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위축됐지만 개미 울리는 ‘뻥튀기 청약’ 제도 개선해야 [이코노 EYE]
LG엔솔에 기관이 1경원 베팅해 ‘허수 청약’ 발생
공모주 단타·대량 물량 출회 등 주식시장 혼란 막아야
한 주라도 더 받기 위해 자본금보다 높은 금액을 써내는 기관 투자자들의 ‘뻥튀기 청약’ 문제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냉각된 IPO(기업공개) 시장 위축 우려가 있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뻥튀기 청약’ 제도 개선은 필수적입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IPO 공모주 수요 예측 참여율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참여율이 늘어난 만큼 허수성 청약이 늘어 문제가 됐습니다. 공모희망 주식 수를 기관 대상 공모 예정 주식 수로 나눈 수요 예측 참여율은 지난 2017년 236대 1에서 지난해 1085대 1로 4배 넘게 급증했습니다.
기관 투자자의 불성실 수요예측 행위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9년 19건이었던 기관의 불성실 수요예측 참여 행위는 2020년 35건, 2021년 66건까지 늘어났습니다. 2020년부터 지난해 전체 불성실 수요예측 참여행위 중 투자일임업자·사모집합투자업자가 79건(78%)에 달했습니다.
특히 지난 1월 1경원이 넘는 주문 금액이 몰린 LG에너지솔루션(LG엔솔) 기관 청약이 불을 지폈습니다. 당시 LG엔솔 수요 예측은 202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LG엔솔 주식을 1주라도 더 받기 위해 기관들이 자본금보다 과도한 주식 매입 수량을 써냈기 때문입니다.
실제 LG엔솔 공모주 수요예측에 참여한 국내 680개 기관 중 80% 이상이 최대치인 9조5625억원치를 각각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수요 예측에선 1경5000조원에 달하는 주문 금액이 몰렸습니다. 680개 기관의 자본금 총액이 11조5000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과도한 규모입니다. 순자산이 1억원에 불과한 자산운용사가 9조5000억원의 수요 예측을 제출하는 식입니다. 시장 일각에선 LG엔솔 공모 한 번으로 한 해 이익을 다 벌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올해 7월 성일하이텍 수요 예측에서도 142조원의 자금이 들어왔습니다. 당시 성일하이텍 공모가 최상단 기준 시가총액은 6135억원이었습니다. 시총 규모를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몰렸습니다.
거듭되는 허수성 청약을 막기 위해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허수 청약 시 배정 물량 축소 등 수요예측 제한 패널티를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주금 납입 능력을 초과해 허수로 청약하는 관행이 퍼져 있는 만큼 책임감을 강화해 자율적으로 기관 유형별 주금납입능력 판단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공모주를 배정받은 기관의 공모주 매도 내역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이는 ‘IPO 트래킹 시스템’(가칭)으로 상장 직후 공모주를 단기 매도해 공모주 주가 하락을 주도하는 기관 투자자들의 플리핑(flipping·상장 직후 주식 매도)을 막기 위함입니다.
물론 이미 냉각된 IPO 시장이 더욱 침체될 것이라는 우려는 있습니다. 알맞은 몸값을 평가받기 위해 올해 상장을 미루거나 상장 철회를 결정한 기업들도 여럿입니다. 상반기 대어급으로 평가됐던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원스토어는 줄줄이 상장을 포기했습니다. 하반기 들어서도 플랫폼 기업인 밀리의 서재, 제이오, 골프존커머스, 라이온하트스튜디오 등 상장 철회를 결정했습니다. 기관 투자자 제약 등으로 공모주 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수 있단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허수 청약 시 배정 물량 축소 등 패널티 부여해야
기관 투자자의 뻥튀기 청약이 유리한 환경입니다. 일반 투자자 청약 때 개인이 50%의 증거금을 내는 것과 달리 기관투자자들은 증거금을 내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관이 가진 자본금보다 훨씬 많은 주문 금액을 써내는 등 ‘허수 청약’ 발생 가능성이 큽니다. 무조건 최대 물량을 청약하는 셈입니다.
뻥튀기 청약은 특정 공모주에 대한 합리적 투자 판단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기업 가치에 따른 수요예측 흥행이 아닌 뻥튀기 숫자로 IPO가 ‘흥행’으로 분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관 수요 예측에서 공모가가 최상단으로 결정되면 상장 이후 주가 급락 가능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많은 주식을 확보한 기관 투자자들이 상장 첫날 물량을 쏟아낼 수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주가 손실이 커지면서 상장 후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LG엔솔 일반 청약 당시 개인투자자들은 60만원 ‘따상’을 기대하고 청약에 뛰어들었습니다. 뻥튀기 청약으로 과하게 기대감이 높아진 셈입니다. 당시 역대 최대 수요 경쟁률을 썼다는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LG엔솔은 상장 첫날 공모가(30만원)의 약 2배인 59만7000원에 시초가를 형성했습니다. 상장 바로 다음 날엔 45만원까지 고꾸라지며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제한 없는 수요 예측으로 부풀려진 공모가는 시장 혼란을 부추길 수 밖에 없습니다. 기업 가치와 무관한 고평가 논란과 뻥튀기 청약이 아닌 알맞게 평가받을 수 있는 IPO 시장이 조성돼 투자 심리가 회복되길 기대해 봅니다.
홍다원 기자 daon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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