뿐 아니라 스트리밍 서비스도 담당했기에, 다니엘은 갑자기 미디어 업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크리에이티브 분야 경험은 없었다.
 
차펙은 억울할 수도 있다. 그의 결정은 콘텐트 제작과 행정, 재무, 마케팅, 광고 판매 등의 업무를 분리해 창작자는 창작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는 유튜브에서도 쓰는 방식으로, 사실 아이거 역시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에서 일한 스트리밍 사업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비슷한 방침을 도입한 바 있다.
 
핵심은 디즈니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 변신하려면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테크 기업처럼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스트리밍 중심으로 제작과 유통의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헐리우드 배우와 감독들을 만나 자신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크리에이티브 부서 임원들 입장에선, 돈에 대한 최종 결정을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말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스트리밍 시장에 대한 의구심이 강해지는 상황이다. 파라마운트, 애플, CBS 등 거대 기업들이 잇달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경쟁은 치열해지고 콘텐트 제작 단가는 치솟고 있다. 지난 3분기 디즈니의 스트리밍 서비스 가입자는 시장 전망을 뛰어넘어 150만명 가까이 늘어나며 2억 3500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스트리밍 부분 손실 역시 2배 가까이 늘어 14억 7000만달러에 달했다.
 
아이거는 디즈니에 복귀하며 2년 계약을 맺었다. 이 기간 중 디즈니의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고 다음 CEO도 찾아야 한다. 아이거는 CEO 재직 중 3번이나 승계 계획을 추진하다 엎은 바 있다. 콘텐트 기업을 테크 기업으로 바꾸는 일, 그리고 적합한 새 CEO를 찾는 일도 결코 쉬워 보이진 않는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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