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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 쉬는 순백의 ‘은빛 정원’을 거닐다 [E-트래블]

강원도 태백 함백산 눈꽃 산행
6~7시간 걸리는 ‘만항재~두문동재’ 코스
탁트인 정상에서 보는 백두대간에 힐링까지

함백산 정상 풍경 [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유난히 추운 올 겨울이다. 유독 강한 한파가 기승을 부려서기도 하지만, 얼어 붙은 경제가 동장군보다 더 혹독해서일 게다. 경제 한파는 살갗이 아릴 정도의 한기보다 더 냉혹하게 우리 국민의 마음도 얼어붙게 했다. 삭막해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강원도 태백으로 향했다. 겨울에만 볼 수 있다는 꽃이 봄에 만개했다는 소식에서다. 눈보다, 얼음보다 투명한 겨울꽃, 바로 눈꽃을 보기 위해서다. 마른 가지만 앙상하던 잿빛 산을 온통 은빛으로 물들인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속세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눈꽃처럼 깨끗해기를 빌며 함백산 정상에 올랐다. 바람결에 하늘거리고, 햇살에 반짝이는 눈꽃을 좇아 꿈길 걷듯 그렇게 말이다.

눈꽃산행의 가성비 갑, 함백산

국내 대표 눈꽃산행으로 손꼽히는 산들이 있다. 전북 무주의 덕유산(1614m), 제주의 한라산(1950m), 강원 태백의 태백산(1567m). 태백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함백산(1572m) 등등. 그중 함백산이 유독 끌리는 건 해뱔고도 1500m가 넘는 고산임에도 큰 힘 들이지 않고, 산정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가성비’가 좋다. 가성비로만 따지면 곤돌라를 타고 산머리에 쉽게 올라설 수 있는 덕유산이나 발왕산이 한수 위다. 하지만 산행의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함백산을 따라올 산은 없다.

물룬 서울에서 차로 3시간 이상을 부지런히 달려야 닿을 수 있지만, 그래도 바다 건너 제주까지 가야 만날 수 있는 한라산보다는 가깝고, 태백산보다는 낮으니 눈꽃산행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함백산의 원래 이름은 대박(大朴)산. 조선 영조 때 실학자인 신경준이 저술한 ‘산경표’에 대박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산경표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간 전국의 산맥 분포표다. 대박은 태백(太白)ㆍ함백(咸白)과 함께 ‘크게 밝다’라는 의미. 태백의 진산이 바로 함백산이다. 한반도 등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정상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드넓은 풍경과 더불어 눈 덮인 겨울에 더욱 어울리는 이름이다.

함백산 산행은 만항재~함백산 정상~중함백~은대봉~두문동재(7.68km)로 이어지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 성인 남자라도 예닐곱 시간을 꼬박 걸아야만 완주가 가능하다. 함백산을 처음 만난 이들도 해발 1500m가 넘는 높이에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산행 들머리가 함백산 정상 인근 해발 1000m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실제 올라야 할 산의 높이가 불과 400m가 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마저도 힘들다면, 만항재~함백산 정상(약 3km)까지 1시간 남짓한 코스만 다녀와도 좋다.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까지의 고도 차는 불과 243m. 일반적인 산행보다 거의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닿을 수 있다. 다만, 정상을 앞두고 일부 구간에서 코가 땅에 닿을 만큼 된비알(몹시 험한 비탈)이 이어져 조금 힘이 들수 있다.

함백산 정상 풍경 [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눈꽃 따라 태백산맥 가장 높은 곳에 서다

최단거리 산행코스도 있다. 1시간 정도 오르면 함백산 정상을 밟을 수 있다. 만항재에서 태백선수촌 방향으로 가다 보면 KBS중계소 입구. 여기에 차를 대고 오르면 정상까지 약 1km에 불과하다. 제법 가파르지만 넉넉잡아 1시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장시간 산행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성비 갑’이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길이다. KBS 중계소 입구에 차를 세우고 산길로 들어선다. 입구는 의외로 길이 넓다. 산 정상에 방송 송신 시설이 있어 자주 화물차가 드나들어서다. 임도를 따라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눠진다. 왼쪽은 임도가 계속 이어지고, 오른쪽은 정상까지 가는 등산로다. 등산로로 들어서면 숲길이 이어지면서 오르막 시작이다. 정상까지 짧은 구간에서 고도가 270m가량 높아지는 길. 두어 차례는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가파르다.

그래도 내린 눈 위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득뽀득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산허리를 이어지던 길은 중간에 마련된 쉼터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갑자기 좁아지고, 가팔라진 등산로 탓에 걷던 이들의 걸음도 더뎌진다. 차곡차곡 걸음을 쌓아 가다 보면 평지나 너른 공간이 나온다. 철쭉이 만발한 봄에 이곳을 지났다면, 분명 천상화원이라는 표현을 썼을 터. 대신 잎갈나무와 떡갈나무 등 키 높은 나뭇가지마다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불과 100여m에 불과하다. 길은 짙은 구름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는다. 편한 걸음으로 천천히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서릿발을 뒤집어쓴 정장석이 정상에 도착한 산행객을 반긴다.

정장석 아래 은대봉으로 향하는 길에는 주목이 서 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더니, 튼실한 몸통에서도, 어른 허리보다 굵은 가지에서도 1000년의 힘이 느껴진다. 앞으로 2000년, 30000년도 거뜬히 버텨낼 기세다. 멀리 하얀 눈 이고 앉은 백두대간과 겹쳐 보이는 주목의 당당한 모습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정상부터는 하산길이다. 등산로는 중함백~은대봉~두문동재로 이어진다. 두문동재에는 따로 버스 노선이 없다. 미리 태백이나 고한에서 택시를 부르거나, 차량 두대로 한대는 만항재, 다른 한대는 두문동재에 세워 두는 것이 좋다.

