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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용평에 잦아든 봄 [E-트래블]

용평의 또다른 자랑 천년 주목…약수로 사랑받는 발왕수 가든 물

발왕산의 기운을 지키는 왕발주목. [사진 용평리조트]


[강석봉 스포츠경향 여행기자] 철옹성 같던 설산이 무너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칠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이곳은 인산인해다. 엘사의 겨울왕국은 또다시 계절 뒤로 숨었다. ‘스키어들의 성지’ 용평을 품은 발왕에는 봄의 기세가 꿈틀거린다. 천년을 품은 주목 숲에서 용평의 봄을 새겨본다.

정령이 지켜 인간에 헌사한 발왕산

발왕산(해발 1458m)은 한반도에서 12번째 높은 산이다. 용평 이전 수천수만 년을 사람의 발길이 끊긴 채로 머물던 이곳은 주목과 부엉이의 정령이 지켜왔다. 형세 자체가 ‘역발산기개세’라 ‘왕 8명이 태어날 상’이란 추앙도 그 신비함을 더한다. 세월의 더께는 ‘팔왕’이란 말을 ‘발왕’으로 바꾸어 놓았다.

정상은 국내 최장 길이의 3710m, 편도 운행 시간 20여 분의 발왕산 케이블카로 연결됐다. 또 다른 길은 오롯이 사람의 힘으로 밟아 올라야 하는 ‘엄홍길’이다. 산악인 엄홍길이 직접 명명한 길로 총 연장 4.3㎞에, 편도 2시간~2시간 30분 거리다.

그 정상은 ‘서밋랜드’라 이른다. 사실 정상은 평화봉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의 수고를 더하면, 이 산의 정상인 평화봉에 이른다. 인증샷 포인트도 있다. 서밋랜드에서 즐길 거리는 뭐니 뭐니해도 ‘기(氣) 스카이워크’다. 그 자체로 기가 센지, 거기서 버티려면 여행객의 기가 세야 할지 아리송하다. 바람이 자꾸 어깨를 후려치지만, 사방의 전경에 사로잡힌 눈은 그 호기심을 좀체로 거두려 하지 않는다. 그 기 싸움에서 이긴다면 용평 인근 산야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혹여 날씨가 수상해 그 산야가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면, 운해를 밀쳐내려는 구름과 바람의 쟁패를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는 선택이다. 한마디로 어떤 경우든 ‘기’찬 이벤트가 벌어지는 곳이 여기다.

이곳에 한 발이라도 담그면 그 기세는 대단했다. 한류라고 다르지 않다.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 한류의 원천인 ‘겨울연가’의 기운이 발현한 곳이다. 2002년 초 방송된 한류 드라마의 원조 ‘겨울연가’의 65%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이곳에 카메라를 대면 그 기세가 세계를 호령했으니…. 지난 겨울도 거센 한파와 폭설을 세상의 내놓아 엘사 마저 당황하게 했지만, 봄의 광시곡도 겨울 못지 않다. 겨울이 드세다면 봄의 뚝심도 만만치 않다.

이 땅을 지켜온 것은 사람들만이 아니다. 발왕의 기운을 잉태하게 한 1000년 주목들 역시 이 땅을 지켜낸 힘이다. 발왕산의 정령이기도 한 그들은 마유목을 중심으로 그 존재감을 오롯이 드러냈다. 그 척박한 땅에 꽃피워 빛을 낸 야광나무는 늙고 병든 상황에도 마가목에 제 몸을 내어주며 키워내 생명의 존귀함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래서 이름 역시 ‘어미 마(媽)’를 써 ‘마유목’이 됐다.

천년 주목길은 관광 케이블카로 닿을 수 있는 서밋랜드 정상에서 편안한 덱(Deck·인공 구조물)으로 살펴볼 수 있다.