함백산 정상석 [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엘사·올라프 살았을 법한 겨울왕국 ‘만항재’

만항재는 국내에서 포장도로가 통과하는 고개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강원도 태백과 정선, 영월의 경계 지점에 있는 고개다. 해발 고도만 무려 1330m에 달한다. 지리산 정령치나 태백과 고한을 잇는 싸릿재보다 높다. 정령치는 해발 1172m, 싸릿재는 해발 1268m다.

까마득히 높은 산길 구간인지라 눈길 운전이 걱정스럽다면 안심해도 좋다. 눈이 많은 강원도의 제설작업은 거의 완벽에 가깝기 때문이다. 고한 상갈래교차로에서 태백 화방재(어평재)로 이어지는 414번 지방도. 고한읍을 지나자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진다. 꼭대기가 가까울수록 창밖은 새하얀 풍경으로 변해간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따뜻하게 차를 타고 오르니 환상의 설국이 펼쳐진다. 만항재야생화쉼터에 차를 대고 내리자 입이 절로 벌어질 풍경이다. 하얀 낙엽송들이 도열한 채 환영인사를 한다. 고산준령의 우람한 능선이 너울너울 펼쳐진다. 눈꽃 핀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환상의 설국이다. 큰 수고 없이 얻어진 이 장관에 황송할 지경이다. 한반도를 강타한 전염병 때문인지, 사람도 거의 없다. 간혹 찾아오는 사람들도 마스크를 끼고, 모르는 이와는 거리를 두고 겨울왕국의 설경을 즐긴다.

조심스레 숲으로 들어간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숲 속에 가득 찬다. 자연스레 어린 날의 동심으로 데려가 준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팻말과 벤치도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하늘숲공원’이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만항재는 원래 눈꽃보다 ‘천상의 화원’으로 유명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로 뒤덮인다. 하늘과 맞닿은 고갯마루에 계절에 따라 야생화가 연이어 군락을 이룬다. 빼곡한 낙엽송 아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야생화를 즐길 수 있다. 새벽이면 안개가 자주 몰려와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함백산 눈꽃 [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칼칼한 국물로 석탄가루와 애환까지 ‘후루룩’

이 고원의 도시를 찾는다면 반드시 맛보아야 할 음식이 있다. 광부의 음식에서 태백을 대표하게 된 ‘물닭갈비’다. 태백닭갈비로 불린다. 1980년대 탄광산업이 성행하던 시절, 태백에는 50여개 탄광이 있었다. 광산 근처에만 가도 먹고사는 건 해결된다는 말에 고향을 옮겨온 이들이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태백이다. 이들의 거친 삶을 위로했던 음식이 바로 물닭갈비다.

그만큼 태백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음식이다. 일반적인 닭갈비와는 조금 다르다. 양념한 닭고기에 육수를 부어 끓여 물닭갈비라는 이름이 붙었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들과 함께 나눠먹기 위해 국물을 더 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조금 줄이고, 채소의 양을 늘린 것도 물닭갈비의 특징이다. 이 요리법은 태백에서 식당을 하던 어느 아주머니가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확실히 커다란 철판에 볶아 먹는 춘천닭갈비에 비해 기름기가 적고 맛이 담백하다.

탄광 근로자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삼삼오오 닭갈빗집으로 찾아들었다. 석탄가루를 마셔 칼칼해진 목을 가라앉히는 데는 국물을 넣고 끓여낸 닭갈비가 제격이었다. 닭고기가 익을 때까지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도록 국물에 채소와 면을 곁들여 냈다. 얼큰한 국물이 있는 닭갈비와 소주 한잔. 이것만으로도 태백 광부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물닭갈비에는 배추, 깻잎, 냉이 등 각종 채소가 들어간다. 그중 향긋한 냉이가 여러모로 닭고기와 잘 어울린다. 태백 시내에 자리한 태백닭갈빗집에서는 3월 초부터 5월까지 닭갈비에 태백 냉이를 쓴다. 겨우내 태백의 산과 들에서 자란 냉이가 들어가면 향도 좋고 맛도 좋아진다. 10월부터는 하우스에서 재배한 냉이를 쓴다.

그렇게 광부의 애환을 달래던 물닭갈비가 이제는 관광객들도 즐기는 단골 메뉴가 됐다. 원조는 황부자네 닭갈비, 김서방네 닭갈빗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모두 30여 년 전부터 광부들에게 닭갈비를 팔아온 오랜 식당이다. 닭갈비를 조리하는 방식은 같지만, 음식점마다 양념을 재는 비법과 맛이 약간씩 다르다. 구수한 맛이 도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얼큰한 맛이 더하거나 덜한 집이 있다. 닭고기와 채소, 사리를 모두 건져 먹은 후 마무리로 닭갈비 국물을 넣고 철판에 밥을 볶아 먹는 것은 어느 식당이나 같다.

▲여행팁= 겨울 산에 오를 때는 무엇이든 넉넉하게 준비하는 게 좋다. 아이젠과 스패츠, 등산스틱은 기본이다. 여기에 방한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복장은 레이어링(Layering)이 기본이다. 두꺼운 외투 한 벌보다 보온과 방풍 기능이 있는 얇은 옷 2~3벌을 겹쳐 입는 게 좋다는 이야기다. 장갑도 마찬가지다. 겨울 산행에서는 더워지기 전에 벗고, 추워지기 전에 입고, 배고프기 전에 먹고, 목마르기 전에 마셔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함백산에서는 취사가 불가하니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충분히 담아가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함백산 눈꽃산행 [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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