3.2㎞인 천년의 주목길 덱은 겸손의 주목→마유목→120m→일주목→85m→참선주목→20m→왕발주목→250m→8자주목→130m→고뇌의 주목→80m→어머니왕주목→145m→승리주목→75m→고해의 주목→95m→아버지왕주목→565m→8왕눈이주목→310m→발왕수 가든으로 이어진다. 천년 주목군을 돌아보는 데, 약 1시간3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발왕수 가든의 물은 막걸리로 김치로 다시 만들어져 용평리조트를 대표하는 먹거리가 됐다. 발왕수는 서울대 연구 결과, 일반 생수에 비해 나트륨 성분이 낮고 바나듐, 규소 등 약수 성분은 풍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거짓말 조금 보태 만병통치 약수이니 그것으로 만든 제품이 맛이 뛰어날 수 밖에 없다.

물이 좋으니 이것을 먹고 자란 주목들도 힘 좀 쓴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발왕산 정령회의 운영위원이 됐다. 상좌 마유목을 중심으로, 이 산을 1800년 지켜온 아버지왕주목과 그 시간만큼 이 산을 어루만진 어머니왕주목을 위시해 왕발주목, 8자주목, 참선주목, 고해주목, 고뇌의 주목 등이 모여 발왕산의 기운으로 한반도를 지키는 첨병이 됐다.

이들은 숲속 나무를 깨우고, 억겁의 세월동안 산하와 밀당해 봄이 되면 태양 빛을 수만 가지 영롱한 빛으로 미분해 발광의 기세와 더불어 초록의 아름다움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사람 눈에 쉽게 띄지 않지만 산신과도 같은 발왕산 부엉이 역시 예의 주시한 눈빛을 놓지 않았으리라.

발왕산에서 발호한 기운은 인근 독일가문비나무숲에도 이른다. 애초에 화전민 마을이었으나 이들이 떠난 자리에 나무가 심어지고 숲이 됐다. 추위에 졸고 있는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파고든 봄바람은 날카로운 침엽수를 비벼대며 가문비나무를 깨웠다. 겨울철 침잠했던 숲에 요란한 소동이 일 것은 자명하고, 이 안에서 조용히 머물던 알파카에게도 봄소식은 전해졌다.

알파카와의 만남…미지와의 대화

남미 안데스 산맥이 고향인 알파카는 용평 발왕산 속에 숨어들어 그들의 은밀한 기도를 지켜오고 있었다. 그들의 은거지는 ‘라온목장’, 우리말로 즐거움이란 뜻을 담고 있다. 평화를 그리는 알파카의 기도라면, 세상 밖에 드리운 정치적·사회적 걱정거리마저도 겨울눈이 봄볕에 녹듯 세상에도 생명의 기운을 전하지 않을까 싶다. 4000m 고지 안데스의 평화와 난세를 목도한 그들의 성주풀이가 발왕산 평화봉을 넘어 세상에 안착하길 희망한다.

알파카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차도녀’의 품위를 가졌다. 하얗거나, 까맣고, 그렇지 않으면 거무데데한 듯 새끈한 외투를 둘러 입은 그들은, 다리엔 패셔니스타답게 앵클부츠를 예쁘게 신고 꼬리에도 대님 두르듯 리본을 묶었다. 버킷 모자를 둘러쓴 듯한 그들의 얼굴엔 장난기가 넘쳐난다. 그들은 보면 남녀노소 누구랄 것 없이 미소가 귀에 걸린다.

발왕산엔 ‘어머니의 품’이란 뜻이 담긴 모나파크의 이름이 아로새겨졌다. 힐링이란 말이 오히려 식상한 세상, 용평 발왕산엔 결국 ‘우리 어머니’가 함께였다.

모나파크 용평리조트는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강원 2024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가 그것인데, 2024년 1월 19일부터 2월 1일까지 강원도 평창·강릉·정성·횡성 등에서 펼쳐진다. 이 대회가 청소년 대회라 이 역시 어머니의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 일이다.

한편 1973년 4월 문을 연 용평리조트는 반백 년의 역사와 국내 최초 스키장이란 명성과 자부심으로 새로운 활로를 준비 중이다. 

화전민이 떠난 자리에 나무가 심어져 숲이 되었다는 독일가문비나무숲. [사진 용평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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